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화. 트스대 -첫째 날(3)
인베.
‘침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 인베이드(Invade)의 줄임말로.
퓨처 워와 같은 AOS 장르에서는 게임 초반에 상대 진영. 특히, 주로 정글러를 습격하는 전략을 뜻한다.
초반이니만큼 한 번의 데스가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한 결과일 터.
보통 미드 라이너들은 인베 방어를 위해 잠시 길목을 지켜주곤 한다.
라이플은 먼저 이 점을 짚었다.
“이건 팀 왕눈이의 타이밍이 기가 막혔네요.”
“그러게요! 분명 미다스 님이 인베 방어를 하고 있었는데요!”
“네, 방금 전까지는 그랬죠.”
퓨처 워의 초반은 특히 중요하다.
전투 로봇 한 웨이브 차이로 레벨이 벌어지고, 그게 결국 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게 미다스가 자리를 뜬 이유다.
전투 로봇이 라인에 오는 시간에 맞춰서 도착해야 하니까.
-타이밍 예술이긴 하네.
-어? 그럼 청해는 라인도 포기하고 여기 온 건가??
-ㅇㅇ 그런 듯 ㅋㅋㅋㅋ
-이게 맞나;;;;;
탑에서 벌어지는 영혼의 맞다이에 집중하고 있던 이들과 달리.
애초에 맵 전체를 보고 있던바.
라이플은 다른 이들에 비해 더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타이밍이 예술일 수밖에 없는 게. 저분들 미다스 님 플레이를 계속 돌려보면서 확인했을 거예요. 미리 준비된 계획이라는 거죠.”
전투 로봇이 생산되는 시간은 고정되어 있다.
그 말인즉, 첫 웨이브가 라인에 오는 타이밍도 항상 같다는 소리다.
그래서일까?
미드에 서는 유저들은 보통 자신만의 시간 기준이 있다.
일종의 습관이라 해야 정확하겠지.
한데, 팀 왕눈이는 미다스가 라인으로 이동하고 난 시점에 바로 정글로 진입했다.
그야말로 절묘한 타이밍인 것이다.
라이플은 이 점에 주목했다.
저 타이밍을 안다는 건 미리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소리니까.
‘그런 맥락으로 생각해보면 탑 싸움까지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겠네. 팀 미다스의 브레인인 연두리가 눈치채면 계획이 틀어질 테니.’
특이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 곧 전투 로봇이 라인에 도착하는데 미드인 청해가 아직도 정글에 있다? 이건 그냥 인베에 전부를 건 겁니다.”
“예! 하이 리크스! 하이 리턴! 실패하면 쪽박이지만, 성공하면 대박이거든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인베가 변칙 전략이라 불리는 이유다.
앞서 말했듯 퓨처 워에서 초반 라인전은 중요하다.
한데, 그 시간을 인베에 쏟는다?
게다가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한다?
이건 바로 게임의 패배와 직결될 문제니까.
말 그대로 양날의 검이라는 소리인데….
지금의 팀 왕눈이와는 거리가 한참 먼 이야기였다.
“저분들은 성공하겠네요.”
“맞습니다아! 팀 미다스! 몰라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정글러인 유나를 시작으로.
원딜인 호이스키, 그리고 서포터인 모자맨까지도.
아무것도 모른 채 중립 몬스터 사냥을 돕고 있었으니까.
-끝났네 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 보고 있으니까 PTSD 오네…. 저렇게 당해서 게임 끝날 때까지 욕 먹어본 적 있는데;;;
-이러면 진짜 모른다 ㅋㅋㅋ
-ㅇㅈ
-정글러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게임 자체가 휘청거리긴 하지 ㅇㅇㅇ
“이제 슬슬 움직이겠는데요.”
“으아, 유나! 아무것도 모르고 버프 먹을 생각에 열심이에요! 체력도 벌써 절반이나 까였습니다!”
퓨처 워의 중립 몬스터는 강하다.
특히, 버프를 주는 대형 몬스터들은 그 효과만큼이나 세다.
오죽하면 봇 듀오와 함께 치고 있음에도 유나의 체력이 한참이나 줄었을 정도.
이쯤 되니 움직이는 이도 있었다.
“미다스, 뭔가 눈치챘나 보네요. 반응이 이상해요.”
라이플이 미니맵을 가리켰다.
미드에 있던 그가 라인을 밀더니 정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 로봇은 진작 라인에 도착했는데, 상대는 올 기미가 없으니 묘한 낌새를 알아챈 모양이다.
하나, 그보다 팀 왕눈이가 빨랐다.
