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화. 합방 -호박왕(3)
“어…. 호박왕 님 안 열리는데요?”
“어째서!!!!”
협동 게임을 시작하고 대략 15분 정도가 지나가는 시점.
건너편 감옥에서 들려오는 의문 섞인 목소리에 호박왕의 입에서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오래 걸리겠누;;;
-퍼즐 푸는 거 보면 능지가 떨어지는 편은 아닌데, 남은 마지막 장치가 너무 악랄함 ㅋㅋㅋㅋ
-이게 방탈출류 게임이 처음이라 더 그런 듯…….
-ㅇㅇ 알고 나면 허무한데, 모르면 절대 못 알아차리는 게 이런 게임이라 ㅋㅋㅋㅋㅋㅋ
-이건 답 알고 봐도 악질임;;;
-호박왕 고통 받는 거 그냥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박왕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미다스가 게임에서 고생하는 장면은 워낙 희귀했던 터.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리고 겉으로는 절규하던 호박왕도 내심 만족스러웠다.
[시청자 수 : 23,162]
‘캬, 달달하다. 역시 합방하자고 제안하길 잘했어.’
압도적으로 늘어난 시청자 수만 봐도 합방이 성공적임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청자 수 2만 명.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넘겨보지 못한 수치였다.
‘최대가 1.5만 정도였던가.’
그만큼 높게만 느껴졌던 벽이었는데, 미다스와의 합방은 아무렇지 않게 벽을 박살 냈다.
심지어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절로 만족스러울 수밖에.
[‘호박왕 속마음’님이 1,000원 후원!]
[이제 슬슬 깰 때도 됐는데…….]
-어이 ㅋㅋㅋㅋㅋ
-그건 비밀이라고 ㅋㅋㅋㅋ
-??? : 야 미다스!!!
“에이, 아니야. 원래 이 게임 퍼즐이 좀 악질이라며.”
그때, 도착한 장난스러운 후원.
호박왕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Dungeon Escape With Friends.
소위 방탈출류라 불리는 게임으로 진행방식은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들과 비슷하다.
2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때로는 각각 정해진 위치에서 퍼즐을 풀며 던전을 탈출하는 것.
문제는 게임의 시작점이다.
왼쪽 감옥에서 눈을 뜬 사람이, 거기서 탈출한 뒤 오른쪽 감옥에 갇힌 동료를 구하는 것부터가 시작인데.
이 파트의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종종, 여기서부터 환불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지금 그들의 처지가 비슷할 터.
하지만 호박왕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깨면 깨는 거고. 못 깨도 어쩔 수 없는 거고.’
어차피 그들이 이 게임의 프로게이머도 아니고, 그저 시청자들이 만족하면 장땡이다.
[‘속보’님이 1,000원 후원!]
[미다스 시청자 2.5만 뚫 ㅋㅋㅋ]
-솔직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다슨데 이거 직관 어케 참아 ㅋㅋㅋ
-하필 미다스쪽이 빡센 퍼즐인 것부터 레전드 ㅋㅋㅋㅋ
-ㄹㅇ ㅋㅋㅋ 그냥 방송의 신임.
시청자들의 만족도를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다만, 지표로 대강 유추할 뿐.
일단 지금의 지표는 긍정적이다.
아마 평소와 대조되는 미다스의 인간미가 독특한 재미로 다가온 거겠지.
하지만 호박왕은 알고 있다.
색다른 상황에 흥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주 잠깐이다.
곧 답답하다는 의견이 하나둘씩 나오고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뀔 터.
그 전에 슬슬 진도를 나가야 한다.
“미다스 님, 주변에 남은 힌트는 없나요?”
생각을 마친 호박왕은 장난기를 지우고 창살 너머 보이는 미다스를 향해 외쳤다.
“호박왕 님 쪽 열쇠는 찾았는데, 제가 갇힌 감옥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구조더라구여. 근데 단서를 아무리 조합해도 안 나오네요.”
“아하.”
예상했던 대답이다.
보통 이런 게임들은 단서를 교묘하게 숨겨두곤 하니까.
호박왕은 슬쩍 힌트를 던졌다.
“이쪽에선 잘 안 보이는데 팁 하나 드리자면, 보통 이런 게임에서 막힐 땐 발상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오…. 발상의 전환…….”
라는 대답은 들려왔으나, 호박왕은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다.
괜히 어렵다는 말이 있겠는가.
