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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3화 (3/416)

내 안에 마교있다 3

얼굴, 그러니까 왼쪽 볼에 모종의 따끔한 충격이 연이어 전해지는 가운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송 형! 괜찮으시오? 정신 좀 차려보시오! 송 형!”

짝짝! 짝짝!

일정한 간격으로 볼에 전해지는 충격이 조금 더 강해졌다. 동시에 방금 전과 같은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송 형! 송 형! 정신 좀 차려 보시란 말이오! 송 형!”

아까보다 더 다급해진 어조였다.

누군가의 손바닥이 내 볼을 때리고 있으니, 저게 나를 깨우는 소리라는 건 알겠다.

한데 송 형이라니? 뭐야?

내 이름은 서무욱인데 ‘서 형’이 아니고 ‘송 형’이라니?

다 떠나서, 저런 식의 ‘형’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부를만한 사람이 있긴 했던가?

일단은 눈을 떠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쯤, 두개골 위쪽에서 끔찍한 고통이 전해져왔다.

“크으으······.”

“헛! 송 형! 송 형! 정신이 든 것이오?”

송 형이라고 부르는 저 목소리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도 모르게 오른손이 머리통 위쪽의 상처 부위로 갔다.

머리카락에서는 차가운 물기가 느껴지는데, 상처 부위에서는 뜨뜻하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느껴진다.

조심스럽게 더듬어 보니 상처 부위가 많이 부어올라 있었다. 그 꼭대기에서 피가 나는 모양인데 상처 자체가 크지는 않은 느낌이었고, 출혈량도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제 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일단은 안도감이 든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눈이 쉽게 떠지지 않는 상태에서 통증에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그러자 내가 현재 차디차고 딱딱한 바위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과, 내 온 몸이 비라도 맞은 듯 홀딱 젖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신이 들었으면 눈을 한 번 떠 보시오! 송 형! 송 형!”

아, 나, 그것 참.

대체 어떤 인간이 나와는 상관없는 호칭으로 자꾸 송 형, 송 형이래? 내 생에 성을 갈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거슬려서 한 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며 튕기듯 상체를 일으켰다.

“소소, 송 형······!”

그 놈의 송 형 소리를 한 귀로 흘린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바로 내 가슴께였다.

젖은 상의의 앞섶을 빠르게 풀어헤치자 말라 보이는 상체의 하얀 살결이 드러났다. 그 모습에 뭔가 낯선 느낌을 받는 와중에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심장 위의 살갗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멀쩡하다.

‘뭐지?’

흑풍대주 염창직의 검이 내 심장을 뚫은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는데. 그 차갑고 이질적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라?’

그러고 보니 가만.

이게 지금 상처가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난······, 죽었잖아?

심장이 검에 꿰뚫렸으니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죽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뭐, 뭐야, 이게······?’

초저녁으로 추정되는 어둑어둑한 시각.

상쾌한 듯 서늘한 바람.

젖어 있는 피부가 느끼는, 그 바람에 의한 한기.

무엇보다도 머리의 상처에서 꾸준히 전해지는 상당한 고통.

잠깐이나마 꿈인지를 의심했지만 이게 꿈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인지되었다. 오감을 넘어 육감으로까지 느껴지는 이 생동감이 어찌 꿈일 수 있단 말인가.

현실인 것이다.

한데 그게 말이 안 되니 온통 혼란스럽기만 하다.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상처하나 없는 깨끗하고 흰 살결의 가슴팍이 다시금 시야에 들어왔다.

낯선 상체와 피부색이다.

내 상체는 이 상체보다 훨씬 탄탄하며, 내 피부색은 이 피부색보다 더 어둡다. 특히나 피부색은 어려서부터 그랬다.

이 정도만으로도 이게 내 몸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그래서 이 황당한 상황은 대체 뭐냐고.

이게 웬 귀신이 곡할 노릇이냐고.

너무도 혼란스럽다.

내 눈으로 내 몸을 보고 있는데, 그게 실은 내 몸이 아닌 남의 몸이라니.

“송 형! 가슴도 아픈 것이오? 혹시 늑골에도 이상이 생긴 것 같소? 그래도 피가 나는 곳은 머리요! 일단 그쪽 지혈부터 합시다!”

