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2 - 122화 천마 천홍련
내가 예상했던 게 맞아떨어지자 내 표정도 썩 좋지 못했다.
차원 침입자는 주로 귀환자가 모종의 수로 지구로 돌아왔다가.
저쪽과 이어진 차원문을 미처 닫지 못한 틈을 타 넘어온 이들을 가리킨다.
당연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좋은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로 인해 생긴 사건 사고들은 귀환자의 인식을 안 좋게 만드는데 무척이나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아유 쪽 차원문은 이미 닫힌 거 아니었어?”
아유는 무려 S급 귀환자다.
천마라 불리는 아유는 차원 교집합이 일어났을 때 자기 스스로 차원 침입자는 물론 차원 침식까지 모두 정리한 뒤 직접 문을 닫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차원에서 갑자기 차원 침입자가 발생하다니.
그래서는 말이 안 되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지금 이 문제 때문에 골치 아파하고 있는 거다.”
“자세히 설명 좀 해줘.”
“저번에 있었던 대규모 급속 차원문, 기억하지.”
“잊을 수가 없잖아.”
기라성이 일으켰던 그 사태에 관해 백산이 언급하자 나는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백산은 자기 앞 머리카락을 손으로 움켜쥐어 쓸어 올렸다.
“그거 영향으로 귀환자 녀석들이 닫아 놓은 차원문들이 비틀려 열린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내 몸이 굳었다.
지금 백산의 발언은 무척이나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앞으로 그 비틀린 차원문을 비집고 기어 올 차원 침입자들이 꽤 될 거란 거다.”
백산도 골치 아프다는 듯 이를 빠득 갈았다.
기라성이 저지른 짓거리가 지금 지구 전체에 위기를 초래했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 때와는 다르게 서울 한정이라는 거겠지만.”
기라성은 중구에서 대규모 급속 차원문을 열었던 만큼 차원이 비틀린 건 서울뿐인 듯하였다.
“나 때라고? 차원 침입자는 기라성이 차원 침공에 성공하면서 좌표가 알려진 탓에 온 것뿐만 아니라, 이번처럼 귀환자들의 차원문이 비틀린 일도 있었다는 거야?”
내가 당황하여 질문하자 백산은 갑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세계에서 차원 침입자 사건으로 문제가 되었던 건 두 번 있었다.”
백산은 그렇게 내게 설명해주었다.
하나는 기라성의 차원 침공으로 지구의 좌표가 알려져 차원 침입자들이 지구를 노리고 몰려들었다는 것.
그리고 둘은 다름 아닌 시호의 폭주 때문이었다.
“……시호 때문에?”
“그래, 그래도 기라성이 그 꼬맹이 보다는 수준이 낮아서 서울 한정으로 그친 거 같긴 한데. 상황만 놓고 보면 같다. 꼬맹이가 귀환자와 연결되어 있던 모든 차원 문들을 죄다 뚫어 버렸었으니까.”
내 간담이 서늘해졌다.
시호의 폭주로 인해 정말로 세계가 멸망할 뻔했다는 걸 자각 했기 때문이었다.
“강하찬, 지금 사태가 예전만큼 세계 전체가 흔들릴 수준으로 최악은 아니어도 서울 한정으로는 꽤 위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듣기만 해도 그건 알 거 같아.”
“아니, 듣는 걸로는 설명 안 된다. 차원 침입자는 귀환자 녀석과 관련된 녀석들이 더 넘어오기 쉽다. 그렇다는 건 귀환자 녀석들이 귀환했어야만 하는 이유를 제공한 놈들이 넘어 올거라는 소리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귀환자들이 귀환했어야만 하는 이유.
그걸 떠올리자마자 아유와 그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병실 위로 뛰어온 내가 문을 박차 열었다.
거기에는 아유가 서 있었다.
아니, 거기에는 천홍련이 서 있었다.
붉게 물든 머리카락과 천마의 복장.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붉은색의 동백꽃이 피어올라 있었다.
“아유!”
내가 그녀를 부르는 동안에도 천홍련은 가만히 침대 위에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이 스르륵 떠올랐다.
그는 얼마간 천홍련을 응시하더니 이내 작게 웃었다.
“동생을 보고 어찌 그리 눈을 못되게 뜨십니까. 누님.”
“……도화.”
그의 손에서 피어오른 매화 꽃잎이 천천히 흩날렸다.
그러한 매화는 천홍련의 동백꽃 잎과 천천히 섞여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도화의 매화는 천홍련의 동백꽃 앞에 묻혀 사라져 갔다.
도화는 그것을 아쉬운 듯 보곤 곧 옅게 웃었다.
