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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겜친들이 귀환자인데 집착함 (247)화 (247/249)

Chapter 247 - 247화 넌 혼자잖아

11

 

어둠의 신.

에레보스.

 

그리스 신화에서 태초부터 있었던 고대 신.

태초의 신에 속하는 만큼 가장 격이 높은 신으로 취급받으나 현실은 꼭 신화와 같지는 않다.

 

지금의 에레보스는 굳이 따지자면 신화의 에레보스와는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죽심이 죽음의 신의 심장을 삼켜 죽음의 신이 되었듯이 에레보스 또한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에레보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 신화는 물론 다른 신화에서 나오는 태초의 신들은 일종의 에너지 덩어리에 가깝다.

의지도 없고, 의도도 없는.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신이라는 개념의 에너지 덩어리.

그 에너지 덩어리를 삼키고, 의지를 갖게 된 것이 에레보스와 죽심이라는 케이스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빛의 신은 은나무가 에레보스를 이어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겠지.

 

“여긴가요.”

“응.”

 

어둠 속을 헤쳐 나간 내가 죽심에게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앞, 새까만 공간만이 펼쳐진 이곳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둠이 한 지점으로 자꾸만 몰려들고 있었다.

팔에 소름이 돋을 만큼 기묘하기 짝이 없는 어둠의 흐름은 사람으로서 보면 안 되는 것을 보는 듯한 기분을 자꾸만 들게 했다.

 

그러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눈동자 하나가 번쩍 뜨인 것이.

 

[ 기어이 오고 말았군. ]

 

빛의 신과 같이 머릿속 자체에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레보스의 얼굴을 본 적 있는 나는 그의 얼굴에서는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설마 눈과 같이 일부는 신계에 두고 있던 것일까.

 

은나무가 낫을 들어 올리자 나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에레보스가 신계를 마음대로 다니는 건 들었긴 했지만.'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신체 일부를 둠으로써 왕래하고 있을지는 몰랐다.

이러니 귀환자 협회가 그토록 쫓아도 잡지 못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에레보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에레보스의 눈이 한차례 움직였다.

죽심과 은나무를 바라본 에레보스는 우리를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 나를 죽일 건가? ]

 

그 질문을 듣고, 그를 잠자코 보던 나는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보다 한 가지 좀 물어나 보자."

 

미래의 설향은 내게 에레보스가 동화를 하고 나서 탑을 무너트리라 하였다.

내가 죽심을 힐끗 보자 그녀는 내 생각을 눈치채고 고개를 저었다.

 

역시 에레보스는 아직 동화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 섣불리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 이야기? 내가 해줄 이야기는 없다. ]

"나도 네가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야."

 

에레보스가 저지른 짓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다.

설령 그에게 어떤 대의가 있다고 한들 그에 의해 수많은 이들이 고통받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받은 것은 내 지인들이다.

나는 세계를 지키지는 못해도 내 사람만은 꼭 지키고자 한다.

 

그런 만큼 내 지인들을 위험에 빠트린 에레보스를 용서할 생각 없었다.

 

"단지, 내가 아는 사람이 널 통해 뭘 이루려는지 알고 싶어질 뿐이다."

 

내가 에레보스에게 궁금한 것은 그것 하나뿐.

그렇기에 내가 그를 보며 묻자 에레보스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

 

그러자 에레보스 쪽에서 도리어 질문이 돌아왔다.

 

[ 너희는 대체 뭘 보고 있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냐. ]

 

그리고 상당히 이상한 질문이 돌아왔다.

내가 이해 못할 질문을 듣고, 의문을 보인 순간 에레보스의 눈이 반쯤 감겼다.

 

[ 강하찬. ]

 

그리고 에레보스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역시 저쪽도 내 이름을 알고 있었나.

 

[ 네게 접근한 수많은 이들이 모두 선한 뜻이라 생각하는 건가? ]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내 몸 주위에서 붉은색 스파크가 번쩍하니 튀어 올랐다.

