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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겜친들이 귀환자인데 집착함 (16)화 (16/249)

Chapter 16 - 16화 축가

“그게 유아라는 건가요.”

“네, 그렇죠. 싫은 기억, 아픈 기억, 이런 걸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사람부터. 유아 양과 같이 그때의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덮어 버리는 암시의 종류도 있죠.”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꽃비를 내려다보았다.

 

귀환자에게 떼어 놓으려야 떼어놓을 수가 없는 과거.

그들의 과거는 언제나 그들을 붙잡고 희롱하며 목을 조른다.

 

귀환자들은 다들 마음의 병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병을 해소하기 위해 넘어온 지구에서조차 그들은 또다시 마음의 병을 썩힌다.

 

끊임없는 악순환은 언제나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내 시선이 창문 밖으로 향했다.

마치 신기루처럼 산 너머에서 흔들리고 있는 탑은 그런 귀환자들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유아 양의 활동 기록을 본 적 있으신가요.”

“……아뇨.”

 

내가 고개를 떨어트리자 백설향 씨는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그동안 블랙스타 유아가 해온 헌터 관련 활동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것도 한두 장이 아닌 스무 장 가까이 되는 말도 안 되는 분량이었다.

 

“유아 양은 귀환자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차원문 사태를 막는 분 중 한 명이에요.”

“이것만이 아니잖아요.”

“네, 그렇죠. 아이돌 일까지 하며 세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아이돌 일로 외국에 나가 차원문을 막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나는 종이를 꾸욱 쥐었다.

 

게임 속 꽃비는 언제나 해맑았다.

 

다 같이 돌던 레이드에 실패하면 가장 먼저 격려해서 분위기를 환기했고.

괜찮은 아이템을 얻었을 때는 함께 기뻐해 주고 자기 일인 마냥 좋아해 주었다.

 

우리 길드원 중에서 막내 중 한 명으로서 그녀는 언제나 긍정 에너지를 모두에게 보이는 아이였다.

 

실제로 그런 꽃비에게 여러 도움을 받은 적도 많았다.

세상이 참 좆같을 때 그녀에게 위로받은 적도 종종 있었으니까.

 

‘누가 누굴 위로 하는 거야.’

 

귀환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는데.

나를 위로하고 있던 꽃비를 떠올리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져 치가 떨렸다.

 

“아마 무리하게 일하는 부분은 자기 암시의 반동이었을 거에요. 스스로가 일하면서 위안으로 삼는 식으로 과거를 강제로 잊은 거죠. 사람은 피로하면 기억할 힘도 남지 않으니까.”

 

자기가 겪어온 끔찍한 과거를 일하면서 잊었다는 소리였다.

워커홀릭도 적당히지.

 

“……유아는 일어나면 또 자기 암시를 걸려고 할까요.”

“모르겠네요. 하지만 섣부른 위로 따위 도움 되지도 않는다는 건 아실 거예요.”

 

자기 암시는 위험하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에게 걸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을 알기에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시도해볼 가치는 있지 않겠어요?”

 

내가 침울함의 입술을 깨무는 순간 백설향 씨는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시도해 볼 가치가 있지 않냐고.

내가 의문스럽게 그녀를 보는 순간 백설향 씨는 자기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어차피 유아 양은 자기 암시를 걸어야만 하잖아요?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위로해보는 것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란 소리죠.”

“아.”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하지만 유아가 그 과정에서 괴로울 거라면.”

“자기 암시를 걸어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해결은 안 되어도 정신계 능력자의 힘을 빌리면 제정신을 유지 시키는 것이 꼭 어렵지만은 않죠.”

 

그 부분은 자신에게 맡기라는 양 백설향 씨는 든든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현실에서 가장 동떨어진 상태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법도 있고요.”

“……VR게임.”

“정답이에요.”

 

게임 속은 현실을 잊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현실 같이 느껴지는 VR이라면 더더욱.

 

“VR게임기는 제가 있으니 가져올게요. 정신 안정이야 제가 진행해주면 되고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뭘요. 같은 귀환자를 위한 건데요.”

 

그리 말하던 백설향 씨를 보고 나는 문뜩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백설향 씨도 VR게임 하시나요?”

“어머, 안 할 거 같나요?”

“조금 의외긴 해서요.”

 

뭔가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녀였으니까.

