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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0화 (20/416)

내 안에 마교있다 20

고호웅과 황성락은 모두 정반인데, 정반의 경우에는 인원이 많아서 몇 개의 조로 나뉘어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안다. 인원이 많은 다른 반들도 그렇다.

보아하니 서로가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조가 다르거나, 평소에도 서로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관계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황성락이 고호웅에게 말했다.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적당해야 할 것 아니오. 그쪽 네 분은 우리가 여기에 들어왔을 때부터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었잖소. 그리고 서책에 대한 얘기는 무슨? 그쪽 동네 무림인들에 대한 얘기들뿐이었잖소.”

“원래는 서책에 대한 얘기였소. 얘기가 진행되다 보니 그쪽으로 이어진 것이오.”

“그럼 대화들 다 나누셨으면 이제부터는 조용히 좀 해주시겠소?”

황성락이 고호웅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꾸는 고호웅이 아닌 위재흠한테서 나왔다.

“조용히 하고 싶었는데, 그쪽이 말하는 투가 짜증나서 어찌될지 모르겠소.”

명백한 시비조였다.

황성락이 곧바로 항변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나는 분명히 처음에, 실례지만 조용히 좀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정중하게 요청했었소. 한데 그쪽에서 알았다고 대꾸하고는 그 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었잖소.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는 거, 기억 안 나시오?”

“글쎄. 그쪽이 처음부터 그렇게 정중했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우리가 그렇게까지 시끄럽게 떠들었다는 것도 인정 못 하겠소.”

위재흠이 여전한 시비조로 억지를 부리자 이번에는 광주진가의 진운령이 나섰다.

“모두가 조용히 이용해야 하는 공간에서 정숙해야 하는 건 상식의 문제 아닌가요? 우리가 그렇게까지 무리한 요구를 한 건가요?”

“글쎄, 우리도 조용히 하려고 했다니까요? 한데 그쪽에서 말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그게 짜증난다는 뜻이잖아요. 못 알아듣겠어요?”

하후영의 억지였다.

진운령의 표정이 변했다.

“그딴 식······?”

“네. 우리가 상식이 없다는 투로 말하는 그딴 식이요. 당신들이 말하는 꼬락서니가 계속 그딴 식이라고요.”

“꼬락서니······?”

진운령이 하후영을 쏘아본다.

둘 중에서는 진운령이 한 살 어리다.

이번에 진운령은 두 단계, 하후영은 한 단계 승반하여, 조만간 두 사람은 모두 병반이 된다.

그래도 내 생각에 둘 중 더 강한 건 진운령일 것 같다. 실전에 매우 가까운 무공일 테니까.

하후영이 무시하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중얼거렸다.

“왜 저렇게들 융통성 없이 굴지? 중원인이 아닌 촌사람들이라서 그런가?”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야, 하후영! 이 철없는 것아, 그건 너무 갔잖아!

아니나 다를까, 지금껏 조용히 있던 광동 남천검문의 소충광이 하후영을 향해 외쳤다.

“말씀을 삼가시오, 소저!”

소충광뿐만 아니라 황성락의 인상도 확 구겨져 있었지만, 가장 화가 많이 난 건 진운령인 듯했다.

그녀의 경우, 눈빛으로는 이미 살인을 하고도 남았다.

안휘 땅은 예로부터 중원이었다.

역사가 진행되며 중원의 영역은 황하 인근으로부터 장강 아래까지 넓어졌는데, 지금으로 따져도 안휘는 중원이다.

때문에 안휘의 시점에서 보면 대륙 남부의 해안가에 있는 광동은 촌인 게 맞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촌사람이라는 말을 하다니.

대단한 하후영이 아닐 수 없다.

한데 위재흠 놈과 고호웅 놈도 말 한 번 잘했다는 듯 하후영을 바라보고 있다.

쯧쯧. 사는 곳이 대단하다고 본인도 대단해지는 게 아닌데, 그 놈의 중원 타령은.

어쨌거나 애들 싸우는 걸 구경하니 재미는 있다.

이대로 놔두면 치고받고 싸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더 재미있어질 테지?

한데 안타깝게도 이 상황에서 내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만약 이대로 싸움이 벌어지면 서고 관리자로서 내가 직무유기를 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 경우,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진술하거나 보고할 상황이 생겼을 때 오히려 내 쪽이 귀찮아진다.

그러니 일단 최소한의 면피 거리는 만들어 두자.

어디선가 우문직도 듣고 있을 테니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내 역할을 확실히 한 것처럼 보여야 하겠지.

