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화. 더 베이스 -팀원 선발전(7)
‘으…….’
60번, 연두리는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적들의 스타팅 포인트.
방금 전까지 붉은빛 포탈만 은은하게 빛나고 있던 그곳은 어느새 몬스터들로 채워진 상태였다.
문제는 딱 봐도 난이도가 극악이라는 점.
키에엑-! 쿠엉!
일단 먼저 보이는 것은.
고블린, 오우거, 가고일 등 흉흉한 기세로 다가오는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었다.
이것만 해도 아찔한데….
그 뒤에는 더한 적이 있었다.
크르르…….
가장 뒤에서 거친 입김을 뿜어대고 있는 검은색 드래곤이었다.
당연히 녀석이 최종 보스겠지.
‘아무리 판타지 세계관이어도 그렇지…. 진짜 드래곤이 나오면….’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쪽을 노려보는 검은 드래곤.
덩치는 앞서 상대한 사이클롭스보다 작다지만, 눈빛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이걸 상대할 수는 있나 싶을 정도.
“왐마! 드래곤이라니!”
“허허, 이건 좀….”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주변의 모든 스트리머들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럴 만하지….’
일단 기본 몬스터만 해도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웨이브 중 가장 많다.
하물며 보스 몬스터는 드래곤.
반면, 스트리머 쪽은 앞서 아홉 웨이브를 겪으며 60명 남짓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당연히 아찔할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으니, 연두리는 눈동자를 빠르게 돌리며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후…….”
아무리 마지막 웨이브라지만 난이도가 너무한 건 사실.
그래도 게임인 이상 깰 방법은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이내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친. 이게 되려나?’
어떻게든 막아낼 방법이야 있다.
처음과 달리 무기가 업그레이드된 후.
약점인 미간을 정확히 노리면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도 바로 쓰러트릴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거다.
‘이제 고블린 정도야 별 문제도 아니고.’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
그래도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는데, 해내야지.
쿵! 쿠웅!
“일단 방법은 하나에요! 활 들고 계신 분들이 대형 몬스터들 미간을 노려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차분하게 막아볼게요!”
연두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몬스터들을 응시하며 급하게 외쳤다.
“네….”
“해볼… 게요.”
활을 든 이들에게서 대답이 들려왔으나.
확신에 찬 대답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활을 쏘아본 경험상, 미간을 정확히 노리는 게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근처라도 가면 다행일 터.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최선이라는데.
끼릭!
그들은 활을 당겼고.
“다들 가봅시다!”
“아자, 아자!”
동시에 근접 무기를 든 스트리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려던 찰나.
저벅, 저벅.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웨이브 빠르게 끝낼게요.”
전장의 후방에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휘릭!
연두리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활을 들고 있는 남자, 76번을 볼 수 있었다.
‘?’
순간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 같이 싸운 게 어언 9웨이브다.
비록 게임 속의 캐릭터라지만 어느 정도는 낯이 익을 정도의 시간을 함께한바.
76번의 플레이도 기억하고 있다.
‘저 사람 분명 허당이었는데….’
어디서 온 자신감이지?
하지만 그녀가 의문을 품는 동안에도 76번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뭐야… 저 사람 활 엄청 못 쏴요. 그냥 무시하고 가죠.”
“인정! 관심 끌려고 그러나보네.”
“76번 님, 그냥 얌전히 뒤에서 쏘세요. 마지막 웨이븐데 괜히 나서다가 죽지 마시고.”
그 사이.
몇몇 스트리머가 그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호언장담하는 꼴이 우스운 데다가,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가 방해받은 게 짜증 났기 때문.
“에헤이, 그냥 얌전히 계시라니-.”
“이제 와서 뭐 해도 안 달라-.”
하나, 그들은 이내 말을 멈추었다.
이윽고 최전방에 도착한 76번이 활줄을 당기더니 바로 놓았기 때문.
끼리익!
태연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쏜 평범한 샷이었다.
한데, 결과는 평범하지 않았다.
쐐애애액!
그대로 날아가더니 힘차게 달려오던 오우거의 미간에 꽂힌 것이다.
크어억……. 쿵!
심지어 오우거는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나자빠졌다.
급소에 적중했다는 뜻이다.
그 후로도 76번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활을 당기더니 이렇다 할 조준도 없이 바로 쏘았다.
핑! 피잉!
아주 빠르게, 연달아서.
그러면서도 빗나가지 않는다.
