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화. 트스대 -친선 경기(3)
게임 시작 5분이 지난 시점.
썬더의 방송 채팅창은 한껏 불타고 있었다.
-뭐야뭐야 ㅋ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이기는 거임???
-캬ㅑㅑ 썬더!! 괜히 챌린저가 아니구나!!!
-미다스 별 거 아니었누 ㅋㅋㅋ
당사자인 썬더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압살하고 있으니까.’
시청자들이 이 정도인데 그는 어련하겠는가.
“봐! 내가 말했잖아! 그래 봐야 마딱이라고!”
신나게 소리치는 썬더의 기분은 말 그대로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깡! 까앙!
연신 검을 내려치는 그에 비해.
상대인 미다스는 간신히 막아내는데 급급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이게 맞지!’
다들 워낙 호들갑을 떨어대서.
솔직히 미드에서 만나기 전에는 조금 긴장도 했는데, 막상 까보니 별거 아니었다.
하긴.
마스터가 어떻게 챌린저를 이기겠는가.
이미 승리는 기정사실이지만.
그는 슬슬 더 압박을 넣었다.
“하앗!”
미다스가 공격을 막아내는 틈을 타 스킬인 ‘칼날 무도’를 날린 것이다.
스윽.
그에 맞서.
미다스가 방어 스킬인 ‘대응’을 발동하려는 게 보였다.
마스터치고는 꽤 날카로운 타이밍이다.
어설픈 실력이면 저기에 막힐지도.
하지만 썬더는 챌린저다.
대응의 발동을 확인하고, 검의 방향을 돌리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그는 바로 손목을 틀었고.
서걱!
칼날 무도는 간발의 차로 대응에 막히지 않고, 그대로 미다스에게 정확히 꽂혔다.
“마! 이게 챌린저의 스킬샷이여! 어딜 마스터가!”
-캬, 예술이네 ㅋㅋㅋㅋㅋ
-오지는데???
-이게 챌린저다!!! 이게 챌린저다!!! 이게 챌린저다!!! 이게 챌린저다!!!
썬더의 압박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채팅창은 더욱 달아올랐다.
미드에서 맞상대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기량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가속검(미다스) : 잔여 체력 51%]
일단 체력만 봐도 그렇다.
미다스의 체력은 벌써 절반 이하.
반면, 썬더는 자잘하게 깎이긴 했으나 아직도 여유로웠다.
게다가 퓨처 워의 지표 중 하나인 ‘전투 로봇 처치 수’에서도 수준 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속검(미다스)]
[전투 로봇 처치 29]
보통 다이아 티어의 평균 전투 로봇 처치 수는 1분에 8기다.
그 말인즉, 5분이 지난 지금 최소한 40기는 처치했어야 다이아 평균이라는 것.
미다스는 거기에도 미치지 못했다.
워낙 심하게 압박당하느라 전투 로봇은 엄두도 못 냈을 테니까.
[서리검(썬더)]
[전투 로봇 처치 55]
그에 반해 썬더는 진작 40기를 넘었을 뿐만 아니라, 미다스와 거의 2배 가까운 차이를 벌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차이가 명백한 상황.
-흠… 진짜 거품이었나?
-아니면 썬더가 생각보다 더 잘 치는 걸 수도 ㅋㅋㅋㅋㅋ
-하긴 ㅋㅋㅋ 괜히 챌린저는 아니잖아? ㅋㅋㅋㅋㅋㅋ
이쯤 되니 시청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자신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하, 그걸 지금 알았다고?’
이제야 원하던 반응이 나오는 채팅창을 보며 썬더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때마침.
“썬더야, 미드 할 만해?”
정글러이자 친누나인 라디라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다.
그러고 보니 누나도 의심했었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줘야겠네.
“그럼! 내가 누군데! 좀만 기다려봐! 곧 솔킬 각 나오니까!”
썬더는 호언장담하며 미다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
챌린저의 감이 난데없이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지?’
이해할 수 없는 감각.
