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이벤트 매치 이후
“…….”
“라이플 님? 라이플 님?”
“아, 네. 굉장했네요. 트스대에서 저 정도 완성도의 가속검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7:1인 상황에서.
혹시나 했던 미다스의 우승.
심지어 그 과정은 베테랑 캐스터인 김두기와 프로게이머인 라이플이 잠시나마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그들이 이 정도인데.
시청자들은 어련하겠는가.
-와…. 와 ㅋㅋㅋ
-미친놈…….
-내가 뭘 본 거지????
-미다스는 신이 맞다.
-아니 ㅋㅋㅋㅋ 와 ㅋㅋㅋㅋ 진짜 ㅋㅋㅋㅋㅋㅋ
-다들 정신 차려…. 맛이 갔누.
-;;;;;;;;
채팅창은 고장 난 화면처럼 비슷한 말만 올라오고 있었다.
너무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진 터라.
정신이 쏙 빠진 모양이다.
다행히 그나마 정신을 차린 김두기가 빠르게 멘트를 이어갔다.
“이런 걸 다시 안 보면 아쉽겠죠?! 우승자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하이라이트 부분들만 다시 한번 감상하겠습니다!!”
“네, 준비됐습니다. 바로 가시죠.”
-캬!! 가즈아!!!
-이거 해설도 같이 해주세요….
-ㄹㅇ;;;
-아니면 배속 조절이라도 ㅠㅠㅠ
이어서 두 중계진은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7명의 공격을 버티다니! 이건 진짜 대단했어요! 물론 체력이 바닥 근처까지 가긴 했지만 그럼 뭐하나요! 안 죽었는걸!”
“이 장면도 보면 그냥 인간 각도기입니다. 딜 계산이 완벽해요.”
“맞습니다! 감탄이 나오네요!”
종종 해설을 해달라는 채팅도 올라왔으나, 그들의 대화는 해설이라기보다는 감상평이었다.
라이플도 어쩔 수 없었다.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깔끔한 플레이만 이어지는데 무슨 해설을 하냔 말이다.
특히 그들이 완전히 관람객 모드로 들어선 장면은 미다스가 반격을 시작한 이후였다.
“캬! 정말 예술이네요!”
“드디어 나오네요. 프로선수들의 경기도 아니고, 이벤트 경기에서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동감입니다! 아니! 이건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보기 힘든 명장면이었어요!”
감상을 돕기 위해서인지 느리게 재생되는 영상.
거기에는 무려 100이 넘는 가속검 스택을 쌓은 미다스가 스트리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장면이 보였다.
“캬! 이게 말이 되나요? 그야말로 순간이동이었어요! 뒤에서 나왔다가! 앞에서 나왔다가! 홍길동인가요!”
“중간 중간 대쉬기인 질풍참을 섞으면서 매끄러운 플레이를 완성시켜 줬네요.”
“아! 그거였군요! 왠지 그냥 뛰는 느낌은 아니다 싶었는데!”
-와, 미친 ㅋㅋㅋ 무슨 텔포 쓰나 했더만 저거 사이에 질풍참도 쓰면서 이동한 거네???
-진짜 에바야;;;
-저 속도에서 저 판단이 어케 나오냐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 미다스미다스 하는 거지
-ㅅㅂ 미친놈임 그냥 ㅋㅋㅋㅋ
김두기와 라이플도 그랬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더 격했다.
100이 넘는 가속검 스택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다니!
심지어 상대는 챌린저 스트리머들.
그야말로 눈을 의심하게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승리!]
그렇게 모든 영상이 끝났고.
계속해서 극찬을 내뱉던 김두기의 멘트가 이어졌다.
“이걸로 이벤트 매치는 끝입니다! 다들 재밌게 보셨나요!”
“저는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개.꿀.잼
-트스대가 최고다 ㅋㅋㅋㅋㅋㅋ
-이벤트 매치가 이 정도인데 결승은 어어~ 얼마나 재밌을까.
