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겜친들이 귀환자인데 집착함 (242)화 (242/249)

Chapter 242 - 242화 에레보스 찾아 산멀리

“……죽심님, 신계에서 미움받고 계신 이유가 있었잖아요.”

“괜찮아. 그러기 전에도 날 싫어했으니까.”

 

탑을 무너트린 건 복수의 일종이었던 걸까.

죽심이 신계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 만큼 나는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내 손에 케라페를 만들어 쥐었다.

다행히 영체 상태라도 케라페는 잘 나타나 주었다.

 

“계속 온다면 저도 싸울게요.”

 

어떤 일이 있건 나는 신계 보다 죽심의 편이다.

저쪽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망설일 생각 없었기에 그리 말하자 죽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에레보스를 찾으려면 어차피 대화해야 하긴 하니까.”

 

죽심이 그렇게 말하자 추락하는 천사들 사이로 누군가 떠올랐다.

죽심은 말없이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쪽도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죽음의 신이 미쳤다고 신계로 다시 돌아왔구나?”

 

거기에 나타날 것은 황금빛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는 여신이었다.

문제는 여신이라는 직함 때문인지 인간과의 윤리관이 다르기라도 한 듯 그녀는 몸에 두른 천 말고는 전라였다.

 

백옥의 피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충격적인 모습의 내가 경악을 금치 못하니 옆에 있던 은나무가 손을 들어, 내 눈을 가렸다.

 

“흉한 거 보지 마.”

“흉, 흉한 거? 그거 설마 지금 내 몸을 말하는 거야?”

 

여신이 경악하듯 말하자 죽심도 그녀를 못마땅히 보았다.

 

“노출증은 언제쯤 고치려는 거야?”

“노출증!? 어이가 없어서. 옷 같은 게 없으면 체온 관리도 못 하는 하등한 너네랑 나랑 같은 줄 알아!”

 

확실히 그녀와 우리가 지닌 윤리관은 차이가 큰 모양이었다.

씩씩거리는 여신은 이내 숨을 고르며 금발을 손으로 가볍게 넘겼다.

 

“나 태양의 여신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게 참, 황당할 지경이네.”

 

이쪽은 태양의 여신이었나.

확실히 그녀의 주위에는 따스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과연 저 정도 따스함이면 옷을 안 입을 만도 했다.

그녀는 어딜 가든 일정 온도가 유지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죽음의 신, 네가 돌아온 이유는 뭐야? 너를 노리는 녀석들이 신계에 잔뜩 있는 걸 몰라?”

 

태양의 여신은 그렇게 말하며 다른 탑들을 가리켰다.

그녀의 말대로 탑 쪽에는 다른 신들이 벼르고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내가 잠깐 진정시켜서 다행이지. 저놈들 지금이라도 널 어떻게든 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거든?”

“좀생이들.”

“네가 한 짓으로 이름 잃은 녀석들이 몇 명이나 되는데. 좀생이 취급이야.”

“과거 너희들이 한 짓은 잊은 모양이지?”

 

히키코모리 죽심이 아닌 어른 죽심은 태양의 여신을 상대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죽심의 새로운 면모를 본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하아, 그거야.”

 

태양의 여신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우물거리다 이내 입을 닫았다.

 

“네가 정말로 죽음의 신의 심장을 삼킬 거라고는 아무도 몰랐으니까.”

 

그 말을 듣고 나는 죽심을 돌아보았다.

죽심이 신계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삶이 순탄치 않았으리란 것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차원 이동에 휘말린 귀환자에게 그 차원이 친절할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 죽심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똑같이 힘든 삶을 직접 몸으로 겪어 봤겠지.

 

지금의 굳센 죽심은 그러한 삶을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할 말 있는데.”

 

죽심의 말을 듣고, 태양의 여신은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이내 한숨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래도 이 자리는 피하자. 괜히 신들끼리 맞붙어서 탑 부서지는 꼴은 보기 싫으니까.”