썬더는 경계 포탑에 딱 붙어서 전투 로봇을 받아먹는 미다스를 다시금 관찰했고.
이상한 점을 포착할 수 있었다.
‘표정이… 시큰둥한 건가?’
어지간하면 상대를 압살하는 포지션이었던 바.
그는 수세에 몰린 이들이 어떤 표정인지 훤히 꿰고 있었다.
한데, 미다스의 표정은 그들과 뭔가 달랐다.
지고 있는 표정이 아닌.
뭔가 관찰하는 것처럼 그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뭐야, 재수 없게.’
썬더는 애써 찝찝한 기분을 무시했다.
어차피 한 번이라도 킬을 내기 시작하면 차이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터.
그때부터는 불안한 예감이고 뭐고 필요 없다.
만나면 죽이는 학살만 이어질 뿐.
깡! 까앙!
그 사이 다시 라인 중앙까지 밀린 양측의 전투 로봇들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썬더가 기다렸던 타이밍이다.
안 그래도 경험치가 밀리고 있는 미다스 입장에선 무리해서라도 나와야 할 터이니.
‘슬슬….’
녀석이 나오면 그때가 킬 타이밍이다.
썬더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 * *
타앗!
조심스럽게 전투 로봇을 파밍하려던 지호는 몸을 뒤로 날렸다.
“어딜 먹으려고!”
썬더가 비웃음과 함께 검을 내려치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후웅!
스킬도 아닌, 견제용의 가벼운 평타인데도 그 기세가 꽤나 살벌했다.
까아아앙!!
워낙 속도가 빠른 터라.
온 신경을 집중하고서야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반격은 통하지도 않았다.
사악!
“안 맞는다니까!”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분명 맞췄다고 생각한 지호의 공격이 녀석을 연신 빗나갔기 때문.
얼핏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수세에 몰린 상황.
하지만 그러한 처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지호의 표정에는 지루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평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랄까?
매번 그의 방송을 봐온 시청자들은 빠르게 그 차이를 알아챘다.
-미다스 표정 뭔가 실망한 느낌인데 기분 탓인가 ㅋㅋㅋ
-?????
-엥, 그러게…….
-뭐임;;; 연기하는 거야??
미다스는 게임의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흥미로워하는 별종이다.
심지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상황에서는 미소까지 지을 정도.
한데, 지금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지루한 표정이었으니 의문이 들 수밖에.
지호는 바로 대답해주었다.
“음… 뭐랄까. 하도 자신만만해서 좀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어서 실망스럽긴 하네요.”
-캬…….
-이 인간 진짜 ㅋㅋㅋ 멘트는 지린다니까 ㅋㅋㅋㅋㅋㅋ
-별 거 없네요 (개처맞는 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자 웃음 섞인 채팅들이 올라왔다.
반응을 보아하니 그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찌 됐건 지금까지 밀리는 것처럼 보인 건 사실이니까.
‘에휴, 진짜 기대했는데.’
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만나는 챌린저 티어 유저.
솔직히 게임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서든 샷 내전에서 카인을 만났을 때 놀란 것처럼, 챌린저는 뭔가 다를 거라 생각한 거다.
되도 않는 도발에 말없이 응해줬던 이유도 그래서였고.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확실히 챌린저답게 스킬샷도 날카롭고 무빙은 좋은데….’
문제는, 그게 전부라는 거다.
게다가 아예 월등히 뛰어난 것도 아니다. 매번 보던 마스터 티어 유저들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히얏! 챌린저 맛이 어떠냐!”
그러는 와중에도 썬더는 연신 도발을 던져댔다.
얼마나 방심하고 있는지 이제 빈틈까지 보일 정도였다.
‘흠.’
지호는 바로 검을 찔렀다.
한데?
“안 된다니까!”
또다시 피격 판정은 뜨지 않았다.
서걱!
[가속검(미다스) : 잔여 체력 39%]
오히려 돌아온 반격에 그가 당했고.
“이게 클라스의 차이야.”
또다시 도발이 이어졌을 뿐.
-아오 약올라;;;;
-쟤 왜 안 맞음???
