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화. 트스대 -우승 후보(2)
“네에? 이번엔 호박왕 님이 친선 경기 연락을 하셨다구여?”
팀장인 미다스가 전해온 소식에 연두리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우여곡절 끝에 친선 경기 한 판이 끝났나 싶었는데.
그새 다른 도전장이 들어오다니.
‘뭐, 좋긴 한데. 하필 상대가….’
갑작스러운 제안이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였다.
그녀를 비롯한 팀원들은 지금처럼 시청자들이 많은 방송도, 스트리머들끼리 하는 경기도 익숙하지 않다.
경험이 많으면 차차 익숙해질 테니 당연히 이득일 수밖에.
문제는 상대가 현재 우승 후보로 꼽히는 호박왕 팀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질 수도 있다는 뜻이고.
이는 지금까지 어떤 게임에서든 무패행진을 이어온 미다스에게 큰 부담일 수도 있으니까.
“미다스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연두리는 먼저 팀장인 그의 의견을 물었다.
“저야 뭐 솔직히 한판으로 끝내기는 아쉬웠던 상태라 괜찮을 거 같은데요?”
대답은 다행히 오케이.
게다가 다른 팀원들도 들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
“저도 좋습니다!”
연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는 직접 부딪쳐봐야 아는 거니까.’
저들이 강팀인 건 맞다.
괜히 우승후보로 꼽히겠는가.
전 프로인 카인과 플래티넘 티어지만 사실상 챌린저급이라 알려진 파란수박.
이 둘만 봐도 전력은 명확할 터.
‘대신 이쪽에는 미다스 님이 있지.’
연두리가 직접 확인한 그의 캐리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무난하게 성장할 수 있다면…?
이길 가능성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전략.
연두리는 빠르게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뭐야, 호박왕네랑 미다스네랑 뜬다고?
-가속검은 밴 당하겠지???
-ㅇㅇ 무조건 ㅋㅋㅋㅋㅋㅋ
-뭐, 지금 다른 팀들도 미다스 가속검은 필밴해야 할 거 같다는 분위기라서 ㅋㅋ
-호박왕네 전략 준비했다던데.
먼저 커뮤니티를 슥 훑으며 상황을 파악하고.
‘전략? 뭘까.’
이어서 상대의 전적까지 스캔했다.
그 결과, 상대가 준비한 전략을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호박왕 님한테서 답장 왔네요.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될 거 같아요.”
때마침 미다스의 목소리와 함께 메신저로 링크가 날아왔다.
아마 대기실로 연결되는 링크겠지.
그걸 누르기에 앞서, 연두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다스 님, 혹시 이번 판은 지금까지 하시던 거랑 조금 다르게 가주실 수 있을까요?”
“네? 어떤 식으로 가면 될까요?”
“일단 상대 팀 밴픽까지는 봐야겠지만, 미다스 님이 가능하시면 원딜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던 걸까.
“에엥?!”
“연두리 님, 그게 무슨… 원딜은 호이스키 님 포지션 아니에요?”
“저는 미드도 가능하긴 합니다. 팀장님 의견이 중요하죠.”
팀원들이 먼저 놀란 반응을 보였는데.
오히려 미다스의 대답은 쿨했다.
“네, 원딜 준비하면 되는 거죠? 알겠습니다.”
“예?”
미리 설득할 준비를 하던 연두리가 당황했을 정도.
‘이렇게 바로?’
그녀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지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네, 계획이 있으셔서 말씀하신 거 아닌가요? 믿습니다.”
그녀에게 오더를 맡긴 건 지호다.
먼저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그는 자신이 있었다.
“너무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원딜도 자신 있으니까요.”
‘와…….’
시원시원한 미다스의 말에 연두리는 새삼 감탄했다.
상대 팀에 챌린저급 2명이 있다는 걸 알 텐데 저런 자신감이라니.
게다가 그녀를 향한 믿음까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이긴다.’
피지컬이라면 몰라도 전략싸움이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그녀는 재차 다짐하며 끄덕였다.
* * *
“자자! 그럼 다들 재밌게 해봅시다!”
“좋습니다!”
“드가자!”
호박왕이야 워낙 진행이 능숙하기로 유명한 스트리머.
라디라디아 때와는 달리 대기실에서의 시간은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조금 특이한 점을 꼽자면.