“참, 화산의 매화를 마기와 섞어 동백을 피워낸 것은 누님이 처음일 겁니다. 저도 머리색조차 매화가 물들 만큼 단련했건만 누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군요.”
“나는 화산파가 아니다.”
“핏줄은 그러하지 않습니까. 비록 아버지는 다를지라도 같은 화산의 어머니 품에서 태어난 게 저희이니.”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가 천홍련의 이부동생임을 알았다.
“……누님 아직도 어머니를 원망하고 계십니까?”
천홍련은 한차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머니는 누님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었어도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죄책감 따위 원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엇이 아니란 겁니까.”
이어진 말에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 일이 있으시고, 구태여 저를 보시자마자 이계의 땅으로 도망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만, 이거.
‘아유의 이부동생은 아유가 귀환자인 걸 모르는 건가?’
이계의 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알겠다.’
차원 이동 당시 아유, 신소라의 육체는 차원의 폭풍에 찢기고 오직 신소라라는 영혼만이 천홍련의 몸에 빙의 되었었다.
거기다 그녀가 빙의된 시점이 어린아이였던 만큼 저쪽 세계 사람들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 눈에 애들은 원래 시시각각 바뀌는 법이니까.
그러니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난 천홍련은 저쪽 차원 사람이 보기에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쪽에서 자라난 인물이었다.
‘아유는 도화가 대하기 어려운 거구나.’
비록 육체는 천홍련일지언정 정신은 신소라였던 그녀다.
아버지 태상교주와 도화의 어머니이자 천홍련의 어머니인 화산파 여인은 그녀에게 있어 딱히 부모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을 거다.
아유에게 듣기로 그녀가 천홍련에게 빙의된 건 중학생 때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핏줄로 보기에는 도화는 그녀의 동생이 맞았다.
그러니 그녀 입장으로서는 도화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망설여 질만 했다.
“아유.”
내가 그녀를 다시금 부르자 천홍련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내 질문을 듣고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는 누구십니까?”
그러자 도화가 내 쪽을 보며 의문을 보여왔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 내 소개를 전혀 안 했다.
“아, 저는 강하찬이라고 합니다. 아유, 그러니까 천홍련이랑은 관계가…….”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설명하려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서 천홍련 쪽을 슬쩍 보자 그녀는 어느샌가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도화에게 자신을 뭐로 설명할 건지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입을 벙긋거렸다.
그냥 친구라고 하는 순간 그녀가 실망할 게 분명하다.
아까 전에 그렇고 그런 일까지 있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관계가 당장 더 나아갔냐고 물으면 그것도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아유는 나를 좋아하고, 나도 분명 아유에게 마음이 있지만.
이건, 우리 둘이서 이야기할 문제였다.
“동생, 저한테 가장 소중한 동생입니다.”
당장 내가 결국 쥐어 짜낼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남과의 대화를 통해 내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건 먼저 아유와 둘만 있을 때 이야기해야 하는 거였다.
“흐응, 가장 소중한 동생.”
그녀는 일단은 넘어 가주겠다는 듯 더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런 우리 두 사람을 본 도화는 이내 무언가 눈치챈 듯 눈을 크게 떴다.
“누님한테도 봄이 오시는 거였습니까?”
“도화, 더 멋대로 지껄이고 싶으면 해보거라.”
“죄송합니다.”
동백꽃 꽃잎이 날리기 시작하자 도화는 급히 사죄했다.
“그, 일단은 도화 씨, 제가 홍련과 조금 이야기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예, 저야 누님을 만나러 온 거니 딱히 어디로 갈 생각도 없습니다.”
그가 협조적으로 나오자 나는 안도하곤 천홍련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나보다 먼저 병실 밖으로 나갔고, 나는 그녀를 따라 이동했다.
우리는 곧바로 앉아 쉴 수 있을 곳을 찾았다.
마침 사람도 없었기에 나는 그녀의 옆에 따라 앉았다.
의자에 앉자 그녀는 이내 천홍련의 모습에서 아유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도화가 신경 쓰여 일부러 천홍련의 모습이 되어준 거겠지.
“후우, 미안, 도미 오빠. 괜히 휘말리게 했네.”
“휘말리긴 무슨. 네 동생이 찾아온 거잖아.”
“동생, 응, 동생은 맞지. 저쪽 차원의 동생.”
그리 말한 그녀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는 기색이었다.
“아유, 도화와의 네 관계 내가 조금 추측 해봤는데…….”
나는 내가 추측한 것을 아유에게 그대로 물었다.
그런 내 이야기를 듣고 아유는 곧 내 말이 전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아. 도화는 내가 귀환자인 걸 몰라.”
