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 스트리머가 게임을 잘함-65화 (65/110)

065화. 도약(3)

다음 날, 늦은 아침.

삐빅!

[자동결제 중입니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아, 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지호는 멍하니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정차한 택시 내부.

눈이 뻑뻑해서 잠깐 감았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어느새 스르르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호는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는 택시에서 내렸다.

“끄아…!”

뿌득.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시간을 확인하자.

오전 11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피곤할 만하지.’

방송을 종료하고 캡슐에서 나온 시간이 대략 6시 즈음이었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나왔으니 피곤해야 정상일 터.

“그나저나 어쩐 일이시지.”

지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주말인데 약속 없으면 점심에 집에서 밥이나 같이 먹자 -아버지]

몇 시간 전.

준영과 통화하고 있을 때 도착한 문자다.

‘후….’

솔직히 피곤하긴 한데.

그렇다고 마냥 거절하기도 뭐했다.

안 그래도 방송이니 뭐니, 그간 정신이 없어서 연락도 못 드렸던 참이니까.

아예 멀면 몰라.

같은 지역에 살면서 귀찮다고 안 가면 쓰겠는가.

[거의 도착했어요.]

지호는 답장을 보낸 뒤, 집 근처의 대형마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잘 익은 제철 과일 몇 종류와, 구워 먹기 좋은 부위라고 추천받은 소고기를 잔뜩 사서 나왔다.

“캬… 한우라니! 많이 컸다, 많이 컸어.”

양손 가득 들린 짐을 보며 지호는 피식 웃었다.

독립하고 난 이후.

본가에 갈 때마다 그는 뭐라도 사가곤 했었다.

과일이든, 고기든.

하다못해 빵이라도 말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으니까.’

문득 되돌아보면, 저는 야무지게 먹으면서 잘살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그렇다 한들 소고기는 매번 고민하면서 집곤 했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사다니.

자각하고 나니 새삼 변화가 느껴진 것이다.

“뭐, 좋은 거지.”

지호는 고개를 흔들며 잡념을 털어내고는, 천천히 집으로 이동했다.

딱히 많이 걸을 필요는 없었다.

대략 5분 정도 걷자, 지나간 세월이 느껴지는 색 바랜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저 왔어요.”

오랜만에 돌아온 집.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활기찬 발소리였다.

타다다닥!

이어서 현관 너머에서 오밀조밀한 얼굴이 나타났다.

5살 아래 여동생, 지현이었다.

“아빠! 오빠 왔어!”

오랜만에 본 그가 반가웠던 걸까?

그녀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까딱하고는 한쪽 손의 짐을 뺏어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려던 찰나.

오래 전에 찍었던 가족사진이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지호는 사진 속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걸음을 옮겼다.

툭.

거실로 가자.

한참 상을 차리고 있던 아버지가 그를 반겼다.

“왔냐, 거기 앉아라.”

“네.”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 앉았다.

“뭘 저렇게 많이 사 왔냐.”

“그냥요. 맛있어 보여서.”

“그래, 밥 먹자.”

간만에 만난 부자간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원체 둘 다 과묵한 성격이라.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던 것이다.

건강히 살고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된 거 아니겠는가.

달그락! 후릅.

그렇게 한참 밥 먹는 소리만 울리던 찰나.

“다들 왜 밥만 먹어. 간만에 봤는데 무슨 대화라도 하자! 숨 막혀 죽겠어.”

지현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살아있는 거 봤으면 됐지. 뭔….”

그녀의 말에 툭 대답하려던 아버지는 순간 말을 멈췄다.

입을 삐쭉거리는 딸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저건 삐지려는 징조다.

경험상, 이렇게 기분이 상하면 뒷감당이 힘들었기에.

그는 재빨리 아들에게 물었다.

“흠흠, 그래. 요즘 일은 잘하고 있냐.”

“네, 뭐. 그럭저럭 하고 있어요.”

일을 잘하고 있냐는 아버지의 질문.

지호는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곧이곧대로 대답할 문제도, 타이밍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때를 봐서 말씀드려야지.’

