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
* * *
넓고 호화로운 방 안의 분위기가 고요하고 무겁기만 하다.
더없이 화려한 침상 위에 누워 있는 백발의 수척한 노인.
노인은 눈을 뜨고 있음에도 눈동자에 초점이 전혀 없어, 흡사 얼이 빠진 모습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 노인이 바로 강호에서 천마라 불리는 존재이며, 내 사부님이다.
나는 침상 옆에 꿇어앉은 채 사부님의 앙상한 왼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사부님······.”
역시나 사부님은 눈을 뜨고 있음에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노환과 함께 찾아온 매병이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완전히 이지를 상실한 상태가 된 것이다.
강호를 양분한 채 그 한 축을 담당하던 거인의 최후 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최후라고 할까. 물론 이 사실은 천마신교 내에서도 극비로 관리되고 있다.
처음 제자가 된 게 스물두 살 때의 일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서른두 살이다.
사부님에게 매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삼 년 전쯤부터였으니, 내가 사부님과 제대로 추억을 쌓은 시간은 고작 칠 년 정도에 불과했다.
짧은 기간이었으되 추억은 많았다. 그 추억을 되새기며 지금의 사부님을 보고 있자니 탄식이 절로 흘러 나왔다.
“아아아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 건 그 때쯤이었다.
“오(五)사제, 와 있었네?”
“오사형!”
방 안으로 들어선 건 사형제들이었다.
이(二)사형 두영산, 삼(三)사형 범무걸, 사(四)사형 조중렴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내 하나뿐인 사제 섭방현이 그 뒤를 따라 들어서고 있었다.
사형들을 향해 공손히 목례했다.
“이사형, 삼사형, 사사형,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오랜만이네, 오사제.”
사형들이 미소 띤 얼굴로 대꾸하자 사제 섭방현이 바로 내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사형.”
“사제도 잘 지냈지?”
대강의 인사를 마친 후 사형들을 향해 말했다.
“대사형까지 오셨으면 오랜만에 사형제가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거였는데 아쉽네요.”
내 말에 이사형 두영산이 대꾸했다.
“아, 그렇지 않아도 금방 오실 거야. 그러면 오사제 말대로 우리 사형제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겠네.”
“오! 그렇겠네요.”
대꾸를 하고나니 그제야 사형제들 모두가 검집을 차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마전에서는 호위 무인들을 제외하면 어느 공간에서든, 그 누구든 병장기를 패용하는 게 금지되어 있다. 천마에 대한 기본적인 예를 보이기 위한 규칙이었다.
“저어······, 사형들. 밖에 해검하고 오는 걸 깜빡하신 모양입니다. 사제도 마찬가지고.”
“아? 그러네?”
“우리가 술 한잔씩 걸치고 오는 길이라서 깜빡했나 봐.”
“하여간 술이 웬수지 뭐야.”
“앗! 저조차도 깜빡하고 실수를······.”
다들 제법 마신 모양인지 주향이 진동하고 있긴 하다.
한데 왠지 모르게 사형제들의 어조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이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대사형 위지광이 앞선 가운데 그의 뒤를 두 사람이 따르고 있었다. 한 사람은 흑풍대주 염창직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수라단주 전호척이다.
삼단이대三團二隊로 대표되는 천마신교의 오대 무력단체 중에서 최강이 소수정예의 흑풍대고, 두 번째가 수라단이다. 대사형이 그 두 단체의 수장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대사형 위지광이 나를 보며 말했다.
“어? 오사제, 오랜만이네?”
“가, 강녕하셨습니까, 대사형.”
대사형 위지광에게 목례를 하는 와중에도 내 시선은 방금 들어선 세 사람의 허리춤에 향해 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 그 세 사람도 모두 병장기를 패용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나로서도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장기도 병장기지만, 나를 향해 짓는 사형들의 미소에서 왠지 모를 비릿함이 느껴지고, 나를 바라보는 흑풍대주와 수라단주의 눈동자에서 더없는 삭막함이 느껴졌던 탓이다.
내 경계심이 표정에도 드러났는지 대사형이 물었다.
“왜 그래, 오사제? 뭐 문제라도 있어?”
대사형의 미소가 더욱 비릿해져 있었다.
“천마전에서, 게다가 사부님의 방에서 병장기라니요. 이러면 안 되잖습니까.”