내 말을 듣고 백설향 씨는 입을 가린 채 작게 웃더니 살짝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게임 많이 하고 있답니다. 로드 오브 아카데미도 즐겨하고 있구요.”

 

로드 오브 아카데미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20대를 다 바쳤다고 봐도 무방한 게임 이름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엇보다 한 회사를 거리낌 없이 차릴 수 있는 재력과 세계 귀환자 협회에서도 높은 위치인 그녀가 로드 오브 아카데미를 한다고 하니.

 

당연히 흥미가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상황인 마당에 게임 이야기로 신나는 것도 우습다.

 

‘우선은 꽃비가 먼저지.’

 

이런 질문은 나중에 해도 되는 거다.

애초에 우리 회사 회장님이랑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조금 어이없긴 하지만 말이다.

 

덜커덩!

 

“야! 철혈여제 망할 년, 너 진짜 나한테 죽고 싶지!”

 

그러는 순간 세차게 열린 문과 함께 씩씩거리는 아유가 들어왔다.

 

“천마, 마침 잘 왔어요.”

 

그녀는 백설향 씨를 죽일 듯이 노려다 보다가 그녀가 반겨주는 것에 고양이 마냥 몸을 바짝 세우며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뭐야. 너 무슨 생각이야.”

 

그런 그녀를 보며 백설향 씨는 친절한 미소를 띨 뿐이었다.

 

“게임 좀 해줘야겠어요.”

“그게 뭔 개소리야.”

“맞아. 아유, 게임 좀 하자.”

“아니, 도미 오빠까지 무슨 소린데.”

 

아유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소리만이 그렇게 방 안을 울려 퍼졌다.

 

 

 

8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소녀는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빛의 머리카락과 샛노란 눈동자를 지닌 그녀는 판타지에서나 볼법한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손에 쥔 지팡이만이 그녀가 마법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줄 뿐.

 

소녀의 표정은 너무도 멍해 지금 상황이 무엇인지 구분이 안 되는 듯하였다.

 

‘내가 왜 이러고 있더라.’

 

그녀의 이름은 한유아.

아이돌 블랙스타 유아로 활동 중이며 게임 내 닉네임은 꽃비로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는 지금 게임 속 캐릭터인 꽃비에 들어와 있었다.

 

어째서인지 게임 속에 들어오는 과정까지의 기억이 흐릿했다.

그녀의 머리가 살짝 기울어졌다.

 

내가 방금까지 뭘 하고 있었더라.

 

그래, 분명히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헌터 일이 생겨서 급하게 나갔고.

나갔는데.

 

꽃비는 갑자기 몰려드는 피로감에 자신의 눈덩이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그녀의 피로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 지친 걸까.’

 

그녀는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다.

차원 이동에 휘말린 뒤 전쟁의 파란 속에서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었고, 여자의 몸으로서 그런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큰 고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인연으로 점차 그 세계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다.

용사 리온과 그녀의 여자친구 에르닌 비앙카.

 

「나는 에르닌 비앙카, 극악무도한 마족 자식들아 오늘 니들 다 죽었어! 물론 우리 용사님이 해줄 거야.」

「비앙카, 왜 네가 거들먹거리냐.」

 

첫 만남은 마족에게 쫓기던 중 자신을 우연히 구해준 계기였다.

 

비앙카는 드세고 화려하지만, 그 당당한 모습이 무척이나 멋졌고.

용사 리온은 상냥하고 착했지만, 비앙카 앞에서만큼은 장난꾸러기였다.

 

「유아, 노래 너무 좋다. 이게 다른 세계의 노래란 거지? 나도 가보고 싶어.」

「갈거면 나도 좀 데려가.」

「뭐야, 여자끼리 대화하는데 어딜 껴!」

 

언제나 사이좋게 투덕거리는 두사람이 떠올랐다.

 

「하하, 그러네. 좀 지친 모양이야. 비앙카에게는 비밀로 해줘.」

 

그리고 간혹 지친 모습으로 씁쓸히 웃던 리온이 떠올랐다.

 

「바보야. 쟤는. 힘들 때 힘들다고 해주면 되는데. 내 앞에서만 멋진 척해.」

 

그런 리온을 꿰뚫고 있던 비앙카가 걱정하면서도 투덜거리는 것이 떠올랐다.

 

그런 두사람이 유아는 좋았다.

