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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겜친들이 귀환자인데 집착함 (171)화 (171/249)

Chapter 171 - 171화 흑산

7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공간.

중력이 제멋대로 움직이기라도 한 듯 암석들이 어두운 공간 여기저기에 떠 있었다.

 

뚜벅뚜벅-

 

마치 우주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그러한 공간에서 어둠과는 어울리지 않는 백발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한차례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드러난 붉은색 눈동자가 한차례 어딘가로 꽂혔다.

 

파직!

 

그러는 순간 그녀의 손아귀에 붉은색 번개가 튀어 올랐다.

마치 창을 쥐듯 번개를 쥔 그녀는 그대로 붉은 번개를 내질렀다.

 

파지지지직!

 

“구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쏟아진 번개가 새까만 공간을 꿰뚫은 순간 거센 소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생물의 고통에 찬 소리였고, 거기에는 터무니없는 크기의 거대한 아귀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어둠 속에 자기 몸을 숨긴 녀석이 백산이를 먹기 위해 천천히 다가오다 걸린 것이었다.

하지만 백산이를 노린 것은 그 녀석만이 아니었다.

 

아귀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아귀 밑에 붙어 있던 사람만 한 기생충들이 백산이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자글자글한 다리를 번들거리며 날아드는 기생충을 보며 백산이는 그 즉시 바즈라를 잡고 놈들을 베어 갈랐다.

 

순식간에 수천 마리의 기생충을 베어 가른 백산이가 암석 바닥을 차올랐다.

그럼과 함께 아직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귀의 머리 위에 도달한 백산이 그 즉시 검을 내려그었다.

 

파지지지지직!

 

튀어 오른 붉은색 스파크와 함께 아귀가 갈라지며 어둠 아래로 추락했다.

그것을 보고 다른 암석에 착지한 백산이 기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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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다.’

 

묵시록의 탑에 들어오고 나서 전투를 한 것만 벌써 수백 번이 넘어가는데 백산은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왜냐하면 백산은 귀환하고 나서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옥 같은 세계에서 돌아온 지구는 백산이 기억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자신이 차원 이동에 휘말리고 귀환한 것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으니까.

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재회한 새어머니와 아버지는 조금 더 늙었을 뿐 여전하셨으니까.

거기다가 새어머니가 늘 말씀해 주시던 새언니도 자신에게 친절했다.

 

하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았을지언정 자신은 변하고 말았다.

 

자신의 마음속에 뿌리 깊게 박힌 인간 불신.

 

너무 많은 배신과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환경이라는 조건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고 말았다.

옆에서 자신에게 깊은 애정을 보여주는 가족조차도 계속 의심할 만큼 백산의 인간 불신은 고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사람의 속내는 죽어서도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백산은 뿌리 깊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백산은 귀환하고 나서 가족의 품에 돌아왔음에도 은연중에 계속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불편한 감정 중 가장 주된 원인은 다름 아닌 강하찬이라는 놈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은 오러를 지니고 있고, 바즈라를 사용하는 데다가 문제점까지 지적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남자.

게다가 도무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범상치 않은 이들과 연루되어 있었다.

 

강하찬의 옆에 있는 동안 백산은 그가 지인이라 소개해준 이들을 여럿 만났다.

 

한 명은 자신을 천하제일인이라 칭한 괴물이었다.

천마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눈에 보기에도 터무니없는 힘을 지닌 그것은 육악성 놈들보다도 더한 괴물이었다.

 

한 명은 그림자에 잡아 먹힌 듯한 귀환자였다.

그림자를 빚어 올려 쌓은 놈의 내부는 깊디깊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다른 한 명은 우주를 보는 기분을 들게 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별들에게 둘러싸인 느낌을 주면서도 그 내부에 드리운 죽음은 보는 사람의 숨통을 옥죌 지경이었다.

 

또 한 명은 공간이 굴절되어 보이는 꼬맹이였다.

