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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겜친들이 귀환자인데 집착함 (236)화 (236/249)

Chapter 236 - 236화 돌보미

여기서 잘못 말하면 설향이의 기분이 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야, 너니까 그러지.”

“…….”

 

결국은 설향이 네가 없으면 이런 반응은 안보였을 거라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 픽하니 웃었다.

 

“말이라도 못하면.”

 

그러면서도 내심 기분 좋아 보였기 때문에 나는 안도했다.

 

“그래서 쭉 이 상태로 있을 거야?”

 

그러는 순간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은나무가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설향은 은나무 쪽을 잠시 힐끗 보고는 자기 입술을 매만졌다.

 

“그러게요. 여기서 이렇게 둘 수는 없겠죠.”

 

설향은 그리 말하곤 내 쪽을 돌아보았다.

 

“하찬아, 한 번 깨워봐 봐.”

 

미래의 설향은 꽤나 불안한 상태인 거 같은데 깨워도 괜찮을까.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래의 설향을 천천히 흔들어 보았다.

 

“설향아.”

 

내가 미래의 설향이를 조심스레 부르자 그녀가 한차례 몸을 꼼지락거렸다.

평소 설향이랑은 상당히 거리감 있는 모습이라 상당히 파급력 있었지만 나는 다시금 설향이를 불렀다.

 

“설향아.”

“으웅.”

 

두 번 정도 부르자 설향이는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어린애 같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찬아아.”

미래의 설향이의 입에서 애교가 듬뿍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설향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유아 퇴행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직 졸려?”

“으웅, 졸려어.”

“그럼 네 집으로 돌아가서 자자.”

“싫어어.”

 

미래의 설향이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내 품에 다시 파고들었다.

그걸 본 설향은 더 이상 자신의 추태를 못 보겠다는 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미래의 설향의 손목을 탁하니 잡았다.

 

“그만, 그만 해요! 사람, 부끄럽게 정말!”

 

설향이 그리 외친 순간 미래의 설향은 설향을 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곧 그렁그렁 눈물을 맺히기 시작했다.

 

그걸 본 설향이 당황했을 때 미래의 설향이 눈물을 터트렸다.

 

“흐잉, 언니, 누구야. 나 괴롭히지 마!”

“어, 그, 그게.”

 

엉엉 우는 설향이를 보고, 설향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 보다 연상일 터인 그녀가 유아 퇴행이 되자 이렇게 울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그녀를 안은 채 토닥거려 주었다.

그러자 미래의 설향은 엉엉 울면서도 나를 꽉 끌어안은 손은 떼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나쁜 언니 아니니까.”

“히잉, 몰라아.”

 

앙탈을 부리는 미래의 자신을 보며 설향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이 말을 걸면 상태가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설향은 한걸음 물러섰다.

 

“나도 설향이 네 집에서 사니까. 같이 가자. 그럼 괜찮지?”

“하찬이가 우리 지입?”

“응, 설향이 네 집. 들어간 지 꽤 됐어.”

“정말? 정말루?”

“정말이래도.”

“그럼 이제 어디 안가겠네에.”

 

조금 전에 울었다는 걸 잊어버린 듯 미래의 설향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내가 미래의 설향이를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설향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자, 잠깐, 왜 바지도 안 입고 있어요!”

 

왜냐하면 설향이는 말 그대로 내 와이셔츠 하나만 덜렁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와이셔츠 아래에는 텅 비어 있었다.

 

“불편해에.”

“얼른 입어요!”

 

남들 앞에서 자기 모습으로 추태 부리는 꼴은 못 보겠다는 듯 설향은 미래의 설향이 발버둥 치든 말든 어떻게든 옷을 갈아입혔다.

그러고 나서 미래의 설향은 완전히 토라진 표정으로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설향을 경계 섞인 눈으로 보았기에 설향이 머리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아, 정말 기억이 다 돌아오고 나서 어떻게 돼도 난 몰라요.”

 

설향이의 입에서는 깊디깊은 한숨이 나왔지만, 지금의 미래의 설향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딱 달라붙어 있는 미래의 설향과 함께 설향이 운전해온 차로 이동했다.

당연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미래의 설향과는 조금도 떨어질 수 없었다.

 

미래의 설향은 조금만 떨어트리려 해도 바로 울음을 터트리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누나는 그런 미래의 설향을 보며 착잡한 눈빛을 띄우긴 했지만 일단 찾은 걸로 다행으로 여기며 나와 함께 설향의 차에 탔다.

 

“하찬이랑 데이트였는데 아쉽네.”

 

은나무만이 중간중간 살짝 삐졌다는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미래의 설향을 데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집에서 반팔, 반바지 차림에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고 있던 아유가 우리를 보곤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철혈이 두 명? 세상이 멸망해?”

“천마, 그건 무슨 의미죠.”

 

설향의 두 눈이 날카로워지자 아유는 그 눈을 무시하곤 터벅터벅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곤 내게 딱 달라붙어 있는 미래의 설향을 보더니 눈살을 팍 찌푸렸다.

 

설향이 두 명이 된 것 보다 지금 내 옆에 붙어 있다는 게 더 거슬린다는 반응이었다.

 

“언제까지 붙어 있을 속셈이야. 그만 떨어져.”

“언니는 누구야?”

“어, 언니?”

 

그렇게 말한 아유가 미래의 설향을 떨어트리려는 순간 미래의 설향의 물음을 듣고 아유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얘 왜 이래?”

“있다가 이야기해 줄게.”

 

내가 그리 말하자 아유는 황당한 표정으로 미래의 설향을 보다가 이내 그녀의 볼을 잡아 주욱 늘렸다가 툭 놨다.

