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화. 트스대 -친선 경기 마무리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
[가속검 → 서리검]
[더블 킬!]
[가속검 → 닻 사냥꾼]
-와…….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ㅋㅋㅋ
-저게 말이 됨????
-이건 뭐 ㅋㅋㅋ 거의 양학 수준인데 ㅋㅋㅋㅋㅋㅋ
순식간에 펼쳐진 더블 킬!
호박왕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워낙 피지컬이 좋기로 유명한바.
미다스의 더블 킬 자체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상대겠지.
“아니…! 다이아1 정글러랑 챌린저 미드가 동시에 죽었…….”
보고도 믿기 힘든 결과.
오죽하면 그 호박왕도 당황해서 말을 끝맺지 못할 정도였다.
“이건… 좀 놀랍네요.”
그런 호박왕을 대신해서 카인이 감탄하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도 놀라지 않은 건 아니다.
충격이 조금 덜할 뿐.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니까.’
그렇기에 이어진 호박왕의 질문에도 카인은 태연히 답할 수 있었다.
“아니, 이게 가능한 건가요?!”
“둘 다 베스트 컨디션이었으면 힘들었겠죠.”
그건 아무리 미다스라 해도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썬더 님도 밀리던 상태였고. 라디라디아 님도 버프 몹 잡느라 피가 없던 상태였으니까, 이렇게 된 거죠.”
-하긴…….
-그거 감안하더라도 미친 거 아님?
-ㅇㅇ 굇수지
“그렇죠, 잊으시면 안 되는 게 저 두 분 다이아1이랑 챌린저입니다.”
[‘ㅇㅇ’님이 1,000원 후원!]
[카인님은 가능?]
“절대 불가능이죠. 솔직히 저였으면 정글러 본 순간 바로 튀었어요.”
카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다.
하지만 미다스 같은 플레이는 맹세코 불가능하다.
라디라디아의 모든 스킬을 피하면서 완벽한 타이밍에 썬더에게 결정타를 꽂기까지.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오히려 당하는 외줄타기였으니까.
‘그걸 완벽하게 해냈지. 심지어 저 속도로 움직이면서.’
카인은 질린 얼굴로 화면 속 미다스를 바라보았다.
사삭!
현재 그의 가속검은 58스택. 환산하면 무려 11.6배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한데, 미다스의 움직임에는 한치의 머뭇거림이 없었다.
-진짜 미다스 가속검은 넘사네.
-솔까 월챔 엘카 플레이 보는 것 같음 ㅇㅇ.
-그러게…….
-에이 ㅅㅂ 그건 에바지.
-엘카를 건드리누 ㅋㅋㅋ 선 넘지 마라.
오죽하면 몇몇 시청자들이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탑급인 엘카를 언급할 정도였다.
물론 바로 반박에 묻혔으나.
‘진짜 모르는 일인데….’
실제로 엘카를 맞상대해본 카인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을 꺼내면 거센 반발이 따라올 걸 알아서 참는다지만.
진심으로 박빙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일단 미다스 님 가속검은 챌린저급이라는 말이겠네요.”
“그렇죠.”
호박왕의 허탈한 목소리에 카인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둘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가속검은 무조건 밴 해야겠다.’
이처럼 무언의 합의를 끝마친 후.
그제야 정신을 차린 호박왕이 다시 중계를 이어갔다.
“이거 라디 님 쪽이 이기는 게 가능한가요?”
가능성이 있겠냐는 질문.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들었다면 반반이라고 대답했을 거다.
하나, 지금 카인은 확신했다.
“힘들겠죠.”
“역시 그렇겠죠?”
“네네, 일단 상대가 미다스 님이라 더더욱요.”
더블 킬을 먹어도 게임을 지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미다스는 다르다.
그간 카인이 여러 영상으로 확인한 미다스는, 이기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미다스 님은 한 번 잡은 우위를 절대 놓지 않는 분이거든요. 기울어버린 순간 늦어요.”
카인의 예상은 적중했다.
[미다스 → 닻 사냥꾼]
[미다스 → 신기루 총사]
……
…
미드에서의 더블 킬을 기점으로 미다스는 고삐가 풀린 말처럼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이내 게임이 걷잡을 수 없이 기울어졌다.
-노답이네…….
-걍 일방적이누…….
-이래서 미드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ㅋㅋㅋㅋ
-오히려 털렸으니 다른 라인에 스노우볼 굴러갈 수밖에 없지 ㅇㅇ
난데없이 미드에서 나온 더블 킬.