공간의 신에게 사랑받기라도 하는지 모든 공간은 그 꼬마를 중심으로 일그러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이들 말고도 강하찬의 주변에는 그러한 인물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문제는 그러한 강자들이 곁에 있다면 분명히 의심해 봐야 할 텐데도 강하찬은 조금의 의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신뢰였다.

그리고 그러한 눈은 믿을 수 없게도 자신에게조차 똑같이 향해 있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그 무한한 신뢰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 주제에 중간중간 자신에 관해 뭘 그리 눈치 빠르게 파악하는지.

중간중간 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어디선가 불쑥 챙겨 주었다.

 

한 번은 뭔가 쪽팔려서 따져도 봤지만 결국 필요한 것들이라 순순히 받았다.

물론 받으면서도 혹시나를 의심했지만, 그가 주는 것들은 자신을 해코지할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뭘까 그놈은.’

 

백산이 보기에 강하찬은 정말로 기이한 인간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목적이 있어 일부러 성인 연기라도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돕는 미친놈들은 대게 꿍꿍이를 가진 법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일 때의 이야기다.

자신이 귀환하지 고작해야 며칠 사이에 강하찬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를 수없이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이놈은 진짜배기 미친놈이었다.

마치 뭔가에 눈이 멀기라도 했는 듯 자기 몸을 불사질러서라도 누군가를 도우려 드는 성향은 자신조차 질릴 정도였다.

 

인간 불신인 백산이 아무리 그를 의심해 봐도 그가 하는 행동의 가치와 의미는 도무지 따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백산은 강하찬이 불편했다.

 

자신의 상식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당연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백산이 택한 곳이 묵시록의 탑이었다.

이 안이라면 자신은 혼자일 수 있으니까.

 

혼자라면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아도 되기에 이보다 편할 수 없었다.

백산이의 눈동자가 어두운 공간으로 향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한순간 여러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제는 웃다가 오늘은 칼을 꽂는.

믿을 건 자신뿐만인 세상.

 

지옥 같았던 그 세상을 잠시 떠올린 그녀는 강하찬과 이 세상을 비교하듯 보곤 곧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런 주제에.’

 

그녀는 다시금 암석들을 도약하여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월등한 신체 능력과 오러를 지닌 그녀에게 있어 공중에 뜬 암석들은 방해되지 않았다.

 

중간중간 차원종들이 공격을 해왔긴 하나 그녀 입장에서는 별거 없었다.

그렇게 암석 사이를 지나치던 그녀는 곧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러곤 그쪽으로 다가가자 이질적으로 뒤틀린 공간이 보였다.

백산은 그 공간 안에 발을 들이자 암석의 구석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부상을 크게 입은 듯한 그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있다 이내 백산을 발견하곤 안도하듯 웃었다.

 

“왔군.”

“용케 숨이 붙어 있네.”

“이 몸은 좀 끈질긴 편이거든.”

 

그런 그를 보고 백산은 혀를 차곤 대충 바닥에 앉아 들고 왔던 생선 모습의 차원종을 해체했다.

그러고는 그중 일부분을 남자에게 툭 던져 놓았다.

 

“아마도 독은 없어. 먹어.”

“신세 지는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붕대가 감긴 상처를 짓누르며 백산이 던져준 생선 살을 씹었다.

생살이었지만 회복을 위해서라도 영양 섭취가 우선인 그에게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성주 볼프강 베이거.

덥수룩한 수염과 주름, 그리고 텅 빈 머리가 그의 나이를 상징했다.

그는 다름 아닌 얼터즈 소속 S급 헌터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

그건 다름 아닌 백산이의 작은 변덕 때문이었다.

 

백산은 10층을 오르던 당시 전투의 흔적을 대충 봤었다.

물론 남 일이었기에 딱히 신경 쓰지는 않고, 층을 오르던 도중 이곳 23층에서 구석에 쓰러져 있던 볼프강을 발견했다.

 

원래 백산의 성격대로였다면 그런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뒀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변덕일까.

 

그를 보자 왜인지 강하찬의 얼굴이 아주 잠시동안 떠올렸다.