특히, 미다스는 퍼즐게임은커녕 현실의 방탈출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더욱 오래 걸리겠지.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호박왕은 물론이고 미다스의 방송 채팅창도 평화로웠다.
“아무리 뒤져도 없는 걸 보면 단서는 이게 끝인데, 여기서 어떻게 풀어 봐야 되겠네요.”
-원래 이게 어려움 ㅋㅋㅋㅋ
-ㅇㅇ 그래도 처음 해보는 것 치곤 순조롭게 하시는 거임
-ㅇㅈㅇㅈ 이게 맞다 ㅋㅋㅋ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도발적인 미션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띠링!
[‘쏘’님이 미션을 등록했습니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5분 내로 호박왕 탈출시키면 100,000원]
-5분이면 ㅋㅋㅋㅋ 안준다는 마인드자나
-그러게 ㅋㅋㅋ
-근데 이거 미다스 몰라서 그럼 ㅋㅋㅋ 얘 미션 걸리면 오지게 강해짐 ㅋㅋㅋㅋㅋ
-ㄹㅇ ㅋㅋ 지금부터 진짜다.
5분 안에 호박왕을 구하라는 미션.
일부가 예상한 것처럼 미션과 동시에 지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미션 감사합니다.”
이어서 지호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열린 천장 사이로 들어오는 빛.
그리고 작은 거울과 손가락만 한 비석, 마지막으로 열쇠까지.
감옥에 있던 모든 것이었다.
일단 비석이 박혀있던 공간에 거울로 빛을 비춰서 열쇠를 찾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다음은 이 방의 비밀번호인데.
도무지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발상의 전환이라….’
호박왕의 조언을 떠올리며 방법을 찾는 것도 잠시.
이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구하러 갈 방법을 못 찾겠으면, 순서를 바꾸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어떻게든 호박왕 님만 구하면 되는 거죠?”
[‘쏘’님이 1,000원 후원!]
[ㅇㅇ]
“확인요.”
지호는 곧바로 팔을 뒤로 젖혔다.
그의 손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거울이 들려있었다.
‘꽤 먼데, 닿으려나.’
-설마 ㅋㅋㅋㅋㅋㅋ
-에바야 ㅋㅋㅋㅋ
-되나????
진지한 표정과 자세로 의도를 알아챈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날리기 시작했으나.
지호는 그대로 거울을 던졌다.
후웅!
던지기 전에 대충 가늠했듯, 지호와 호박왕이 갇힌 감옥 사이의 거리는 꽤 멀다.
거울에 실린 힘은 금방 사라졌고.
빠르게 날아가던 거울은 결국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티익.
대략 2/3 정도를 날아간 후였다.
“까비.”
-까비는 무슨 ㅋㅋㅋㅋㅋㅋㅋ
-되겠냐 ㅋㅋㅋㅋ
-꼼수 ㄴㄴ 그러다 실패하면 리트해야함 ㅋㅋㅋㅋㅋ
-대체 이런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스트리머였다면 기대도 안 했겠지만, 상대는 미다스다.
뭔가 보여주나 싶어 기대했는데….
결과는 대실패.
채팅창이 웃음으로 도배되었다.
“다시 갑니다.”
멋쩍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지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왜냐.
‘이번에는 성공할 테니까.’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끝내 해내는 것.
지호는 열쇠를 들고 다시 팔을 뒤로 젖히고는.
각도를 살짝 높인 뒤, 던졌다.
휘이잉-!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열쇠는 조금 더 멀리 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힘이 빠지며 천천히 바닥을 향해서 떨어지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지호는 구경만 하지 않았다.
스륵.
‘하나, 둘…. 지금.’
열쇠가 떨어지기 전에 직선으로 비석을 던졌다.
후웅!
비석이 빠르게 날았고.
투욱!
최고점에서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열쇠를 타이밍 좋게 가격했다.
덕분에 살짝 뜨며 비거리가 길어진 열쇠는, 보다 더 날아 호박왕이 갇혀있는 감옥 문 앞에 정확히 착지했다.
정확히 지호가 노렸던 대로다.
-??????
-??????????
-이걸 해내???
-아니 ㅋㅋㅋㅋㅋ
경악한 시청자들이 갈고리를 박기 시작했다.
비석을 던져서 날아가는 열쇠를 맞추다니!
이 무슨 정확도란 말인가.
그들의 반응을 본 지호는 빙긋 웃었다.
“짜잔. 발상의 전환입니다.”