“역시.”
“그녀, 그러니까 천홍련의 어머니는 화산파에서 검후라 불리던 여인이었어. 아버지였던 태상교주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그대로 납치하여 강제로 부인으로 삼았었지. 그렇게 아이를 배개 만들어 태어난 게 천홍련이야.”
그녀는 딱히 좋은 기억도 아니라는 양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생각해도 태상교주는 미쳤던 거 같아. 마교를 망친 건 그 망나니 같은 인간이었어.”
그녀는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듯 나한테 투덜거렸다.
“어쨌든 저쪽 어머니는 천홍련을 낳고 감시가 약해진 틈을 타 도주했어.”
아이를 두고 도주한 어머니.
왜 도화가 천홍련이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태상교주는 딱히 자식을 생각하는 인물이 아니었고, 기득권 싸움은 전부 그녀의 부인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었어. 내가 천홍련에게 빙의 되었을 때는 유모 한 명 덜렁 있는 세력 제로의 최약체였지.”
갑자기 빙의 당한 상황.
천마의 자식인데 자신을 지켜줄 어머니도 없는 어린아이의 몸.
나는 아유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천마까지 올라 간거야?”
“일단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세력은 하나 없어도 부인들 눈에는 내가 거슬렸거든. 암살 시도가 자꾸 들어오니 어떻게든 강해질 필요가 있었어. 아마, 내가 빙의하기 전 진짜 천홍련은 독살로 죽었지 않았을까 싶어. 나도 빙의되고 한 달 정도 끙끙 앓았거든.”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 손을 쥐었다 폈다.
“그래서 많이 죽였어. 천마의 직계 자손들은 사실상 내가 다 죽였다고 봐도 될 정도로. 내가 아니었으면 그 녀석들이 날 죽였을 테니까 딱히 죄책감은 없지만 말이야.”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주먹 쥔 손을 감쌌다.
아유의 말을 그냥 들어 줄 수가 없어 무심코 내뻗어진 손이었다.
나는 아유에게서 늘 단편적인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그녀는 딱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나도 캐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화가 나타났기 때문인지 아유는 그동안 자신에게 쌓여 있던 삶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내게 해주고 있었다.
타의든 자의든 나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손을 감싼 내 손을 보고 아유는 옅게 웃더니 손을 돌려 그대로 깍지를 꼈다.
나도 그녀의 손을 더 강하게 쥐어 주었다.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면 뭐든 해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쨌든 그리 살았어. 천마를 계승 받고, 처음 설립과 달리 썩어가던 마교도 청소했지. 그러고 나니까 무림맹이 만들어지며 마교를 노리더라고.”
“무림맹은 분명 무림판 UN 같은 거지?”
“푸흣, 재밌는 비유네. 맞아. 정파의 연합이야. 그 녀석들 그때 당시에 한창 내전 중이었거든. 무림세가와 구파일방은 자기들끼리 다투다 우리가 신강의 천산 산맥 일대를 평정하고, 내 이름이 전국으로 퍼지니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동맹을 맺으면서 생긴 게 무림맹이였거든.”
그러면서 아유는 무림맹을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딱히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태상교주 이후로는 녀석들 세력을 침범하지는 않았었는데. 이것들이 자기들 내전을 끝내고자 우리를 공격하는 걸로 방향을 바꾼 거야. 일부러 공통의 적을 만든 거지.”
“적어도 마교랑 적대하는 동안에는 무림맹 세력끼리 뭉칠 테니 그런 거네.”
“응, 무림맹이 먼저 쳤으니 우리도 가만 있을 수는 없었어. 그래서 마교와 무림맹 사이에서 본격적인 전쟁이 터졌는데 내가 좀 대단해? 다 쓸어 버렸어. 덕분에 그 과정에서 무림과 마교의 피가 세계를 덮으며 천하가 죽어버렸지만 말이야.”
아유는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는 양 손쉽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강인해도 전쟁이라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의 육체는 완벽할지 몰라도 정신은 한계점이 있었을 테니까.
“그러다가 무림맹도 자기들이 멸망할 판이 되니까 사신으로 보냈던 게 저 녀석.”
“도화구나.”
“응, 어떻게 찾아낸 건지 산속에 숨어 자신의 어머니랑 수련하던 놈을 내게 사신으로 보낸 거야. 그러고 보니 그때는 검은색 머리였었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머릿속에 스친 것이 있었다.
“……설마 무림맹이 도화를 보내면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네가 알게 될 테니. 무림맹이 데리고 있을 어머니 때문에라도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게 하려던 거야?”
“우리 도미 오빠, 똑똑하네?”
“개자식들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