“근데 늦었어요! 팀 왕눈이! 움직입니다아!”
시작은 정글러인 봉봉봉이었다.
푸슉!
그가 선택한 영웅은 타란튤라 퀸.
손끝에서 쏘아진 거미줄이 바로 유나를 묶었다.
이어서 그 뒤를 미드라이너, 청해의 암흑과학자가 뒤따랐다.
[파멸의 광선]
위력이 강한 대신 속도가 느린 스킬이지만, 거미줄에 묶인 유나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정통으로 맞을 수밖에.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
[암흑과학자 → 선봉장]
결과는 깔끔한 첫 킬!
청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균열 폭풍]
곧바로 다른 스킬을 체력이 바닥난 중립 대형 몬스터에게 꽂은 것이다.
완벽한 딜 계산과 타이밍이었고.
이내 청해의 몸 주변에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막타로 인한 버프를 얻은 것이다.
“아, 이건 좀 크네요.”
“맞아요! 이건 진짜 큽니다아! 시작부터 무게추가 기울어버렸어요!!”
-ㄷㄷㄷㄷㄷㄷㄷㄷㄷ
-미드가 퍼블에 버프까지?????
-와 ㅋㅋ 이거 미다스 어카냐;;;;
-심지어 청해도 챌린저라 걍 찍어 누르는 건 안 될 텐데…….
미드가 첫 킬과, 버프를 얻었다.
아무리 미다스라 해도 이 조건으로 라인전을 이기는 건 쉽지 않을 터.
게다가 아직 상황은 끝이 아니다.
“이런! 모자맨까지 스턴에 걸렸나요! 팀 미다스, 비상입니다!”
인베를 간 인원은 총 네 명.
청해와 봉봉봉이 유나를 자르는 사이 남은 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빠르게 봇 듀오부터 노린 것이다.
이어서 유나를 잡고 온 청해와 봉봉봉까지 합세하였으니.
[빛 사냥꾼 → 보석수집가]
결국 서포터인 모자맨까지 죽고 말았다.
그나마 원딜인 호이스키는 살아서 다행이랄까.
-쟤네 조졌네 ㅋㅋㅋㅋ
-이게 이렇게 재밌어지나 ㅋㅋ
-크…. 그래, 이래야 볼 맛이 나지 ㅋㅋㅋㅋㅋㅋ
팀 미다스의 상황이야 어찌 됐건 시청자들은 즐거워했다.
미드가 킬과 버프까지 먹은 상황.
과연 미다스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 키 포인트는 미다스군.’
1티어 캐스터인 김두기는 이런 시청자들의 니즈를 바로 파악했다.
때마침 재빨리 정비를 끝마친 청해가 미드에 도착했다.
뭘 강조해야 할지는 정해진바.
김두기는 크게 외쳤다.
“자! 그럼 미다스가 이 불리한 상황도 이겨낼 수 있는지, 지금 바로 지켜보겠습니다!”
* * *
지이이잉-!
타앗!
“쩝.”
연신 쏟아지는 레이저와 장판을 피하며 지호는 혀를 찼다.
퐁!
심지어 사이사이 평타까지 날카롭게 날아든다.
‘확실히 날카롭다니까.’
상대 미드 라이너인 청해.
친선 경기에서 만났을 때부터 피지컬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챌린저 중에서도 돋보였을 정도.
한데, 킬을 먹고 아이템을 사 온 데다가 버프인 ‘힘의 룬’까지 두르고 있는 상태다.
일단 사려야 할 차이인데….
그것도 순탄치 않았다.
어찌나 공격이 매서운지 빡세게 피하고 있었음에도 체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어쩌겠어, 버텨야지.’
일단 버프가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그 이후엔 서서히 격차를 좁혀 가면 된다.
애초에 상대가 피지컬이 좋다 한들.
결국 그때도 승리는 지호의 몫이지 않았던가.
‘킬만 안 내주면 된다.’
지호는 속으로 재차 되뇌었다.
그리고는.
점점 거세지는 청해의 압박을 하나둘씩 흘리기 시작했다.
* * *
“칫.”
연두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인베라니.’
팀 왕눈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쓴 적 없는 전략이었다.
아마 일부러 숨겼겠지.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맞은 기분은 무슨.’
실제로 맞은 격이나 마찬가지다.
그 인베로 인해 게임이 꼬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아직 진 건 아니지.’
전반적인 상황은 물론 최악이다.
일단 정글은 죽고 버프까지 빼앗겼다.
게다가 봇도 상대 원딜인 왕눈이가 킬을 먹은 데다가, 모자맨이 복귀하는 동안 2:1로 압박당한 터.
