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6 - 66화 수컷의 자존심
“아유, 나 복수 좀 하게 하나만 부탁해도 되냐.”
“웅? 뭔데.”
“한 번만 허리 좀 안아줘.”
“으잉?”
내가 진지하게 부탁하자 아유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곧 귀 끝을 붉히기 시작했다.
친하게 지내는 여동생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눈 딱 한 번만 감고 도와줬으면 좋겠다.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흐흥,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왜 갑자기 신나 보이지.
“안는다? 진짜루?”
“어, 부탁할게.”
그녀는 히히 하면서 웃음소리를 내더니 양팔을 쫙 뻗으며 내 허리를 콱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내 가슴팍에 얼굴까지 묻고는 그대로 나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아유에게서 느껴지는 여자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과 달콤한 향이 한순간 머리를 어지럽혔다.
막상 시키고 나니까 좀 많이 부끄럽다.
하지만 내가 남자의 자존심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고개를 들자 이제는 얼굴이 박살난 이수호가 보였다.
옆에서 걱정해 주는 여자친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곤 이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천천히 떨어트렸다.
이겼다.
“등신, 유치하게 뭐하냐.”
백산이 옆에서 핀잔을 줬지만 승리했으니 됐다.
그러는 순간 나는 가슴팍에서 자기 얼굴을 비비는 아유를 느끼곤 멈칫한 채 고개를 내렸다.
“아유, 이제 끝났으니까 떨어져도 되는데.”
“싫어. 딴말 안 한다며.”
“아니, 이게 왜 딴말이야.”
“딴말이야. 나 오늘 쭉 이러고 있을 거야.”
그만 해. 점점 시선이 이쪽으로 몰리고 있단 말이야.
한순간 이수호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내 행동에 나는 후회하며 아유에게 말했다.
“아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유님 제가 평생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겨, 결혼해, 해주세요! 하면 봐줄게.”
그런 거라면야.
“소라야 결혼하자.”
“으히익!”
아유는 그대로 홍당무가 돼서 주저앉아 버렸다.
얘는 왜 맨날 자기가 저런 도발을 하고 당하나 몰라.
나는 무너진 아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준 뒤 벽으로 다가가 앉았다.
아직 나에게 덤비려면 이르다.
“너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거냐?”
백산이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먼저 도발했잖아.
그렇게 내가 아유를 다운 시키고 난 뒤 그녀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으려니 다른 이들의 대련 수업도 모두 끝마쳤다.
남은 수업은 각 교관이 피드백해주는 시간이었는데 내 담당 교관은 다름 아닌 조시아였다.
“요, 강하찬 수강생, 내가 교관이야. 반갑지?”
“누구야?”
특유의 실눈 눈웃음을 지은 그녀가 다가오자 아유가 내게 슥 붙어 물었다.
왠지 눈이 앙칼진데.
수강생 중 아유를 처음 보는 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두 사람에게 서로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서호 여자친구 희망자.”
“아항.”
“아니, 강하찬 수강생 동네방네 다 소문낼 생각이냐?”
조시아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자 아유는 바로 믿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조시아는 슬쩍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 강하찬 수강생, 이쪽 분은 이거냐?”
그녀는 새끼손가락을 슥 들어 보였다.
이게 뭔데.
“대담하네. 하시호랑 그렇고 그런 사이면서 저런 여자애까지. 내가 사람을 너무 얕보고 있었나?”
“머릿속에 뇌내망상이 또 잘못 굴러가고 있지 않은가 싶긴 합니다만.”
“그런 것 치곤 아까 끌어안고 있던데? 걱정하지 마. 난 다 이해해 주는 사람이야. 나중에 칼 맞아도 모르는 일이긴 해도 그때까지는 함구해준다고.”
뭘 이해해준다는 건지.
자기가 한 오해 때문에 앞날부터 걱정해야 할 노릇이건만 말이다.
“둘이 뭘 그리 쑥덕거려?”
아유가 내 팔을 살짝 끌어 조시아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며 묻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흠흠, 그래서 피드백 겸 대련 좀 봐줄까 하는데.”
그러자 조시아는 화제를 돌리며 나에게 말했다.
나야 S급 헌터가 직접 봐준다는데 사양할 이유도 없었기에 부탁하였다.