 

"그런 소리를 지껄일 거라면 이야기 들을 필요는 없겠네."

 

다른 건 몰라도 내 사람들을 제멋대로 힐난하는 건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에레보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나에 관해 무슨 생각을 하든 좋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에레보스의 눈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적어도 내 사람을 욕보이지는 말아야지."

[ 우습군. 너는 분명 그걸 후회할 날이 올 거다. ]

"후회는 개뿔이."

 

나는 코웃음 쳤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알겠다.

 

에레보스는 나에 관해 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관계는 지독할 정도로 뒤섞여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으면 안 될 존재가 될 만큼 깊숙하게 말이다.

그것이 설령 미래의 설향의 입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관계는 우리가 만든 것이었다.

 

"네가 못 만든 소중한 관계를 남이 못 만들 거라 생각하지 마."

 

내가 에레보스를 향해 경고하자 그는 한동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내 눈을 한 번 감더니 다음 말을 하였다.

 

[ 그렇다면 지금쯤 현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이는 것도 괜찮겠군. ]

 

현실이라니?

내가 의문을 품은 순간 갑자기 주위 어둠이 변형하기 시작했다.

 

내가 급히 오러를 끌어 올렸지만, 어둠은 우리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대신 어둠은 어떤 형태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고, 완성된 형태는 다름 아닌 지구의 모습이었다.

 

내가 그곳을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자 에레보스의 눈이 따라 움직였다.

 

[ 보아라. 그 관계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

 

그곳에 비춘 것은 전혀 생각지 못한 장면이었다.

왜냐하면 미래의 설향이 나를 등에 업은 채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뭔.

분명 유아 퇴행을 보이던 그녀가 갑자기 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 순간 에레보스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에레보스에게 시선을 옮기자 그는 노란 눈을 선명하게 반짝였다.

 

[ 널 지키던 여자들을 다 쓰러트리고 저렇게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더군. 이래도 과연, 네 주위 사람은 모두 믿을만한 인간인가? ]

 

나는 에레보스에게 눈을 떼고 다시 미래의 설향을 보았다.

저토록 달리고 있는 그녀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지만 내가 먼저 든 생각은 다른 거였다.

 

그녀가 내 몸을 해치는 것보다도 다른 방향이 말이다.

 

‘설마.’

 

안 좋은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입안이 순간적으로 바싹 메말랐다.

 

왜냐하면 나는 이 느낌을 이미 한 번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간 내 시선이 은나무에게 닿았다.

 

그녀의 눈에 의문이 서린 순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묵시록의 탑에 갔을 때 그녀가 행동을 개시한 이유.

 

그것이 무엇일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생각이 많은 모양이군. ]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에레보스는 읽지 못한 듯 나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그는 모든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넌 어떤 삶을 산 거야?”

 

그래서 불쑥 내 입에서 질문이 튀어나왔다.

 

나 또한 한때 사람을 불신하던 적이 있었다.

곽사연의 일로 지독할 만큼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었으니까.

자존감도 남은 것도 하나 없던 그 시절.

 

에레보스를 보고 있으니 그때의 날이 떠올랐다.

 

기라성에 있을 때조차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나아간 그는 이제는 묵시록의 탑과 동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수많은 내 주위 사람들 덕분에 그러한 세상 속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에레보스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려는 건 너에게 있어서 어떤 구원이 되길래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나는 연이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이 언제나 숙명적인 일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마치, 자신이 꺾이면 세상이 끝나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에레보스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비웃음을 짓던 그에게 내가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네가 원하는 세상은 대체 어떤 세상이길래…….”

[ 알지도 못한 주제에 아무렇게나 지껄이지 마라. ]

 

에레보스의 역린을 건드리기라도 했는지 그의 입에서 분노에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감히, 너 따위가 자신을 낮춰 보냐는 듯이 그는 맹수의 울음처럼 나를 경고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나는 잠시동안 말을 멈췄다.