아버지는 전형적인 옛사람이다.

그가 게임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분명 놀라실 터.

대신, 지호는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렸다.

스윽.

미리 준비했던 봉투를 꺼낸 것이다.

“웬 봉투냐.”

“이번에 보너스를 좀 받아서요. 지현아, 여기.”

“어? 나도 주는 거야?! 땡큐!”

지현은 해맑게 웃으며 오빠가 건네는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슬쩍 내용을 확인했을 때.

“헉?”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이게 얼마야…? 하나, 둘… 다섯. 50만 원?!’

대학생인 입장이라 용돈은 종종 받곤 했었다.

다른 점이라면.

평소에 비해 액수가 크다는 것?

“오빠, 복권 당첨됐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돌아봤지만.

그녀에게 봉투를 건네준 지호는 그저 태연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 * *

“벌써 가? 더 있다 가지!”

“저녁에 약속 있어서 준비해야 해. 다음에 또 올게.”

식사가 끝난 후, 지호는 바로 집을 나섰다.

피곤해서 쉬고 싶기도 했고.

저녁에 준영에게 오튜브 얘기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택시 호출 중입니다.]

틱! 틱!

“후….”

집 앞에서 택시를 부른 지호.

그는 담배를 입에 물며 생각에 잠겼다.

문득 오래 전의 기억.

게임을 멀리하게 된 계기가 떠오른 탓이다.

‘자고로 남자는 정상적인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 게임은 그만하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셨었지.’

우연히 다시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때처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 방송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었으니까.

“뭐, 괜찮겠지.”

하다못해 TV도 잘 안 보시는데, 게임 방송을 알게 될 리 없다.

치익!

지호는 다 태운 담배를 끄며 걱정을 눌러 담았다.

* * *

그날 저녁.

비싸고 맛있는 걸 사달라던 준영이 부른 곳은, 앞서 갔었던 삼겹살집이었다.

“비싼 거 먹자더니 뭔 삼겹살이여.”

치이익!

지호는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농담이지, 임마. 어차피 너 아직 첫 정산도 받기 전 아니냐?”

“뭐, 그건 그렇지. 아마 이번 달 중순쯤에 나올 듯?”

역시 프로 편집자.

스트리머들이 정산받는 날짜가 언제인지 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정산받고 사줘. 근데 운 좋으면 그때 구독자 10만 기념주까지 한잔할 수 있겠는데?”

“……?”

지호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채널은 어제 만들었지만, 오튜브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알아봤다.

당연히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오튜브 구독자 10만.

앞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저 녀석이 대수롭지 않게 말한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말이다.

누군가는 일생일대의 목표로 잡을 정도로 까마득한 수치다.

‘더 어이없는 건, 지금 추세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는 거겠지.’

대략 10여 분 전.

집에서 출발하면서 확인했을 때의 구독자가 대략 5만 명이었다.

심지어 아직도 늘어나는 기세가 살벌한 걸 보면, 당분간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기대되는 동시에 궁금증도 들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냐? 원래 오튜브 구독자가 이렇게 쉽게 오르는 거였어?”

지호도 인터넷은 봤으니 어떤 계기로 떡상한 건지는 알고 있다.

문제는, 거기까지 이어지는 과정.

“아, 오튜브? 듣고 기절하지나 마라. 내가 생각해도 오졌으니까.”

준영은 어떻게 각각의 상황을 연결했는지 지호에게 말해주었다.

“미친놈. 진짜 대단하다.”

모든 내용을 들은 지호의 대답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영상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 거야 알고 있었는데, 이런 재주까지 있을 줄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새로 자신의 영상 편집자가 된 친구 놈은 성실하기까지 했다.

“나 대단한 거야 알고 있으니까, 일단 이거 봐봐라. 영상 하나 새로 만들었거든? 내일 올라갈 겨.”

“오…? 줘봐. 함 보자.”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받았다.

[세계 최초 0패 마스터의 첫판은 어땠을까? (퓨처 워)]

어제 올라간 첫 영상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목이었다.