여전히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이 아까부터 나를 자꾸 ‘송 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저런 호칭은 제법 친분이 있는 사이일 때나 쓸 수 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내 뒤쪽에서 비추는 밝은 달빛 덕분에 그의 모습을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염려가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하나의 낯선 얼굴.

스무 살 이쪽저쪽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빼어난 미남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원한 눈매가 인상적인, 준수한 용모였다.

생김새만으로 보자면 눈빛도, 용모도 상당한 호감형이다.

그는 평범한 남의를 입었는데, 의복의 허리 아랫부분과 신발이 온통 젖은 모습이었다.

가만, 나도 온 몸이 젖은 상태인데?

자연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몇 걸음 옆에 연못이 보였다. 저 위쪽 바위틈에서 쫄쫄쫄 흘러나오는 물이 아래쪽의 바위들을 연이어 적시며 내려와 연못에 닿고 있었다.

그럴듯한 폭포까지는 아니고, 그저 얕은 물줄기가 바위들을 타고 계단처럼 내려와 연못으로 흘러내리는 모양새였다.

이 몸이 물에 빠진 걸 보고 이 사내가 꺼내준 건가?

속으로 그런 추측을 하고 있을 때, 사내가 내 앞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송 형, 아직도 정신이 좀 혼미하시오?”

이 자식에게서 술 냄새가 난다.

사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체내의 술기운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이 몸도 술을 마셨던 모양이다.

눈앞의 이 사내와 함께 술을 마신 건가?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참!”

사내가 그렇게 말하며 본인의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그가 손에 쥔 것은 얇은 종이에 싸여 있는 물건이었다.

약향이 난다. 고형 금창약인 듯하다.

사내가 얇은 종이에 쌓인 내용물을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더니 종이를 벗겨내며 말했다.

“금창약이오. 내가 이걸 머리의 환부에 댈 테니, 송 형이 잠시만 손으로 누르고 계시오. 아파도 조금만 참으시고.”

사내가 금창약을 내 머리통의 상처에 대자 통증이 몰려왔다.

“큭!”

“조금만 참으시오. 자, 손. 여기. 잠시만 누르고 계시오.”

사내가 내 한 손을 이끌어 금창약을 누르고 있게 했다.

그 직후, 사내가 오른손으로 본인의 왼쪽 어깻죽지의 옷자락을 잡았다.

부욱!

어깨 봉제선 아래쪽의 옷자락을 뜯어 낸 사내가 또다시 그것을 세로로 쭉 찢었다. 옷자락이 금세 기다란 천 쪼가리 두 개로 변했다.

사내가 기다란 천 쪼가리 두 개를 매듭 하여 하나의 끈처럼 만들더니 말했다.

“이걸 송 형의 머리 위쪽 환부로부터 턱 아래쪽에 걸치게 묶어야겠소.”

고형 금창약을 상처에 밀착시키는 동시에, 그 상처를 압박하여 지혈도 하려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사내가 천으로 만든 끈을 조심스럽게 내 머리통에 대며 이리저리 살폈다. 어떻게 묶어주는 게 적절할지 각을 재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사내가 천의 넓은 부분이 내 상처와 금창약을 압박하게 하는 방식으로 모양새를 잡았다. 그러더니 천의 양쪽 끝 부분을 모아서 잡고는 말했다.

“이렇게 묶는 게 좋을 것 같소. 환부 압박 때문에 되도록 꽉 묶는 게 좋으나 턱이 너무 조여서는 안 되겠지. 내가 점차 힘을 주며 매듭을 잡아당길 테니, 적절한 선에서 말씀하시오.”

사내가 매듭의 양쪽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가 매우 조심스럽게 힘을 가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배려심 보소?

내가 적절한 정도에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사내가 이윽고 매듭짓기를 마무리했다.

“이건 응급처치에 불과하오. 이후에 제대로 소독하고 제대로 치료를 해야 하오.”

이에 나는 사내를 향해 첫 한 마디를 건넸다.

“······고맙소.”

첫 마디를 내뱉자마자 나는 또다시 놀라야 했다.

분명히 내 입으로 말하는데 내 목소리가 아니었던 탓이다. 생소한 목소리였다.

