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화. 더 베이스 -팀원 선발전(4)
1, 2웨이브의 대기 시간은 말 그대로 휴식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3웨이브가 끝난 후의 대기 시간은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13번 님, 우리랑 같이 다녀요! 지금 저랑 28번 님이랑 뭉쳤어요.”
“아무나 저도 데려가 주세요!”
“전 웨이브에서 고블린 최소 20마리 잡은 활잡이 데려가실 파티!”
연두리와 모자맨의 활약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는지.
너나 할 것 없이 같이 다닐 파티를 찾느라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예외인 것은, 지호였다.
“하하… 다들 일부러 시선 피하는 거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도 파티 할 거냐고 안 물어보는 거 실화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다스는 들어가면 반칙이지;;
-그래도 묻지도 않고 입구 컷은 너무하잖아 ㅋㅋㅋㅋㅋㅋ
-솔까 그럴만하다 ㅇㅇㅇㅇ
-ㅇㅈ 일부러 대충대충 쏘더만.
자신을 놀리느라 바쁜 채팅을 보며 지호는 피식 웃었다.
애초에 당연한 일이다.
사력을 다하면 분명 티가 날 터.
일부러 멀찌감치 혼자 떨어져서 다녔던 데다가.
활도 건성건성 쏴대지 않았던가.
팀원으로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겠지.
‘뭐,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보겠어.’
시청자들이 뭐라 놀리건.
지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번 합방의 목적은 그가 관심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호의 목적은 두 가지다.
기왕 뽑을 거면 괜찮은 팀원을 찾으려는 것과, 그 김에 컨텐츠 하나 제대로 만들어보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난 11번이 진짜 재밌던데 개같이 광탈한 거 너무 아쉽네;;;;
-그럼 24번 봐봐. ㅈㄴ 멋있음.
-하긴 모자맨도 오지긴 했지…….
-??? 60번 미만 잡인데???
-아 ㅋㅋ 연두리는 킹정 ㅋㅋㅋ
3번째 웨이브가 끝난 후.
지호 방송 채팅창은 앞선 두 웨이브와 달리 더 열정적인 반응이었다.
아마 제대로 응원하는 스트리머가 생겼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유난히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연두리와 모자맨에 관한 것이었다.
하기야.
지호가 나서야 할 정도라고 생각했던 상황을 완전히 뒤엎은 게 그들이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러게요, 저 두 분은 확실히 눈에 띄더라고요.”
지호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대로다.
애초에 그는 연두리가 눈에 띄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자맨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좋다.
예상치 못한 인재를 발견했다는 말은, 그만큼 이번 컨텐츠가 효과적이라는 소리일 테니까.
지금의 반응만 봐도 팀원 선발에는 무리가 없을 터.
지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른 참가자들도 관찰했다.
“자자, 다들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이거 지금처럼 오합지졸로 갔다간 답도 없을 거 같지 않슴까?”
다음으로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갑작스레 두각을 나타낸 47번, ‘호이스키’였다.
전 웨이브에서 자극을 받은 걸까.
47번, 호이스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활기차게 주변의 스트리머들을 모으고 있었다.
“활 쏘시면 저희랑 같이 움직이실래요?”
심지어 그는 멀찌감치 혼자 떨어져 있던 지호에게도 제안을 건넸을 정도였다.
“아, 저는 혼자가 편해서…….”
“아하! 넵! 파이팅하세요!”
-까비 ㅋㅋㅋㅋㅋ
-여기서 미다스 꼬시는 거 성공했으면 오졌을 텐데 ㅋㅋㅋㅋ
-가겠냐고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쟤만 미다스한테 말 걸어줬음 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호를 포섭하려다가 실패하는 상황.
채팅창은 웃음으로 도배되었지만.
지호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뭐지? 눈빛이 뭔가 쎄한데.’
방금 대화를 나눴던 호이스키에게서 묘한 느낌을 받은 탓이다.
