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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의 청록색 눈동자에 레이첼의 모습이 비쳤다. 레이첼은 잠시 말을 잃은 채로 에드워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드워드가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저기 비올라가 오네. 그럼 난 서재에 가 있을게. 이따 봐.”
“……알았어요. 이따 찾아갈게요.”
에드워드가 가볍게 손을 들어 레이첼에게 인사했다.
“미안, 에리카, 레이첼! 많이 늦었지?”
화사한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온 비올라가 에드워드를 지나쳐 레이첼에게로 다가왔다.
“아냐. 많이 안 기다렸어!”
에리카가 레이첼보다 먼저 비올라에게 대답했다. 비올라는 그런 에리카가 귀여워 소리 없이 웃었다.
“그래서, 에리카가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온 거지?”
“응! 이제 아카데미 방학도 끝나가는데 우리 언니는 항상 바쁘기만 하단 말이야. 놀아 주지도 않고! 그래서 내가 비올라 언니 보고 싶다고 했지.”
“잘했어. 다음에는 레이첼 없이 혼자서 놀러 와도 돼. 편하게 와.”
비올라가 에리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에리카는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미안해, 비올라. 너도 바쁠 텐데.”
레이첼이 두 사람을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사과를 건넸다.
그러자 비올라가 레이첼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괜찮아. 난 에리카랑 만나는 것도 좋은걸?”
“나도 비올라 언니랑 만나는 거 좋아!”
“역시!”
에리카와 비올라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레이첼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짝을 맞춰 노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아까 에드워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니겠지.’
에드워드는 언제나 레이첼에게 상냥했다.
사실 레이첼에게만 상냥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늘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에 있었을 당시에도 그의 그런 친절한 태도에 반해 버린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니 레이첼에게만 유독 친절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든지 레이첼이 가장 힘들 때마다 항상 그녀의 곁에서 어깨를 내주던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레이첼이 테르반을 구하기 위해 마법 실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였다.
마탑주 후보인 에드워드의 마법 실력이야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고, 무엇보다 레이첼과 가까운 사이기 때문이었다.
처음 에드워드를 찾아왔을 때만 하더라도 레이첼은 그가 거절하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두려워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레이첼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그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알려 주었다.
귀찮을 법도 하건만, 그는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그동안은 그런 에드워드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테르반을 구해 내는 것뿐이었으니까.
뒤늦게 그 목적을 달성하고 나니 그제야 다른 것들이 천천히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가 자신을 도와준 이유가 단순히 그녀를 향한 호감 때문이었을까?
그동안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던 레이첼이었으나, 오늘 에드워드와 대화를 나누어 본 이후로는 섣불리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그가 널 사랑할까 봐 겁이 나?]
크레온이 레이첼의 정곡을 찌르듯 물었다.
레이첼은 바로 받아치는 대신에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비올라와 에리카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겁이 나는 건 아니야.’
뒤늦게 레이첼이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과 같이 차분했다.
[그럼?]
‘……미안해서.’
에드워드가 설령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레이첼은 그의 마음에 보답할 수 없었다.
에드워드의 마음을 모를 때야 단순히 그의 호의를 고맙게 여기는 것으로 끝낼 수 있었지만,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시점부터 그렇게 간단하게 넘길 수는 없었다.
레이첼은 돌아오지 않는 감정을 혼자 감당하는 게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레이첼이 그의 감정을 알았다고 해서 에드워드의 마음을 받아 주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다만 확실히 선을 그을 필요성은 있을 터였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크레온이 레이첼에게 속삭였다.
확실히 그의 감정이 확실한 애정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었다.
‘역시 그렇겠지. 일단은 좀 더 명확해지면 그때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렇게 해.]
나중에, 좀 더 에드워드의 마음이 구체적이 되면 그때는 자신도 입장을 확고히 드러내야 할 터였다.
