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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겜친들이 귀환자인데 집착함 (155)화 (155/249)

Chapter 155 - 155화 에바가 반할 때

“나 하찬이랑 또 하고 싶은데에. 그때처럼 막.”

 

말을 늘어트린 채 나를 올려다보는 설향을 보고 내 침이 꿀꺽 삼켜졌다.

이 녀석을 어쩌면 좋지.

 

“뭘 해요.”

 

그 순간 나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흠칫하며 몸을 굳혔다.

거기에는 표독스럽게 눈을 치켜뜬 시호가 주스 잔을 든 채로 있었다.

 

설향은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리고, 시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와 그녀를 돌아보더니 내 옆에 앉았다.

 

“시호, 오늘 담당자님 옆에서 잘래요.”

“……시호 양? 그럼 하찬이가 불편하잖아요. 시호 양도 19살인데 애처럼 굴면 안 되죠.”

“시호는 그런 거 몰라요. 시호, 한 달 전까지는 애니까. 담당자님 없으면 못 자요. 그쵸?”

 

시호가 어리광 부리듯 내 품에 파고들자 설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저렇게 막무가내로 여우짓을…….”

 

……시호가 좀 여우긴 했다.

 

“도미 오빠!”

 

내가 불만스러운 설향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시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 갑자기 신난 아유가 나타났다.

술에 꽤 취한 듯 아유는 평소보다 높은 텐션으로 헤실헤실 웃은 채 뭔가를 들고 있었다.

 

“도미 오빠 이거 좀 입어봐봐!”

“뭐냐. 그건.”

 

아유가 들고 흔드는 걸 얼떨결에 받으니 그건 다름 아닌 무림 복장이었다.

대체 이걸 어디서 가져온 거지.

 

내가 순간 어이없어서 그걸 멍하니 들고 있으려니 아유가 기대하는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나 도미 오빠가 이런 복장하는 거 보고 싶어.”

 

보통 이런 건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많이 부탁하지 않던가?

잠시 내가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자 설향과 시호의 눈빛이 동시에 바뀌었다.

 

흥미를 담아 은근이 보내는 두 사람의 시선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결국 일어났다.

 

“그래, 그래.”

 

취한 것 같긴 한데 아유 부탁이다.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다른 방에 들어갔다.

옷을 펼쳐보자 그것은 검은색 일색의 붉은색이 칠해진 무림 복장이었다.

 

무협 코스프레 같네.

비적비적 옷을 다 입은 나는 쓴웃음을 짓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

 

그러는 순간 나는 문을 열자마자 에바 누나와 마주쳤다.

손에 술잔을 쥐고 가던 그녀는 나를 보더니 곧 눈을 동그랗게 뜨기 시작했다.

 

“도, 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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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곤 나를 확인하듯 아래위로 훑어보다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어, 그, 그아.”

“에바 누나?”

“아, 아니, 아니에요.”

 

그러자 에바 누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다가 줄행랑쳤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몸을 돌렸다.

 

“호오, 도미 꽤 괜찮은데?”

“그러냐?”

 

때마침 이쪽을 본 나엑이 녀석이 칭찬해주길래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

 

죽심도 연이어 칭찬해주었다.

 

하지만 정작 이 옷을 입히려 했던 나머지 셋은 어째선가 말이 없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아유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도미 오빠, 이리 와 봐. 띠 잘못 매었네.”

“아, 역시.”

 

아유는 그렇게 말하곤 내게 다가와 띠를 풀어 다시 묶어 주었다.

 

“나 이러고 있으니까. 일하러 가는 남편 옷 챙겨주는 아내 같다. 그치?”

 

그러면서 아유가 장난스럽게 웃길래 나도 대답해줬다.

 

“아내 맞긴 하잖아.”

“아, 흐, 히히.”

 

아유는 볼을 붉게 물들이며 좋아했다.

그러곤 이내 띠를 다 매주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오빠 잘생겼네.”

“도화 옆에 있으면 엑스트라 호위 무사쯤은 되려나.”

“뭐래.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도련님이지.”

 

아유는 나를 폭 끌어안아 오며 그렇게 말했다.