심지어 팀에서 가장 티어가 높은 둘이 동시에 당했으니.
사기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미드 간다!]
[누나! 뒤쪽으로 튄다! 막아!!]
썬더와 라디라디아가 계속해서 그를 견제하려 했으나.
이 또한 아무 소용없었다.
“아… 이걸 또 살아가네요.”
“짐승 같네요! 유리한 싸움에선 무조건 이득을 보고 아니다 싶으면 고민도 안 하고 빼고 있어요.”
미드든 정글이든 상대를 막을 수 있다면 모를까.
답이 없으니 선택지는 하나였다.
[레드 팀이 항복했습니다!]
“아… 끝났네요.”
“그러게요, 다음 경기 때는 라디 님 쪽이 뭘 밴 할지 기대되네요.”
보통 친선 경기는 3판 2선승제.
당연히 다음 판이 있을 테니 카인은 기대하며 말했다.
호박왕이 고개를 저은 건 그때다.
“음…. 방금 라디 님한테서 쪽지가 왔는데, 사정상 이번 판만 하고 끝내야겠다네요.”
“아, 아쉽네요…….”
가속검을 밴 당한 미다스가 챌린저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
미리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혀를 차는 카인을 보며 호박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아쉬우시면 우리가 가볼까요?”
-어???
-뭐야 ㅋㅋㅋ 새 도전자야?
-가나 ㅋㅋㅋㅋㅋㅋ
“오! 좋네요!”
카인은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원래 우리가 먼저 할까 고민하고 있었지….’
미다스 팀과의 친선 경기.
안 그래도 호박왕과 카인이 중계를 시작하기 전에 나누던 주제였다.
뜻하지 않게 라디라디아 팀에게 선수를 빼앗겼지만, 괜찮다.
덕분에 새로운 전략을 세웠으니.
“그럼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긍정적인 카인의 대답에 호박왕은 바로 미다스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 * *
-미다스 밑 카인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 판 이기면 된다고? 다음 판은 없는데 우짜냐 ㅋㅋㅋ
“다들 닥쳐.”
으득.
썬더는 채팅창을 보며 이를 갈았다.
‘왜 한 판만 한다는 거냐고….’
[오늘은 이번 판으로 끝내고 미다스 님께 사과한 다음에 마무리하자. 딱 보니까 오늘은 감정만 상하겠다.]
첫 판을 항복으로 끝낸 뒤, 누나인 라디라디아가 꺼낸 말이다.
첫 판은 어쩔 수 없다.
다음 판에 두 배로 조지면 된다.
이 생각만으로 버텨왔던 썬더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마스터한테 털렸네 ㅋㅋㅋㅋ
-아까 뭐랬더라 ㅋㅋㅋ 그래봐야 마딱이랬나 ㅋㅋㅋㅋ
-나 썬더야 썬더. 챌린저 172등 (진짜 한 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채팅창은 연신 그를 비꼬고 있었다.
‘오늘따라 다 왜 지랄이야.’
썬더는 짜증이 치솟았다.
마딱이한테 진 것도 짜증 나는데 저딴 취급이라니.
“아, 한 판 더 하자고. 이번엔 내가 이길 수 있다고!”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하고 짜증스럽게 소리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하기만 했다.
“적당히 해라. 지금 너 하나 때문에 분위기 싸해진 거 안 보여? 좋게 말하는 건 여기까지니까 잔말 말고 미다스 님한테 사과나 해.”
-ㄷㄷㄷㄷㄷㄷㄷㄷㄷ
-라디 개빡쳤는데???
-근데 저게 맞지…….
-ㅇㅈ 저쪽은 웃으면서 하는데 이 팀은 썬더가 다른 사람 죽을 때마다 정색해대서 분위기 싸하더라;;;
가족인 썬더가 더 잘 안다.
지금 라디라디아가 머리끝까지 빡쳐있다는 것을.
이럴 땐 사리는 게 맞겠지.
“알았어.”
썬더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하…….”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동생을 보며 라디라디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걸 진짜 어떻게 하냐.’
챌린저 스트리머라 해봐야 그의 나이는 17살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철없이 구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뭐, 그래도 사과한다니까 일단 다행이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미다스에게 연락을 보냈다.
하지만 썬더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내가 왜 미다스한테 사과를 해야 해?’
