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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9화 (9/416)

내 안에 마교있다 9

“어, 뭐, 그랬지. 한데 누구한테 들었어? 길 형? 아니면 그 녀석?”

“아뇨. 저희 쪽 거처의 여관도들 사이에도 이미 소문이 퍼졌더라구요.”

여관도들의 거처는 ‘갑을병정’ 구역, ‘무기경’ 구역, ‘신임계’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들었다. 여관도들의 수가 적다 보니 거주 구역을 그런 식으로 배정한 것이다.

어쨌든 송유하가 신반이니 적어도 신임계 구역 쪽의 여관도들은 대부분 안다는 얘기다.

뭐냐? 하루 밖에 안 지났는데, 그게 뭐라고 저쪽에까지 알려진단 말이냐.

“그놈들은 별 시답잖은 일까지 다 떠벌리고 다니나 보네.”

길초량이 떠벌리고 다녔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으니, 그 네 마리의 토끼들 쪽에서 떠벌렸을 것이다.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작은 사건이라도 이런 일은 금방 퍼져요. 동네 소문 퍼지듯 빠르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송유하가 말했다.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셋째 오라버니와 의절하자고 하셨다고. 게다가 여차하면 가문과도 인연을 끊을 것처럼 말씀하셨다고······.”

“그 녀석하고는 실제로 연을 끊을 각오로 그렇게 말한 게 맞아. 하지만 가문에 대한 건 말을 주고받다보니 그런 식으로 전해진 거야. 들어보니 그간 내가 가문으로 인해 입은 은혜도 있던데, 내 입장에서 먼저 가문과의 연을 끊네 마네 할 계제가 되나.”

“정말로 셋째 오라버니와는 의절할 생각이신 거예요?”

“응. 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들어서 알고 있었고, 실제로 만나보니 역시나 싶고.”

“만약 큰 오라버니도 그런 식으로 나오면, 큰 오라버니와도 의절할 생각이세요?”

“응. 그쪽하고의 관계도 뭐, 썩 반가운 사이는 아니라며? 처음부터 적대시할 생각은 없지만, 그쪽에서 셋째처럼 나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내 말에 송유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송유하가 입을 열었다.

“큰 오라버니는 장남이에요. 장남이 분위기를 조성하면 어른들의 입장도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그런 식으로 가문에서 나를 쫓아낼 수도 있다?”

“네······.”

“가문의 어른들도 우리 사이의 일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려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쫓아내겠다고 하면 그 또한 정상적인 관계는 아닌 거지. 어찌 됐든 가문에서 쫓아내겠다고 결정을 내리면 나도 순순히 따를 생각이야.”

송유하의 눈이 또다시 커져갔다.

내 입장에서는 아쉬울 게 조금도 없다.

애초에 송가장이라는 울타리가 대단한 울타리도 아니다. 무인의 입장에서는 없는 울타리나 마찬가지다.

붙어 있어서 얻을 거라고는 송유겸의 몫으로 나눠질 미미한 재산 정도인데, 그깟 재산?

풋!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

차라리 그 몫도 송유하에게 주라고 할 것이다.

왜냐고?

돈을 구할 방법이 있거든.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거든.

송유하의 표정에서 염려와 아쉬움 등의 감정이 느껴졌다.

“너무 앞서가서 걱정할 건 없어. 어른들에게 상식이 있다면 내가 쫓겨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물론 쫓아내주면 내 마음은 더없이 후련하겠지만.

“아 참, 이쯤에서 누이에게 분명하게 말해둘 게 있어. 셋째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상황에서 형과의 관계마저 껄끄러워진다면, 중간에 낀 누이의 입장이 난처해질 거야.”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송유하를 향해 말했다.

“나는 누이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 그렇기에 나로 인해 누이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건 싫어. 그러니 만약 나와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곤란해질 일이 생기면, 절대로 내 편에 서지 마.”

“오, 오라버니······!”

평소에도 큰 그녀의 눈이 어디까지 더 커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에 그렇게 처신하라는 거야. 그래도 나는 누이의 입장을 이해할 거라는 뜻이고, 서운해 하지도 않을 거라는 뜻이야. 고마운 이 마음, 변치 않을 거라는 뜻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잖아.”

송유하의 눈동자가 한동안 계속해서 흔들렸다.

내 말을 이해는 하지만 그걸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송유하의 눈동자가 또렷해졌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오라버니가 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거.”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송유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때 가서 제가 어떻게 처신할지는 더 생각해 보고 정할 거예요.”