파란수박이 지호를 뚫어져라 관찰했다는 것 정도?
-라이벌 보는 표정인디 ㅋㅋㅋ
-초면 아님??
-내가 파란수박 방송 봤는데 호박왕이랑 카인한테 얘기 엄청 들었다더라 ㅋㅋㅋㅋㅋㅋ
-조기교육 대차게 했네 ㅋㅋㅋ
-쟤도 피지컬 좋다던데 기대되누
그리고 이어진 밴픽.
쿵!
[적, 금지 영웅]
[가속검]
[귀신]
[환영군주]
……
…
-미친 ㅋㅋㅋㅋ
-미다스 올 밴 ㅋㅋㅋㅋㅋㅋ
-어쩔 수 없음 지금 걍 인터넷에서도 미다스 가속검은 필밴해야 한다는 분위기라서;;;
-이러면 우짤건데 ㅋㅋㅋㅋㅋㅋ
노골적으로 지호를 겨냥한 목록이었다.
주력 영웅을 전부 밴하다니.
아마 겸사겸사 새로운 영웅이 있는지까지 알아보려는 목적이겠지.
“확실히 전 판이랑 다르게 밴픽부터 치열하네요.”
지호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게 맞다.
전 판처럼 일부러 살려두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 테니까.
그렇게 밴 과정이 끝난 뒤에는, 영웅 선택 과정이 이어졌다.
선택은 양 팀이 순차적으로 한다.
보통 여기서도 치열한 수싸움이 이어지곤 하는데….
상대 팀의 선택이 이어질수록 채팅창에는 물음표만 올라오기 시작했다.
[적, 영웅 선택]
[무쇠전사]
[철갑보안관]
-???
-저쪽 픽 왜 저러냐 ㅋㅋㅋㅋ
-뭐지? 처음 보는 메타 같은데;;
미다스의 순서는 가장 마지막.
당연히 그가 여유롭게 상대를 보고 유리한 영웅을 가져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단단하기로 유명한 탱커형 영웅만 연달아 선택될 뿐. 미드로 추정되는 영웅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지호의 픽에 그들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쿵!
[영웅 선택 - 사막 궁수]
-???????
-엥?? 미다스 원딜????
-이거 맞아?!!
-와, 미친 ㅋㅋㅋㅋㅋㅋㅋ
당연히 미드에 갈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원딜을 고르다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다스 원딜도 할 줄 알던가?
-해본 적 없을 텐데 ㅋㅋㅋ
-일단 난 못 봄 ㅋㅋㅋㅋㅋㅋㅋ
[‘서폿유저’님이 10,000원 후원!]
[이건 진짜 재밌겠는데 ㄷㄷㄷ 근데 미다스님 원딜을 하시던가?]
그들의 궁금증은 하나였다.
지호가 원딜을 해본 적 있는지.
순식간에 쏟아지는 질문에 지호는 태연하게 답했다.
“네, 연습해봤어요.”
-뭣?
-연습???
-연습으로 챌린저급 2명을 상대하겠다고?!
-뭐, 봇은 다이아긴 한데 ㅋㅋㅋ
원딜은 미드와 함께 양대 산맥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역할이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팀의 승리를 이끄는 일명 ‘캐리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포지션이었기에.
당연히 시청자들은 반신반의했으나 지호는 간략하게 말했다.
“네, 당연하죠. 뭐, 원딜도 미드랑 비슷하던데요?”
디테일한 컨트롤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
세세한 자리 잡기와 딜 넣기가 중요한 포지션이라는 점이다.
그건 지호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으니 당연히 가능하다고 보는 것.
[3, 2, 1.]
[황폐화된 도시에 소환됩니다!]
때마침 게임 시작을 알리는 기계음과 함께, 무대가 전장으로 바뀌었다.
“고고, 움직이죠.”
“아자아자!”
“이번 판도 파이팅!”
“호이 님은 무리하지 마시고 미드에서 그냥 사려주세요. 상대도 탱커형 영웅이라 양쪽 다 킬각 잘 안 날 거예요.”
로딩이 끝나자마자, 팀원들은 각자의 라인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다스 님! 저만 믿으십셔! 완벽하게 킬을 떠먹여 드리겠씀다!”
“네. 잘 부탁드려요, 모자맨 님.”