과연, 내용은 어떨까.

지호는 흥미를 느끼며 영상을 재생했고, 이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괜찮냐?”

“미친놈….”

그렇게 한참.

정신없이 영상에 집중하던 그의 입이 열린 것은, 준영이 질문을 던진 이후였다.

‘저거, 진짜 괴물이네.’

영상의 내용은 간단하다.

제목으로 알 수 있듯, 지호가 퓨처 워를 처음 한 날의 방송을 편집한 것이었으니까.

다만, 퀄리티가 엄청났다.

오죽하면 당사자인 지호도 정신없이 봤을 정도겠는가.

게다가 마지막에는 핵 논란에 휩싸였던 것을 언급하면서, 다음 영상을 기대하게 만들기까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이건 또 언제 만들었냐.”

절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루만에 2개의 영상을 만들다니.

심지어 둘 다 높은 퀄리티로.

무슨 뚝딱! 하면 영상이 나오는 자판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뭐, 별거 없어. 밤 꼴딱 새고 방금 전까지 만들다 온 정도? 내가 이렇게 열일한다, 사장님아.”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는 준영.

말은 별거 없다고 하는데,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심 뿌듯함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오케이! 보너스 드리겠습니다, 콜라 시키십셔.”

“키야. 역시 싸장님!”

“농담이고, 진짜 챙겨줄 테니까 같이 빡세게 달려보자.”

일단 장난스레 넘어갔지만.

보너스를 주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다만, 평범한 보너스가 아니다.

처음 오튜브에 관한 얘기를 나눌 때, 일정 퍼센트를 떼주기로 한 것.

그걸 기존에 잠정적으로 정해둔 비율보다 높게 쳐 줄 계획이었다.

치이이익!

“야, 뭐해! 고기 탄다. 빨리 먹어.”

“어어. 땡큐.”

노릇노릇을 넘어 바삭하게 익은 고기를 아그작 씹으며 지호는 생각했다.

단순한 편집자가 아닌, 채널을 같이 성장시킬 동업자를 원한다.

그가 준영에게 했던 제안이었다.

겨우 하루.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짧은 시간인데도, 준영은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했다.

그렇다면 대우를 해줘야겠지.

그리고 지호가 아는 한 준영은 노력을 인정받으면 그만큼 더 열심히 할 성격이니.

이는 결국 서로의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다.

‘미리 설레발 칠 필요는 없고, 제대로 계약서 쓸 때 다시 조율해봐야겠지만.’

이처럼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고기를 먹고 있던 그때였다.

“근데 이제 무슨 게임 할 거냐?”

마찬가지로 먹는데 집중하던 준영이 넌지시 물었다.

“일단 퓨처 워 조금 더 해볼 생각. 이제야 슬슬 라인전에서 재밌는 사람들 보이기 시작했거든.”

티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참이었다.

마스터에 가까워질수록.

전반적인 게임의 수준이 높아졌고, 이제는 하나둘씩 괜찮네? 싶은 이들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마스터가 이 정도인데 챌린저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터라, 당분간은 퓨처 워를 돌릴 계획이었다.

한데, 준영의 의견은 달랐다.

“당분간은 랭겜 자제하는 게 나을 듯? 작년 이맘때쯤에 스트리머 대회 있었는데, 그거 올해도 열린다는 소문 있거든.”

“스트리머 대회? 상관있나?”

지호는 고개를 기울이며 반문했다.

그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준영이 부연 설명했다.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일단 작년 룰은 마스터까지만 참가할 수 있었거든. 혹시 모르니까 존버하는 게 낫지.”

“아하.”

스트리머 대회의 중요성은 그도 익히 들었다.

팀을 꾸리는 과정부터.

대회의 진행, 끝난 후 뒤풀이까지.

워낙 재밌는 데다가, 그로 인한 시청자 유입도 엄청나서 가능하면 무조건 참여하는 게 이득일 터.

“그럼 뭐 할지는 방송 켜서 시청자들하고 대화해봐야겠다.”

지호는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트리스에 대회 공지가 올라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