호이스키의 체력은 절반 이하였다.
개중 상황이 가장 나쁜 라인은 미드지만 그래도 미다스라 다행이다.
그라면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나마 상대 정글이 봉봉봉 님이라 다행이네.’
봉봉봉의 티어는 실버다.
아군 정글인 유나와 같은 티어이니만큼 차이는 크지 않겠지.
‘잠깐…!’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찰나.
연두리의 시선이 빠르게 미니맵으로 향했다.
상대 봇 듀오는 아군 봇을 압박하는 중이고?
미드는 미다스를 압박하고 있다.
그럼 정글은 당연히 혼자겠지?
‘이거다!’
이번 인베는 팀 왕눈이로서도 어느 정도 시간적 리스크를 감수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 말인즉, 다들 급하게 라인에 복귀했을 거라는 뜻.
그리고.
정글러인 봉봉봉이 혼자 중립 몬스터를 잡아야 했을 거라는 소리다.
‘그러면 각이 나오는데?! 봉봉봉 님이 보통 정글 돌던 루트가….’
연두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 * *
그 시간.
“이번 우위를 어떻게 굴리냐가 팀 왕눈이의 과제겠네요.”
“네! 맞습니다! 지금 당장은 우세하지만 팀 왕눈이, 아직 웃지 못해요! 방심하기에는 미다스라는 벽이 너무 크거든요! 긴장해야 해요!”
김두기와 라이플은 한결 밝아진 분위기로 해설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제야 양 팀의 전력이 비등비등.
아니, 팀 왕눈이가 한참 앞서고 있었던 까닭이다.
약팀의 반란은 언제나 재밌는 법.
그만큼 채팅창에도 활기가 돌았다.
-역시 퓨처 워는 끝까지 봐야 알아 ㅋㅋㅋㅋㅋㅋ
-미다스가 밀리는 거 처음 보네;
-확실히 챌린저는 다르긴 해. 상황 받쳐주니까 압박 빡세게 넣네….
청해의 압박은 엄청났다.
어지간한 라이너라면 질식할 정도.
그나마 미다스라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 같았으나, 그것도 이제는 끝인 모양이다.
미다스가 집으로 복귀하려는지 경계 포탑 뒤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아, 이런! 미다스도 버프 두르고 있는 상대는 어쩔 수 없나요!!”
김두기가 탄식하려던 그때, 라이플이 그 말을 끊었다.
“어? 집을 가는 게 아닌데요?”
“아니이! 집이 아니네요! 상대 정글! 정글로 가고 있어요! 유나도 함께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
-이 타이밍에?
-아니, 어떻게 알고 ㅋㅋㅋㅋ
미다스와 유나의 의도는 대충 봐도 알 수 있다.
정글러를 노리는 거겠지.
중요한 건, 왜 하필 지금이냐다.
“일단 팀 미다스 쪽 대화를 들어봐야겠네요.”
“네네! 바로 들어보죠!”
[미다스 님, 유나 님. 지금쯤이면 두 번째 버프 몹 잡고 있을 거예요! 바로 가서 잡아주세요!]
두 중계진이 팀 미다스의 보이스 채널을 열자.
확신에 찬 연두리의 말이 울렸다.
-ㄷㄷㄷㄷㄷㄷㄷ
-아니, 연두리 어케 다 파악하고 있냐
-타이밍 계산한 듯?
-무슨 전자 컴퓨터여 ㅋㅋㅋㅋㅋ
-저 사람 대단하긴 하더라.
시청자들은 감탄했다.
현재 게임 중인 스트리머들과 달리, 그들은 미니맵을 통해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 봉봉봉의 위치는 버프 몹 앞.
분명 시야가 없음에도 연두리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니, 절로 감탄이 나오는 거다.
그리고 지금.
한참 버프 몬스터를 잡던 봉봉봉의 뒤를 미다스와 유나가 덮쳤다.
“봉봉보오오옹! 아까랑 다르게 그대로 뒤에서 당했어요! 인과응보인가요!!!”
“아, 이건. 너무 깔끔하네요.”
[적을 처치했습니다!]
[서리검 → 타란튤라 퀸]
“이러면 상황이 재밌어지네요.”
“미다스! 킬을 먹었어요! 거기다가 봉봉봉이 가지고 있던 버프까지! 이러면 원점이에요!!!”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시간 청해 속마음 : (아, 시발….)
-역전의 역전의 역전 ㅋㅋㅋㅋ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보이스 채널로, 미다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들, 이제 반격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