짝! 짝! 짝! 짝! 짝!

내가 큰 소리로 박수를 치자, 지금껏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말다툼을 하고 있던 일곱 명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아이들을 향해 빙그레 웃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내 머리 위에 있는 족자를 가리켰다.

입구 위쪽 벽면의 커다란 족자에 커다랗게 쓰여 있는 글자는 당연하게도 ‘정숙’ 두 글자였다.

“여러분, 이곳은 서고입니다. 하실 말씀들이 있으시면 밖에 나가서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말에 황성락이 곧바로 대꾸했다.

“우리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을 뿐입니다. 저들이 떠들기에 정숙하기를 요청했던 건데, 오히려 저들이······.”

“아니, 우리가 잠깐 대화를 나눴던 걸 가지고 저들이······!”

고호웅이 그렇게 말할 때쯤, 나는 또다시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서로가 억울함을 토로하다보면 끝도 없을 텐데, 그러면 이곳은 언제 다시 정숙해지겠습니까. 저는 그저 여러분이 정숙이라는 규칙을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릴 뿐입니다.”

양쪽의 아이들을 빠르게 일별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혹여 대화할 일이 있으시거든 전음을 이용하시고, 다른 용무가 있으시면 밖에 나가서 해주십시오. 부디 이곳에서는, 이 시간 이후부터는 정숙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얘들아, 내 말은 무시해도 된단다.

그러니 싸워라. 가능하면 이 서고 안에서.

가능성도 아직 높다.

광동 애들의 기색이 보통 열 받은 기색이 아니다. 폭발 직전이라고나 할까.

당연하겠지. 그렇지 않아도 이 상황에서 더 억울한 쪽은 그들인데, 하후영한테서 촌사람 소리까지 들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전음 얘기를 꺼내긴 했다.

어차피 육성을 내지 않고 개인들 간에 전음을 주고받는 건 정숙이라는 규칙과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더 말싸움을 하고 싶으면 전음으로 싸우라고 유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게, 전음으로 말싸움을 하다 보면 대부분은 주먹다짐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남들이 듣지 못하니 육성으로 하는 것보다 더 심한 말이 오갈 수밖에 없고, 화도 그만큼 더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존심 강한 백도의 애새끼들이, 저 혈기왕성한 나이에, 그 화를 참아낼 수 있을까?

참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할 말을 전했으니 곧바로 돌아서서 입구 쪽으로 향했다.

일단은 내가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저들이 관리자인 내게 상관하지 않고 다툼을 이어갈 테니까.

그런 내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흥! 임시로 서고 관리를 한다고 자기가 무슨 대단한 위치에라도 있는 줄 아나 보네. 계반 주제에.”

하후영의 말이었고, 당연히 나를 향해 한 말이었다.

뒤돌아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는 아주 그냥 막 무는구나, 미친개처럼.

한데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안휘 쪽의 두 사내놈들도 조소가 걸린 표정이었다. 놈들도 비슷한 생각인 것이다.

으이그, 이 등신들아. 이 어른께서 그런 걸로 자존심이라도 상할 것 같으냐?

다만 결코 잊지 않을 뿐이니라.

나중에 기회를 봐서 갚아줘야 하니까.

광동 쪽 애들의 기색도 살펴봤다.

소충광과 황성락은 뭐 저런 게 다 있느냐는 표정으로 하후영을 바라보고 있고, 진운령은 여전히 독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하후영을 바라보고 있다.

좋아, 좋아. 절대로 그 분노를 삭이지 마, 진운령.

나는 평온한 표정과 어조를 유지하며 하후영에게 말했다.

“나는 잠룡관 관계자의 부탁을 받아서 이 일을 하고 있을 뿐이오. 게다가 이 일은 내가 계반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며, 내가 계반이라서 부족함이 생길 만한 업무도 아니오.”

이쯤에서 전음 얘기를 한 번 더 꺼내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계속 비난하고 싶다면 전음으로 하시던가, 밖에 나와서 따로 하시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정숙해주시길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소.”

그 말을 끝낸 후, 곧바로 서고를 벗어났다.

참지 마라, 광동 무림의 청춘들이여.

쪽수가 딸려도 너희들이 무조건 이긴다.

그러니 싸워라. 싸워서 자존심을 복구해라.

이왕이면 피가 흐르고, 대가리가 터지고, 몸뚱이 한 곳이 분질러지게 만들어라.

차후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마교 출신의 이 어른께서 너희들의 편이 되어 증언해 줄 것이다.

