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3 - 123화 첫 키스
“맞아. 개자식들이었어.”
무림맹은 그녀의 부모를 인질로 잡았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러면서 아유는 달갑지 않다는 듯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듯 그녀의 눈이 서서히 바닥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미 오빠는 알잖아. 나는 천홍련에 빙의된 신소라인걸. 비록 천마 교육으로 인해 말투나 행동거지도 못 고칠 지경이 되기는 했지만. 그 교육에 어머니는 없었어.”
신소라에게 도화의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다.
몸을 낳아줬다고 해도 그녀의 정신은 신소라였으니까.
“그래서 무림맹이 하는 짓을 오히려 비웃고, 죄다 짓밟았어. 그러자 검후를 데려와서 내게 인질로 들이밀었지.”
“그럼.”
“죽였어. 깔끔하게. 검후를 인질로 잡았던 녀석이랑 같이.”
나와 맞잡은 아유의 손에는 떨림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눈은 냉소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일을 하나하나 후회하기에는 지나온 삶이 너무 거칠었는 듯.
그녀의 두 눈동자에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분노도 슬픔도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결국 남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태상교주로 이어진 핏줄을 내 손으로 직접 죽인 수만 10명이 넘었는데. 인제 와서 어머니? 감정조차 들지 않았어.”
이미 수없는 살행은 그녀에게 죽음을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말하더라. 도화랑은 잘 지내고 있냐고.”
그리고 처음으로 아유의 손에서 작은 떨림이 이어졌다.
“내 진짜 부모님은 지구에 있으니까 딱히 부모님이라고 생각 해본 적도 없는데. 그 말만큼은 묘하게 잊히지 않았어.”
그녀는 검후를 죽인 후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마교에 사신으로 와있던 도화와 마주했을 것이다.
“돌아와 도화를 보니까. 차마 말 못하겠더라. 그 녀석 눈에는 이부 누나가 어머니를 죽이고 돌아온 거니까.”
나는 우리 누나를 떠올렸다.
도화가 아유를 보는 눈이 내가 누나를 보던 눈과 같았을까.
비록 상황은 다르더라도 아유에게 있어 그것이 달갑지 않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로 그냥 다 지치기 시작했었어. 아니, 원래 지쳐 있었는데. 그제야 깨달았다는 게 맞겠지.”
“그래서 귀환한 거구나.”
“응, 다 무의미해져서. 돌아갈 수 있는 내가 뭐 하러 무림에 집착할 필요가 있나 싶었으니까.”
평생을 일궈낸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 순간.
그녀는 지독한 향수를 느꼈을 것이다.
천홍련의 삶이 그저 가짜로 느껴졌을 테니까.
그리고 도화는 천홍련이 떠난 뒤 한참 후 스스로 성장해 그런 그녀를 따라왔다.
“그때까지는 몰랐지. 내가 얼마나 도화에게 지독한 짓을 했는지 말이야.”
그녀의 입에는 스스로를 비웃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지구에 돌아와서 나는 우리 부모님을 찾았어. 멍청하게도 몸에 마기를 둘둘 두른 채로. 무협 세계 사람도 아니고, 내기도 전혀 없는 일반인이 내 마기를 견뎌 낼 리가 없는데. 무협 차원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얼싸안고 울었지.”
아유는 차원 이동에 휘말려 날아간 무협 차원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기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 때문에 얼마 안 가 우리 부모님은 내 마기에 잠식되어 돌아가셨고 말이야.”
그러나 돌아온 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찾은 살아갈 의미를 제 손으로 지워 버리고 말았다.
“그 뒤에는 철혈 그 여자가 찾아왔고, 그대로 얼빠진 채로 귀환자 협회에서 일했어. 그 여자도 그 사정을 알고 겸사겸사 내가 괜히 다른 곳에 불똥 튀지 않도록 일 시킨 거지. 하여튼 영악한 여자 같으니.”
