060화. 퓨처 워 -VS 저격 단톡방(1)
쿵!
[게임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게임의 큐가 잡혔음을 알리는 메시지.
“승급전 시작이네요, 가볼게요.”
지호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수락을 눌렀다.
-마참내!!!!!!
-자, 드가자~~~~~~
-다음 희생자들 나와주세요!!!
승급전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자칫 삐끗하면 승급 실패는 기본이고, 패배로 깎인 점수까지 다시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이유는.
승급을 눈앞에 두고 꺾이면 기세도 같이 꺾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어지간한 실력자들도 승급전을 앞두고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배정된 포지션 : 중앙]
“마침 미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5분 컷 예상해본다 ㅋㅋㅋㅋ
-벌써 개꿀잼이네 ㅋㅋㅋ
-양학모드 on
-가속검 ㄱㄱㄱㄱㄱㄱ
당사자인 지호를 비롯.
그의 방송을 보고 있는 이들 중에 긴장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와서 승리를 의심하기에는 오늘 그가 보여준 모습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으니까.
당연히 이번에도 이기겠지.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던 그 순간, 변수가 발생하였다.
쿵!
[금지 영웅]
[가속검]
[귀신]
……
…
지호의 주력 영웅인 가속검과 귀신이 금지된 것이다.
그것도 아군에 의해.
-엥?
-뭐야;;; 분위기 팍 깨네;;;;
-아니 ㅋㅋ 분위기를 떠나서, 이거 쎄한디?? 갑자기 가속검 밴??
-ㄹㅇ 이상함.
“흠.”
지호는 고개를 살짝 까딱했다.
경험상, 가속검이나 귀신은 어지간하면 금지되지 않았다.
워낙 잘 다루기도 어려운 데다가.
명확한 약점이 있어서 상대하기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긴 다이아 티어다.
평균적인 수준이 높아진 만큼 영웅 선택 과정에서 아군의 전적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지금까지 계속 주력 영웅들을 고를 수 있었던 건데.
뜬금없이 아군이 밴을 한다?
이건 분명 이질적인 상황이었다.
-어? 저쪽 팀 밴은 또 왜 저래
-그러게;;;;
쿵!
[적, 금지 영웅]
[환영군주]
……
…
게다가, 이어서 보인 적의 금지 목록에는 지호의 또 다른 주력 영웅인 환영군주가 있었다.
보란 듯 지호를 겨냥하는 밴 목록.
이게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기분 탓인가. 왠지 느낌이 익숙하네요.”
지호는 어깨를 으쓱했고.
-저격이넼ㅋㅋㅋㅋㅋㅋ
-에휴쓰, 어쩐지 편하게 간다 했다…….
-하긴 ㅋㅋ 미다스 정도 네임드가 저격 안 당하면 그것도 서운하긴 해 ㅋㅋㅋㅋㅋ
-시간 빌게이츠들 등판
그의 말에 동의하는 채팅도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격.
사실,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퓨처 워에서 스트리머가 저격당하는 건 말 그대로 일상이기 때문.
더군다나 지호는 인터넷상에서 워낙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저격이 붙지 않았다는 게 더 신기할지도.
-미다스도 가끔은 고생해봐야지.
-너무 편하게 오긴 했어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빡세겠지?
-ㅇㅇ 10명 중에 최소 3명이 저격이라는 건데 이걸 어케 이기누?
-0패 마스터 ㄲㅂ
-그건 좀 아깝네 ㅋㅋㅋㅋ
그래서일까?
무패 마스터라는 기록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제외하면.
시청자들의 반응은 덤덤했다.
대부분은 이번에는 질 거라는 채팅이었고, 개중에는 오히려 저격을 반기는 이들도 있었다.
고난을 겪는 미다스.
나란히 세워두기만 해도 어색한 이 조합을 간만에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저격이라.’
승급전이라는 중요한 대목에서 나타난 저격들.
분명 귀찮은 방해물은 맞다.
배치고사 때 당했던 것처럼 녀석들은 계속 죽어줄 거고, 그만큼 게임의 난이도가 올라갈 테니.
게다가 여기는 다이아 티어다.
그때보다 더 힘겨울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재밌네.’
그러나 지호는 오히려 즐거웠다.