-실시간 시청… 해야겠지?
-결승은 진짜 못 참지 ㅋㅋㅋ
격하게 동의하는 시청자들의 채팅.
그걸 보며 김두기는 미소 지었다.
이제 남은 건 인터뷰뿐.
그는 힘찬 목소리로 멘트를 이어갔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우승자 인터뷰 이어가겠습니다! 미다스 님 나와 주세요!!!”
* * *
트스대 이벤트 매치.
콜로세움에서 우승하고.
이어서 인터뷰까지 끝내고 그의 방송 화면으로 돌아온 지호는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아니, 이게 무슨….”
[‘TXP 김필주’ 님이 100,000원 후원!]
[안녕하세요 미다스님 퓨처 워 프로팀 TXP입니다. 영입 관련해서 메일 보냈는데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Pie.X’님이 200,000원 후원!]
[안녕하세요! Pie.X입니다! TXP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모시겠습니다!]
[‘TXP 김필주’ 님이 250,000원 후원!]
[코치님 이러지 맙시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시죠.]
……
…
-이게 무슨 일이라냐 ㅋㅋㅋㅋ
-경매함???
-정정당당하게 (단가를 올리며)
-얘네 진짜 뭐함 ㅋㅋㅋㅋㅋㅋ
-미다스한테 영입 메일을 수십 통 보냈는데도 안 읽어서 찾아왔다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와, 나 이런 거 처음 봐 ㅋㅋㅋ
경기도 무사히 끝났으니, 이제 잔잔하게 소통방송 좀 하다가 쉬러 가야지 싶었는데….
웬걸.
평소와 같은 방송 화면으로 바뀌자마자 그를 반긴 건.
끝도 없이 쏟아지는 후원이었다.
개중에는 평소에도 자주 보던 시청자들의 후원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지금 지호가 보고 있는 것처럼 프로팀들이나 광고주들이 보내는 것들이었다.
“어… TXP 김필주 님, Pie.X 님 감사합니다. 다들 프로팀에서 오셨나 보네요.”
지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제는 그도 대강 알고 있다.
자신의 피지컬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리고 미다스라는 이름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하지만.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보통 프로팀들은 공고 올려서 사람 모집하고 그러던데…. 심지어 무슨 테스트들도 보던데 나한테 왜….’
물론 여기저기서 메일이 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한데, 그것도 한두 개여야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터라 귀찮아서 못 본 척 한다는 게 여기까지 흘러와버렸다.
뭐, 여하튼.
방송까지 와서 후원을 했는데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노릇.
지호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꺼냈다.
“음…. 프로팀에 들어갈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제가 프로에 어울릴 거 같지도 않네요. 죄송합니다.”
대놓고 거절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TXP 김필주’ 님이 50,000원 후원!]
[그럼 훈련코치라도…? 방송에 큰 지장 없게 사이사이 선수들 상대만 해주시면 충분합니다!]
[‘Pie.X’님이 100,000원 후원!]
[혹시 모르니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세요. 저희 팀에 오시면 월챔 우승도 꿈은 아닙니다.]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Pie.X가 국내 3위 팀 맞지?
-ㅇㅇㅇㅇ
-TXP는 2위 팀이여;;;
-미쳤네;;;;;
-와;;; 쟤네가 방송에 와서 대놓고 스카웃하는 것도 처음 보는데 리얼 간절하게 말하네….
“죄송합니다.”
지호는 다시 한 번 직설적으로 거절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딱 보아하니 오늘 방송 더 하기는 힘들겠네.’
채팅창의 분위기나.
아직도 후원을 보내고 있는 또 다른 프로팀들이나.
심지어 광고를 원하는 이들까지.
그야말로 시장판이 따로 없었다.
뭐, 잘 굴리면 여기서도 재미는 뽑을 수 있겠다만.
지호가 원하는 흐름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적당하겠지.