일단 알았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화가 난다.
솔직히 그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누나가 갱만 제대로 왔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하다못해 스킬이라도 좀 맞추던가.
‘지도 못했으면서 왜 나한테만 난리야.’
화가 나서 씩씩대던 썬더의 시선이 방송 정보로 향했다.
[시청자 수 : 3,829명]
평소 기껏해야 천여 명 정도 보던 그의 방송인데, 시청자 수가 거의 4배 가까이 늘어나 있었다.
거의 처음인 트스대 친선 경기.
게다가 그 중에서도 가장 요주의 인물인 미다스를 상대하는 챌린저.
이 두 가지가 겹쳐진 결과였으나.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썬더의 생각은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하염없이 부정적으로만 향할 뿐.
‘어쩐지 오늘따라 욕이 많다 했는데, 미다스 빠 새끼들이구나.’
그러고 보니.
자신이 진 것도 말이 안 된다.
분명 처음에는 압살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가속검의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피지컬도 이상했다.
챌린저도 불가능한 수준이니까.
‘이 새끼 진짜 핵 아니야?’
그러고 보면 초반에 핵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다.
뭐, 어찌저찌 넘어갔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핵인 것 같다.
아니, 틀림없다.
‘이거 내가 잡아내면 오히려 떡상 기횐데? 누나한테 욕도 안 먹을 수 있을 거고.’
이처럼.
라디라디아가 미다스 팀에게 연락을 보내는 잠깐 사이, 썬더의 생각은 점점 가속화됐고.
이는 결국 라디라디아 입장에선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 * *
친선 경기가 끝난 뒤.
라디라디아의 초대로 양 팀원들이 다시금 대화방에 모였다.
[미션 성공!!]
[‘서폿유저’ 님이 500,000원 후원!]
[썬더 저거 시무룩한 표정 보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요 ㅋㅋㅋ]
-ㄹㅇ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속이 뻥!!!
-이게 사이다지 ㅋㅋㅋㅋㅋ
-점마 표정 울겠는데? ㅋㅋㅋ
“서폿유저 님 50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들어보니까 어린 친구더라고요. 오늘 많이 당했으니 이해해-.”
그리고 때마침 들어온 미션 성공 후원에 감사를 표하려던 지호의 말이 끊겼다.
“너, 핵이지?”
이해할 수 없는 썬더의 말 탓이다.
“음?”
한참 채팅창에 집중하던 상황이었던 터.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던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반면, 팀원들의 반응은 격했다.
“지금 하신 말씀 책임지실 수 있으세요?”
“뚫린 입이라고 내뱉으면 다가 아닙니다. 썬더 님.”
“미친 거 아냐?”
“지가 못해놓고 추하네.”
연두리, 모자맨, 호이스키, 심지어 유나까지 모두 싸울 듯한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했으니까.
-????????
-지가 털려놓고 핵 드립?
-이건 진짜 오반데 ㅋㅋㅋㅋㅋ
당연히 채팅창도 불이 붙었고.
이러한 상황은 라디라디아 쪽도 마찬가지였다.
-저 새끼 결국 사고를 치는구나;;;;
-진짜 조졌네…….
-이건 커버 못 치겠는데 ㅅㅂ
미다스가 초반에 핵 논란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어지간하면 안다.
한데, 거기에 대고 핵 타령이라니.
개중에서도 가장 경악한 이는 단연 라디라디아였다.
‘미친.’
미다스 정도는 아니라지만.
라디라디아는 트스대 팀장 축에서도 체급이 큰 편에 속한다.
그만큼 방송을 오래 하기도 했고.
지금까지 이런저런 논란에 시달린 적도 많다.
덕분에 발달된 그녀의 나락 감지 센서가 강하게 경고를 보냈다.
‘이미 상황은 최악인데, 그나마 지금이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하여, 그녀의 행동은 빨랐다.
“미친 새끼. 넌 있다가 보자.”
[대화방에서 추방했습니다.]
-썬더
바로 썬더를 추방하고는 미다스를 향해 고개를 90도로 숙인 것.
“죄송합니다. 제 팀원의 실례, 제가 어떻게든 책임지겠습니다.”
사실 이쯤 되면 미다스가 용서를 하건 말건 논란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였어도 기분이 더러웠을 터.
사과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문제는 미다스가 어떻게 반응할지인데….
“음….”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미다스를 응시했고.
잠시의 침묵 끝에 이내 그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