난관 앞에서 좌절하기보단 의욕이 불타는 그의 성격 때문일 거다.
두근.
약간의 긴장. 그리고 설렘이 섞인 묘한 감정을 느끼며.
지호는 한 마디를 더했다.
“에이, 무슨 서운한 말씀을. 아쉽게도 결과는 그대로일 겁니다. 이번에도 제가 이길 테니까요.”
-캬ㅑㅑㅑㅑㅑㅑㅑ
-흠…….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엔 절대 못 이긴다 ㅋㅋㅋㅋ
‘뭐, 쉽진 않겠지.’
그도 안다.
최소 2명 이상이 저격러인 판.
빡세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니까.
[‘어쩔 건데’님이 1,000원 후원!]
[?? 님네 팀 두 명이 달릴 텐데 그거 어케 이기려고 ㅋㅋㅋ]
[‘어쩔 건데’님이 미션을 등록했습니다.]
[이번 판 이기면 50,000원]
저격을 당하면 이기기 힘들다. 라는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지호의 발언.
시청자들은 의문을 표했고.
이는 또다시 미션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이길 거냐.
그들의 궁금증에 대한 지호의 대답은 간단했다.
“초반부터 압도적으로 게임을 끌고 나가면 되죠. 뭘 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이론상 맞긴 해 ㅋㅋㅋㅋㅋ
-아 ㅋㅋ 저렇게 말하니까 또 기대되는데 ㅋㅋㅋㅋㅋㅋ
-모르겠고~ 일단 꿀잼 경기만 보면 됨 ㅋㅋㅋㅋㅋ
-미친 자신감 ㅋㅋㅋㅋ
-이래놓고 매번 성공하는 게 진짜 개짜릿함…….
-ㄹㅇ ㅋㅋㅋㅋㅋㅋ
언제나처럼 자신감 넘치는 멘트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그가 노렸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지호는 목을 가볍게 풀며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럼 이번 판은 조금 빡세게 해볼게요.”
-어? 이 멘트 ㅋㅋㅋㅋ
-익숙한데 ㅋㅋㅋㅋ
-로스트 월드에서 핵쟁이 조지기 전에 했던 말 아님?
-맞네 그거네 ㅋㅋㅋ
-ㅅㅂ 진짜 큰 거 오겠다
열심히 한다. 제대로 한다.
굳이 스트리머가 아니더라도 게임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하지만 지호의 입에서 나오니 느낌이 조금 달랐는데….
바로 어제, 로스트 월드에서 저 멘트 이후에 핵 유저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른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증폭되었고.
그렇게 승급전이 시작되었다.
* * *
[초반부터 압도적으로 게임을 끌고 나가면 되죠. 뭘 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그치.”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멘트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문제는 실제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거겠지.
“쟤네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는 잠시 저격 톡방을 확인했다.
[크르릉 : 언제부터 던질 거??]
[우니 : 일단 시작하자마자 맞다이 뜨면서 죽고, 그담에 힘들다고 우리 정글 불러야지.]
[크르릉 : ㅇㅋㅇㅋ 그 다음에 정글 탓 하면서 던지면 되겠는데?]
[우니 : 그러려고 ㅋㅋㅋㅋㅋ]
[감자링 : 난 서폿인데 어캄?]
[방장 : 감자링님은 미드에 로밍가는 척 하면서 상대 미드한테 죽어주면 될 거 같아요]
[감자링 : ㄱㅅㄱㅅ]
[방장 : 아, 초반에 탑에 감시 드론 박아주는 척 하면서 같이 죽는 것도 좋을 듯?]
[감자링 : 오? 미친 ㅋㅋㅋㅋㅋ]
[방장 : 크르릉님은 잘 컸다고 미다스랑 싸우면 안 됩니다. 무조건 피해 다니세요. 다른 두 분은 미다스 위치 계속 브리핑 해주시고요.]
벌써부터 계획을 주고받고 있었다.
심지어 방장이라는 놈의 오더는 전문가처럼 디테일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순식간에 게임이 기울어버릴 터.
띠링!
[‘엥’님이 1,000원 후원!]
[핏빛사신? 이거 미스 픽 아님???]
그때, 스피커에서 후원 소리가 울렸고 준영의 시선이 다시 지호의 방송으로 향했다.
‘핏빛사신?’