그는 조심스럽게 멘트를 쳤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들 오늘 경기는 재밌게 보셨나요?”
-ㅇㅇㅇㅇㅇ 그냥 미쳤음 ㅋㅋㅋ
-진짜 역대급이었다. 미다스는 신이야 신….
-어? 오늘 경기? 설마…. 아니지?
-더 해다오….
-안됩니다!! 못가!!
-아;;; 저 눈치 없는 도네들;;;;;
평소였다면 못이긴 척 더 했을지도 모른다.
하나, 이미 어수선해진 상황.
게다가 한 경기지만 온 신경을 다해 집중한 터라, 눈이 슬슬 떨려오기도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지호는 단호하게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그럼! 다들 오늘 방송 봐주셔서 감사하고, 내일은 팀원들과 합방으로 뵙겠습니다! 유나 님이 플탐 짧고 재밌는 게임 찾아뒀다고 하니 다들 기대해주세요! 트바!”
* * *
그 날, 늦은 저녁.
“콜로세움 영상, 하이라이트. 음…, 찾았다.”
방송을 끝내고.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 지호는 인터넷을 뒤적였다.
오늘 자 트스대 이벤트 매치.
즉, 콜로세움의 영상을 다시 한번 보며 자신의 플레이를 복기해보기 위해서였다.
가만히 영상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캬… 확실히 잘하긴 잘하네.”
누가 본다면 자화자찬한다고 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잘하는걸.
동시에 지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프로? 내가? 흠….’
TXP와 Pie.X 말고도 여러 프로팀에서 영입 제의를 보내고 있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다.
메일을 열 때마다 최소 한두 통씩은 보이는데 모른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뭐래더라… 선수가 싫으면 방송하면서 사이사이 훈련코치만 해줘도 충분하다고?’
하하.
지호는 헛웃음을 지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제안이었으니까.
누가 아마추어를 저런 제안까지 하면서 데려간단 말인가.
뭐, 그 사실은 감사하다만.
굳이 더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내가 프로는 무슨.’
프로게이머?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길이었다.
따지고 보자면 스트리머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길이지만, 프로게이머와는 결이 또 달랐다.
자유가 없는 느낌이랄까.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든다.
동시에 지호의 생각은 앞으로의 방향성으로까지 이어졌다.
‘당분간 퓨처 워는 좀 쉬어야겠다.’
그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다른 이들을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고 싶어서가 아니다.
스릴을 즐기고.
난관을 극복하고 싶어서이지.
하지만 오늘 콜로세움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마스터 티어에서 랭크 게임을 돌리면서 빡세다는 감정을 느끼는 건 쉽지 않겠지….”
물론 여기서 티어를 더 올리고.
챌린저 상위권 유저들이나 프로게이머들을 만나게 되면 또 어떨지 모른다.
하다못해.
이번 트스대에서 챌린저들을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스릴은 넘치지 않았던가.
‘그러니 티어를 더 올리면 또 스릴을 느낄 수 있을지도….’
하지만 지금 하고 싶지는 않다.
지호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다.
한데, 지금 점수를 올리기 위해 랭크 게임을 돌리면 즐겁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건 숙제지 놀이가 아니니까.
물론 아쉬움은 남아있었다.
“엘카.”
세계에서도 최정상급 프로게이머라는 그와 겨뤄보지 못한 건 아쉽다만.
그 또한 괜찮다.
퓨처 워를 영영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동일선상에 서는 것도 가능하겠지.
‘뭐, 다른 게임일 수도 있고.’
지호는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금 인터넷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재밌는 게임이 없나 알아보기 위해서였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세상은 넓고.
아직 그가 해보지 못한 게임은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오….”
새로운 게임, 그리고 괜찮아 보이는 게임이 나올 때마다.
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후 지호는, 해당 게임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또 찾아보았다.
그러기를 한참.
“어?”
최근 유행한다던 게임에 관한 글이 보였고.
이내 그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