‘원딜이라.’
서포터 유저, 모자맨의 말에 대답한 지호는 전장의 지도를 살피며 이동했다.
위, 중앙, 아래.
본진으로부터 세 갈래로 갈라진 길. 그 중 원딜이 가야할 위치는 아래쪽 길인 봇이다.
-뭐야 나 방금 왔는데 미다스 왜 사막 궁수임???
-몰?루 갑자기 픽하던데 ㅋㅋㅋ
-저쪽 픽은 또 왜 저래 ㅋㅋㅋㅋ
-양쪽 다 이상해;;;;
지호가 봇으로 이동하는 사이.
의문을 가진 시청자들이 연두리에게도 질문을 던졌는지, 이내 팀 보이스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다스 님, 시청자들이 제 방송에서 계속 물어보시네요. 간단하게 설명 드릴게요.”
“네.”
“상대 미드가 무쇠전사인데. 저게 보통 탱커지 미드 영웅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무쇠전사는 보통 순수한 탱커로만 가는 영웅이었다.
어지간한 미드 영웅으로는 킬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겠지.
연두리의 말도 그 내용이었다.
“일단 제가 봤을 때 미드에 선 미다스 님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트스대 멤버 중에서도 몇 없어요.”
-ㅇㅇ
-그건 맞지 ㅋㅋㅋㅋ
-저 인간이 적당히 괴물이어야지
-챌린저 상위나 막을 듯 ㅋㅋ
그런 맥락에서 연두리가 생각해봤을 때 미다스를 막을 수 있는 전략은 몇 없다.
개중 하나가.
지금의 호박왕 팀처럼 미드에 방어 위주 영웅을 세워서 미다스를 견제한 뒤, 다른 라인을 키우는 것이다.
-오오 ㅋㅋㅋㅋ
-그러면 가능성 있겠는데? ㅋㅋ
-어? 그렇게 따지면 다른 팀도 다 저러면 되는 거 아님?
“아니죠,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수에요.”
하나는, 미다스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미다스의 성장이 지체되는 사이 다른 라인에서 캐리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하자면, 최소한 두 명의 실력자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이 팀은 그게 가능하죠, 챌린저 급 피지컬이 2명이니까.”
-아, 맞네….
-그럼 원딜로 가서 그걸 카운터 친 거고???
-미친, 연두리 진짜 대단하네;;;
속는 척 미다스가 미드에 가는 전략도 생각해봤다.
탱커에게 강한 영웅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저쪽에서도 실험적인 전략을 들고 온바.
연두리도 나중을 위해 미다스의 원딜은 어느 정도일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미다스 원딜? 이건 진짜 못 참거든요 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ㅋㅋ
-의외로 원딜 가서 털리면 그것도 웃길 수도??
-그게 되겠냐 ㅋㅋㅋㅋㅋ
‘다행히 반응은 좋네.’
연두리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예상치 못한 상황.
지호 방송의 채팅창은 축제 분위기였으나.
상대는 그만큼 당황한 상태였다.
“아니… 미다스 님이 왜 원딜을!”
“이거 제대로 읽혔네요.”
“대체 어디서 알아채신 걸까요?”
자신들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건지.
뜬금없이 원딜로 가버린 미다스.
호박왕과 카인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역시 연두리 님 생각이겠죠?”
“백퍼죠.”
둘 다 서든 샷 내전을 함께했던 터.
연두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아마 그녀가 전략을 읽은 거겠지.
‘그걸 카운터 치려고 미다스 님을 원딜로 보낸 거고.’
탱커형 영웅인 무쇠전사를 들고 미드에서 미다스를 커버하려던 카인의 입장에선 아쉽게 된 상황.
하지만, 그건 괜찮다.
일단 중요한 건 이기는 것.
미다스 하나를 막으려고 전략까지 준비해온 입장에서 지면 망신이니까.
“다행히 뮤쥬 님이 수비형 플레이를 잘하시니까 버텨주시고. 그 사이 저랑 파란수박 님이 미드랑 탑 찍으면서 크면 될 거 같아요.”
카인은 이렇게 상황을 정리하고는 전투 로봇 파밍에 집중하려 했다.
봇.
하단에서 기계음이 울린 건 그때였다.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
[사막 궁수 → 철갑보안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