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4 - 244화 은나무의 신계약
“은나무, 넌 신계는 괜찮아?”
“지금 내 걱정해 주는 거야?”
“걱정이야 늘 하고 있어.”
은나무에게는 이런저런 책임감이 크니 말이다.
그런 나를 보고, 은나무는 나긋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간 외계는 신계와는 엄밀히 다른 곳이니까. 크게 문제없어.”
그렇다면 다행인 이야기였다.
어쨌든 우리는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을 부유했다.
그러기를 한참 잠시 후 내 눈에 자그마한 행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왕자의 행성이 떠오를 정도로 자그마한 행성은 우주 공간을 천천히 날고 있었고, 그런 행성에는 딱 하나의 집 한 채 만이 지어져 있었다.
육안으로 파악될 정도로 작은 행성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태양의 여신은 멈춰 섰다.
그러고는 자기 몸 주위에 천을 갈무리하고는 문 앞에 다가와 섰다.
“빛의 신, 있어?”
그녀는 노크와 함께 빛의 여신을 찾았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죽심이 그런 태양의 여신을 빤히 쏘아보았다.
“자리를 비웠나?”
태양의 여신도 이건 생각 못했던 듯 고개를 기울였다.
이 정도 거리를 왔음에도 빛의 신이 자리를 비웠다니.
“기다려야 할까요.”
내가 태양의 여신 쪽에 물음을 던지자 그녀는 대뜸 다시 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집을 나갔다면 다시 부를 방법은 있어.”
“어떤 건데.”
죽심이 대충 예상 간다는 눈빛을 취하자 태양의 여신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빛의 신이니까. 빛을 강하게 내면 돼. 걔는 강한 빛에 끌리니까.”
빛의 신이 무슨 나방도 아니고, 강한 빛에 끌린다니.
조금 얼빵한 소리 같았지만, 신들이 하는 이야기다.
괜히 머리 아프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녀를 따라 위로 올랐다.
“강한 빛을 내면 되는 거죠?”
“응, 맞아. 나도 태양의 여신이니까. 빛이라면 자신 있어. 금방 불러 볼게!”
“그럼 저도 도울게요.”
내 말을 듣고, 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
“죽음의 신의 화신인 너가?”
죽음을 떠올리면 칠흑 같은 어둠부터 생각나는 만큼 그녀는 이해 못할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맡겨 보라는 양손에 케라페를 만들어 쥐었다.
“일단은 같은 빛 계통이긴 하거든요.”
동시에 내 손에서 붉은색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뇌뢰였다.
‘강한 빛이라고 하니까.’
뇌뢰 자체의 화력은 늘리 돼 파괴력은 줄인다.
단순히 빛의 화력만을 집중하여 만든 결과 붉은색 보다는 백색에 가까운 탄환이 내 손안에 쥐어졌다.
“와, 너, 너, 뭐니?”
그러자 태양의 여신이 두 눈을 경악하듯 뜬 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 정도 에너지를 압축시킬 수 있는 거야?”
신들에게 있어서도 내 에너지는 상당히 비이상적인 모양이다.
하긴, 신이라고 해봤자 결국에는 에너지로 이루어진 덩어리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고, 어느 특이점에 도달했기에 신이라 불릴 뿐이지.
실제로 악신과 같은 이들은 내가 뇌뢰로 떨어트리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니까 되던데요?”
그리고 나는 이런 건 죄다 백산이가 가르쳐준 거인 만큼 대충 말했다.
태양의 여신은 내 대답을 듣고, 얼빵한 표정을 지었다.
“……왜 화신을 삼았나 했더니 엄청난 애를 화신으로 삼았네.”
그러고는 죽심이 왜 나를 화신으로 삼았는지 이해하며 자신도 손을 들었다.
“그럼 기왕 내는 김에 정말로 가장 강한 빛으로 내보자!”
빛의 나방 부르기 대작전이라 이건가.
신나 보이는 태양의 여신의 말을 듣고,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뇌뢰의 탄환을 케라페에 장전시켰다.
그러자 태양의 여신이 내 옆에 갑자기 달라붙었다.
인간보다 체온이 높아 따뜻한 그녀의 부드러운 몸이 느껴져 순간 당황한 찰나 뒤에서 노려보는 은나무에 의해 정신이 바로 식었다.