“아, 난 또 뭐라고. 병장기야 뭐, 다 이유가 있으니 차고 들어온 것 아니겠어?”
대사형의 대꾸를 듣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돌아보니 대사형뿐만 아니라 모두가 나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건, 명백한 살기였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저들은 나를 죽일 생각인 것이다.
몸이 덜덜 떨리는 가운데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세상에, 사부님이 계신 사부님의 방에서, 다른 이들도 아닌 사형제들에 의해 갑자기 이런 상황을 맞게 되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내 입에서도 평소의 깍듯한 경어는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뭐하자는 건지는 두고 보면 알 거고, 내가 항상 궁금했던 건 이거였어. 대체 사부님은 뭐하자는 거였을까?”
내가 눈매를 좁혀 보이자 대사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구대가문 출신이 아닌 일반교도 출신을 굳이 제자로 받은 걸까. 왜 오사제에게는 천마의 무공을 전수하지 않은 채 처음 보는 이상한 무공이나 전수하고 있는 걸까. 우리에게는 틈만 나면 호통을 치면서 왜 오사제에게만큼은 다정할까.”
“사부님께서 꾸준히 연구해온 실험적인 무공이 있다 하셨소. 실험적인 걸 구대가문 출신의 제자들에게 전수할 수는 없으니 나를 통해 시험해보셨던 거요. 어떤 오해들이 있으셨던 간에 실상은 그뿐이오.”
내가 항변했지만 사형제들은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대사형이 말했다.
“우리도 최근까지는 그런 줄 알았어. 노인이 되셨으니 심심함을 달래고자 오사제 같은 사람을 제자로 들였나 싶었지. 한데 그것만이 아니었잖아? 오사제의 성취,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잖아? 이미 다른 사제들을 뛰어 넘은지는 오래고, 지금은 내 경지에 가까워지는 중이잖아? 그걸 우리가 언제까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그, 그건······.”
“사부님을 제외했을 때 교내 무공서열 일이 위를 다투는 게 검마 장로와 비마 장로지? 그 두 분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 오사제의 발전 속도가 너무도 가공할 정도여서, 향후 이삼 년 안에 내 경지마저도 충분히 넘어설 거래.”
사형제들에 비해 내 성취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당연히 사부님은 한참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계셨을 터였다. 그랬기에 나를 일찍 알았어야 한다는 식의 말씀을 반복하셨던 것이고.
하지만 사형제들의 자존심 문제도 있고 하니, 나는 여태 그 사실을 눈치껏 감추며 조용히 지내왔다. 물론 사부님의 뜻도 같았다.
한데 본교 최고의 고수들인 만큼, 검마劍魔 장로와 비마飛魔 장로는 내 성취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어차피 차기 교주는 대사형이고, 그리되면 나 또한 대사형이 휘두르는 한 자루의 검이 될 뿐이잖소. 애초에 내가 교주 자리에 욕심도 없고, 그래서 본교의 권력구도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모두가 잘 알고 있잖소. 그런데 지금, 왜 이러시느냔 말이오.”
대사형이 대답 대신 품속에서 서류로 보이는 종이를 꺼냈다. 그가 두어 장쯤 겹쳐 있는 서류를 펼치더니 첫 면을 내게 보였다.
안력을 돋워 빠르게 내용을 훑던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차기 교주로 지명한다는 사부님의 친필 유언장이었다. 사부님의 서명과 천마의 직인이 번듯하게 찍혀 있었다.
날짜는 삼 년 전, 사부님의 여든한 번째 생신날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때는 사부님에게 노환으로 인한 매병의 초기 증상이 나타나고 있을 때였다.
대사형이 다음 서류를 보였다.
확인해 보니 같은 내용의 유언장이었고, 날짜에서 연도만 일 년이 더 빨랐다. 그 다음 유언장도 같은 내용으로, 오 년 전 사부님의 생신날에 작성된 것이었다. 그때는 명백히 사부님에게 매병의 증상이 없을 때였다.
즉, 삼 년 전의 유언장은 몰라도, 사 년 전과 오 년 전의 유언장들은 유효한 유언장들인 것이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차기 교주 자리에 조금도 욕심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사부님이 잘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왜 저런 걸 작성하셔서 조용히 살던 나를 이런 상황으로 내모셨단 말인가.
왜였을까.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부님이 나를 이렇듯 곤란에 빠뜨릴 목적으로 저 유언장을 작성하셨을 리가 없다.
