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 9화 정리
“네? 네? 왜, 왜죠?”
같은 회사 사람인 건 알지만 이건 누가 봐도 과한 처세다.
내가 경계심 담아 말하자 그녀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워낙 눈부셔서 섣불리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틀 전 귀환자 오르지아랑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요. 퇴근길인데 붙잡아서 미안해요.”
오르지아라는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냐하면 그저께 본 수녀가 바로 오르지아였기 때문이다.
그걸 백설향 씨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그녀가 범상치 않은 사람일 거란 건 진작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러니 더 경계하게 된다.
“아, 여기 제 명함이에요. 보시면 이해가 될 거예요.”
나는 그녀가 건네준 명함을 받았다.
그러곤 명함을 살펴보자 거기에는 세계 귀환자 협회라는 이름과 백설향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거, 진짜다.
귀환자 협회 쪽 대표 문양은 그녀가 정말로 세계 귀환자 협회 소속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귀환자셨나요?”
“네, 그렇답니다. 오르지아 건으로 하찬씨를 부른 이유는 그녀가 하찬씨와 대화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요. 추가 수당은 드릴 테니 괜찮으실까요?”
“가시죠.”
참고로 추가 수당 때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오르지아가 울분을 토해내던 그 기억이 좀 신경 쓰이기도 해서지.
5
세계 귀환자 협회 한국 지부.
그곳에 도착한 나는 로드리는 비교도 안 될 거대한 건물을 보며 새삼 귀환자 협회의 힘을 실감했다.
과거 10년 전까지만 해도 귀환자의 취급은 인류 병기 수준에 가까웠다.
그들은 강했지만, 개인이었고, 개인은 집단을 이길 수 없는 법이었다.
귀환자를 제압하는 귀환자.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에 귀환자는 다른 귀환자를 적으로 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기에 국가에서도 그들을 다루기 쉬웠다.
서로를 적이라 인식한 시점에서 귀환자를 서로 다른 대우를 해주는 것만으로 그들은 최고의 병기가 되어주었으니까.
실제로 한 때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귀환자를 보유했는가에 따라 국방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 귀환자 협회가 세워지고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첫 시작은 귀환자들의 현 사태에 대한 불만 토로였다.
국가에서는 병기 취급에 민간인들에게는 귀환으로 인한 차원 이동을 발생시키는 골칫거리 범죄자.
그저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했던 귀환자들에게 불만이 쌓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물며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실정이니 그들 처지에서는 토악질이 나왔으리라.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지를 가진 귀환자들은 서서히 뭉치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국가가 그들을 병기로 내세웠기에 귀환자들은 수많은 접점이 있었고, 그 결과 그들이 의견을 모으는 게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세워진 세계 귀환자 협회.
처음 국가들은 병기 취급하던 귀환자들을 비난하며 그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짓을 속죄하지는 못할망정 세계를 전복시킨다고 비난했으나.
귀환자들의 능력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차원 이동을 할 수 있을 만큼 한 차원에서 최강자 자리에 오른 이부터 수많은 지식을 이용해 이미 뒤에서 세계 일부를 점거한 이까지.
귀환자는 국가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미 그들의 삶 깊숙이 침투해있었다.
만약 그들이 마음먹는다면 세계 전복은 우스운 일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물론 그들은 세계 전복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기껏 돌아온 고향, 이미 차원 멸망을 겪어본 귀환자까지 있는 마당에 자기 고향이 멸망 당하는 꼴을 볼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국가와 원만한 합의를 했다.
주인과 병기라는 것이 아닌.
국가와 협회의 서로 상호 간에 도움을 받는 공생 관계로서.
처음에는 몇몇 국가 쪽에서, 특히 중국에서 반발이 심하긴 했다.
중국은 귀환자를 그야말로 병기 취급 했고, 공산당다운 면모로 그들을 억압하고 수족으로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끝은 중국의 억압을 견디지 못한 귀환자의 폭주로 중국 베이징이 절반 이상 날아감으로써 그들은 반발을 멈췄다.
세계 귀환자 협회가 제때 나서주지 않았더라면 베이징은 물론 다른 주요 도시들도 모조리 날아갈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세계 귀환자 협회는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그들을 제어할 수 없다면 협력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환자를 막을 수 있는 건 소수의 헌터를 제외하면 결국 귀환자밖에 없었으니까.
