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4 - 64화 반반천마
평소와 달리 그녀는 귀환자 협회가 정식으로 일을 나섰을 때 입는 제복 차림이었다.
거기에 아유의 머리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상태는 아유, 신소라라고 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천홍련이라 봐야 하는 걸까.
변신 천마님 새로운 모드였다.
“도미 오빠, 나 보고 싶어서 이렇게 달려왔어?”
말하는 걸 보면 아유인듯 싶었지만 말이다.
“아유, 그 모습은.”
“아, 일로 왔거든. 웬일로 철혈 그 여자가 도미 오빠 있는 곳 가도 된다고 해서 얼른 뛰어왔지!”
아유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말해주었다.
그러는 사이 뒤편을 보자 아유와 같은 제복 차림에 색깔만 다른 은현 씨가 이쪽으로 꾸벅 인사하곤 건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아유가 일로 왔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나는 아유에게 귀 좀 대라고 손짓했다.
아유는 뭔데 뭔데 하면서 나에게 귀를 대었다.
“나 귀 약한뎅.”
“헛소리하지 말고, 일이라면 기라성?”
아유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잔당이 숨어들었다는 게 파악됐거든.”
은나무를 향한 내 근심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그것보다 도미 오빠는 이렇게 귀여운 내 얼굴을 오랜만에 보는데 할 말이 그것뿐이야?”
“유아가 블랙스타 신곡 콘서트 너랑 나 앞자리 준다더라.”
“꺄악! 너무 좋아!”
그리 외치던 아유는 핫하고 뒤늦게 반응하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거 말고, 잘 봐봐. 나 바뀐 거 없어?”
바뀐 거라면 붉은 머리카락 색밖에 눈에 안 들어온다만.
내가 뚫어지라 아유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내 시선을 받다가 이내 몸을 움츠러트리곤 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돼, 됐어! 못 찾을 거면 인제 그만 봐!”
“그래서 뭐가 바뀐 건데?”
“한눈에 보면 몰라? 머리 바뀌었잖아.”
정말로 머리였냐.
“왜 머리 색만 바뀐 건데? 본래 모습은.”
“전투 상시 대기 모드 느낌이랄까. 내 본래 모습은 억제를 안 해놓으면 주위에 피해를 끼치거든.”
썩 달갑지 않은 일이라며 아유는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꼬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아유도 고생이라는 양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내 행동이 싫지만은 않았는지 아유는 배시시 웃으며 내 손길을 즐겼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그래서 이제 바로 일 돌입?”
“아니, 수색은 어차피 은여우 몫이라서. 나는 도미 오빠나 따라다닐 건데.”
수색이라는 건 아직 기라성이 누군지 특정 짓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역시 은나무이려나.
“어때 좋지? 나 같이 귀여운 애가 오빠 따라다니면 막막 자랑하고 싶구 그렇지?”
내 머리가 복잡하건 말건, 옆에 있던 아유가 촐랑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외모가 외모이니 귀여운 건 부정은 못하겠다만.
나는 귀환자 제복 차림인 아유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 시선이 얼마나 몰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호와 조시아 두 사람으로 인해 아카데미에서 유명인이 될 뻔한 걸 겨우겨우 면했는데 말이다.
“따라다니는 건 괜찮지만 제복 차림은 너무 시선이 모이지 않을까.”
인적이 드문 곳이라 지금이야 이렇지, 많은 곳으로 간다면 보통 난리가 아닐 것이다.
“이건 아카데미 쪽에 보여 주기식이라 어차피 갈아입을 건데? 나도 그거 입어서 도미 오빠랑 커플룩 할까?”
“이게 커플룩이면 지금 이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랑 이어져 있는 거냐.”
아버지가 하던 게임에서 나오던 우리는 모두 칼라로 이어졌단 것도 아니고.
“어쨌든 옷만 갈아입으면 되는 거지?”
“귀환자 제복보다 덜 눈에 띄긴 하겠지.”
아카데미가 막바지인 만큼 수강생들끼리 얼굴을 서로 익히긴 했어도 300명 가까이 되는 수다.
같은 반 학생이라면 몰라도 다른 반 학생까지 모두 다 아는 이는 없는 것이다.
‘붉은 머리니 결국 눈에 띄긴 하겠지만.’
일로 온 아유이니 그거까지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갈아입고 올게!”
나를 오랜만에 봐서 신난 듯 아유가 쪼르르 달려가자 그 뒷모습을 보던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곧 수업 시작이다.
나도 슬슬 돌아가야 할듯싶었다.
‘오늘 수업이 아마.’
헌터 간에 종종 생기는 범죄 방어용 실습이었던가.
차원종을 상대하는 기술도 중요하긴 하나 헌터도 사람이다 보니 상황 따라 간혹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다.
특히 각성과 함께 살생의 두려움이 적어지는 헌터는 감정이 격해져 돌발 행동을 할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다.
헌터 간의 다툼은 자칫하다간 서로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스스로를 조절하고 지키는 법을 배우는 시간인 셈이다.
“백산, 헌터 중에 호전적인 성격이 많은 것도 묵시록의 탑 때문이야? 차원종을 상대로 겁먹는 일이 준다던가.”
“그래, 귀환자가 다른 세계로 가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바뀐 거라면 헌터는 각성 즉시 바뀐다.”
뭐랄까 그렇게 들으니 헌터는 인스턴트 취급인 느낌이 들었다.