오히려 저 유언장의 진심을 믿는 쪽이 더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실제로 나를 차기 천마로 추대하는 일이 추진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사부님의 주도 하에, 극비리에.
사부님은 결코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할 분이 아니시다.
그러니 믿을만한 자들과 합심하여 남몰래 추진되고 있던 안배들이 중간에 틀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러다가 사부님이 저렇게 되자, 이후에 내부 배신이 일어났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순간적으로 수많은 추측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당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대사형, 어차피 그 유언장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소. 여기 있는 우리만이 아는 유언장인데다가, 대사형도 내게 보여준 후 파기할 거였잖소. 나 또한 못 본 것으로 할 것이오. 내가 애초에 교주 자리에 관심이 없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곧바로 대사형을 향해 다시 말했다.
“내가 내 의지로 대사형이나 사형제들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나아가 본교에 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소. 그러니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갑시다. 앞으로도 나는 본교의 권력구도에 일절 관여하지 않은 채 지금처럼 조용히 살겠소.”
“본교의 구성원 중 대다수는 일반마도들인데, 그들이 오사제에게 열광하고 있어. 일반마도들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오사제이니, 오사제 또한 차기 교주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는 거야. 이 상황에서 오사제의 성취가 조만간 나를 추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아가서는 유언장의 내용까지 알려져 봐. 어떻게 될까?”
대사형의 말인즉 기어이 나를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절망스러웠다.
내가 어떻게 몸부림치든, 오늘의 나는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망에 처음부터 걸려 있었던 거다.
“교내의 여론이든 유언장이든, 나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지면 분란이 일어날 여지조차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렇지. 거기에 더해서 이참에 노인네까지 가셔야 분란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겠지.”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미, 미친······!”
“어차피 저 모습이 살아 있는 모습은 아니잖아? 노인네도 이렇듯 천마로서의 품격만 계속 떨어트리느니 차라리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실 걸?”
“정신 나갔구려! 어찌 이런 천벌 받을 짓까지 하려는 것이오! 그리고 말끝마다 노인네라니! 말씀을 가려서 하시오!”
분노하여 대사형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대사형은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은 채 평온한 어조로 대꾸할 뿐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발표될 때는 우리가 시해한 게 아니게 될 테니까.”
나는 또다시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모든 걸 내게 뒤집어씌우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이, 이런 개 같은······!”
대노하여 눈알이 뒤집힌 내가 그 말을 내뱉었을 때쯤.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던 대사형이 좌우를 한 차례씩 둘러보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풍대주와 수라단주와 사형제들이 일제히 검을 빼들고는 나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대사형은 현재의 나보다 강하고, 흑풍대주와 수라단주는 대사형보다 더 강하다. 다른 사형제들도 나에 비해 약할 뿐, 기본적으로는 고수들이다.
게다가 나는 무기가 없는데 저들은 무기까지 있다.
즉, 나는 이 공간에서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
한 마디로 저항이 무의미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 뒤쪽으로 날아올랐다.
슈슈슈슉!
날카롭고 강력한 몇 가닥의 검기가 허공에 떠있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개중 두 개의 검기는 기어이 내게 약간의 상처까지 남겼다.
이후에 내가 착지한 곳은 침상 뒤편 구석의 좁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되자 사부님이 누워계신 침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마주보는 형국이 되었다. 물론 스스로 구석으로 들어왔으니 내 입장에서는 더욱 완벽하게 포위된 형태가 되었지만.
대사형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퍽이나 노인네 위하는 척하더니, 결국 오사제도 노인네를 방패막이로 삼겠다는 거네? 한데 이것도 의미 없다는 거, 알고 있잖아?”
어차피 사부님도 죽일 셈이니 거칠 게 없다는 뜻.
사부님의 머리맡 쪽으로 한 걸음 옮기며 대사형에게 대꾸했다.
“하는 짓이 금수만도 못하니 보이는 것도 다 그 수준인 모양이구려.”
저것들은 이제 사형제도 아니니, 내 입에서도 고운 소리가 나올 리 없었다. 가뜩이나 나는 곧 죽게 될 판국이 아닌가.
처음으로 확 굳어진 대사형의 얼굴에 대고 다시 말했다.
“아직 정신이 온전하셨을 때 사부님이 내게만 따로 당부하셨던 게 있었소. 나는 마지막순간까지 그 당부를 들어드리려 하는 것뿐이오.”