오오, 아수라님이시여, 권능으로 임하소서.

저들의 간절한 분노 하나하나를 긍휼히 여기시어, 저들의 악의와 적개심과 폭력성을 활짝 꽃피워 주소서.

나오자마자 종이와 휴대용 필묵통을 준비해뒀다.

안에서 혹시라도 상황이 발생하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편하게 상체를 기댔다.

싸울까, 안 싸울까?

충분히 싸울 기세였는데, 진짜 싸울까?

이리저리 얽힌 게 백도인들의 관계이니, 그런 면들을 고려해서 결국 안 싸우려나?

싸우면 좋겠지만, 안 싸울 가능성도 많다.

단, 싸우면 무조건 광동 애들이 이긴다.

그리고 그 경우, 나는 교묘하게 광동 쪽 애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생각이다. 두드려 패고도 징계를 받지 않게끔.

이를 위해 서고 안에서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그래야 내 증언에 더 신뢰가 생길 테니까. 백도인들은 그런 걸 중요시 여기니까.

마침, 내 그러한 중립성을 또 다른 제삼자, 우문직도 들었을 테고.

참고로 하후영이 말한 촌사람에는 우문직도 포함된다.

광동의 위쪽 해안이 바로 복건의 영역인데, 복건 또한 중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촌사람 소리를 듣는 우문직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우문세가가 있는 복주도 해안가에 접해 있어, 그들 또한 그쪽에 출몰한 해적들과 싸웠다고 알고 있다.

하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느 쪽으로 더 기울겠나. 가뜩이나 먼저 잘못한 것도 안휘 애들인데.

물론,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지만.

기척을 최대한 죽인 채, 서고 안쪽을 향해 귀를 활짝 열어두고는 관도명부를 읽고 있을 때였다.

“이런 거지같은 촌년이! 방금 뭐라고 했어?”

갑자기 들려온 건 하후영의 목소리였다.

그렇지! 바로 그 거야!

아수라님이 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주신 모양이다.

너무 감격스럽다.

“뭐? 촌년? 야 이년아, 중원년이면 교양 있게 굴기나 하던가! 버러지만도 못한 년이!”

이어서 들린 건 입관 초년차의 패기가 물씬 묻어나는, 진운령의 교양 넘치는 일갈이었다.

“버, 버러지? 야, 이 개 같은 년아!”

“뭐, 이 돼지 같은 년아!”

어이구, 잘한다.

저런 욕설이 오갔을 때 더 상처를 받는 건 하후영이겠지?

딱히 살찌지 않은 평균체중인데도 보이기에는 통통해 보이니, 여인으로서 평소에도 정신적으로 얼마나 시달렸겠는가.

뼈를 맞은 심정일 것이다.

그쯤에서 나는 자리 비움 안내판을 조용히, 서고 관리자의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이래야 나중에 왜 빨리 개입하지 않았느냐고 추궁을 당해도 핑계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측간에 다녀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식으로.

그리고 저 상황이 혹여 주먹다짐으로 이어지면 그때는 최대한 늦게 들어가야 한다.

광동 애들이 안휘 애들을 팰 시간을 충분히 벌어줘야 할 것 아닌가.

“소저! 그 무슨 망발이시오!”

안휘 숙주표국, 고호훙의 목소리였고.

“망발 같은 소리 하고 있죠? 먼저 떠들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헛소리나 하던 작자들이?”

광동 청원표국, 황성락의 대꾸였다.

“촌 동네 표국 출신이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건가?”

“지랄을 하세요. 흥신소 규모의 구멍가게도 표국 이름만 붙이면 다 표국인 줄 아나.”

표국 후손끼리의 대결도 타오르고 있다.

둘 다 규모가 있는 표국들이긴 한데, 광동 청원표국의 규모가 더 큰 건 사실이다.

“뭐? 구멍가게? 흥신소? 이런 촌놈의 새끼가!”

“푸훗! 구멍가게 주제에 중원부심은 오지죠? 머저리 새끼.”

‘중원부심’이라.

요즘 애들은 저런 말을 쓰는구나.

앞으로 나도 써먹어야지.

“어린놈의 새끼가 주둥아리 놀리는 꼬락서니 좀 보게?”

고호웅의 대꾸였다.

고호웅이 황성락보다 두 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할 말 없으니 나이 얘기 나오죠? 그런 새끼들 치고 나잇값 제대로 하는 새끼들을 못 봤죠?”

황성락 녀석, 비아냥거리는 솜씨가 제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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