그러자 미래의 설향이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내 등 뒤로 도망갔다.

 

“아야, 아파아. 하찬아아, 이 언니, 나 괴롭혀어!”

“와, 이게 철혈이라고? 진짜 웃긴다.”

 

실실 웃는 아유의 눈동자가 왜인지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이 녀석 로드 오브 아카데미 할 때도 종종 알아봤는데 은근히 남 괴롭히는 거 즐기는 성향이 있단 말이야.

 

“천마, 장난 좀 그만 치시죠. 이쪽은 심각한 상황이니까요.”

 

설향이가 그런 아유를 보며 한숨을 내쉬자 아유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큰 장난 좀 쳤다고 예민하게 나오기는. 그보다 철혈 너 보다 저기 울보가 더 귀여운데. 그냥 바꾸는 건 어때? 아니다. 사실 네가 가짜지?”

“당신이랑 실랑이 버릴 시간 없거든요?”

“그럼 도미 오빠한테 물어보자. 어때, 도미 오빠, 쟤랑 저 울보 누가 더 좋아?”

 

아유가 그렇게 말하자 설향이 슬쩍 내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뒤에 말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잠시동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곤 아유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아유는 장난이 지나쳤다는 것을 눈치챈 듯 찔끔한 표정과 함께 슬쩍슬쩍 뒤로 물러섰다.

 

“자, 장난이니까!”

 

그러곤 그대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도망쳐 버리자 나는 그런 아유를 보다가 설향이를 돌아보았다.

 

“당연하지만 난 설향이 너밖에 없으니까.”

“으응.”

 

확실하게 말까지 해주자 설향이는 살짝 붉게 물든 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미래의 설향은 어느샌가 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린애들은 잠이 많은 편인데 유아 퇴행하니 똑같이 잠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괜히 피곤한데 세워둘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미래의 설향이를 우선 재우기로 했다.

 

“마리 언니는 나랑 이야기 좀 하자.”

 

그러는 사이 설향이는 누나와 미래의 설향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가를 알고자 대화하러 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어느새 주저앉으려는 미래의 설향을 들자 보이는 것에 비해 가벼운 그녀의 무게가 느껴졌다.

 

말랐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느껴지는 몸무게의 착잡함을 느낀 순간 나는 등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걸렸네.”

 

그러자 거기에는 은근슬쩍 따라 들어오려던 은나무가 나긋한 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뒤로 돌아섰다.

 

“나도 이야기하고 있을게.”

 

……집이어도 방심할 수가 없구만.

시호는 대학교 일로, 흑산이와 꽃비는 다른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셋에게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피로한 기분과 함께 미래의 설향이를 침대에 눕혔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손은 내 옷깃을 꼭 쥐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침대에 따라 누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그냥 한숨 자야 할 듯싶었다.

유아 퇴행이나 왕관 쪽 대가는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지금은 미래의 설향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역할로 최선을 다하자.

 

 

 

 

6

 

한숨 깜빡 자고 일어났을 때 나는 새하얀 것이 얼굴을 파묻고 있음을 깨달았다.

너무 부드러운 촉감이 얼굴을 가득 메웠을 때 멍하니 있던 내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거.’

 

익숙한 촉감이다.

그것을 깨달은 내가 고개를 들자 나와 마주한 것은 보석 같은 푸른색의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와 잠시 멍하니 마주하고 있으니 그 눈이 천천히 휘어졌다.

 

“일어났어?”

 

무척이나 상냥한 목소리가 설향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미래의 설향이겠지.

 

설향이 보다는 좀 더 성숙해 보이는 얼굴이 눈에 띄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처음 봤던 모습과는 어딘가 많이 달랐다.

 

나를 바라보며 어린애같이 해맑게 웃던 웃음 대신 어른스러운 잔잔한 웃음을 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향아, 너, 설마.”

 

내가 그녀를 부른 순간 어느샌가 내 입술 위에 설향이의 검지가 올려져 있었다.

그런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잠시 조용해달라는 듯이 그녀는 쉿하니 소리를 내었다.

 

“다른 애들한테 들리면 소란이 일어날 테니까.”

 

나는 그녀의 부탁을 따라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혹시 일부러?”

“그건 아니야. 지금 이건 일종에 안전장치였으니까. 곧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그렇게 말한 설향은 아쉬운 듯이 내 볼을 천천히 더듬었다.

그 손길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을 만지는 느낌이라 여러 생각을 들게 하였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환상을 만지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혹은 자신이 환상이던가.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오랜만인데. 아쉽네.”

“오랜만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보면 돼.”

 

나는 손을 들어 그런 내 볼을 감싼 그녀의 손을 탁하니 잡았다.

비록 그녀는 나와 세계선을 공유하지 않은 사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은나무 때와 같은 꼴이 되게 둘 생각 없었다.

 

“널 되돌리는 방법을 알려줘.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돌려놓을 테니까.”

 

결심을 담은 내 두 눈을 보고 설향은 한차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천천히 눈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무척이나 깊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설향의 세계에서도 나는 똑같이 이런 말을 하기라도 한 걸까.

그녀와 같은 세계선을 공유한 난 이제는 없다.

 

그 세계의 나는 이미 백산을 구하고, 죽고 말았으니까.

 

“하찬아, 나는 돌려놓지 않아도 괜찮아.”

“무슨.”

“나보다도 지금은 더 우선 해야 하는 게 있으니까.”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깨달았다.

그건 분명 그녀가 봤을 세계선의 이야기였다.

 

“에레보스는 지금 묵시록의 탑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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