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5
연승휴?
천마신교의 정예들이나 알아볼 수 있는 진법을 이용하여 이런 일을 벌인 인물이니, 천마신교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가 아는 과거의 천마신교 선배들 중에 저런 이름은 기억에 없다. 그러니 과거의 선배들 중에서 유명했던 인물은 아닐 것 같다.
계속해서 글귀를 읽어나갔다.
<나는 과거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발해 대장군가의 후예이다. 비록 발해는 수백 년 전에 멸망했으나, 내 가문은 장백산 인근에 터를 잡고 가전 무예를 계승, 발전시키며 긍지를 이어왔다.>
발해국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나, 수백 년 전에 그들의 국력이 매우 강했고, 그 나라에 용맹한 장수들이 많았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한데 발해국의 후예로서 장백산 인근에 머물던 이 연승휴라는 인물이 어찌하여 본교와 연결되어 있단 말인가.
<평범한 나날들이 이어지던 중, 사흘간 외부에 출타했다가 가문에 돌아와 보니 가솔들이 몰살당해 있었다. 흉수들의 흔적을 끈질기게 조사하다가 도달한 곳이 바로 이곳 중원이었다. 한데 그 흔적은 중원에서 끊기고 말았다.>
연승휴라는 인물이 중원에 나왔을 때 그의 나이가 이미 오십대 후반이었다. 보아하니 경지가 그냥 절정도 아니고 최절정에 근접했던 것 같다.
초고수였던 만큼 어찌어찌 백도의 여러 인사들과 얽히기 시작하다가 무림맹과도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갑자기 등장한 연승휴라는 고수를 시샘하는 백도의 인사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강호란 본디 고수의 등장이나 행보에 따라 수많은 알력관계들이 요동치는 곳이다.
당시의 무림맹 내에서도 연승휴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인해 입지가 작아지거나 위태로워진 세력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종래에는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자들이 혈사를 꾸며 내게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그들은 증거까지 조작했다.>
당장 나만 해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터라, 나도 모르게 연승휴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몰입이 되었다.
어쨌거나 중원인의 입장에서 따지면 연승휴는 동이 출신이기도 하니, 그를 비호해주는 백도의 인사들도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
결국 연승휴는 도주를 택했는데, 초고수라서 어느 정도까지는 벗어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천라지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들은 토끼몰이를 하듯 나를 몰았고, 내 도주 예상 지점에 진법을 펼쳐 놓았다. 결국 그 진법에 의해 발목이 잡혔던 것이다.>
하지만 연승휴는 고강한 무공 덕분에 구사일생했고, 마침 천마신교의 영역이 멀지 않았기에 천마신교 측에 몸을 의탁했다.
도주할 때 입었던 피해로 인해 연승휴는 내공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최절정에 가까웠던 그의 경지가 절정도 아니고 일류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무공을 회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와중에도 내가 관심을 가진 건 바로 진법이었다. 나 자신이 진법에 당해서 그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인물은 당시의 환마.
현재의 환마 장로도 그렇지만, 환마라는 인물들은 원래 본인의 전문분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면 매우 반긴다.
난해한 분야라서 평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제자가 되려는 이들도 거의 없다.
당시의 환마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운 연승휴는 칠 년 만에 천마신교를 벗어나게 된다.
중원에 처음 왔던 후로 십 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무공도 절정 수준으로 회복한 상태였다.
연승휴는 본신의 무공과 천마신교에서 배운 기술들을 이용하여 그만의 조용한 복수를 시작했다. 환마한테서 집중적으로 배운 역용술과 환영진들을 이용해가며.
과거에 백도인들에게 당한 게 있었으니 더욱 치밀하게 움직였고, 그렇기에 적잖은 이들을 상대로 복수에 성공한다.
그 즈음이, 네 개의 무림맹 지맹들 주변에 잠룡관들이 건립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던 모양이다.
연승휴의 복수 대상들이 마침 동부지맹 쪽에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신분을 위장하고 일단은 이쪽에 건축 관련 전문가로 들어오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에는 네 개의 잠룡관들이 동시에 건립되고 있어, 여기저기 전문적인 일손이 부족했다고 한다. 연승휴가 환마의 기술을 배웠지 마공을 익힌 게 아니기에, 이쪽에 합류하기도 어렵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차피 진법술은 풍수지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고, 기관학은 토목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당연히 건축 전문가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애초부터 지질조사를 통해, 제일서고 부지의 지하에 공동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이곳인데, 이곳은 마침 음양상조지이기도 했다.
혹시 모를 경우를 생각하여 이곳의 존재를 처음부터 숨긴 후, 건축 전문가의 행세를 하며 틈틈이 남몰래 작업했다. 그래서 이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읽어 나갔다.
<수년간 이쪽에서 전문가로 일하며, 틈날 때마다 인근지역들을 돌며 복수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지금은 내가 복수했던 쪽으로부터의 연계 추적망도 거의 좁혀진 상태다. 예전에도 겪어봤기에, 저들로부터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이미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다. 대부분의 복수를 마무리했으니 생에 대한 큰 미련도 없다.
가솔들도 다 죽은 마당이라 장백산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 마음만 괴로울 게 빤하다.
해서 이쪽에서의 복수를 완전히 마무리한 후, 빠져나갈 수 있으면 빠져나가서 천마신교로 향하고, 못 빠져나가면 싸우다가 자결하여 최후를 맞이하겠다고 각오했다.>
연승휴의 복수는 단순히 그 대상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방화, 납치, 파괴, 약탈, 절도 등도 서슴지 않았다.
<이전부터 내게는 복수 대상들로부터, 또는 그들의 문파나 가문으로부터 빼앗거나 훔친 것들이 제법 있었다. 내가 딱히 재물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자들에게 더한 상실감을 안겨주기 위해 취한 것들이다.