말 그대로 느낌일 뿐.
명확한 이유는 없으나 그렇다고 무턱대고 무시하기는 애매했다.
‘일단 지켜보자.’
그 사이 다른 이들은 각각 팀을 꾸렸고.
이 전략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쿠어어어!
[4웨이브 클리어.]
[잠시 후, 5웨이브가 시작됩니다.]
3웨이브보다 두 배나 많은 오우거가 소환된 4웨이브를 아무런 피해도 없이 클리어 한 것이다.
애초에 더 베이스는 팀플레이가 중요한 게임이라 불리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더 베이스는 다른 게임에 비해 게임 보정이 크게 작용되는 편.
대강 무기를 휘두르고 활을 당겨도 목표물에 어느 정도는 근접한다.
여럿이서 호흡을 맞추며 어그로를 주고받으면,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다.
“캬! 노데스 클리어다!”
“다들 나이스였어요!”
“이 기세로만 가면 되겠는데요?”
세 번째 웨이브에서 게임오버 당한 사람이 무려 22명.
한데, 그보다 난이도가 높은 4웨이브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리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다음이 보슨가?”
“맞음. 다들 준비 제대로 해요!”
“제발! 약했으면 좋겠다!”
“그럴 리 없는 거 아시면서….”
더 베이스는 총 10번의 웨이브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보스 스테이지는 두 번.
5웨이브, 그리고 10웨이브다.
애초에 보스가 아닌 몬스터를 상대로도 허덕였으니, 긴장감이 드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마침내, 첫 번째 보스 스테이지가 시작되었다.
[5웨이브 시작.]
[보스 스테이지]
[해당 웨이브를 클리어하면 현재 사용 중인 무기가 강화됩니다.]
보스이니만큼 지금까지와는 달라도 한참 다를 터.
스트리머들은 긴장감 어린 시선으로 포탈을 응시했고, 이내 포탈에서 거대한 형체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이클롭스]
“거인???”
“어?”
“미친, 진짜 큰데!”
첫 번째 보스는 그들의 베이스만한 크기의 거대한 외눈박이 거인이었다.
심지어 크기만 큰 것도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외형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찰나.
지이이잉-!
녀석의 눈이 붉게 빛나더니.
펑!
시선이 닿은 곳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터진 불꽃은 삽시간에 번지기까지 했고, 결국 3명을 빛으로 만들고서야 사라졌다.
“다들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갑시다!”
“일단 활잡이들부터 쏘세요!”
“영!차!영!차!”
“간드아아아아아!”
하지만 지금까지 네 번의 웨이브를 허투루 막아낸 건 아니다.
처음과 달리 스트리머들은 당황하지 않고 역공을 시작했다.
스걱! 파칫!
외눈박이 거인은 덩치가 큰 만큼 타격할 수 있는 곳도 많다.
그들은 칼로, 창으로, 또 활로.
쉬지 않고 거인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하지만 녀석은 보스 몬스터.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카아아!
한참 공격을 받던 와중 녀석의 눈이 다시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또다시 스킬이 발동된 것이다.
“미친, 다들 피해요!”
“어디로?”
“몰라! 저거 가불기잖아! 걍 아무 데로나 도망친 다음에 기도해야죠 뭐!”
시선이 닿은 곳에 즉시 폭발하는 터라.
피할 수도 없다.
당황해서 우왕좌왕 하던 와중.
공략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움직였다.
‘첫 번째 보스인 사이클롭스는 스킬 쓸 때 눈 정중앙을 맞추면 캔슬된다고 했었지.’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있던 지호였다.
“후.”
끼리익!
지호 숨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활을 당겼다.
카아아?!
그때, 뭔가를 눈치 챈 걸까?
붉게 빛나는 거인의 눈이 그를 향했다.
“76번 님! 도망쳐요!”
“에헤이, 그거 쏴봐야 맞추지도 못할 거면서! 일단 같이 튑시다!”