애정 표현하는 게 남들 보여주기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내가 아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개를 들자 시호와 눈이 마주쳤다.

시호는 풀린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담당자님, 사극에서 나온 왕자님 같아요.”

 

시호 은근이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살짝 붉게 물든 얼굴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시호 탓에 괜이 부끄러워졌다.

 

“하아.”

 

그러는 순간 설향이가 어째선가 달뜬 숨을 내쉬었다.

풀린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을 보니 왜인지 몸이 쭈뼛거렸다.

 

오늘 괜찮을지 모르겠다.

 

 

 

12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가득한바.

술잔을 쥐고 조용히 앉아 있던 금발의 여인이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찬에게는 에바라고 불리고 본명은 송세희인 그녀는 아까 전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떠올린 건 다름 아닌 하찬의 무협 복장의 모습이었다.

 

기환 출신 귀환자인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라 오기를 기항전에서 쭉 커왔다.

무협 세계와 기항전 쪽 세계는 같은 동양풍의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취향 쪽도 사실 현대 옷보다는 그쪽에 더 치중되어 있었다.

 

가장 옷차림에 예민한 사춘기 시절과 이십 대 초반 시절을 그쪽에서 살아왔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취향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하찬이 무협 복장을 하고 나왔을 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구해줬을 때부터 애써 부정하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하찬에게 반쯤 마음이 넘어갔던 세희였다.

 

그러나 오늘 그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복장을 하고 나오자 도저히 두 눈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자꾸 저쪽으로 눈이 가는걸 그녀는 애써 버티고 있었다.

 

‘반칙, 반칙이잖아요.’

 

세희는 자기 손에 새빨갛게 변한 얼굴을 파묻었다.

자신에게 은인인 그다.

 

남을 필사적으로 구하는 모습에다가 자신이 건넨 소원 부적까지 찢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는 거구나 했었다.

 

최근 따라 그가 꿈에 나오는 빈도가 늘어나고, 괜이 자꾸만 전화나 문자를 기다리게 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거기까지였다.

 

세희는 남성의 취향이 그다지 없었다.

정확히는 마루에게 강간당할뻔한 이후로 남성을 꺼리는 편에 속했다.

 

하지만 하찬은 솔직히 남성 중에서 가장 무해 한 느낌에 가까웠고, 그래서인지 더 쉽게 떠올랐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그녀도 자신이 남성 취향이 있음을 깨달았다.

 

훈련하느라 잘빠진 몸에 달라붙는 옷과 상의를 걸친 하찬을 본 순간 세희는 처음으로 심장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었다.

 

“으, 으으.”

 

그냥 좀 신경 쓰이는 정도였다.

어차피 하찬의 주위에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은인이니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하려 했는데.

흔들리고 있던 마음이 방금 전 그 모습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내가 미쳐요. 어쩌자고.’

 

세희는 자기 얼굴에 손을 떼곤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녀를 물끄러미 보던 혁서가 잔을 내려놓았다.

 

“어이, 송세희.”

“어, 왜, 왜?”

 

세희가 당황해서 고개를 들자 혁서는 자기 손에 턱을 괴더니 말했다.

 

“도미, 좋나.”

 

세희의 몸이 바짝 굳었다.

굳어 버린 세희를 물끄러미 보던 혁서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 녀석, 전마 저 성격이면 주변에 여자들 엄청나게 꼬일 거다.”

 

세희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눈을 피했다.

 

“쟤들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 것 같기는 한데. 솔직히 나는 니가 상처 안 받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세희가 웃으면서 사는 것 하나만을 원하는 혁서였다.

그렇기에 그리 말하자 세희도 이미 아는 눈치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하고 싶은 대로?”

“그래, 니 하고 싶은대로.”

 

혁서는 술잔을 다시 들이켰다.

 

“할 거면 끝까지 해라. 남자 놈들 고추 달린 이상 니한테 안 홀리고는 못 배길 거다.”

“뭐, 뭐! 이 오빠가 미쳤나! 뭘 막 지껄여!”

“시끄럽다. 가시나 나이 처물 때로 처먹었으면서 언제까지고 지키고 있을라고. 니 뺄 때 없다. 부딪치라.”

“아악! 진짜아!”