 

태양의 여신의 말을 들은 죽심은 탑 쪽을 힐끗 보았다.

그러는 순간 죽심의 몸에서 스멀스멀 검은색 기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붙을 거라면 오라고 해.”

 

무척이나 터프한 죽심의 말이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겁 없는 녀석들이라면 상대해 줄게.”

 

가끔씩 죽심은 게임 속에서 패도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괜히 모든 게임에서 최상위권을 달성하는 게 아닌 그녀이니 말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현실로 보게 된 기분을 느끼고 있으려니 은나무가 슬쩍 내 옷을 당겼다.

 

“내 생각보다 무서운 신이었네.”

 

악신 때문에 여러 고생을 겪은 은나무의 눈에는 죽심이 어떻게 비추는 건지 모르겠지만.

죽심이 기세를 보인 순간 탑 쪽에 있던 신들의 기척이 감추어졌다.

 

죽심의 기세의 지레 겁먹은 듯한 반응이었다.

 

“정말 알았대도.”

 

태양의 여신은 그만 좀 하라는 양 손사래 치자 죽심이 이내 기세를 거두었다.

그러곤 몸을 돌려 가기 시작하자 안도한 태양의 여신은 죽심을 따라 이동했고, 한참 후 우리는 어떤 갈대밭 같은 곳에 도착했다.

 

하늘은 여전히 밤하늘이었다.

마치, 이곳에는 밤하늘밖에 없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으려니 태양의 여신이 우리 쪽을 힐끗 보았다.

 

“그래서 기어코 떠난 신계에 돌아온 이유와 저 둘은 뭔데?”

 

줄곧 궁금했던 물음을 태양의 여신이 던져왔다.

죽심은 그런 그녀의 물음을 듣고 내 쪽을 힐끗 보았다.

 

“내 화신.”

 

그리고 바로 내 소개부터 갈겨버렸다.

화끈한 그 소개를 듣고, 태양의 여신이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이내 나와 죽심을 번갈아 보더니 자신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 죽음의 신이 화신을 삼아? 신 녀석들이 들으면 뒤집히겠네.”

 

대체 죽심은 신들에게 어떤 이미지인 걸까.

적어도 내가 알던 그 히키코모리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는 건 알겠다.

 

“그래서 화신까지 데리고 온 이유는 뭔데?”

 

가장 중요한 건 이거라는 듯 그녀가 다시금 질문하자 죽심은 신계를 스윽 돌아보았다.

 

“어둠의 신, 에레보스.”

 

이어진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태양의 여신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름이 왜 나와?”

“아는 게 있구나.”

 

그럼과 함께 죽심의 눈빛이 변했다.

방금까지 적어도 대화만 하려던 그녀의 기색이 한 번에 변하자 태양의 여신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중간에 끼어 있어서 좋을 건 없다고 판단한 건지 그녀는 서둘러 손사래 쳤다.

 

“자세히 아는 건 아니고, 그냥 좀 얻어들었어. 얼마 전에 차원문을 제멋대로 만져서 사고를 쳤다고. 그 뒤로도 들락거리는 건 몇 번 보긴 했는데. 그게 왜?”

“묵시록의 탑, 알아?”

 

묵시록의 탑이라는 말을 듣고 태양의 여신의 고운 눈썹이 살짝 모였다.

마치, 지금 그게 왜 죽심의 입에서 튀어나오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다가 곧 여러 가지 표정을 보이던 그녀는 이내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묵시록의 탑이 지금 지구에 있었다던가?”

 

묵시록의 탑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자 내 귀도 같이 밝아졌다.

죽심은 처음부터 묵시록의 탑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었던 걸까.

 

그건 알 수 없었지만, 죽심은 질문을 계속해 나갔다.

 

“어둠의 신이 그 묵시록의 탑과 동화를 할 생각을 하는 거 같아.”