동시에 그의 주변에 있던 스트리머들이 도망치며 지호의 숫자인 76번을 불렀다.
하나, 지호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다만 차분하게 붉게 빛나는 거인의 눈 중앙을 겨냥하고, 그대로 놓을 뿐.
피잉!
예리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화살은 거인의 눈 중앙에 정확히 꽂혔다.
거인에 비하자면 손톱만 한 크기다.
한데, 신기하게도 녀석의 눈에서 붉은 기가 사라졌다.
스킬의 발동이 취소된 거다.
“헉! 어떻게 하신 거예요……?”
“와…. 님 엄청 잘 쏘시네요.”
“방금 눈 맞춘 거 맞죠?”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걸까.
그의 주변에 있던 궁수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질문을 날렸다.
벌써 정체를 들킬 수는 없는 노릇.
“어… 운이 좋았나 봐여.”
지호는 어벙한 표정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아아….”
이를 위해 지금까지 어설픈 적중률을 보여줬던바.
다행히 지호의 변명은 먹혔다.
그리고 방금의 일격으로 뭔가 깨달은 이도 있었다.
“아! 알겠다! 자자, 다들 거인 머리 쪽 봐주세요!”
60번, 연두리였다.
그녀는 박수를 한 번 치더니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는 쉽게 넘기겠죠?”
바라던 대로 풀린 상황.
지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시청자들하고 소통을 시작했다.
-이게 그 힘숨찐 그런거임?
-주변 활쟁이들 이걸 속아주네.
-속아주네가 아니라 진짜 모르는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이걸 어케 알아. 지금처럼 계속 바보같이 쏴대는데 ㅋㅋㅋ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진행됐다.
그동안 꽤나 호흡을 맞춰온 바.
매끄럽게 진행될 줄 알았거늘.
“어!”
“미친! 왜 밀어!”
한쪽에서 이상하게 사상자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저기 왜 저럼??
-갑자기???
명백히 이상한 상황.
채팅창에 연신 물음표가 올라왔다.
하지만 지호의 표정은 달랐다.
“흐음….”
한참 전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47번이 있네?’
지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쪽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 * *
그 시각.
“아!! 까비!!!”
미다스의 방송을 보던 트리스의 팀장 황기택은 안타까움에 주먹을 쥐었다.
방금 그가 응원하던 스트리머가 죽었기 때문이다.
“멘트 찰지게 쳐서 괜찮아 보였는데.”
“그러게요, 아쉽습니다.”
옆에서 같이 미다스의 방송을 지켜보던 직원, 이호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양반 진짜 몰입했네.’
이호산은 신기한 눈으로 황 과장을 바라보았다.
한창 업무를 보던 중에 황 과장이 불러서 왜인가 싶었는데.
뜬금없이 미다스의 방송을 보게 된 것이다.
한데, 재미있었다.
“과장님, 그래도 저 60번은 진짜 괜찮지 않습니까?”
“연두리? 저 사람이야 뭐. 이미 통과나 마찬가지 아닌가? 분위기가 그런데.”
오죽하면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
하다못해 트리스의 직원인 그들이 이런데 평범한 시청자들이야 어련하겠는가.
[시청자 수 : 28,113]
미다스의 방송 시청자 수는 역대 기록을 우습게 넘기고 있었고.
심지어는 그의 방송에 참가한 스트리머들의 시청자 수도 최소 1,000명을 넘기고 있었다.
개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60번 연두리와 72번 모자맨은 각각 3,000명도 넘었을 정도다.
“그래, 이게 축제지.”
황 과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기업과 하꼬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응원하는 모습, 이게 그가 생각하는 참된 축제였으니까.
물론 그의 입장 상 대놓고 한쪽 편을 들어줄 수는 없다만.
조금 힘을 보태줄 수는 있다.
황기택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지금 미다스 방송 메인에 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