여전히 귀환자의 인식이 민간인 사이에서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국가와 고위직 입장에서 귀환자란 절대로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될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런 세계 귀환자 협회 한국 지부에 와있는 중이었다.
백설향 씨가 보여준 명함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듯 그녀가 나아가는 길을 막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덕분에 귀환자나 협회 직원이 아니면 들어 올 수 없는 건물 내부를 여실히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 솔직히 좀 즐겁다.
나는 누나와의 일 이후 귀환자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쪽 관련으로 계속 공부해 왔다.
그런 내가 귀환자 협회 건물에 들어와 있으니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대학교를 자퇴 하면서 전부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의외로 나는 미련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아련한 눈으로 주변을 보고 있으니 나는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때마침 나와 눈이 마주친 백설향 씨는 선글라스 아래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협회에 관심 있나요?”
“아, 네, 이쪽 전공이었는지라.”
“괜찮으면 일 끝난 후 건물 소개라도 해드릴까요? 저희 쪽 일로 쉴 시간도 뺏어 버리게 됐으니까요. 그 보상이라기에는 뭐하지만요.”
“정말요?!”
내가 깜짝 놀라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서자 백설향 씨는 흠칫하며 선글라스를 살짝 올려 썼다.
왜인지 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물론이죠. 괜찮으면 저녁도 사드릴까요?”
“아뇨. 거기까지 폐 끼칠 순 없죠.”
너무 많이 받아먹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내가 정중히 거절하자 그녀는 아쉬운 듯 웃고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냥 협회로 데려올 걸 그랬나.”
무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긴 했지만, 협회 내부를 보느라 나는 듣지 못했다.
이후 내가 향하게 된 곳은 어느 회의실이었다.
기다란 원형 탁자가 놓인 그곳에는 한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나에게도 낯익은 여성이었다.
“오르지아.”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 순간 오르지아의 시선이 안대 너머에서 이쪽으로 향했다.
슬픔에 울부짖던 그녀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나였지만 그녀는 이전과 달리 많이 편안해 보였다.
마치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실을 받아들인 듯이.
“오셨군요.”
그녀가 나와 대화하고 싶었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의자를 빼어 앉자 오르지아는 당연하게 내 옆을 따라 앉는 백설향 씨를 힐끔 보았다.
아무래도 백설향 씨는 조금 불편한 모양이었다.
“오르지아 양은 현재 차원종을 이용한 혐의가 있어요. 게다가 외신 아울렙스는 정신 쪽 힘을 많이 다루니까 하찬씨와 둘이 둘 수는 없어서요. 양해 부탁 드려요.”
백설향 씨가 정중하게 말하자 오르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스스로도 민폐를 끼쳤다는 자각은 있고, 그것을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와 대화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아직 이 세상에 신용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오르지아는 어딘가 착잡한 듯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2030년도의 대한민국 거리가 펼쳐져 있었고, 그녀는 그 모습이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 듯하였다.
“기록된 차원 이동 중 가장 오래되셨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분류 판타지 · 14번에 적힌 내용 중 하나는 세이야와 오르지아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차원 이동 피해자라는 것이다.
세이야에 의하면 그들이 차원 이동에 휘말린 시기는 1800년, 조선 시대라는 것이다.
즉, 그들은 한국에서 기록상 가장 오래된 차원이동 피해자였다.
‘세르린티움과 지구는 시간 차이 폭이 너무 커.’
그들이 돌아오는데 유달리 고생한 이유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차원이동이라는 게 원래 쉬운 것이 아니긴 하지만 차원 간에 시간 차이가 크면 클수록 더 어렵다고 들었으니까.
그렇기에 세이야를 뒤따라 바로 넘어왔음에도 그가 죽은 뒤 한참 후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로서는 세이야의 죽음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기다렸을지도 모를 테니까.
“저는 이 세계에서 알지 못하는 게 너무 많아요. 문명도, 제가 기억하던 사람들도,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귀환자 협회를 신용 하실 수 없었군요.”
“네, 세이야의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저는 보다 신용 할 수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게 나라는 건가.
“당신이 처음 본 제게 해준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의였으니까요.”
그런 거창한 게 아니긴 하지만 나는 볼을 긁적였다.
내가 한 거라곤 그녀의 질문에 답해준 것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저를 통해서 이야기하죠. 궁금한 게 있으면 여러 가지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기껏 돌아왔는데 기억하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그녀에게 혼란밖에 주지 않았을 것이다.