“간단한 대련을 할 테니 쓸 수 있는 거 다 써서 덤벼봐.”
조시아가 도발적인 미소와 함께 말하자 나는 순간 케라페를 꺼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미친 짓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순순히 내 육체와 0.1%의 오러만 이용해 승부를 겨루기로 했다.
“자, 와.”
내가 자세를 잡은 반면 조시아가 조금도 자세를 잡고 있지 않아서인지 내 눈에 그녀의 허점이 보였다.
분명 대놓고 유도한 게 뻔했지만, 어차피 그녀와 나의 차이를 생각하면 내게 선택권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바닥을 박참과 동시에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노리는 건 주먹을 날리는 척하며 옷깃을 잡아 엎어 치는 것.
간단한 페이크를 섞은 내 동작이 이어진 순간 조시아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짧은 순간 내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졌다.
조시아가 내가 뻗은 팔을 역으로 휘어잡아 그대로 던져 버린 것이었다.
“으악.”
짧은 비명과 함께 내 몸이 땅과 마주하자 나는 등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강하찬 수강생, 격투기 쪽을 배운 적 있냐?”
“어, 네, 그렇죠.”
“그리고 배운 게 최근이지?”
“그것도 맞고요.”
“어쩐지 동작은 정확한데 응용이 약해. 실전에서 보기에는 허점이 다 보인다. 이러면 난 능력 하나 안 쓰고도 제압할 수 있어.”
전문가 눈에는 그런 건가.
나는 등을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백산에게 제대로 전투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나 할 수 있게 된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웠던 만큼 조시아의 조언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든 공격은 일종의 흐름이야. 강하찬 수강생에게는 그 흐름의 연결성이 부족해. 따로따로 동작을 배운 느낌이지.”
그러면서 조시아는 조금 전 자신이 나를 날려 보낸 동작을 허공에 시전 해보였다.
“나는 방금 한 동작을 어떤 자세로도 할 수 있어. 이 정도는 되야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셈이지.”
“흐응.”
그러던 순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아유가 콧소리를 내었다.
조시아와 내 시선이 아유에게 닿자 그녀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흐름의 연결성이라. 말은 좋은데 말이야.”
그러자 아유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시아 앞으로 걸어 나왔다.
“본인도 그 연결성이 부족해서 허점이 드러나다 보니 조언하기에는 문제가 몇 가지 있어 보이네.”
“……허점이 보인다고?”
자존심을 건드린 듯 조시아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기분이다. 조금 가르쳐 줄게. 귀한 거니까 잘 배워둬.”
그러거나 말거나 아유는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유가 수강생 옷차림이라서인지 조시아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담겼다.
그녀가 보기에 일개 수강생이 교관을 가르치겠다는 소리와도 같았으니까.
이런 걸 어울려줘야 하나라는 기분을 느낀 그녀가 나를 돌아보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 번 해보세요. 아마 후회는 안 할 거예요.”
“후회고 자시고 귀한 기회래도.”
아유가 툴툴거리고 있자 조시아는 나를 보고 마지못해 아유를 돌아보았다.
“……공격은 내가 하면 되는 거냐?”
“그렇게 해.”
아유가 너그럽게 선공을 양보하자 조시아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내게 처음 허점을 보여줬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세가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릿저릿-
피부를 타고 오르는 묘한 감각은 마치 맹수와 마주친 듯한 기분을 주었다.
그 기세 속에서 조시아는 조그맣게 숨을 들이쉼과 함께 발을 앞으로 내뻗었다.
나는 그 순간 그녀의 인영이 마치 축소되었다가 쭈욱 늘어난 듯한 감각을 받았다.
그녀의 도약이 어찌나 빠른지 내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녀의 양 손아귀는 순식간에 아유의 얇은 몸에 덮쳐들었다.
“잘 봐. 흐름이란 건 이런 거야.”
그러는 순간 아유의 발이 기묘한 걸음을 시작했다.
마치 수면 위를 밟고 지나가듯 사뿐하게 뻗은 다리가 원을 그리며 조시아를 스쳐 지나갔다.
분명 속도는 조시아가 훨씬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아유는 그녀를 손쉽게 피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조시아가 경악하며 즉시 반대편을 박차고 총알 같이 튀어 올랐다.
