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화. 합방 -호박왕(2)
[승리!]
“어…? 벌써 끝?”
문득 시야를 가린 메시지에 지호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전체말로 도발을 시전한 뒤.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어느새 승리요건인 20킬이 채워진 것이다.
-벌써라니 ㅋㅋㅋ 얼마나 집중했으면 끝난 것도 몰라 ㅋㅋㅋㅋ
-그럴만하지 ㅋㅋㅋㅋ
-9명이 계속 달려드는데 정신이 있겠냐고 ㅋㅋㅋㅋㅋ
-ㄹㅇ ㅋㅋ
-마지막 개싸움 진짜 오졌다.
-상대도 마스터들이라 미다스 차력쇼 진짜 제대로 구경했네…….
“그러게요. 확실히 같은 팀이 아예 없는 건 느낌이 또 다르네요.”
방금 전까지의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린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재밌네.’
말로만 들었던 콜로세움 모드.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묘한 매력이 있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랄까?
그도 그럴 게, 자신을 제외한 9명이 모두 적인데 심지어 전부 마스터 유저다.
당연히 전투가 치열할 수밖에.
심지어 마지막에는 한 번이라도 죽여 보겠다고 이를 악무는 이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더더욱 빡셌다.
뭐, 결국 한 번도 죽지 않았지만.
[미션 성공!]
[‘콜로세움 악귀’님이 100,000원 후원!]
[잘 보고 갑니다. 저 같은 악귀들을 위해 종종 콜로세움 모드도 해주세요 ㅎㅎ…….]
-캬!!! 10만원!!!
-콜악귀 성불했네 ㅋㅋㅋㅋ
-나도 콜로세움에 환장하는데, 미다스 콜로세움은 ㄹㅇ 개맛있네.
-ㅇㅇ 보는 맛이 있음 ㅋㅋㅋㅋ
안 그래도 만족스러웠던 참.
지호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콜로세움 악귀님 10만 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종종 할 거 같아요. 생각보다 재밌네요.”
-오!!! 개꿀 ㅋㅋㅋㅋ
-첫 판인데도 이래 오지는데 몇 번 더 하면 개쩔겠누;;;;
-트스대 걍 씹어먹을 듯 ㅋㅋㅋ
-그래도 챌린저들한테는 안 먹히지 않을까……?
-해봐야 알 듯 ㅋㅋㅋㅋ
-일단 개 털리진 않을 거 같은데.
-혹시 이길 수도 ㅋㅋㅋㅋㅋ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관심은 트스대로 이어졌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트스대는 원체 핫 한 화제인 데다가.
실제로 마스터들이 모인 콜로세움에서 압도적으로 활약하기까지 했으니, 기대가 되는 것이다.
‘진짜 재밌겠는데.’
물론 지호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마스터들을 상대해도 이렇게 스릴이 넘치는데, 챌린저가 상대면 어떻겠는가.
분명 지금보다 더 짜릿하겠지.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지만 그건 추후에 있을 일.
당장에 중요한 것은 합방이다.
“일단 나가볼까요.”
지호는 바로 퓨처 워를 종료했고.
호박왕이 기다리고 있는 대기공간으로 이동했다.
“오셨다! 미다스 님! 콜로세움 모드는 어땠나요? 생각보다 재밌죠?”
“네, 맘에 들어서 앞으로도 종종 할 거 같아요.”
“캬! 안 그래도 방금 하시는 거 보고 감탄했는데, 얼마나 더 잘해지시려고!”
그렇게 소소하게 대화를 주고받던 찰나.
호박왕의 방송에 후원이 들어왔다.
[‘속지마!!!’님이 1,000원 후원!]
[미다스님! 얘가 게임하는 내내 미다스님 지라고 기도했어요!!!]
“어허! 기도는 무슨! 미다스 님 이거 오해입니다!”
-오해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
-지금 어? 호박왕 당신이 한 말을 2만 명이 지켜봤어!!!!
-다시보기 부검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습적인 폭로에 호박왕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자 채팅창이 더욱 신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호박왕의 방송 트레이드마크인 장난 섞인 티키타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호도 한술 보탰다.
“호박왕 님, 그런 마음이셨군요. 기억해두겠습니다.”