“힘을 실어주시려는 거죠.”
“응, 맞아. 그 총, 여러 힘을 받아낼 수 있는 거 같으니까. 태양의 힘을 심어줄게!”
신나서 외치는 태양의 여신의 말을 듣고 나는 하늘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태양의 여신의 말마따나 뇌뢰 속으로 깃들어 오는 태양의 힘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과연 아무리 조금 얼빵해 보인다 해도 신이라 이건가.
뇌뢰 속에 스며든 태양의 힘은 상당한 출력을 더 하게 하였다.
오죽하면 뇌뢰에서 터져 나온 힘이 케라페를 덜덜 떨게 만들었다.
“나름 전력으로 쏟아부었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하늘을 겨눈 채 숨을 고르곤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파직!
그 순간 총구에서 번갯불이 튀어 올랐다.
마치, 큰 폭발을 예견하듯 살짝 튀어 오른 번갯불이 주위를 고요하게 울려 퍼진 그 순간.
――――――――――――――――――――!
섬광이 하늘을 뒤덮었다.
하늘을 뒤덮어 버린 번개가 작렬한 순간 주위 모든 게 새하얗게 불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압도적인 빛의 폭격이 점차 흩어져 갔을 때쯤.
나는 겨우겨우 돌아온 시야와 함께 눈가를 매만졌다.
이 정도 빛을 쏟아 낸 거는 처음이라서일까.
마치, 우주 공간 속에 태양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오죽하면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눈꺼풀을 넘어 빛이 새어들어 왔을 정도였으니까.
“온다.”
그 순간 죽심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리 말했다.
죽심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린 그 순간 하늘에서는 빛의 유성이 이쪽으로 세차게 날아오고 있었다.
“빛의 신!”
그 빛의 유성을 본 태양의 여신이 팔을 들고 해맑게 손을 휘젓는 순간이었다.
“푸각!”
날아든 빚덩어리에 맞은 태양의 여신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사이 순식간에 행성에 도달한 빛은 곧 사람의 형상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사람의 형상이라고 하기는 그랬다.
그것은 상체보다 다리가 훨씬 더 길고, 발 쪽도 일반적인 인간의 발이 아니라 뾰족한 날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머리 쪽은 얼굴 대신 이리저리 뿔 같은 것이 삐죽삐죽 솟아나 있었다.
인간의 형체와는 거리가 상당히 먼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빛의 신의 턱이 열렸다.
[ 조금 전 그 빛을 내보낸 것은 너인가? ]
빛의 신이 내 쪽을 바라보며 물어왔다.
목소리라기 보다는 어린 폼 죽심이 말을 걸 때 오는 듯한 감각과 비슷했다.
“예, 그렇습니다.”
[ 나에게 빛으로 도발하다니. 재밌는 녀석이로군. ]
빛의 신한테는 빛을 사용하는 게 도발이라고 생각 드는 건가?
[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나. 모든 빛은 내 손 안에 있거늘. 어느 빛을 사용하던 결국 내 빛을 일부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내 빛을 그렇게 대량으로 사용해 버렸으니 그거야말로 도발이 아니겠나. ]
나로서는 살짝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진 것 같았다.
하긴, 신들의 가치관을 이해하려고 해봤자 내 머리만 아플 뿐이다.
“죄송합니다. 빛의 신께 볼일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 볼 일? ]
빛의 신은 의문을 보였다.
그러다가 곧 무언가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허공에 뜬 두 다리를 아래위로 가볍게 휘둘렀다.
[ 그렇군. 어둠의 신을 찾으러 온 거군. ]
“알고 계셨습니까?”
그 말을 듣고, 내가 놀란 눈으로 보았다.
뒤에 있던 죽심과 은나무의 표정도 바뀌었고, 태양의 여신은 ‘거봐!’하면서 신나 했다.
태양의 여신께는 감사해야겠다.
일이 생각 보다 빨리 풀릴 것 같았다.
[ 죽음의 신이 들어왔다는 건 빛을 통해 들었으니까. ]
빛의 소리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나는 그에게 바로 물었다.
“그렇다면 어둠의 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에레보스가 어디 있는지만 안다면 일은 일사천리다.
