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5 - 215화 화신 계약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안다.
“어떻게 해야 하죠?”
[ 화신 계약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화신 계약.
나는 그걸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게요. 계약해 주세요.”
죽심은 잠깐 꺼리는 듯 이리저리 고민했다.
그러곤 나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채팅을 쳤다.
[ 그럼 평생 자신에게 묶일 텐데 괜찮냐고 합니다. ]
“괜찮아요. 죽심 님인걸요.”
이제 와서 그런 걸 신경 쓰겠는가.
[ 자기가 해결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
“아뇨. 저쪽이 바라는 건 죽심 님이에요. 혹시 알아요? 저 녀석들도 죽심 님을 어떻게 할 방법을 가져온 걸지도요.”
죽심은 좀 더 고민해 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였으나 이내 끄응하는 소리를 내곤 다시 채팅을 쳤다.
[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합니다. ]
죽심의 허락이 떨어졌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 여기 앉으라고 합니다. ]
나는 죽심의 말을 듣고 바로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러자 죽심은 침대 위에 두 발로 서더니 갑자기 내 머리를 끌어안아 버렸다.
“주, 죽심 님?!”
꽃비가 경악하듯 소리를 지르는 동안 나는 얼굴 전체를 감싸는 푹신함에멈칫하였다.
이 정도면 설향이랑 거의 비빌 만한 수준 아닌가.
새로운 충격을 받고 있으려니 나를 끌어안은 죽심의 손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주 능력을 사용할 때 나오던 은하수의 빛과 같았다.
그런 빛은 내 몸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건 무척이나 신비한 느낌이었다.
마치, 몸 내부를 얼음물로 씻어 내리는 느낌이랄까.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을 때 무언가 따스한 촉감이 이마에서 느껴졌다.
내가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내 이마에 입맞춤을 하는 죽심이 있었다.
꽃비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죽심은 얼마간 그러고 있다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 들려? ]
죽심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꽃비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청명하게 울려왔다.
예전에 어른 폼이던 당시 그녀가 들려주었던 목소리와는 또 다른 목소리였다.
이게 원래 죽심의 진짜 목소리인 걸까.
신기한 기분을 느끼고 있으려니 죽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 잘 들리는 모양이네. 이제 느껴질 거야. ]
죽심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윽하고 잠시 소리 내며 머리를 감쌌다.
왜냐하면 주위에서 평생 느껴 본 적 없는 섬찟한 기척들이 갑자기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지나가던 도중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 자리에 사람을 본 것 같은 오싹한 기분이었다.
[ 뒤섞인 죽음들이 느껴져서 그래. 곧 괜찮아질 거야. ]
그 말을 듣고 호흡을 한차례 고르자 서서히 기척들이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꺼림칙한 느낌은 들었지만, 이거라면 괜찮았다.
[ 이제 영체도 보일 거야. ]
그렇다면 충분하다.
내가 고개를 들어 백산을 돌아보자 그는 밑 준비는 끝났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오러를 두르는 방법은 당연히 알지.”
“그거야.”
매일 같이하던 거다.
내가 전혀 문제없다는 듯이 백산을 바라보자 그가 부가 설명해주었다.
“그걸 바즈라에 직접 심어 넣어야 한다.”
“바즈라에?”
“그래, 바즈라는 거의 사실상 지구 쪽 신계의 물건이니까. 영계 놈들에게도 확실히 통한다. 거기에 네 능력이 더해지면 영계 놈들도 찔리기만 해도 뒤질 거다.”
내 눈이 번뜩였다.
싸울 수 있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제일 문제는 바즈라 그놈이다.”
하지만 백산은 내가 영계 쪽 녀석과 싸우는 걸 말린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뇌속성 오러야 꿀떡꿀떡 잘 먹는 놈이지만 다른 걸 먹으면 뱉을 확률이 높아.”
“그래도 바즈라가 없으면 싸우기 힘든 거지.”