“아니이! 미다스 님까지!!!”
-앜ㅋㅋㅋㅋㅋㅋ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
-미다스 이런 성격이었음???
-개웃기네 ㅋㅋㅋㅋㅋ
같은 장난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효과는 다르다.
평소 과묵한 편인 미다스의 장난.
이는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더 좋아졌다.
‘타이밍도 좋고, 지금이 각이네.’
그리고 지금처럼 업된 분위기는 호박왕의 주 무대다.
“미다스 님! 그럼 기억하시는 김에, 저한테 복수할 수 있는 기회 잡으실련지?! 호박왕과 함께하는 협동 게임, 클리어를 못해도 20만 원이?!”
-여기서 게임 전환각을?
-이걸 이렇게 이어가네 ㅋㅋㅋㅋ
-빌드업 뭔데 ㅋㅋㅋ
-역시 호박왕 ㅋㅋㅋㅋㅋㅋ
호박왕의 시청자들은 새삼 감탄했다.
언제 말을 꺼내려나 했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다니….
과연 호박왕이었다.
그리고 골 때리는 것은, 이어진 미다스의 반응이었다.
“오, 그것도 재밌겠는데요? 호박왕 님이 주시는 20만 원은 무조건 받아야죠.”
-이 사람도 정상은 아닌데 ㅋㅋ
-호박왕 20만원 뜯기게 생겼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농담인 듯, 진담 같은 미다스의 멘트.
“어…, 어…. 제가 드리는 건 아니고!”
모두가 웃음을 터뜨린 와중.
호박왕이 거기에 호응하더니,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방금 미션이 들어왔거든요! 미다스 님하고 저하고 협동 게임을 하기만 해도 각방 20씩 준다고.”
“협동 게임이면, 둘이 힘을 합쳐서 뭔가 하는 건가요?”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감으로 대강은 알겠는데, 확 와 닿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일단 해본 적이 없으니까.
“네, 그런 종류죠. 뭐 장르에 따라 다른데. 어? 그러고 보니 어떤 게임을 하라고 하신 거지?”
[‘Poro’님이 1,000원 후원!]
[Dungeon Escape With Friends]
“오! 포로님 감사합니… 어…?!”
기다렸다는 것처럼 날아든 후원.
신나게 대답하려던 호박왕은 제목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미다스랑 같이 하라고 해서 당연히 피지컬류 게임일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이거 맞아?! 왜 퍼즐겜이야!”
-감다살인데? ㅋㅋㅋ
-ㄹㅇ 미다스한테 피지컬겜은 쉽긴 할듯 ㅋㅋㅋㅋㅋ
-이건 상상도 못했네 ㅋㅋㅋ
-개꿀잼각 on
퍼즐 게임.
머리를 많이 쓰는, 일명 능지가 필요한 장르였다.
‘뭐, 괜찮으려나.’
미다스의 뇌지컬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은 없다.
일단 게임 자체를 잘하는 사람인데 설마 퍼즐 게임에서 막히겠는가.
“미다스 님, 머리 쓰는 게임이나 방탈출 같은 건 좀 해보셨나요?”
호박왕은 내심 기대를 품고 미다스를 바라보았다.
“어… 한 번도 안 해보긴 했는데, 일단 해볼게요.”
“어?”
그리고 돌아오는 그의 대답에 문득 불안감이 스치려던 찰나, 웅장한 알림이 떴다.
쿠구궁!
[‘Poro’님이 200,000원 후원!]
[ㄱㄱㄱ]
-Kia~~~~~~~~~
-선입금을 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 해야겠지……?
미션을 완료하기도 전에 미션금부터 줘버리는 것.
즉, 선입금이 들어온 것이다.
정 하기 싫으면 어찌어찌 환불이야 해줄 수 있지만, 그랬다간 방송 분위기가 팍 가라앉을 터.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포로님 20만 원 감사합니다. 미션을 걸어주신 분인가 보네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때마침 미다스도 리액션을 했다.
그 말인즉, 낙장불입이라는 소리!
이렇게 된 이상 피할 수도 없다.
그를 믿을 수밖에.
“좋습니다, 미다스 님! 가보죠!”
“네!”
-정보) 미다스는 방송에서 머리 쓰는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한.번.도.