3분 카레처럼 오러와 같은 감각을 느끼기만 한다면 바로 탄생해버리는 그런 존재들.
“그럼 묵시록의 탑은 대체 무슨 목적인 거야.”
“내가 첫날에 막힌 거 기억나냐?”
“설마 그게?”
“맞아. 묵시록의 탑의 존재 이유다. 저 썩을 탑이 말 못하게 막았지.”
이미 예상하였다는 양 백산은 혀를 차 보였다.
이렇게 들으니 궁금하다.
백산의 입을 막아 버릴 정도로 묵시록의 탑이 존재 이유를 숨긴 것이 무엇일까 하고.
한 가지 확실한 건 백산의 표정을 본다면 그게 썩 달가운 이유는 아닐 것이란 거였다.
“내가 그걸 알 날이 올까.”
내 질문을 듣고 백산은 침묵했다.
백산이 눈에는 어딘가 착잡한 기분이 담겨 있었다.
“나는 네가 그걸 굳이 알기를 바라지 않는다.”
“왜?”
“내가 회귀한 건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분명 있었지만, 네 녀석이 죽지 않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러면서 백산은 앞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바뀐 게 너무 많아 널 그냥 두면 큰일 나겠거니 해서 이것저것 가르치고 있지만, 나는 강하찬 널 전선에 세울 생각이 없었단 거다.”
그 말을 들으니 나에게 가르침을 주면서도 백산이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종종 사색에 잠기던 건 그런 생각을 하던 거였나.
“네놈 성격 봐라. 아무 능력 없는 몸으로도 누구 한 놈 살리겠다고 불구덩이에 뛰어들 게 분명한데 능력까지 쥐면 어디까지 오지랖 부릴지 감당이 안 된다.”
“남을 무슨 살신성인 취급하는데 나 그 정도는 아니야.”
“너 지금 2달도 안 된 시간 동안 몇 번 죽을 뻔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침묵을 택했다.
백산은 그러거나 말거나 혀를 차며 ‘앞으로가 걱정이다.’라고 중얼거렸다.
그사이 나는 오후 수업이 있는 강당에 도착했다.
“하찬.”
먼저 와있었던 은나무가 손을 흔들자 나는 그쪽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지인은 잘 만나고 왔어?”
“어, 아마 이쪽으로 올 거야.”
나는 대답하면서도 은나무와 아유가 만나도 될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은나무가 기라성일지 아닐지는 몰라도 모습을 숨긴 귀환자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시간 됐네요. 교관님들 인원 체크 좀 해주세요.”
그러는 사이 교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수강생 인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인원 체크가 끝나고 교관 한 명이 수강생이 앉은 자리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은 앞서 설명해 드렸듯이 범죄 방어용 실습을 해보겠습니다. 저번에 예시로 보여 준 상황이나 행동 방식이 있는 만큼, 오늘은 보다 개인에 맞춰 실전성을 살리겠습니다.”
헌터들은 모두 다 능력이 제각기 다르다.
그런 만큼 범죄가 일어나기 전 상대를 최대한 다치게 하지 않고 제압하는 법을 터득할 모양이었다.
‘반대로 범죄자가 역이용할 수도 있지 않나 싶긴 하다만.’
불특정 소수 때문에 자기 몸을 지킬 교육을 안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수강생분들은 두 명씩 짝을 좀 지어 주세요.”
여기서도 짝꿍인가.
“은나무, 나랑…….”
“은나무 수강생, 잠깐 면담 좀 하죠.”
그러던 순간 교관 한 명이 갑자기 은나무를 불렀다.
그녀는 내 쪽을 보았고 나는 얼른 가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하찬.”
은나무가 떠나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이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는 아카데미를 조용하게 다니기로 한만큼 은나무 말고는 어울릴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남는 시간에는 조시아와 서호의 관계 개선을 위해 투자하거나 백산의 훈련을 하고 다니느라 인간관계를 쌓을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짝짓기 시작한 다른 수강생들과 달리 나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갑자기 학창 시절이 떠오르는데.”
초등학교 시절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전학 간 뒤 잠시 짝이 없어졌던 날이 떠올랐다.
물론 그 하루 사이에 누나가 귀환해버리며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지만.
씁쓸하구먼.
“강하찬 수강생, 짝이 없나요?”
어느샌가 다른 사람들은 다 짝이 정해진 듯 혼자 남은 나에게 교관이 물어왔다.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한 뒤 한 명을 데려와 줬다.
보아하니 나처럼 짝이 없던 녀석이 한 명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찾아온 사람을 보고 나도 그도 동시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F급 폐급 새끼.”
나를 보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는 다름 아닌 이수호였기 때문이다.
“왜 너가 와? 네 무리 어쩌고.”
“가위바위보에서 졌다.”
하긴 그의 무리는 남자 두 명에 자기 여자친구였지.
아무리 그래도 여자친구랑 대련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고.
남자 쪽 두 명이 짝을 이루자 혼자 덩그러니 남아 버린 것이다.
보아하니 그도 자기 무리 말고는 친구가 전혀 없었겠지.
“그러게 인간관계 좀 잘 쌓지. 그랬냐?”
“뭐, 이 새끼가 너가 나한테 할 소리냐? 맨날 같이 다니는 그 은뭐시기 밖에 없는 놈이!”
나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아카데미에 와서 쌓은 인간관계는 누가 있는가.
현역 S급 헌터인 이무기 조시아가 있다.
과연 아카데미에서 나만큼 인간관계를 훌륭하게 쌓은 이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