의미를 지워버린 아유에게는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귀환자 협회에서 일을 한 이유는 분명 그런 거였겠지.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얼마 안 가 아유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할 것이란걸.
아유는 저쪽 차원에서도.
그리고 돌아온 지구에서도.
모두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모든 의미를 잃은 그녀는 그럼 대체 어떻게 살아야 했는가.
“그러다 그때였나. 아마 그럴 거야. 내가 처음 게임을 했던 게. 아는 귀환자 녀석이 제멋대로 끌고 가서 백화점을 멍하니 걷고 있었는데. 게임 코너를 지나고 있었거든. 그때 광고하던 게 로드 오브 아카데미였어. 그렇게 게임을 보다가…….”
그러다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들었다.
“어? 도미 오빠, 나 생각났어.”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그 사실에 내가 의문을 보이자 그녀는 내 손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강마리, 오빠 누나. 형님이 그때 나한테 말 걸었었어.”
“뭐?”
그리고 이어진 말은 나 또한 눈을 동그랗게 만들게 하였다.
누나가 갑자기 왜 나와?
그것도 거기서?
“잠깐만, 아유, 누나가 왜?”
“그……러니까. 분명 그때 나한테 그 게임을 보면서 재밌다고 말해줬었어.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을 정도로 말이야.”
너무나 상황에 딱 맞게 내뱉은 조언.
삶의 의미를 찾을 정도라는 그 말은 아유에게 있어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걸 듣고 나는 멍하니 아유를 바라보았다.
……누나가 아유와 내가 만날 수 있도록 의도했다.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유와 내 눈이 한동안 마주쳤다.
우리의 만남은 누나가 의도 했다는 게 되는데 아유에게는 어떨까.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진 관계는 그녀에게 있어 상처가 되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감사 인사해야겠다.”
그러나 아유는 나와 맞잡은 손을 들어, 내 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 덕분에 내가 도미 오빠를 만난 거니까.”
그리고 그 말은 왜인지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유는 누나가 의도했건 말건 상관없었다.
그저 나와의 관계가 이어진 것을 그녀는 어느 것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도미 오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게 뭔지 알아?”
그러자 아유가 내 손을 꼭 잡은 채 물어왔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아유의 얼굴 위로 옅게 웃음이 지어졌다.
“사람이야. 살아갈 이유를 망가트리는 것도, 그리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도 누군가였어.”
내 손을 절대로 놓고 싶지 않다는 듯 아유의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그날 충동적으로 게임을 구매하고, 게임 속 마을을 돌아다니던 나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고 적당히 쉬고 있었어. 그런데 그때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이 둘이서 대화하던 게 들리더라.”
그러면서 그녀는 그때를 회상하듯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기억이 조금 흐릿하긴 한데. 아마 귀환자 욕이었던 거 같아. 귀환하면서 열린 차원문 때문에 생기는 사고나 인명 피해를 알면서도 귀환하는 귀환자들은 죄책감이나 염치가 없다는 둥, 아마 그런 식으로 여러 이야기를 하더라고.”
“뭐야. 쓰레기들이. 누구야 그놈들. 내가 찾아내서 따끔하게 혼낼게.”
“푸흣, 걱정 마. 그 녀석들 혼낸 게 오빠였으니까.”
“어?”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이미 나에게 혼난 녀석들인가.
“사실 이야기 들으면서 별 감흥 없었는데. 갑자기 지나가던 한 명이 우뚝 멈추더라고.”
“그게 나야?”
“응, 그 바보가 오빠야.”
바보 취급인가.
“그 바보가 그 사람들한테 막 따지기 시작하더라고. 귀환자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가져야만 하느냐고, 문제는 차원 이동이지 그들은 피해자인데. 원망을 쏟아내려면 방향을 제대로 잡으라고, 막 미친 듯이 따지더라고.”
나는 잠시동안 다른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당시에 나는 세상의 불합리함에 지쳐 옆에서 귀환자 이야기만 들으면 미친 듯이 따지던 놈이었다.