이렇게 된 거 아유를 진심으로 붙잡을 속셈인 듯 그녀는 마치 뱀과 같이 아유의 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또 한 번 아유의 발걸음이 이어진 순간 조시아는 허공을 양팔로 휘어 감아야 했다.
이번에는 거기서 끊이지 않았다.
아유의 사뿐한 발걸음을 따라 조시아는 마치 춤을 추듯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휘적거렸고, 잠시 후 아유가 그 발을 툭 뗐을 때 조시아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능력을 쓰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이무기라 불리며 S급 헌터인 조시아가 아유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한 것이다.
조시아의 눈이 멍한 듯 아유에게 향하자 힘을 좀 써서인지 천홍련의 기세가 흘러나온 아유가 오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대, 대체 이분은…….”
순식간에 존칭으로 바뀌어 버린 조시아가 묻자 아유는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곤 가슴을 앞세우며 턱을 세웠다.
“천하제일인, 천마 천홍련. 내 가르침의 가치를 조금은 알겠느냐?”
말투가 변하기 시작한 아유는 이내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러곤 아유는 나를 돌아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백산을 향해 슬쩍 물었다.
“백산, S급 귀환자와 S급 헌터의 차이는 어느 정도야?”
“꼬맹이 같은 녀석이라면 성장할 시 S급 귀환자와도 동급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녀석이야 등급을 SSS급 같은 걸 만들어 줘야 할 녀석이고, 보통 평범한 S급 헌터는 A급 귀환자와 비슷하거나 조금 못한 수준이다.”
평범한 S급 헌터는 대체 뭘까.
내 상식이 가면 갈수록 이상해지는 느낌이다.
‘분명 귀환자 등급이 아마.’
귀환자 등급의 지표는 예전에 공부해서 알고 있다.
귀환자에게 A급이라는 급이 붙는 여부는 스스로 차원문을 열고 돌아올 수 있는가 없는 가다.
귀환자 중에는 다양한 이들이 있고, 그중에서 B급 이하는 스스로 차원문을 연 이들이 아닌 그 차원에 존재하는 모종의 방법으로 차원문을 통해 돌아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급 귀환자부터는 그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며 S급 귀환자의 경우에는 마음먹고 숨으면 귀환자 협회도 귀환 여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누나겠지.’
누나의 정보는 빈약하기 그지없으나 귀환자 협회가 우리 누나를 쫓지 못하는 시점에서 S급은 확정이었다.
애초에 기라성과의 싸움에서 끼어든 누나가 아유나 백설향 씨를 상대로 빠져나갈 수 있던 시점에서 말 다한 거겠지만.
어쨌든 아유는 그런 귀환자 중에서 S급.
당연히 조시아가 상대가 안될 만했다.
“강하찬, 천마 녀석을 일반 S급 귀환자랑 동급 선상에 둘 생각은 마라.”
그런 순간 백산이 갑자기 경고를 해왔다.
“천하제일인, 저 말은 적어도 내가 회귀 직전까지 귀환자가 넘쳐 나는 지구에서조차 단 한 번도 안 깨진 호칭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흠칫하며 해맑게 웃는 아유를 돌아보았다.
“이 지구에서 현재 시점상 저 녀석을 상대로 1대 1로 맞섰을 때 승리 할 수 있는 녀석은 아무도 없어.”
아유는 내 생각 이상으로 거물이었던 건가.
왜인지 앞으로 아유에게 장난치는 건 자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백산이 너보다도 강한 거야?”
“썅, 나를 뭐로 보고. 마지막에 꺾긴 했다. 개같이 상황이 좀 이리저리 섞인 덕분이긴 했지만.”
백산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아유를 보고 있자 나는 아유의 실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B급 귀환자인 예카테리나를 파블로프의 뇨룡으로 만들어 버린 백산이 아유에게서 승리를 장담 못할 정도라 하니까 말이다.
그러는 사이 아유가 쫄래쫄래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유.”
“왜, 왜? 나 멋져서 반했어?”
“화나도 나 때리면 안 된다.”
“모야. 내가 언제 때렸는데!”
“항상.”
그리고 나는 한 대 얻어맞아야 했다.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