“그래, 영체라는 건 생각보다 까다롭다. 너 혼자서 조절하긴 힘들어.”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즉시 바즈라를 뽑았다.
“꽃비, 죽심을 지켜줘.”
“알았어요.”
죽심도 강하니 걱정은 없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다.
저들에게 죽심을 어떻게 할 방법이 있다면 꽃비가 지켜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꽃비에게 미소 지어 보이곤 내 손에서 붉은색 스파크를 튀기는 바즈라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반항적인 성격이 다분한 바즈라는 마치 자고 있는데 왜 깨웠냐는 듯 붉은 스파크를 흘렸다.
“바즈라, 지금부터 다른 오러를 너한테 줄 거야.”
그런 내 말을 듣고, 바즈라가 거칠게 스파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반항적인 태도의 내 눈살이 확 찌푸려졌다.
“바즈라.”
으득 갈린 내 이와 함께 화가 담긴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바즈라에서 흘러나오던 스파크가 한차례 움찔거렸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바즈라랑 시답잖게 기 싸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즈라와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싸워서도 안 되었다.
나는 감정을 죽이곤 숨을 내쉰 뒤 바즈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나한테 삐진 듯 붉은색 스파크를 조금씩 내뱉고 있는 바즈라가 보였다.
“미안해. 맨날 내가 억지스러운 부탁만 해서.”
바즈라도 자기만의 주체가 있다.
비록 검이라고는 하나 몇 번이고 의사 표현하던 바즈라가 아닌가.
사람이 마냥 다그치기만 하면 비뚤어지듯이 바즈라도 똑같았다.
“상황이 좀 급해. 우리랑 관련 없는 사람들도 휘말리게 생겼어. 좀 도와줄래?”
내가 조금은 상냥한 목소리로 바즈라에게 말을 걸자 바즈라가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이내 조금씩 붉은색 스파크를 터트리며 알겠다는 대답을 보였다.
그 대답을 듣고, 화색을 보인 나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바즈라는 쑥스러운 듯 번개를 내뿜을 뿐 더 이상 반항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는 끝났다.
나는 곧바로 현관 쪽에 붙음과 함께 바즈라를 내려 보았다.
“시작할게.”
파직!
바즈라의 대답을 들은 즉시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동시에 내 능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내 팔을 중심으로 푸른색의 오러가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오러는 고스란히 바즈라를 통해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고, 바즈라도 거절 없이 그 오러를 꿀떡꿀떡 삼켰다.
파지지지직!
얼마 후 바즈라의 위에서 푸른색의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본래의 붉은색 대신 푸른색으로 변한 바즈라를 보고, 나는 바즈라를 들어 올려 앞으로 겨누었다.
문 앞에는 분명 여전히 그 영계 놈이 있을 것이다.
현관문이 부서지긴 하겠지만 이런 건 기습이 우선이다.
그리 판단한 내 발이 뒤로 뻗어짐과 함께 전신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것을 시작으로 뻗어진 내 다리가 그 즉시 현관문을 박살 냄과 함께 바즈라를 앞으로 뻗었다.
파직, 콰아아아아아앙!
부서진 현관문과 함께 뻗어진 바즈라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바즈라의 끝에 닿은 것은 반투명한 촉수로 이루어진 거대한 차원종이었다.
바즈라의 검날이 박힌 차원종은 괴로운 듯 촉수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죽심 덕분인지 아까 전에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던 것이 확실하게 두 눈에 보였다.
“오, 오빠아.”
“아유, 목소리 내지 마.”
감히 아유 목소리를 따라 하는 차원종을 보고, 나는 그 즉시 바즈라를 돌려 잡음과 함께 베어 갈랐다.
바즈라에게 잘린 영체는 조각조각 나며 박살이 나버렸다.
띠리릭! 끼익!
“힉!?”
그러는 순간 우리 옆집 현관이 열리며 나온 여성이 나를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옆집 사람인가.
자주 마주친 적은 없지만, 밖의 소란을 듣고 나와본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곤 미안한 듯이 미소 지었다.