전부 오우거의 미간을 꿰뚫을 뿐.
어느 정도냐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10마리의 오우거를 사라지게 만들 정도였다.
…….
순간, 전장에 정적이 흘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곧바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탓이다.
빨리 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저 줄을 당기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정확성은 별개의 문제다.
제대로 조준도 하지 않고 쏜 화살이 전부 급소에 적중한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다스… 님……?”
정적을 깬 사람은 연두리였다.
그녀는 서든 샷에서 지금처럼 소름 돋는 느낌을 받은 적 있다.
미다스의 피지컬을 느꼈을 때다.
“헉!”
“허억!”
동시에 다른 스트리머들의 입이 벌어졌다.
듣고 보니 느낌이 왔다.
그래, 미다스라면 가능하겠지.
“진짜 미다스 님이에요?!”
“뭐야! 지금까지 계속 같이 계셨던 거였어?”
“영광입니다, 미다스 님!”
자연스레 전장이 시끌벅적해졌다.
주최자인 미다스는 당연히 관전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무리 속에 있었다니!
잘 보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 것.
하지만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네네, 다들 반갑습니다. 일단 게임부터 끝낼게요.”
핑! 피잉!
그러는 동안에도 미다스의 손끝은 쉬지 않았고.
연신 오우거를 쓰러트리고 있었다.
“와….”
“대박…….”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느낌.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모든 스트리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같은 게임에서, 같은 무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포스가 달랐던 탓이다.
‘이게 미다슨가……?’
그 경이로운 감정은 이내 다른 감정으로 이어졌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우리 팀에 미다스가 있는데 어떻게 질 수 있겠는가.
“우리도 갑시다!”
“간드아아아아아!”
“몬스터 쉑들 딱 대라!”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소환된 몬스터들이 대략 절반 정도 사라졌을 즈음.
크르르.
뒤에서 여유롭게 방관하던 드래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천천히 자세를 갖춘 드래곤.
이내 녀석의 손끝에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 드래곤 일어난다!”
“다들 조심해요!”
스트리머들은 긴장했다.
무슨 마법이 나올지 감도 잡히지 않는데다가 딱히 파훼할 방법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핑! 피잉!
공략법을 알고 있던 미다스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마법진의 여섯 귀퉁이를 관통했고.
픽-.
이내 마법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캬!”
“역시 미다스 님!”
이후로 게임은 빠르게 전개되었다.
가장 큰 장애물이던 대형 몬스터들은 다가오는 족족 미다스의 화살에 녹아내리는 상황.
심지어 드래곤의 마법마저 그가 캔슬해버리니 어려움이랄 것도 없었다.
[10웨이브 클리어]
[보스 스테이지를 통과했습니다.]
[승리!]
[잠시 후,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끝났다!!!”
“우리가 이겼다!”
“매우 어려움 커어어어엇!”
-진짜 걍 미쳤네;;;;;;
-저게 같은 사람이라고????
-아니 ㅋㅋㅋ 진짜 말도 안 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화살이 빗나가질 않는데???
단지 미다스 한 명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엔딩을 볼 때까지, 그들은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진짜 괴물이네.’
그렇게 60명의 스트리머와 수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임팩트를 남기며, 더 베이스가 끝났다.
* * *
[게임을 종료했습니다.]
마지막 웨이브를 클리어한 후, 끝까지 생존한 스트리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게임을 종료한 지호.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채팅창의 반응이었다.
-오늘 레전드였다!!!!!!
-캬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
-미다스! 미다스! 미다스! 미다스! 미다스! 미다스! 미다스!
-미친 컨텐츠 괴물 ㅋㅋㅋㅋㅋ
-봉인 해제한 미다스? 이거 절대 못 막거든요 ㅋㅋㅋㅋㅋㅋ
반응은 역대급으로 화끈했다.
누군가는 마지막 웨이브에서 그가 펼친 활약을.
또, 누군가는 이번 컨텐츠를.
다른 몇몇은 오늘 두각을 보인 스트리머들의 이름을 외치는 풍경.
‘캬…….’
지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보기만 해도 신나는 상황 아니던가.
게다가 인원도 한둘이 아니었다.
[시청자 수 : 37,284명]
평소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그의 방송을 보고 있었으니까.
‘뭐, 오늘만 이런 거겠지만.’
지난 경험으로 예상할 수 있다.
어디서 이렇게까지 들어왔는지 몰라도, 이 정도는 컨텐츠로 인한 일시적인 유입이겠지.