모두가 의문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는 사부님의 머리맡에 있는 고급스러운 탁자 위쪽으로 손을 뻗었다.
“저, 저 미친놈이 설마 마신상魔神像을······!”
이사형 두영산의 말처럼, 그 탁자 위에 있는 건 천마신교에서 신성시하는 아수라상이었다.
몸통은 하나인데 얼굴은 세 개고 팔은 여섯 개나 달렸다는, 그 아수라의 모습을 형상화한 게 바로 아수라상이다.
이 탁자 위에 있는 아수라상은 길쭉한 상아를 재료로 써서 만든 소형 조각상이었다.
통칭, 상아 아수라상.
크기는 작지만 세심한 조각 기법이 돋보이는, 그래서 예술적 가치마저 매우 높은 보물이기도 했다.
지체 없이 그 조각상을 집어 들었다.
내 앞에 있는 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모두가 주춤한 기색이었다. 나를 죽이려면 천마신교의 성물인 상아 아수라상도 파괴될 텐데, 그래도 되나 싶은 것이다.
나는 히죽 웃어 보이며 상아 아수라상에 공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내 의도를 알아챈 대사형이 외쳤다.
“미, 미친 별종 새끼! 설마 그 성물을 부술 생각······!”
내가 별종인 건 맞지만 지금의 나는 별종 짓을 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아까도 밝혔듯 마지막 순간이니 사부님의 당부를 지켜드리려는 것뿐이다.
퍼억!
상아 아수라상이 내 공력을 못 버티고 터져 나갔다.
모두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을 때쯤 나는 상아 아수라상 안에서 나온 작은 구슬을 잡아챘다.
여러 색깔의 영롱한 빛을 품고 있는 구슬.
그 구슬을 확인한 모두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구슬을 입안에 넣었다.
구슬은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으며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그 직후, 나는 모든 공력을 최대한의 속도로 체내에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사부님의 당부에 따른 행동이었다.
“서, 서, 설마 방금 저거······.”
“뭐, 뭐였더라? 저거 이름이······.”
“치, 칠채······! 칠채마주七彩魔珠!”
“그래! 칠채마주!”
“하, 하지만 본교의 전설에서나 나오는 것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내 앞에 있는 자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그런 말들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즈음에는 나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내가 알기로도 칠채마주는 전설상의 영단이다. 한데 체내의 어디에서도 영약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입안에서 녹듯이 사라진 만큼 어마어마한 잠력潛力이 내공에 금세 더해질 줄 알았는데, 아무리 공력을 순환시켜도 내 공력 이외의 다른 힘은 조금도 더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이게 아닌데······!’
칠채마주의 힘을 이용해서라도, 어떻게든 저 금수와 다름없는 놈들을 처단하고 사부님을 지키려던 것인데.
그게 여의치 않으면 최소한 대사형만큼이라도 저승길의 벗으로 삼을 계획이었는데.
그 순간 황당함 가득한 내 눈에 비친 건, 참혹하게 일그러지고 있는 대사형의 표정이었다.
“죽엿!”
대사형을 제외한 모두가 침상을 넘으며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보인 건, 사부님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는 대사형의 모습이었다.
검을 뽑아들자마자 대사형도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습관처럼 장력을 발출하며 방어식을 펼치고는 있지만, 내 부릅뜬 눈은 사부님의 가슴께에서 쉬이 떠나지 못했다.
사부님의 가슴에서 금세 선혈이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눈이 뒤집혔다.
“개만도 못한 것들······!”
악을 쓰며 혼신을 다해, 연거푸 장력을 쏟아냈다. 한 놈이라도 죽이고 싶은 심정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어차피 구석에 포위당한 형태라 피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흑풍대주와 수라단주의 검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거의 동시에 내 심장을 찔러오고 있었다.
다른 놈들의 공격을 막고 있었던 탓에 저 두 개의 검을 모두 막을 방도가 없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한쪽에 대고 장력을 발출한 순간.
푹.
섬뜩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이 가슴께에 전해졌다.
시선을 내렸을 때 보인 건, 내 가슴에 박혀 있는 흑풍대주 염창직의 검이었다.
다시금 시선을 올렸을 때 보인 건, 유혈이 낭자한 침상과 그 위에 축 늘어져 있는 사부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 인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