무의미해 보이는 짓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놈이 떠오르자 괜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짜증이 난 백산이는 그 잡념을 떨치기 위해 베이거를 치료해 주었던 것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혼자가 되기 위해 묵시록의 탑에 들어왔건만 웬 떨거지를 한 명 구하지를 않나.

그가 대충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있지를 않나.

 

자신이 생각해도 멍청한 짓거리를 하고 있음에 백산은 앞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 사이에 자신이 뭔가 변하기라도 한 건가.

 

“자네 백산이라 했지.”

“그래.”

“미처 묻지 못했지만. 자네는 귀환자인가?”

“그런데.”

 

백산의 무뚝뚝한 대답을 듣고, 음식을 섭취해서 조금 편해진 듯한 베이거가 암석 벽에 등을 기대었다.

 

“역시, 그렇군. 그토록 강한 건 귀환자가 아니면 말이 안 되지. 쿨럭.”

 

기침을 내뱉은 그는 핏물이 섞여 나온 입가를 손으로 훑곤 고개를 들었다.

 

“자네는 묵시록의 탑에 도전할 속셈인가?”

 

도전, 그 말을 듣고 백산은 고개 들어 그를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자네가 이곳에 들어 온 건 도전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서 말일세.”

“그걸 니가 어떻게 판단하는데?”

 

백산이 까칠하게 되묻자 베이거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10층에서 터줏대감 짓만 몇십 년째일세. 대충 이유가 보이거든.”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데?”

“고작해야 호승심으로 탑을 올라 자살하려는 놈들을 막으려고.”

 

그리 말한 베이거는 기침을 또 한 번 내뱉곤 쓴웃음을 삼켰다.

 

“묵시록의 탑을 오른 헌터는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지. 그 때문에 예전에는 회사에서 헌터를 강제로 묵시록의 탑에 보내는 곳이 꽤 있었네. 국가나 회사에게 묵시록의 탑에 도전한다는 이미지는 마치 국가 위상을 올리는 모습이었으니까.”

 

최근에는 많이 개선 되었지만, 아직도 개발도상국인 국가들은 여전히 헌터 취급이 엉망인 곳이 더러 있다.

세계는 평등하지 않다.

 

그렇기에 헌터들 중에서는 마치 노예처럼 무기로 쓰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얼터즈의 초창기 설립은 그런 헌터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높은 등급의 헌터일수록 국가적 제약이나 여러 가지가 붙잡혀 있었으니까.

 

“오늘날에서야 결국 젊은이들의 도전을 막는 꼰대 취급이 되어 버린 나지만. 과거 묵시록의 탑은 헌터의 피로 쓰인 역사였네. 그렇기에 그 자리를 지켰지. 나조차도 꺾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도전하지를 말라고.”

“할 짓도 더럽게 없네.”

“부정 못하겠군. 몸은 노쇠해도 정신은 과거에 살고 있어서 말일세. 아들이 죽은 10층에서 나는 분명 여전히 과거에 잡혀 있는 거겠지.”

 

쓸쓸히 웃은 그의 눈에는 과거 묵시록의 탑에 도전한 아들을 떠올리듯 하였다.

피로 쓰인 역사에는 그의 아들 또한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런 내가 보기에 자네는 지금 도망쳐온 것밖에 보이지 않네.”

“내가 도망을 친다고?”

“귀환자 중에 간혹 있네. 막상 돌아오고 나니 적응하지 못하여 도피 삼아 묵시록의 탑에 들어오는 이가.”

 

휘말린 차원이 극한의 환경에 놓일수록 귀환자는 평화로운 지구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네도 딱 그런 느낌이었네. 묵시록의 탑을 도피처로 삼은 듯한 그런.”

“곧 죽을 거 같은 놈이 말도 많네.”

“하하, 곧 죽을 거 같으니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래야 정신을 붙들어 놓지.”

 

백산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백산의 눈에 그는 실력은 형편없지만 보는 눈만큼은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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