 

세희가 혁서에게 달려들어 그의 머리를 마구 때리는 사이 어느새 7병째에 도달한 죽심은 조용히 생각했다.

 

하찬이 곧 말라비틀어진 미라가 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13

 

술자리가 전부 다 끝마치고, 나는 그 뒤 술을 상당히 마셔서인지 잠깐 잠들었음을 깨닫고 스르륵 눈을 떴다.

아직 새벽인 듯 창문 사이로 빛이 안 들어옴을 느끼며 나는 회복되는 시야를 느꼈다.

 

느낌상 뒤는 침대고, 이불이 덮여 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누가 옮겨준 것 같았다.

그러면서 슬쩍 손을 들어 옷차림을 확인하자 조금 전에 아유가 입으라 했던 무림 복장 그대로였다.

 

숙취가 살짝 남아 있길래 오러를 대충 돌리자 숙취는 금세 없어졌다.

잠들기 전에 오러를 돌렸으면 괜찮았을 텐데 깜빡했다.

 

‘옷은 별문제 없군.’

 

아까 전 설향의 눈이 떠올랐던 나는 누운 채로 기다랗게 하품하였다.

밖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다들 아직 놀고 있는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 자둘까.’

 

눈을 감고 잠시동안 비몽사몽 하던 나는 갑자기 문 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누가 눈붙이러 왔나 싶어 실눈을 뜨자 거기에는 금발이 보였다.

 

흔들리는 금발을 보고, 나는 그녀가 누군지 깨달았다.

 

‘에바 누나인가.’

 

아무래도 에바 누나는 취했는지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잠시동안 그 모습을 실눈으로 보고 있으려니 에바 누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에 침대가 몇 개 더 있음에도 이쪽으로 다가온 에바 누나는 내 침대 옆에 털썩 앉았다.

그것을 보고 내가 의문을 품던 순간 에바 누나가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아아.”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과 함께 내 이마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도미, 자요?”

 

자냐고 묻는 목소리를 듣고 나는 일어나려 했지만, 상황이 애매해졌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에바 누나의 반응이 마치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왜 자꾸 눈에 밟혀요.”

 

내가 그 말을 듣고 의문을 가진 순간 에바 누나의 얼굴과 내 얼굴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안 자죠?”

 

조심스럽게 묻는 그 말에 내가 입술을 우물거린 순간 에바 누나가 조용히 속삭였다.

 

“제가 좋아하는 이런 복장으로 와버리구. 쭉, 참을 만큼 참았었는데.”

 

뭘 참았다는 거지.

거기에 의문을 가지던 그 순간 에바 누나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아 간지럽게 느껴졌다.

 

에바 누나는 그 상태로 숨을 참듯 한참을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가 에바 누나가 입을 열었다.

 

“……좋아해요.”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내가 움찔하고 굳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대로 고개를 낮추자 내 입술과 에바 누나의 입술이 닿았다.

 

상상도 못 한 행동의 내가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있던 순간 에바 누나는 그렇게 한참을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후 에바 누나의 숨소리가 일정해졌음을 깨달았다.

 

스리슬쩍 눈을 떠보자 에바 누나가 새근거리며 자는 것이 보였다.

이 누나 취해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에바 누나를 잠시 멍하니 보던 나는 스르륵 몸을 일으켜 그녀를 옆에 눕게 하였다.

나는 더듬더듬 내 입술을 매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바 누나는 잘도 잤다.

 

‘……에바 누나는 왜.’

 

대체 언제부터 나한테 마음을 가졌던 거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에바 누나의 마음을 확인한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멍한 기분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에바 누나에게 고백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머리가 좀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바 누나는 잘도 잤다.

취기에 저런 것 같은데, 있다가 일어나면 기억이나 할는지 모르겠다.

 

“하찬아.”

 

그러던 순간이었다.

나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들어 보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새벽 벽 그림자가 진 공간 한편.

거기에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여성이 걸어 나왔다.

 

그런 그녀의 눈과 마주한 나는 서서히 눈을 크게 뜨기 시작했다.

 

“은나무.”

 

그동안 연락이 전혀 안 되었던 은나무가 나타나자 놀란 내가 그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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