호박왕은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채팅을 애써 모른척하며.
일부러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 * *
대형 스트리머 미다스와 호박왕.
그들이 협동 퍼즐 게임을 시작한 지 대략 10여 분이 지난 시점.
겜잘알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속보) 미다스랑 호박왕 합방 레전드 장면 나옴]
-또 호들갑이겠지.
대부분의 겜잘알 유저들은 이런 생각으로 해당 글을 클릭했다.
대형 스트리머들이 합방할 때에는 항상 별것도 아닌 일을 부풀리는 글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글을 누르자마자 사라졌다.
“야, 미다스!!!”
짧고 임팩트 강한 클립.
거기서 미다스에게 소리친 이는 다름 아닌 호박왕이었다.
이게 무슨?
글을 누른 겜잘알의 유저들은 곧바로 내용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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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레전드 맞지????
미다스랑 호박왕 합방에서 이런 레전드 장면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ㅋㅋㅋㅋㅋㅋ
이거 뭔 상황이냐면.
어떤 사람이 각방 20만원씩 주고 Dungeon Escape With Friends라는 퍼즐 게임을 시켰거든.
근데 10분 만에 호박왕이 미다스한테 사자후 시전함 ㅋㅋㅋㅋㅋㅋ
미다스가 퍼즐 게임이나 방탈출 이런 걸 한 번도 안 해봤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ㄹㅇ 아무것도 모름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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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 정도면 호들갑이 아니라 레전드였다.
호박왕이 소리친 것도 놀라운데.
그 전에, 게임을 잘하기로 유명한 미다스가 버벅이는 모습이라니!
자연스레 놀란 댓글들이 달렸다.
-저거 찐텐임??
└ㄴㄴ 호박왕 짬이 몇년인데 찐텐이겠누 ㅋㅋㅋ 걍 미션임
└근데 감정이 느껴지는데?
└그럴만해…….
└22222 나였어도…….
-개웃기네 ㅋㅋㅋㅋㅋ 둘이 오늘 처음 본 사이 아닌가?
-얼마나 못했길래 ㅋㅋㅋ
-미다스도 사람이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 하도 뭘 하든 씹어 먹어서 로봇인줄 ㅋㅋㅋㅋㅋ
믿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인 상황.
놀람은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호기심은 그들을 미다스와 호박왕의 방송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많았던 시청자 수가 더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새로운 기록으로까지 이어졌다.
* * *
“어…. 호박왕 님 안 열리는데요?”
“어째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오래 걸리겠누;;;
-퍼즐 푸는 거 보면 능지가 떨어지는 편은 아닌데, 남은 마지막 장치가 너무 악랄함 ㅋㅋㅋㅋ
-이게 방탈출류 게임이 처음이라 더 그런 듯…….
-ㅇㅇ 알고 나면 허무한데, 모르면 절대 못 알아차리는 게 이런 게임이라 ㅋㅋㅋㅋㅋㅋ
-호박왕 고통 받는 거 그냥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하!
실시간으로 지호의 방송을 지켜보던 준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호박왕의 격한 반응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를 즐겁게 만드는 것은 또 있었다. 반대편 모니터에 띄워진 겜잘알의 반응이다.
“캬…, 진짜 운 하나는 타고난 놈이라니까. 그걸 누가 바로 클립으로 따갔네.”
그도 계속 방송을 보고 있던바.
퍼즐 게임을 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이런 결과는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봐온 지호는 두뇌파가 절대 아니었으니까.
물론 호박왕한테 들어온 반말 미션이나.
이후, 그 클립이 겜잘알에서 화제가 되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오튜브 영상각이다 정도?
하지만.
‘오히려 잘됐어.’
그의 경험상, 대중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어느 정도 인간미가 있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
역시나, 퍼즐 게임에 약하다는 약점이 발견됐음에도.
겜잘알의 분위기는 좋기만 했다.
오죽하면 그 이후 미다스의 트리스 채널 구독자도 확연히 늘어나는 게 보일 정도다.
“이제 여기서 어떻게든 깨기만 하면 영상 마무리도 깔끔해져서 좋을 텐데.”
준영이 아쉬움에 중얼거리며 방송을 보던 그때였다.
“어?!”
지호가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