“헌터입니다. 차원문 사태로 인해 생긴 비상시이니 집안에 계십시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아, 네, 네!”
내 말을 듣고는 그녀는 급히 현관문을 다시 닫았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곤 바즈라를 빙글 쥔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지금도 우리 집 건물은 통째로 뜯어진 채 하늘 위로 끌어올려지고 있다.
더 올라가기 전에 우리 집을 뜯고 있는 영계 쪽 차원종을 죽여야만 했다.
계단은 늦는다.
그렇다면.
나는 그 즉시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열린 창문 사이로 햇빛과 함께 새하얀 반투명하고 거대한 다리 같은 게 보였다.
그러한 다리는 수십 개가 우리 건물을 옥죄고 있었고, 옥상 전체를 뒤덮은 매끈한 몸덩이와 게걸스러운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하얀 머리 또한 보였다.
눈도 없는 것이 의지나 제대로 있나 모르겠다만, 하여튼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것을 본 즉시 창문을 박차고 나가며 전신에 오러를 끌어 올렸다.
동시에 건물 외벽을 밟으며 위로 뛰어오는 나는 바즈라를 꽈악 잡았다.
“우리 집 내려놔.”
그 한마디 말과 함께 바즈라의 푸른 번개가 거세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영계 쪽 차원종보다 더 높이 하늘로 치솟은 내가 공중제비와 함께 검을 내려그었다.
콰직!
놈의 머리를 꿰뚫고 검이 선명하게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내 검을 중점으로 뻗어 나간 균열이 순식간에 놈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디멘션 브레이크라는 효과가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었다.
쨍그랑!
“기이이이이이잉!”
산산조각이 난 영계 쪽 차원종이 이상한 소리를 내뱉음과 함께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부유감을 잃고, 천천히 추락하는 감각을 느꼈다.
건물을 뜯어 가려던 차원종이 사라진 탓에 중력이 건물을 끌어 내렸기 때문이었다.
“어, 어.”
여기까지는 생각 안 하고, 일단 차원종부터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당황한 음색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순간 추락하던 속도가 급격하게 줄었다.
아래를 바라보자 거기에는 달과 해와 별들이 그려진 마법진이 건물 아래에 커다랗게 처져 있었고, 덕분에 건물이 급격히 아래로 추락하는 일은 없었다.
죽심이 도와준 것이었다.
뜯어 나간 여파로 건물이 엉망이 되긴 했지만, 다행히 아래로 추락해 죄다 박살 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아.”
“그럴 때냐.”
내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옆에서 나타난 백산이 말했다.
백산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백산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는 순간 나는 보았다.
하늘 위를 가득 메운 반투명한 영계의 차원종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음을 말이다.
더럽게 많네.
때마침 지나가는 항공기는 놈들이 영계 출신임을 알려주듯 닿았음에도 그저 스쳐서 지나갔다.
지금쯤 저기 타고 있는 승객들은 전에 없던 오싹함을 만끽했을 것이다.
“케라페로 날려 버릴 수 있을까.”
“마른하늘에 번개 쏘는 녀석을 보면 항의가 빗발 칠걸.”
“그래도.”
“걱정 마라. 네놈이 모은 녀석들이 있잖냐.”
케라페를 꺼내려던 순간 나는 백산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도미!”
거기에는 어느샌가 타고 온 차에서 내린 세희 누나가 있었다.
그녀는 확 찌푸린 눈으로 영계 쪽 차원종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차에서 한 명 더 내렸는데 그는 다름 아닌 심하준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고개를 숙여왔다.
내가 있는 걸 보고 이곳에 죽음의 신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겠지.
그리고 내가 그가 말한 죽음의 신을 지켜줄 거란 사실도 말이다.
“또, 뭐에 휘말린 거더냐.”
그와 동시에 내가 서 있던 건물 옆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붉은색의 동백꽃 비녀를 머리의 꼽고 기다란 치마를 펄럭이며 나타난 그녀는 다름 아닌 천마 모습의 아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