-어…. 이렇게 전환하라는 건 아니었을 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ㅋㅋㅋㅋㅋ
-아니 이건 출제자의 의도랑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ㅋㅋㅋㅋ
“뭐, 출제자의 의도가 중요합니까. 정답을 맞혔다는 게 중요하지.”
어깨를 으쓱대는 지호의 말처럼 호박왕을 가둔 문이 열렸다.
철컥!
그 말인즉, 구출에 성공했다는 말.
[미션 성공!]
[‘쏘’님이 100,000원 후원!]
[야 이 사기꾼아 ㅋㅋㅋㅋㅋㅋ]
“하하! 호박왕 님 이쪽에서 비밀번호 좀 같이 찾아볼까요?”
“네네, 바로 뛰어갑니다!”
-이건 구해줘야지 ㅋㅋㅋㅋㅋ
-“해줘.”
-아 오늘 미다스 개웃기네 ㅋㅋ
또다시 독특한 길을 개척한 지호를 보며 시청자들은 직감했다.
-이번 판 평범하게 가지는 않을 거 같네 ㅋㅋㅋㅋㅋㅋㅋ
-100%지.
* * *
“미다스니임! 거길 그렇게 넘어버리면!!! 아니! 저게 왜 되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박왕 수난시대 ㅋㅋㅋㅋㅋ
-이게 퍼즐겜이여 피지컬 겜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예감처럼.
그들의 남은 게임은 특이한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정석과 변칙의 결합이랄까?
“여기서 이걸 맞추고 이걸 비추면! 캬!”
-크…….
-역시 호박왕 뇌지컬겜은 오져.
-이게 뇌섹남이지 ㅋㅋㅋㅋㅋ
모든 길과 퍼즐을 정석적으로 풀고 나아가는 호박왕과.
“어? 이거 되겠는데요?”
“또 어디가!!!”
빈틈만 보이면 비집고 깨버리는 미다스.
둘의 조합은 생각보다 독특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미다스 님, 저쪽에서 버튼 누르고 바로 넘어오시면 됩니다!”
“넵.”
복잡한 퍼즐이 앞을 가로막는 파트에서도.
“올라가는 길에 함정이 있는 거 같은데. 저거 맞춰서 떨어뜨릴 테니, 호박왕 님이 기믹 풀어주세요.”
“그거야 껌이죠, 갑시다!”
악랄한 함정이 숨겨진 파트에서도.
철컥-!
“다음.”
그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저벅-저벅.
그렇게 한참을 이어지던 지호와 호박왕의 합작이 멈춘 건 던전에서 탈출한 후였다.
* * *
“오늘도 방송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바트바!”
“다들 내일 봐요!”
[스트리밍을 종료합니다.]
협동 게임 이후, 지호와 호박왕은 잠시 잔잔한 소통시간을 가진 뒤 방송을 종료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합방에서 보일 수 있는 재미는 충분히 뽑아냈기 때문이다.
“고생하셨습니다.”
“호박왕 님도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오늘 즐거웠네요. 그럼, 이만.”
“미다스 님.”
방송이 꺼진 뒤, 대기 공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던 호박왕이 지호를 불렀다.
“네?”
“다름이 아니라….”
조금 성급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호박왕은 잠시 주춤했으나, 고민은 짧았다.
몇 시간 동안 지켜본 바로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더 잘 먹히는 스타일이라 판단했으니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이번 트스대에 저희 팀에서 활동하실 생각 없나 여쭤보고 싶어서요.”
“트스대요?”
“네네. 왕눈이 님하고 친하신 건 아는데, 저희 쪽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트스대 우승도 목적이긴 한데, 오늘 보니까 재밌을 거 같네요.”
‘역시. 그럴 거 같더라니.’
지호도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라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일단, 트스대 공지 이후에 바로 합방 일정을 당기자는 연락이 오지 않았던가.
모르면 바보겠지.
뭐, 괜찮은 제안이라 생각한다.
그도 오늘 합방으로 호박왕이라는 스트리머에 대한 인식이 좋게 새겨졌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인연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힘들 거 같네요.”
“아, 그렇겠죠. 역시 왕눈이 님 쪽으로 가시나요?”
“아뇨, 자세한 건 말씀 못 드리는데, 아마 곧 알게 되실 거예요.”
왕눈이 쪽도 아니라고?
이건 좀 의아했지만 안 된다는데 어쩌겠는가.
호박왕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미다스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