비록 연인이라고 꽁냥 거리는 모습이 종종 화날 때도 있었지만 이방인인 자신을 두사람은 진심으로 친구로 여겨주었다.

 

두사람과는 점차 친해져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마족과의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하게 되었고, 결국 이 이상은 너무 위험해 리온 혼자 전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비앙카, 내가 돌아오면 결혼하자.」

 

그리고 그가 떠나기 직전 마지막 날 밤 반지를 건네며 했던 말은 비앙카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래, 그때 축가 불러 주기로 했었는데."

 

결국 해주지 못했었구나.

그리고 나는 이 기억을 줄곧 묻어 두고 있었고.

 

차라리 그때 두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둘은 지금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주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아이를 보여주고, 미소 지으며 그들이 낳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는.

그런 삶이…….

 

"하, 하하."

 

또다시 기억의 구렁텅이가 자신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날의 악몽이 또다시 떠올랐다.

노래 때문에 귀족이 고용한 암살자에게 납치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비앙카의 모습이.

 

「유아야! 도망쳐! 리온이, 리온이 와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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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가 가위로 찢기고 과다 출혈로 죽어가는 자신을 어떻게든 도망치게 만들고자 소리치던 비앙카의 목소리가 또 한 번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만."

 

그녀는 그 귀를 틀어막았다.

외면하고 싶지 않지만 외면하고 싶은 모순된 감정이 그녀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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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다시 그 참혹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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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카가 눈먼 화살에 눈과 뇌를 꿰뚫리고, 쓰러지던 그 모습.

그리고 그녀의 약지에 선명하게 빛나던 반지가.

 

자기 암시로 어떻게든 억눌러 놓았던 그 기억이 또다시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때 죽는 건 나였어야 했어.'

 

그러나 그녀는 살아남았다.

비록 목소리는 잃었을지라도 자신은 살아남은 것이다.

 

소중한 친구의 죽음과 더불어 전쟁에서 돌아온 용사 리온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은 너무 아팠다.

 

그러나 리온은 복수하지 않았다.

 

그는 용사였고, 인류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검은 사람이 아닌 마족에게만 향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유아는 물었다.

 

그럼 비앙카의 복수는 대체 누가 해주냐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날로 그녀는 망가졌다.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자신 때문에 잃었고.

평생을 꿈꿔왔던 꿈조차 목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리온도 그녀와 더이상 대화하지 못했다.

자신을 보면 비앙카의 죽음이 떠올랐을 테니까.

 

그녀는 미쳐 버렸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위해줄 사람은 이 세계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던 중 유아는 기연 하나를 얻었다.

자신을 딱하게 여긴 퇴역 군인이 마나로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려준 것이었다.

 

언령 술사로의 각성.

 

각성한 그 날에도 망가져 버린 그녀는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기 목을 자르던 가위와 인간의 탐욕으로 이루어진 끔찍한 얼굴.

그리고 그 탐욕 앞에 머리가 꿰뚫려 즉사해 버린 비앙카의 처절한 죽음.

 

그녀에게 해주지 못한 못다 한 약속을.

 

「너가 못하면 내가 할게.」

 

마왕을 죽이고자 떠나버린 리온에게 말하며 그녀의 발걸음은 용사와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용사가 마왕을 죽이던 그 날.

그녀는 인간의 왕과 인간의 나라를 불사 질렀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리온이 찾아왔다.

인류의 수호자인 용사의 검은 이제 마왕이 아닌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만하자. 유아, 그만 해야 해.」

 

자신을 바라보는 리온의 눈은 너무나 슬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미쳐 버린 그녀는 자신을 멈추는 방법을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그렇기에 용사와 그녀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간에 처절한 전투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결국 리온에게 닿았다.

그리고 리온의 목소리 또한 그녀에게 닿았다.

 

그때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세상에서 지워진 뒤였다.

 

후련했다.

후련했나?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 왜인지 리온은 안타까운 듯 그녀의 볼을 손으로 감쌌다.

 

‘내가 너를 깨울 수 있을까.’

 

마왕과의 전쟁을 끝마치고 그의 사후 저주로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리온이 무너진 성에 들어오며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비앙카의 복수를 하지 못했고.

너는 비앙카의 복수를 해주었구나.

 

리온이 왕좌의 홀로 앉아 있는 그녀를 봤을 때 생각 했던 것이다.

 

나는 세상을 지키고 싶었지만.