“동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왜 그딴 짓을.”

“그건 본인에게 물어봐야겠지.”

 

태양의 여신은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턱을 가린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곧 눈살을 팍 일그러트렸다.

 

“설마.”

 

이어진 반응을 보자마자 죽심이 그녀의 손목을 탁하니 잡았다.

 

“목적을 눈치챈 거지.”

“아니, 그, 목적까지는 아니고. 동화를 해서 노리는 게 무엇인지 까지는 대충 예상가는 범위가 있어서.”

“말해. 난 묵시록의 탑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해. 너희 같은 토종 신들이 아니니까.”

“토종 신이라니 말이라도 예쁘게 해주던가.”

 

툴툴거리면서도 태양의 여신도 지금 상황이 썩 달갑지 않은 듯 죽심의 손을 풀며 말을 이어 나갔다.

 

“묵시록의 탑이 가진 세상을 쓰는 힘 자체를 원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세상을 쓰는 힘.”

“그야, 너희도 지구에 살면 겪어 봤을 거 아니야. 묵시록의 탑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 뭐라고 해야 하지. 세계를 흘러가게 하는 힘? 멈춰 버린 세계는 결국 이름 잃은 신들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는 법이니까.”

 

태양의 여신은 이런 것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듯 죽심을 보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죽심은 태양의 여신에게 다음 말을 재촉했다.

 

“하아, 나원, 그러니까 결국 어둠의 신에게 필요한 건 그 묵시록의 탑의 힘이라 이거겠지. 오히려 내가 궁금한데. 걔, 뭐 하려는 거야? 새로운 세계라도 만든대?”

 

태양의 여신은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런 짓을 해서 얻는 이득이 뭐람. 걔는 이름도 있잖아.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서 자기를 기억해줄 이들을 만들 필요도 없고. 다른 녀석들이 그런 짓 하면 모를까. 진짜로 이해 못하겠는데.”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나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에레보스의 목적은 뭘까.

그리고 그에게서 미래의 설향이 뭘 필요로 하는 걸까.

 

‘에레보스가 동화를 했을 때 묵시록의 탑을 무너트리라고 한 건 대체 무슨 소리고.’

 

머리가 자꾸만 복잡해져 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에레보스는 어디 있어.”

 

죽심은 본론으로 돌아가자는 듯 태양의 여신에게 물었다.

결국 에레보스의 목적은 본인에게 직접 물으면 될 일이니, 말이다.

 

그런 죽심의 물음을 듣고 태양의 여신은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지. 그야.”

 

죽심은 시간 낭비했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우리도 따라 돌아서려던 순간 태양의 여신이 손을 들었다.

 

“그래도 알만한 신은 알지.”

“쓸모가 아예 없지는 않았네.”

“내 취급 너무하지 않아?”

 

태양의 여신이 너무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여도 죽심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녀를 보았다.

너무나 담담한 죽심의 표정을 보고, 태양의 여신은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가 이내 말했다.

 

“칫, 빛의 신이야.”

“그 둘이 친해?”

“빛이 있어야 어둠도 있는 법이니까. 떼려야 뗄 수 없는 법이잖아.”

 

그건 맞는 이야기긴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죽심은 죽음의 신의 심장을 먹어 신에 오른 거인 건 알겠는데.’

 

에레보스는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도 원래는 지구에서 살던 평범한 인간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결국 물어볼 일은 없겠지.’

 

미안하지만 나는 에레보스에게는 딱히 좋은 감정 따위 없었다.

오히려 싫으면 싫었지, 덜 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주위 모든 것을 이용했으니까.

내 지인들이 지금껏 거기에 수없이 휘말렸던 만큼 에레보스는 내게도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 쪽에 피해 끼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는 순간이었다.

 

나는 갑자기 몸 위에 우수수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기묘한 느낌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태양의 여신이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이런, 그 녀석도 결국 눈치챈 모양이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