-나노무빙으로 히트박스 피하는 거지 뭐 ㅋㅋㅋㅋ
-미다스는 저거 못해?
-빡셈…….
그러는 동안.
부정적인 채팅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체력도 40% 이하인 데다가, 공격까지 통하지 않으니 이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승리를 확신했는지.
“이제 슬슬 집에 가라!”
거만하게 외친 썬더가 칼날 무도를 발동했다.
날카로운 각과 타이밍.
그에 맞서 지호는 대응을 둘렀다.
“안 된다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막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썬더의 표정에는 비웃음이 걸렸다.
하지만.
‘이건 아까 봤잖아.’
투웅-
이번에는 달랐다.
지호도 칼날 무도의 방향을 따라 손목을 틀었고.
이내 가볍게 막아냈으니까.
“뭣?!”
갑자기 발생한 이변.
지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휘익!
녀석이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고,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쐐액!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목을 노리고 쏘아지는 미다스의 검 끝!
“헉!”
화들짝 놀란 썬더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는데, 순간 날카로운 공격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는 챌린저.
곧바로 대응을 시작했다.
“어딜!”
먼저 검을 휘두르며 스킬을 발동했고.
쩌저저적!
싸늘한 냉기와 함께 공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서리검의 스킬, 서리폭풍이다.
스치는 순간 슬로우가 걸리니 도망칠 수 없다.
…라고 생각했는데 미다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스윽!
속도가 워낙 빨라진 터.
썬더가 검을 휘두르자마자 방향을 틀어 가벼운 생채기만 낸 뒤, 바로 거리를 벌린 것이다.
‘그래 봐야 내 손바닥 안이야.’
바로 도약한 썬더는 미다스에게 따라붙으며 검을 내리그었다.
타이밍도 좋고, 방향도 정확하다.
이 한 방이면 끝낼 수 있겠지.
후웅!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미다스가 슬쩍 몸을 비틀자,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으니까.
-???
-저거 썬더가 하던 거 아님??
-엥, 왜 미다스가 저걸 하고 있어????
시청자들이 경악했으나.
누구보다 놀란 건, 당사자인 썬더였다.
“뭐야, 이게 왜 안 닿아?”
어찌나 놀랐는지 교전하던 와중에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
지호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계속 공세를 퍼부었다.
[가속검 : 7]
썬더의 공세를 막아내면 쌓은 스택이 7.
탓!
가벼운 발걸음만으로 거리를 확 좁힐 수 있을 정도였다.
검 또한 마찬가지.
쐐액!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공기가 찢겨졌다.
어찌나 빠른지 챌린저인 썬더가 겨우겨우 받아낼 정도였다.
쐐액! 타앗-! 쐐애액!
이처럼 짜릿한 속도감을 즐기며.
지호는 계속해서 발을 구르고 검을 휘둘렀다.
썬더에서, 전투 로봇으로, 또 썬더에게로. 그의 검이 향하는 모든 곳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아니!”
썬더는 경악했다.
순식간에 수십 번의 검격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버티겠는가.
‘미, 미친!’
급하게 서리폭풍과 칼날 무도를 날리며 막아내려 했으나.
쐐액!
“아악!”
바람처럼 움직이는 미다스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이를 예측하듯 방향을 틀며 타이밍을 어긋나게 하더니, 그대로 다리를 베고 지나갔으니까.
순식간에 기울어버린 상황.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미 가속검의 궁극기인 공간참을 사용할 스택은 충분히 쌓였다.
그럼에도 아끼는 건 도망갈 길을 차단하려는 거겠지.
카앙!!! 서걱!
[서리검(썬더) : 잔여 체력 77%]
깡!! 사악! 삭!
[서리검(썬더) : 잔여 체력 62%]
그 사이 체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스택이 쌓이면 쌓일수록 빨라지는 가속검의 특징 상 막아내는 건 점점 힘들어질 터.
결국 그는 최후의 선택을 했다.
“누나! 누나아!! 빨리 미드 갱 좀! 나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