그가 무슨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그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도 에레보스는 고독하리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네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는 몰라도.”

 

내 손에서 붉은색의 번개가 튀어 올랐다.

동시에 푸른색 빛줄기가 따라 흐르며 점차 그 현상이 검의 형태가 되었다.

 

파직!

 

튀어 오른 스파크와 함께 바즈라가 쥐어졌다.

 

“적어도 그 세상이 오면 안 된다는 건 잘 알겠다.”

 

내 말을 들은 순간 에레보스가 그 즉시 어둠을 불러일으켰다.

내게로 어둠이 쏟아진 그 찰나 죽심과 은나무가 동시에 움직였다.

 

죽심의 지팡이가 어둠을 몰아내고, 은나무의 낫이 어둠을 갈랐다.

그 사이로 나는 어둠 속을 뚫고 에레보스를 향해 파고들었다.

 

에레보스는 이번에도 어둠을 일으켰지만, 그의 공격은 신계의 어둠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우리 엄마에게 이어받은 능력인 디멘션 브레이커가 통하는 공격이라는 소리였다.

 

파지지직!

 

튀어 오른 푸른색 번개가 그 즉시 에레보스의 어둠을 향해 뻗어졌다.

그러자 어둠은 조금도 대응하지 못하고, 모조리 산산조각이 나며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 사이로 내가 또 한 번 박차자 어둠이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 갔다.

나는 그것이 에레보스가 신계에 남겨 놓은 반쪽임을 눈치챘다.

 

내 능력을 상대로 상성이 좋지 않으니 남은 절반으로 싸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몸의 절반은 어둠으로 이루어진 에레보스와 내 눈이 마주쳤다.

 

마치, 자신의 격을 보여주듯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오싹함이 전신을 휘감아 올랐다.

괜히 기라성의 수장이 아니라는 것처럼 그에게서 나오는 기백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다리는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내 옆에는 나에게 줄곧 길을 가르쳐 주던 백산이 없다.

그러나 백산은 물론 아유까지 하여 지금까지 수없이 단련되었던 나다.

 

이런 걸로 겁먹고 도망치기에는 나도 이미 상당한 사선을 넘어왔다.

 

채엥!

 

뻗어진 내 검과 에레보스의 검이 맞부딪치며 스파크와 어둠이 터져 나왔다.

어느샌가 새까만 검 한 자루를 쥔 에레보스가 몸의 절반은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자유롭게 공격을 퍼부어 왔다.

 

그때마다 주위 어둠이 뒤흔들리며 나에게 쇄도해 왔지만 나는 전신에서 오러를 일으키며 어둠을 몰아냈다.

 

‘상성 면에서 내가 유리해.’

 

어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빛 앞에 약한 법이다.

내 오러의 속성은 번개라 할지라도 일단은 빛을 머금은 상황.

 

에레보스의 어둠보다도 강하게 빛나는 내 번개 앞에 그의 어둠은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몸 중 절반이 어둠인 것도 한몫하겠지.

 

‘빛의 신이 왜 에레보스에게 우리를 선뜻 보냈는지 알겠어.’

 

내가 빛의 신을 부르기 위해 사용한 빛이 그에게 있어서는 일종에 시험이었던 것이다.

최소한 에레보스를 상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없는지 말이다.

 

‘그렇다면.’

 

내 몸에서 따라 흐르는 번개의 빛이 점점 더 강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에레보스의 어둠도 더더욱 위축되었다.

 

확실히 그에게 빛은 카운터였다.

 

채엥!

 

뻗어나간 바즈라가 또 한 번 에레보스의 검과 부딪쳤다.

이전에는 능숙하게 쳐냈던 에레보스였지만 이번에는 전과 같은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몸을 이룬 절반의 어둠이 내 빛에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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