곽사연 때문에 현실이 망가졌으니 그냥 그렇게라도 분풀이하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이러고 있어도 최소한 귀환자를 위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정말로 한심한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바보가 그렇게 말하더라. 외딴 세계에 떨어져 그 세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채 갖은 고생을 하고 살아남은 그들은 어느 사람도 조롱할 수 없다고.”
아유가 그때가 어지간히 재밌었다는 듯 웃었다.
“그러니까 욕하던 애들이 말하더라. 대체 뭐 하러 귀환자를 그렇게까지 옹호하냐면서.”
썩을 것들, 더 혼냈어야 했다.
지금이라면 물리도 가능한데 말이다.
“그래서 바보가 말했지. 그들이 돌아온 것을 반겨주고, 환영해줄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제가 바보입니다.”
“응, 바보였어. 진짜. 참, 바보더라. 욕하던 사람들도 결국 따지다 질려서 도망쳤거든. 그런데 나는 그 바보가 한 말이 기억에 남았어.”
아유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무척이나 애정이 어려 있었다.
“그래서 슬쩍 따라가 보니까 길드원을 모으고 있더라고.”
그 당시 죽심과 함께 길드원을 모으던 시절.
아유는 우리 길드의 첫 길드원으로 들어왔었다.
“그 뒤로 냉큼 들어가서 게임을 하고, 매일 같이 놀고, 웃고 떠드니까.”
아유는 그 당시를 회상하듯 눈을 감고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삶의 의미라는 게 의외로 별거 없더라구.”
너무 지쳤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걸 택했기에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이 치열함에 지쳐 결국 꺾여 버렸듯이.
비록 우리 두 사람의 삶은 지침도 힘듦도 다르겠지만.
우리 둘은 게임 속에서 만났고, 그랬기에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도미 오빠 옆에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니까. 그냥 다 아무래도 좋아지더라.”
“나도 너랑 노는 거 즐겁고 행복했어.”
“흐흐후, 우리 둘 다 서로한테 엄청나게 플러스였네?”
“그래, 내가 그건 절대부정 안 한다.”
아유와 지낸 게임 생활은 나에게도 큰 의미였다.
죽심을 제외한다면 내 게임 속 관계는 아유만큼 긴 관계도 없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생겨났어. 내 삶의 의미가.”
아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붉은 기가 감돌고 있었고, 그 얼굴은 분명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도미 오빠, 좋아해.”
그녀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내 삶의 의미는 이제 도미 오빠야.”
그리고 아유는 어느 때 보다 예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나 도미 오빠랑 쭉 평생 함께하고 싶어.”
“아유.”
내가 입술을 떼려 하자 아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내가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유는 그대로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도미 오빠한테 있는 일. 나도 잘 알아. 형님이 행방불명이니 오빠는 자기 혼자 행복해지면 안 된다고 죄책감 가지고 있는 것도.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 것도. 도미 오빠는 너무 착하니까.”
“나 그렇게 안 착해.”
나는 이기적인 놈이다.
오히려 내가 착했다면 분명 확실하게 확답을 해주었을 것이다.
지금도 내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은 욕심이 자꾸만 쿡쿡 찔러오고 있었으니까.
이 욕심은 아유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 커져만 갔다.
“나는 도미 오빠 곁에만 있으면 돼. 내 삶의 의미를 더는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그녀가 까치발을 듦과 함께 맞잡은 내 손을 아래로 당겼다.
그녀에게 끌려간 내 몸이 무심코 앞으로 숙였을 때 아유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그녀와 내 눈이 마주친 순간 아유는 눈웃음을 짓곤 그대로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붙였다.
쪽 하는 소리가 한차례 울려 퍼졌다.
그녀가 여태껏 한 행동 중 가장 적극적이었던 그 행동에 내가 굳어 있자 아유는 홍당무가 된 얼굴로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미리 도장 찍어 둘래.”
내 첫 키스는.
병원 휴게실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