그렇기에 내가 다급히 그에게 묻자 빛의 신은 골골골 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 내가 그걸 가르쳐줘서 얻는 대가는 무엇이지. ]
대가라는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그에게 제시할 수 있는 대가라는 게 있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 어둠의 신이 죽으면 빛 또한 그 힘이 약해진다. 내가 구태여 어둠의 신을 너희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어 보이지 않나? ]
인간들의 일은 어디까지나 인간 개인의 문제다.
에레보스가 아무리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계에 있는 빛의 신에게는 별 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대가를 요구한 겁니까?”
[ 그래. ]
“그렇다면 저희가 당신이 원하는 대가가 있습니까?”
빛의 신은 우리에게 구태여 대가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소리로 해석되었다.
그렇기에 내가 질문을 하자 빛의 신은 또 한 번 골골 소리를 내었다.
[ 어둠의 신은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이 흐르면 결국 소멸할 운명이다. ]
아무래도 빛의 신은 지금 에레보스가 묵시록의 탑과 동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의 처지에서는 결국 에레보스가 소멸하여 자신의 힘이 약해질 것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 그렇다면 놈이 소멸하는 대신 새로운 어둠의 신이 필요하겠지. ]
“지금 그 말은 어둠의 신이 되라 이 말씀이십니까?”
[ 해석하기 나름이겠지. ]
얼굴이 없어서 그런가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결국 빛의 신은 자신의 힘만 무사할 수 있다면 된다는 이야기인 건 확실한데.
‘어둠의 신이라니.’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내가 눈살을 찌푸린 순간 갑자기 은나무가 내 옆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내가 여기 올만 한 이유가 있었네.”
“……은나무?”
은나무를 의아한 눈으로 보던 나는 잠시 후 그녀가 무슨 생각인지 눈치챘다.
“잠깐, 안돼.”
“하찬, 원래 내 몸은 신을 담는 그릇 같은 형태가 되어 있어. 악신들이 나를 장난삼아 이리저리 주물러 만들었으니까.”
은나무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은나무의 희생처럼 느껴졌다.
“내가 할게!”
그런 거라면 내가 하면 된다.
“엥? 넌 못하지.”
그렇기에 외치자 태양의 여신이 대뜸 말했다.
“어째서 저는 못 하는 겁니까?”
“넌 죽음의 신의 화신이잖아. 몸에 담겨 있는 그릇이 이미 죽음의 신으로 채워졌어.”
그 말을 듣고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죽심의 화신이 된 것이 발목을 잡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내가 빠르게 이 상황을 어찌할지 머리를 굴리는 순간 은나무가 입을 열었다.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정곡을 찌른 은나무의 말에 내가 멈칫했다.
그 말대로 나는 지금 은나무를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 악신을 상대하던 당시 사라져 가던 그녀의 기억 파편이 오버랩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손으로 사라지게 한 그녀의 기억이다.
은나무를 또 잃게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은나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나긋하게 웃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신들이 저마다 희생해서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 말을 듣고 나는 죽심을 돌아보았다.
죽심은 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이 되는 것을 택했다.
거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섣불리 말하지 않자 죽심은 은나무 쪽을 돌아보았다.
“신이 된다고 해서 일상이 딱히 달라지는 건 없어. 나도 그랬으니까.”
실제로 죽심은 언제나 평온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신이 된 것을 후회했다는 모습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전에 이름을 잃는 신이라던가 여러 가지 있잖아요.”
만약 그렇다면 어둠의 신이 된 은나무가 다른 신들과 같이 탑을 쌓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런 내 의문에 죽심은 한차례 고개를 저었다.
“도미, 아까전에 내가 의미 없다고 한 말 기억해.”
그야, 기억한다.
죽심은 분명 탑을 쌓는 신들에게 전부 다 부질없다고 말했으니까.
“그건 그 말 그대로야. 신도 결국 죽음은 거스를 수 없어. 정확히는 소멸에 가깝겠지만.”
죽심은 그렇게 말하며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건 사람도 똑같아.”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든다면 언젠가 사람은 죽는다.
신은 그 시간적 개념이 다를 뿐, 결국에는 인간과 같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은나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곤 따라 웃었다.
“난 하찬이 죽을 때까지만 살아 있어도 충분해.”
그게 무슨 망발인가 싶긴 하지만.
나는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살아 있는 시간보다 더 오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