계속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왜냐.
그만큼 이번 팀원 선발전이 괜찮았다는 의미일 테니까.
“다들 재밌게 보셨나요?”
-ㅇㅇㅇㅇㅇ 미쳤음 ㅋㅋㅋㅋ
-오늘 걍 진짜 레전드 ㅋㅋㅋ
-지금 인터넷 반응도 난리났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역시나 돌아오는 반응은 한없이 긍정적이었다.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상황.
지호는 쏟아지는 채팅에 답하는 등 잠시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띠링!
[‘서폿유저’님이 10,000원 후원!]
[마지막에 나간 호이스키님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투표 가능한가요?]
호이스키에 관한 질문이 날아든 건 그 즈음이었다.
“서폿유저 님, 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47번 님이요…? 음.”
지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안 그래도 이유가 궁금하던 참이다.
‘그러고 보니, 왜 나간거지?’
5웨이브 때 있었던 일은 당시 준영에게 쪽지로 전해 들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게임에 몰입하지 않았던가.
이유는 바로 채팅창에 올라왔다.
-양아치짓 했다던데?
-ㅇㅇ 본인이 게임 포기하고 나서 방송에서 양심고백 함.
-그거 나도 봄 ㅋㅋㅋㅋㅋ
‘양심고백?’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만요.”
그러고는 방송을 보고 있는지 타이밍 좋게 준영이 보내준 쪽지의 링크를 클릭했다.
[음…. 자세히 말하자면 길고 변명이겠지만……. 저 때문에 게임 오버 당하신 분들이 있거든요…….]
이라는 말로 시작한 호이스키의 방송 영상이었다.
‘아….’
지호는 속으로 아쉬움을 삼켰다.
아무도 모르고 넘어갔다면 모를까.
본인이 직접 밝힌 이상, 부정적인 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팀으로 받을 이유는 없으니까.
-쩝…….
-근데 저게 그렇게까지 문제가 될 일인가????
-ㅇㅈ 어차피 4명만 살아남는 시스템인데 서로 의심했어야지.
-뭐… 잘한 건 아닌데. 사람이면 충분히 나쁜 맘 먹을 만한 상황은 맞음 ㅋㅋㅋㅋㅋ
한데, 의외로 채팅창의 반응은 호이스키의 편이었다.
지호가 고개를 갸웃하던 찰나.
띠링!
또다시 준영에게서 쪽지가 왔다.
[지금 인터넷 반응도 나쁘지 않아. 아마 본인이 먼저 인정하고 다 포기한 것 때문에 그런 듯?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 박기도 했고. - 준영]
심지어 다른 이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고?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그럼 본 투표 들어가기 전에, 이것부터 투표 해볼까요?”
-좋다 ㅋㅋㅋㅋ
-투표 ㄱㄱ혓
-ㄱㄱㄱㄱㄱㄱㄱ
-난 무조건 찬성 ㅋㅋㅋㅋ
직접 결정해도 될 분위기지만.
지호는 보다 깔끔한 선택을 했다.
시청자들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다.
‘피지컬도 나쁘지 않았고 이후 판단도 마음에 들긴 하지만….’
그건 지호 개인의 취향이다.
사람 생각이 모두 같은 건 아니니,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이야기는 나오게 될 터.
그걸 알고 있기에 지호는 책임 소재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것이다.
만약 그의 속내를 알면 누군가는 치사하다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가장 현명한 선택인걸.
특히나 트스대처럼 예민한 이슈일수록 더더욱 사려야 한다는 걸 작년의 기록으로 배웠기에.
지호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결과 : 1. 찬성]
그렇게 나온 투표의 결과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심지어 압도적인 차였다.
애초에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이었던 터라, 정해진 결과겠지.
지호는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볼까요?”
빠르게 양식을 완성한 뒤.
익명으로 팀원 투표를 시작한 것.
-60번 ㄱㄱㄱㄱㄱㄱ
-감 있으면 모자맨 뽑아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뭘 모르네 ㅋㅋㅋㅋ
-연두리 말고 뽑을 사람이 있누?
-호이스키갑 무시하냐?
지호가 설정해둔 투표 시간은 3분.
그동안 채팅창은 열렬히 본인의 픽을 응원하는 등, 치열한 논쟁을 이어갔다.
그렇게 짧은.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길었을 시간이 금세 흘러갔고.
“자, 끝났네요.”
마침내 지호가 결과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