이게 대체 뭐가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사실 응급처치를 받는 내내 그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고, 지금도 그 생각뿐이다.

이게 대체 뭐가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나는 천마의 다섯 번째 제자인 서무욱이며, 사형제들에 의해 죽었었다. 심장에 검이 푹 박혔었으니 그건 확실하다.

한데 살아있다. 꿈이 아닌 현실이다. 살아있음을 아까부터 계속해서,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즉, 살아있음도 확실하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이 몸뚱이가 서무욱의 몸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 골격이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건 눈으로 확인했고, 목소리까지 완전히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이렇듯 내가 알던 내 몸과 다른데, 이질감이 없다.

즉, 서무욱의 몸은 아닌데 내 몸이긴 한 것이다.

확실한 것만 머릿속으로 정리해봤는데도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이러니 또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게 대체 뭐가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일단은 눈앞의 사내와 대화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

다만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저어, 귀하가 이 몸과 친분이 있어 보여서 묻는 건데······.”

사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 말을 끊었다.

“엥? 방금 뭐라고 하셨소? 귀하? 이 몸? 왜 갑자기 그런 표현을 쓰시오?”

“그, 그게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서 말이오.”

“뭐가 혼란스럽다는 말이오?”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건지, 이곳이 어딘지, 아니 그 전에 내가 누군지조차 모르겠소. 물론 귀하가 누군지도······.”

“······예?”

내 말을 못 들어서 되묻는 게 아님을 알고 있으니, 나는 잠자코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내가 어이없다는 듯 살짝 눈매를 찡그려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송 형,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요? 장난이라면 너무 진부하고 재미도 없으니 그쯤······.”

말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내 기색을 살피던 사내의 눈매가 더욱 좁아졌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눈치였다.

사내는 잠시 동안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표정이 점점 미묘하고 복잡하게 변해갔다.

“왜, 왠지 송 형이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게 지금 무슨······.”

“나도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서 정신이 없는데다가 심지어는 두렵기까지 하오. 이런 상황에서 어찌 농담이나 하겠소.”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사내가 한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서, 설마 머리를 크게 다쳤을 때 기억이라도 잃은 것이오?”

사내의 말을 들은 순간, 그나마도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계획이 섰다. 그의 말마따나 일단은 기억을 상실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게 여러모로 무난할 것 같았다.

“기억을 잃었다······? 사,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소. 원래의 기억이 뭔지를 모르겠으니······.”

“길초량이라는 이름, 혹시 기억하시오?”

“길초량, 길초량······.”

혹시라도 아는 이름인가 싶었는데, 천마신교를 넘어 사파와 백도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이름 중에 그런 이름은 전혀 없었다.

“모르겠소. 혹시 그게 귀하의 성명이오? 묻는 모양새를 보니 그런가 싶어서······.”

“혹시는 무슨? 맞소. 그게 바로 내 이름이오. 하면 송유겸이라는 이름은 기억나시오?”

“아까부터 귀하가 나를 송 형이라고 부르던데, 혹시 그게 이 몸의 이름이오?”

“그렇소! 송, 유, 겸! 그게 송 형의 이름이오!”

“송유겸, 송유겸······.”

역시나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내가 고개를 저어 보이자 사내, 길초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허어! 아까 떨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치셔서 이렇게 되셨나 보오. 기억을 잃다니. 내, 그런 현상이 간혹 벌어진다는 걸 듣기만 했는데, 어찌 송 형에게 이런 일이······.”

“떨어졌다?”

“저 위에서 말이오.”

길초량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바위를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 지점 옆쪽의 절벽이었다. 절벽이라고 해도 엄청나게 높거나 한 건 아니고, 어른 키의 세 배쯤 되는 높이였다.

일반적으로는 낮다고 볼 수 없는 높이이나, 무공을 익혔던 내게는 전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저기에서 떨어져서 머리가 터졌다고?

“아니, 나는 송 형이 술김에 장난을 치시는 줄 알았소. 나란히 저 위쪽을 지나가는데, 송 형이 갑자기 시원한 물에 몸 좀 담그면 술이 깰 것 같다고 하는 거요. 그 말을 내뱉자마자 송 형이 저 절벽 쪽으로 달려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장난이겠거니 했단 말이오.”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혹여 떨어진다 해도 별 일이야 있겠나 싶었소. 송 형 또한 약간이나마 무공을 익힌 몸이니 저 정도 높이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테니까. 한데 달려가던 송 형이 절벽 바로 앞에서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중심을 잃으며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거요. 내가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었소.”