눈빛과 표정을 보니 내가 말해준 대로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왠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여간 얘도 참 특이한 애라니까.

“뜻은 알아들었다니 그러면 됐어. 내가 누이의 선택에 대한 부분까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송유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송유하가 서탁 위에 있던 서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오늘 계속 서고에만 계셨다고 들었어요. 아까 밖에 앉아 있을 때 길 공자가 지나가다가 말해줬어요.”

“아. 지금은 어차피 내가 배운 무공들이 기억이 안 나는 상황이잖아. 아예 무공이라는 것 자체가 머릿속에 없는 상황이지. 이렇게 된 김에, 기초 원리부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열심히 보고 있는 거야. 마침 잠룡관에는 무공 관련 서책들이 많기도 하고.”

송유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현재 오라버니의 입장에서는······, 굳이 가문에서 배웠던 걸 답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들어보니 남매들 모두 송가장주가 초빙한 일류고수에게서 무공을 배웠다고 했다. 송가장이 제대로 된 무가武家가 아니기에, 가전무공이라고 할 것도 없었던 탓이라나.

송가장의 입장에서는 일류고수 정도를 초빙하는 게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절정고수들은 어딜 가도 인정받고 대우받는 고귀한 존재들이다. 그런 자들이 뭐가 아쉬워서 송가장 같은 이름 없는 곳에서 자제들의 무공사부나 하겠는가.

물론 절정고수에 비할 바가 아닐 뿐이지, 일류고수들도 충분한 실력자들이다.

다만 똑같이 일류고수라 불려도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이류 수준을 갓 넘은 일류가 있고, 절정에 가까운 일류가 있다.

그간 송유하가 해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본 결과, 사남매의 무공사부는 일류 중에서도 중하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송유하의 말인즉, 잠룡관의 제삼서고에 완전 공개된 무공들만 해도, 그 사부의 무공과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뜻이었다.

씩 웃으며 송유하에게 말했다.

“어차피 이전의 내 수준이라는 게 무공을 배우지 않은 상황이나 크게 다를 것도 없으니까?”

“그, 그, 그런 의도로 드린 말씀이 아, 아닌데······.”

당황해하는 송유하를 향해 빙그레 웃어줬다.

“하하. 장난 한 번 쳐 본 거야. 미안.”

그러자 송유하가 나를 향해 입술을 삐쭉 내밀어 보였다. 눈을 흘기면서.

요것 봐라? 이젠 좀 편해졌다 그거냐?

지금껏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던 모습이라 놀랍기도 하다.

그간 이야기를 나눠보니 송유백과 송유상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전의 송유겸에게조차 저런 모습을 보였던 것 같지는 않던데. 듣기로 분명히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송유하에게 말했다.

“한데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라는 걸 나 스스로도 알고 있어. 그래서 기초부터 공부하는 자세로 접근하고 있는 거야. 마침 내가 잠룡관에 있으니 여건도 좋고.”

동의한다는 듯 송유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송유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가볼게요. 쉬세요.”

* * *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운기조식을 취하다가 동이 터오는 것을 보고 거처를 나섰다.

아직은 어스름이 완전히 걷히지 않아 사위가 고요했다.

계반 거주 구역 뒤쪽의 산자락에 도착하자, 산으로 들어서는 소로의 입구 앞에 안내도가 보였다. 바위를 깎아서 넓적한 비석 형태로 세워둔 안내도였다.

산에 난 여러 갈래의 길들과 분기점, 봉우리, 특정 장소, 물길 등이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었다.

엊그제 길초량과 다른 봉우리를 오를 때에도 이런 식의 안내도를 봤었다. 실제로 그때 안내도를 확인한 후에 올라가 보니, 산길의 이곳저곳에도 안내 팻말이 있어 경로를 찾기가 매우 편리했다.

길초량의 말에 따르면 잠룡관의 부지에 속한 산지에는 모두 이런 식의 안내도와 팻말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와 본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도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보자, 경로는 여기로 가서 이리로 가면······.’

쭉 살펴보니 내가 생각해 둔 조건에 맞는 경로를 대강 설정할 수 있었다. 옆 봉우리의 산자락까지 살짝 거치며 이곳으로 빙글 돌아오는 경로가 가장 나아 보였다.

분기점마다의 거리를 합산하여 계산해 보니, 그 경로는 이십오 리(10킬로) 남짓이었다.

경로를 머릿속에 되새긴 후, 곧바로 산길로 들어섰다.