세이야가 없는 이 세계는 그녀에게 있어서 그저 또 다른 세계처럼 느껴질 뿐일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오르지아와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아마 어느 정도 귀환자 협회 쪽 사람을 통해 현시대의 이야기를 들은 듯하였지만.
그것을 내게 다시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정말 많은 게 변한 거로군요.”
착잡해 하면서도 그녀는 이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인 듯하였다.
그런 뒤 오르지아는 조그맣게 숨을 내쉬곤 탁자 위에 공손하게 양손을 올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불러왔던 아이들이 고향에서 이정도로 폐를 끼칠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그녀는 나와 백설향 씨에게 직접 사과를 했다.
사실 나에게는 사과가 별 의미 없다.
그녀가 불러온 차원종은 사람들의 얼굴 앞에 나타나 확인만 하고 가거나, 그 몸집 때문에 물건을 부숴 재산 피해를 좀 입혔을 뿐.
차원종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한 명도 없다고 보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헌터들도 교전 중에 차원종이 싸우려고 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했었고 말이다.
그것만 보아도 오르지아는 차원종을 이용해 귀환자 세이야를 찾으려고 한 것이지 누굴 해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조선 시대에서 태어난 그녀 입장에서는 차원종의 힘이라도 빌리지 않는다면 세이야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 하는 게 당연하겠지.’
조선시대는 사람이 사는 곳 보다 숲과 들판이 더 많았을테니까.
애초에 싹 다 묶어 차원종이라고 불리고 있긴 하나 저쪽 세계에서는 개와 같은 동물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사람을 좀 놀래킨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남은 건 재산 피해라는 건데.
“괜찮아요. 이러한 것을 대처 하기 위해 귀환자 협회가 있는 거니까요.”
귀환자 협회 쪽에서 전부 피해 보상은 물론 정신적인 보상까지 마쳤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느 사이트에서는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은 것이 부럽다는 반응까지 있었으니 오르지아는 사람들 입방아에 오를 일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오르지아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백설향 씨는 당연한 일을 했다며 옅게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럼 이제 제 이야기를 조금 해도 될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살짝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가 곧 입을 열었다.
“곧 있으면 세르린티움이 차원 전쟁을 해올 겁니다.”
이건 또 머리 아픈 이야기가 나왔다.
백설향 씨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는지 덤덤했지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뜰 이야기였다.
차원 전쟁
자연현상으로 인해 열리는 재해인 차원문이나 소수의 집단이 침입 해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이다.
차원 전체가 이쪽 차원을 노리고 공격 해온다는 뜻과도 같았으니까.
“세르린티움의 땅은 죽어 가고 있어요. 저희가 그 세계에서 탈출하려 했던 이유도 같은 이유였고요.”
“땅을 빼앗으려는 거군요.”
“……네, 저희가 마침 세계선을 이어 놓았으니까. 그걸 통해서 넘어오려는 속셈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도 사과 드리고 싶습니다. 세이야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넘어 오고 말았습니다.”
오르지아는 죄를 지은 듯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자신들은 그저 돌아오려 한 것뿐이지만 차원 전쟁이라는 사건의 발단이 되어 버렸으니 죄책감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다행히 내 옆에는 지금 그와 관련된 전문가가 있었다.
“그럼 연결된 세계선을 끊으면 그만이겠네요.”
그 증거로 시종일관 덤덤한 태도였던 백설향 씨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그녀가 탁자에 몸을 살짝 기댄 탓인지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부드러운 덩어리 두 개가 탁자 위에 올려졌다.
그것에 한순간 홀린 듯 시선을 빼앗겼지만 나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데 남성으로서의 시선이 제멋대로 움직인 탓이다.
다행히 백설향 씨는 눈치채지 못하고 오르지아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하죠. 귀환자 협회는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함도 있으니까요.”
오르지아가 순순하게 의문을 던지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지금 당장 세르린티움이 차원 전쟁으로 쳐들어온다 한들.”
그리고 그녀의 얼굴 위로는 보는 내가 오금이 저릴 법한 스산한 미소가 그려졌다.
“딱히 큰 위험도 아니에요.”
오만이 아닌 확신.
그녀는 세르린티움의 전력이 조금도 자신들에게 상대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