너와 비앙카는 지킬 수가 없었어.

 

리온이 감정조차 읽을 수 없게 망가져 버린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때 생각 했던 것이다.

 

내가 비앙카를 잊으려 했다면.

너는 비앙카를 평생 기억해주려 했구나.

 

리온이 그녀의 목에 목걸이 형태로 된 반지를 봤을 때 생각 했던 것이다.

 

용사였기에.

세상은 지켰어도 내 사람은 구하지 못한 것에.

그것이 한이었는데.

 

유아는 끝까지 지키려고 해주었다.

 

「유아……. 너도 비앙카도 지켜주, 지 미안, 해.」

 

리온은 끊어질 듯 목소리를 내뱉으며 웃어 보였다.

 

신이시여.

부디 그녀가 우리 때문에 죄책감 받고 살지 않게 해주세요.

당신이 나를 용사로 택했듯이.

너무도 가녀린 그녀를 지켜주세요.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돌아, 가.」

 

그녀가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세계로.

우리를 잊고 살아갈 수 있는 그 세계로.

 

리온은 유아의 목걸이를 손에 쥐고 마지막으로 힘을 주어 자기 손에 걸린 반지와 목걸이에 걸린 반지를 지웠다.

 

쨍그랑-

 

그것을 본 순간 유아는 머릿속 무언가가 산산조각이 나는 기분에 빠졌다.

 

망가져 버렸던 마음이 그제야 형태를 찾아왔다.

더 이상 쏟아지지 않았던 감정들이 그제야 그녀에게서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안, 돼. 안돼. 안돼! 안돼!」

 

그녀는 리온에게 언령을 퍼부었다.

되살아나라고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지만, 그는 살아나지 못했다.

 

눈물이 피눈물이 되었다.

 

그녀는 리온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두사람이 부탁했던 축가를 폐허가 된 그곳에서 홀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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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살아남은 수 많은 국가들이 그녀를 국가의 적인 대마녀라 칭하며 무너진 왕국을 향해 찾아왔다.

 

그들의 눈은 인류의 적을 향한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게 누구였는데.

너희들이 왜 그런 눈을 지을까.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자신이 말을 내뱉는 순간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녀는 부서질 듯 웃었다.

떨어져 내린 피눈물이 바닥을 적시고, 시체가 되어 버린 용사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유아, 돌아가자.」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언령 술사의 모든 힘을 다 담아 내뱉은 그 한마디는 그녀가 지구로 돌아오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도록 자기 암시를 걸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으니까.

 

「나는 유아가 노래 부를 때가 제일 좋더라. 옆에서 항상 듣고 싶어.」

「남자친구 질투 나게 왜 그러냐. 나도 노래 연습 좀 하든가 해야지.」

 

그저 좋은 기억만.

비앙카와 리온이 해주던 그 말들을 떠올리며.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용사가 인류를 지키기 위해 그의 검을 들었듯.

그녀는 자기의 목소리로 사람을 지키고자 차원종과 싸웠다.

 

그건 집착과 강박증이었다.

 

‘내가 하던 행동들은 전부 꾸며낸 거였을 뿐이었어.’

 

자신은 괜찮다고.

자신 때문에 죽어버린 비앙카와 리온이 조금이라도 자기 걱정을 덜 할 수 있도록.

 

그녀는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도 한계는 온다.

오늘과 같이.

 

‘그래서 게임인 걸까.’

 

유아는 멍하니 자신의 꽃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현실과는 다른 게임 속 모습은 그때 기억을 잊게 해주기에 도움이 되었다.

로드 오브 아카데미는 판타지 세계에 가깝긴 하나 그렇다고 자신이 지냈던 엘리시스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엘리시스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판타지 세계에서 자신은 문제 없이 평범하게 살아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돌 일과 헌터 일을 동반하며 지쳐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매달렸다.

나는 이제 괜찮아.

이런 비슷한 세계에서도 살아 갈 수 있어.

라고 두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니까.

그래서일까, 자기 암시가 풀려버린 자신은 마지막 도피처로 게임을 택한 모양이었다.

   

멍한 정신은 아직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암시가 풀린 영향으로 마치 약에 취한 듯 정신이 계속 몽롱했으니까.

 

터벅터벅-

 

그러는 순간 그녀는 발소리를 들었다.

유아가 모닥불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자 어두운 밤길 사이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이 두 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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