엊그제부터 거처를 벗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최대한 시간을 활용해서 산길을 달릴 생각이다.

내공을 쓰지 않고, 순수하게 신체의 힘으로만.

많은 무인들이 내공을 익히고 나면 신체 단련을 조금씩 소홀히 하기 시작한다.

내공만으로도 큰 위력을 낼 수 있기에, 신체단련은 초식을 수련하면서 움직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내공 만능주의.

사부님은 그렇게 표현하셨다.

아예 잘못 된 생각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초식 수련도 계속해서 신체를 쓰는 일이니 그 또한 어느 정도의 신체단련은 된다. 다만 내공도 운용하면서 하는 수련이기에 신체단련의 온전한 효과가 덜 할 뿐이다.

일반적으로는 백도인들이 그런 경향이 짙고, 꼭 백도인이 아니더라도 내공의 화후가 깊어질수록 그런 경향을 띤다.

나는 흑풍대원으로서 적지 않은 실전을 겪어 본 몸이다.

임무 중에 어려운 상황도 많이 겪었다.

그러면서 체감한 건 신체단련의 중요성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비슷한 내공 경지라도 체력과 근력이 높을수록 유리하다. 내공이 바닥난 상황에서 몸뚱이의 힘만으로 버틸 때에도 좋다. 설령 생존하기조차 힘든 최악의 상황에서도 신체능력이 좋은 쪽이 살아남기에 유리하다.

게다가 기본 신체능력이 높을수록 수련 효율도 좋아진다.

한데, 신체능력을 향상시키는 건 꾸준한 단련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일단 체력 단련의 일환으로 꾸준히 산길을 달리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천마신교에 있을 때도 해왔던 일이라 어려울 것도 없다.

다만, 이 몸뚱이의 상태는 좀 생각을 해야 한다.

워낙 체력이 부족한 상태이니 처음부터 무리해서 좋을 게 없다. 그래서 한동안은 걷기 위주로 산길을 돌고, 그 후에 조금씩 걷는 속도를 빠르게 할 계획이다. 뛰는 건 그 다음이다.

체내의 독기도 배출할 겸, 여러 모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처음이니 산책 느낌으로 느긋하게 걷는 중이다.

경치도 구경하고, 경로와 지형도 익히고.

계획한 경로를 반쯤 지나고 있을 때였다.

오른쪽으로 계곡물까지 흐르는 길이라서 상쾌함을 만끽하며 걷던 중, 전방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기합,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 등이었다.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로 보아 두 명.

병장기가 매우 치열하게 맞부딪치고는 있지만 살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즉, 저건 수련하는 소리다.

지금껏 경로 상에서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었다.

혼자서 조용히 체력단련하기 좋은 경로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아쉽다.

굽어진 산길을 돌자 계곡의 널찍한 웅덩이 안에서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는 두 개의 인영이 보였다. 웅덩이가 제법 깊은지, 둘 다 어깨 위쪽 정도만 수면 위로 드러난 모습이었다.

의외로 하나는 사내고 하나는 여인이다.

사내는 상의를 탈의한 상태인 듯했고, 여인은 당연하게도 탈의한 모습이 아니었다. 흑의를 걸치고 있는 듯했다.

상관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기 위해 걷는 속도를 높였다.

저들도 내게 상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시선도 그들이 있는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두고서.

내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저들의 검 부딪치는 소리도 이미 멈춘 상태였다.

상관하지 마라. 상관하지 마라.

엮이지 말자. 우리 서로.

하지만 내 마음속 주문과는 다르게, 둘 중 한 사람이 서둘러 웅덩이를 벗어나더니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사내의 목소리였다.

나를 부르기까지 하는데 계속 딴청을 부릴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이 멈추고선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한 손에는 검을 들고, 한 손에는 두꺼운 대나무 통을 들고 있었다. 그가 뭍으로 나오더니 빠르게 내게 다가왔다.

여인은 여전히 물속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푹!

걸어오던 중에 흙속에 검을 박아 넣은 사내가 죽통竹桶만을 들고 내게 걸어왔다.

나와 얼추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인상 좋아 보이는 사내.

선이 굵은 준수한 용모에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적어도 시비를 걸려고 다가오는 건 아닌 모양이다.

“안녕하시오.”

사내가 다가오면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시오. 수련을 하고 계신 것 같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려던 길이었는데······.”

“하하. 알고 있소. 고개까지 돌리며 배려해주셨잖소.”

아하. 니들도 봤구나. 이 몸의 배려를.

그런데······.

새끼, 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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