화면 속의 지호는 피처럼 붉은 대낫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영웅, 핏빛사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음…?”
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핏빛사신이라는 영웅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초반이 약하다는 것.
초반부터 끌고 나간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호 녀석이라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준영은 턱을 만지며 생각했다.
다른 스트리머였다면 이번 판은 포기했나 싶었을 터.
한데, 지호의 경우는 다르다.
그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없는 괴물 같은 피지컬이 있지 않은가.
매번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어온 것처럼 이번에도 뭔가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 거다.
‘진짜 극한의 피 관리를 하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초반에 약한 핏빛사신이지만 반짝 강해지는 타이밍이 있다.
패시브가 발동하는 순간이다.
양날의 검이라고 불릴 정도로 위험한 방법이지만.
‘지호라면 할 수 있겠지.’
어차피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믿고 응원할 뿐.
준영은 친구의 활약을 기대하며 방송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 * *
[‘엥’님이 1,000원 후원!]
[핏빛사신? 이거 미스 픽 아님???]
-핏빛사신 왜? 좋지 않나?
-잘 크기만 하면 패왕이지 ㅋ 근데 클 수 있겠냐고 ㅋㅋㅋㅋ
-백퍼 그 전에 게임 터짐;;;;
-아, 맞네…….
한참 미드로 이동하던 중에 날아든 의문!
지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시청자들이 격하게 호응했다.
핏빛사신은 제대로 성장했을 때 어지간하면 막을 수 없다고 평가받는 영웅 중 하나지만.
그만큼 성장하는 게 쉽지는 않다.
오죽하면 초반에는 숨 쉬는 것도 상대 라이너에게 허락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겠는가.
-딱 봐도 저격 껴있어서 이거로는 절대 캐리 못할 텐데…….
-진짜 에바 ㅋㅋㅋㅋ
그런데 하필 저격이 있는 판에 성장형 영웅을 고르다니.
통 이해가 안 되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는데….
[‘ㅇㅇ’님이 1,000원 후원!]
[뭐여, 저쪽 미드는 광전사야?? 리얼 조졌네…….]
바로, 상대 미드 영웅이다.
“광전사가 초반에 센 편이죠?”
-ㅇㅇㅇㅇ 걍 깡패임
-무조건 사리세요 ㅋㅋㅋㅋㅋ
-어느 정도 크기 전까진 그냥 멀리서 경험치만 먹는 게 나을 수도 있을 듯 ㅋㅋㅋ
“에이, 사리면 경험치도 못 먹겠는데요.”
지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적 영웅을 바라보았다.
후웅! 훙!
대략 5걸음 앞.
한 남자가 자신의 몸만 한 커다란 도끼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전투 로봇을 잡고 있었다.
핏빛군주와 달리 초반에는 신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영웅, 광전사다.
이를 보여주듯 상대는 라인을 절반 이상 넘어온 위치에서 자리 잡고 파밍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신 지호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각이라도 재는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면 바로 달려들겠지.
-사거리 닿으면 바로 공격하겠다.
-ㅇㅇ 계속 노리고 있네 ㅋㅋ
-어쩔 수 없음 ㅋㅋ 핏빛사신 했으면 견뎌야지 ㅋㅋㅋㅋㅋ
사려야 한다.
이게 시청자들의 생각이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
[우주 싸움꾼 → 기계 새]
[적, 더블 킬!]
[우주 싸움꾼 → 닻 사냥꾼]
탑에서 아군이 죽었다는 알림이었다.
그것도 둘이나!
이번 판, 지호의 가장 큰 적.
저격러들이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서폿 새끼가 왜 지금 시점에 탑에서 죽냐? ㅋㅋㅋㅋㅋ
-뻔하지 뭐 ㅋㅋㅋ 저격이잖아.
-에휴, 저럴 줄 알았다;;;
-벌써 던지네 ㅠㅠㅠ
-미드도 압살 못할 텐데 이번 판 어카냐 진짜…….
점점 최악으로 기우는 상황에 채팅창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러나 지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상대 미드인 광전사를 바라보며 타이밍을 재고 있었으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때마침 떠오른 레벨업 알림!
지금이 지호가 기다렸던 타이밍이다.
“후….”
그는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고는.
이내 땅을 박차며 광전사와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