길초량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이다. 빠르게 절벽위로 가서 내려다보니, 송 형이 엎어진 채로 연못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게 아니겠소? 진짜 그때 어찌나 놀랐는지 온 몸의 털이란 털은 다 곤두서는 것 같았소. 즉시 뛰어내려 연못 안으로 들어가서 송 형을 건졌소. 그리고 곧바로 이 바위 위에 눕혔던 것이오.”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민망함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아으으, 진짜.

이 몸의 주인이었던 송유겸이라는 새끼는 얼마나 등신이었던 거냐.

“어쨌거나 송 형을 바위 위에 눕히고 보니 의식이 없었소. 호흡은 매우 가늘고 맥도 비정상적으로 느렸소. 이러다 큰일이라도 나는 건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나더이다. 후우우우우.”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니 지금도 아찔한 모양이었다.

길초량이 스스로를 진정시키듯 숨을 길게 내뱉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은 의식이 돌아오길 빌며 송 형의 볼을 몇 차례 살짝 때렸소. 그럼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서 재차 송 형의 볼을 때렸소. 이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곧바로 송 형를 업고 의원에게 달려갈 생각이었소. 한데 그 순간에 송 형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온 것이오.”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창피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길초량이 말했다.

“머리를 크게 다친데다가 한동안 의식까지 없었으니 송 형이 기억을 잃어버린 것도 아예 이해 못할 바는 아닌 것 같소. 한데 이래서 앞으로 어쩐단 말이오? 일시적인 증상이면 나중에라도 기억이 돌아오겠지만, 영영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는 투였다.

나로서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알 도리가 없지만, 걱정해주는 길초량의 마음만큼은 고마웠다.

“송 형, 이럴 게 아니라 일단은 의원에게 갑시다. 기억을 잃을 정도로 머리를 크게 다친 게 보통 일은 아니잖소. 가서 상처도 제대로 치료를 받고.”

“의원은 됐소. 머리통에 크게 문제가 생겼을 정도라면 내가 지금 이렇듯 제대로 앉아 있기나 하겠소? 이 정도는 그냥 며칠 쉬면 낫는 상처요.”

실제로 상처 자체는 심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의원이 판단하기에도 기억 상실 증상은 심각해 보일 테니, 의원에게 간다면 한동안은 그쪽에 붙잡히다시피 입원해 있게 될 터였다.

그러나 기억 상실은 내가 남들에게 둘러대기 위한 핑계일 뿐, 엄밀히 나는 기억을 잃은 게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게 필요한 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일이다. 의원에 붙잡혀 있는 게 아니라.

“그래도······.”

길초량이 재차 권하려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결국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거처로 돌아갑시다. 젖은 의복도 갈아입어야 할 테고 상처도 다시 돌봐야 하잖소.”

“거처······?”

“아, 참. 그것도 모르시겠구려. 내가 안내해 주겠소. 어차피 같은 구역이니까.”

몸을 일으키자 길초량이 손바닥을 펴서 방향을 알려주었다.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후에 그에게 물었다.

“귀하가 나를 계속 송 형이라고 부르니 말인데, 혹시 나도 귀하를 길 형이라고 불렀소?”

“물론이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송 형이 아까부터 나를 귀하라고 부르는 게 그렇게도 어색할 수가 없었소. 물론 송 형의 상태를 알게 되었으니 이해야 하지만.”

“호칭도 그렇고, 둘이 같이 술을 마셨다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어느 정도는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오?”

길초량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느 정도였다 뿐이겠소? 송 형과 내가 절친했다고까지는 못 해도, 적어도 이곳 동부지맹 잠룡관 안에서만큼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벗이었소.”

“아, 그랬······.”

잠깐만, 뭐?

잠룡관······?

잠룡과아아아안?

백도白道의 애새끼들, 그러니까 백도의 후기지수들이 모여서 건방이나 떨며 똥만 싸재끼고 있다는 그 잠룡관?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 잠룡관에 있는 거라고?

나는 한 동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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