생각을 정리한 레이첼이 준비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쌉싸름한 차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그러나 레이첼은 이를 조금도 쓰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비올라와 에리카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지금 모습만 보아서는 마치 비올라가 친언니처럼 보였다.
에리카도 비올라를 무척이나 잘 따랐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레이첼은 에리카와 함께 놀아 주는 비올라가 고마웠다.
자신도 비올라처럼 함께 놀아 주면 좋을 텐데, 도저히 예전처럼 에리카와 놀아 주기가 어려웠다.
“비올라.”
오후 3시가 넘어갈 무렵, 레이첼이 비올라를 불렀다. 에리카와 비올라의 시선이 동시에 레이첼을 향했다.
“왜?”
“잠깐 자리를 비웠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갑자기? 어디 가려고?”
“에드워드에게 문헌을 빌리기로 했는데 서재에 있다고 해서. 돌아가기 전에 받으려고 했는데 지금 다녀올까 해.”
“아, 맞다. 그랬었지. 그 리코리스의 눈물인가 뭔가?”
“응. 그거 때문에.”
“알았어. 다녀와.”
비올라의 허락이 있고 난 후에야 레이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하인의 안내를 받아 에드워드의 서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끝나자 안에서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듣기 좋은 저음이었다.
하인은 레이첼이 들어가기 편하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열린 문으로 걸음을 옮기자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던 에드워드가 고개를 들어 레이첼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벌써 온 거야? 바로 가려고?”
에드워드가 놀라며 레이첼에게 물었다. 레이첼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아뇨. 돌아가기 전에 들르면 에리카가 많이 기다릴 것 같아서 그냥 지금 왔어요. 어차피 곧 돌아갈 거기도 하고요.”
“하긴. 이쪽으로 와. 준비해 놨어.”
에드워드는 서재 한쪽에 마련된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준비했다는 그의 말대로 테이블 위에 책 몇 권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레이첼이 착석하자, 에드워드 역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 책들이야.”
에드워드가 건네준 책은 총 세 권이었다.
고대 마수에 대해 기술된 서적들이었다.
“펼쳐 보면 알겠지만, 리코리스의 눈물이 언급된 모든 부분마다 내가 체크를 해 놨어. 보고 바로 읽으면 돼. 혹시 몰라서 여러 번 검토해 봤으니까 시간 낭비 안 해도 되고.”
그의 말대로 책에는 리코리스의 눈물과 관련된 부분에 빠짐없이 표시가 되어 있었다.
에드워드에게 책을 빌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던 레이첼은 그가 남긴 뜻밖의 표시에 놀라 책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시간 많이 걸렸을 텐데요.”
“너도 알다시피 내가 책 읽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어서.”
“에드워드…….”
에드워드는 대수롭지 않아 하는 말투였다. 레이첼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챙겨 주는 에드워드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책을 집어 든 레이첼이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에드워드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가서 읽고, 혹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알려 줄 테니까.”
레이첼의 시선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에드워드가 평소와 같이 다정한 말투로 레이첼에게 말했다.
레이첼은 가만히 그를 주시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혹시 에드워드.”
“응.”
레이첼의 부름에 에드워드의 시선이 레이첼을 향했다. 레이첼은 그의 눈을 확인하면서도 한참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에요. 고마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드워드에게 물어보려던 레이첼은 자신이 섣부르게 판단한 건 아닌가 싶어 이내 그에게 물어보려던 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천만에.”
“그럼 가 볼게요. 책은 다 읽으면 바로 돌려드릴게요.”
“천천히 봐. 난 이미 몇 번 본 거니까.”
“네.”
레이첼은 에드워드를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난 후 에리카와 비올라가 기다리는 후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녀왔어?”
레이첼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비올라가 그녀를 반기며 물었다.
“응.”
레이첼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고는 복잡한 기분으로 에리카와 비올라를 주시했다.
돌아가고 나서도 한동안은 에드워드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머리가 복잡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