한데 앞서 밝혔듯 현재의 나는 저들로부터 빠져나갈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니 이것들을 챙겨가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래서 이곳에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설령 내가 저들에 의해 죽더라도, 저들이 이 물품들을 되찾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 물품들 중에는 진귀한 것들이 많아서, 이것들이 완전히 사장되어버리는 것도 아깝다. 그래서 혹시 모를 경우를 생각하여 누군가는 이곳을 찾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천마신교는 적어도 내게는 고마운 곳이다. 그들이 호시탐탐 중원 무림을 도모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천마신교의 정예 무인이면 알아볼 수 있는 수준으로 진법을 만들어, 그들이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이곳을 찾을 수 있게끔 안배했다. 난이도가 너무 낮으면 백도인들에게도 들킬 염려가 있는 탓이었다.>
이제야 왜 제일서고에 마둔일로잠종진의 변형진이 만들어져 있는지 알 것 같다.
<이 글을 보고 있는 그대는 천마신교의 정예 무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대가 이것들을 취한 후, 백도인들을 상대로 더 신나게 날뛰기를 바란다.
만에 하나 그대가 천마신교의 인물이 아니라면 백도의 매우 운 좋은 누군가일 것이다.
그런 경우라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곳을 찾아냈을 테고, 내 복수 대상들에게는 이미 크나큰 상실감을 안겨준 셈이니, 큰 미련은 없다.
그러나 그대가 백도의 후예라면, 적어도 나의 이 억울했던 상황들에 대해 이해하고, 백도 내의 쓰레기 같은 작자들을 혼내주는 데 힘써주기 바란다.>
천마신교의 인물이 취하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 백도의 후예가 취해도 그다지 아깝지는 않다는 어조였다. 미련이 별로 없다더니 실제로 그런 분위기였다.
비석에 새겨진 글귀는 거기까지가 마지막이었다.
내가 알기로 무림맹이 네 개의 지맹으로 분리된 건 백 년 남짓 되었고, 각 잠룡관들은 그 후 십 년 내에 모두 완성되었다.
즉, 연승휴에 관련된 일들은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후에 벌어진 일들인 것이다.
연승휴가 그 뒤에 살아서 백도의 영역을 빠져나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어려웠을 것 같다. 만약 빠져나갔어도 지금은 당연히 고인일 테고.
이에 나는 잠시나마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연승휴의 억울한 심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해동성국 대장군가의 후손이셨던 연승휴 선배님, 강호의 후배인 이 서무욱······, 내지는 송유겸이 기억할 터이니, 이제 아수라님 곁에서 편히 쉬십시오.’
세 개의 석단 중에서 중앙의 석단을 제외한 좌우측의 석단에는 각각 크기가 다른 석함이 하나씩 놓여 있다.
연승휴의 기록에 따르면 좌우의 두 석함에는 모두 보존 진법이 걸려 있다고 했다.
나는 먼저, 입구 기준으로 좌측에 있는 석단으로 향하여 석함 앞에 섰다.
두 개의 석함 중에서 좌측에 있는 석함이 훨씬 크다.
석함의 위에도 글씨가 음각되어 있었다.
<이 석함에 들어 있는 내용물들은 내가 복수 대상들한테서 탈취했거나, 그들의 거처에서 챙긴 것들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훔치기도 했다.
금은보화를 비롯하여 각종 진귀한 물건, 문파나 세가의 신물, 쓸 만한 무기, 유용한 도구 등의 것들이 들어 있다.
몇몇 물건들은 함부로 갖고 다니다가는 의심을 살 소지가 있으니, 지니거나 처분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아직 내용물을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인데, 글귀를 읽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려올 지경이었다.
정면에 손잡이가 있었기에 그걸 비틀었다.
그르르릉-
발아래가 살짝 울리는 느낌과 함께, 석함의 뚜껑이 조개껍질 벌어지듯 알아서 천천히 입을 벌렸다.
석함 내부의 모습이 드러날수록 내 눈동자도 커졌다.
딱 봐도 번쩍번쩍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 외에도 검이나 도를 비롯한 무기들과 그 외의 온갖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는 금은보화 사이로 야명주도 더 있었다. 역시나 작은 크기였고, 조도도 상당했다.
보존 진법이 걸려 있던 탓인지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 모두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연승휴의 말마따나 몇몇 물건들은 좋아 보인다고 해서 함부로 지니고 다니다가 경을 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출처나 연원을 알아채서 문제 삼으면, 곤란해지는 걸 넘어 위태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석함에 들어 있는 금은보화나 야명주 등만으로도 이미 초대박은 났다. 내가 보유하고 있던 재산보다도 훨씬 더 많다.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상태에서도 내 시선을 끈 건, 열린 채 수직으로 서있는 석함의 뚜껑 안쪽에 음각된 내용이었다.
하나의 약도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심히 보니, 동굴 입구의 반대편에 있는 통로가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나와 있는 약도였다.
통로의 최종 출구 부분을 확인한 순간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계반 거주구역의 뒷산 쪽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내 구보 경로상이었다.
단목세가의 사촌남매가 수중수련을 하는 곳이 구보 경로의 중간 지점, 즉 출발 지점에서 십 리쯤 되는 위치다. 한데 저 통로의 출구는 출발 지점에서 오 리쯤 되는 지점에 있었다.
이상한 점은 출구로 찍혀 있는 지점이 계곡물의 물줄기상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약도 옆에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동굴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곳이며, 원래는 안쪽으로 매우 깊게 이어지다가 일정 지점에서 막혀 있었다. 조사해 보니 동굴의 막다른 곳이 잠룡관의 외진 지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머지는 내가 뚫었다.
기관 작동이 은밀하게 되게끔 모든 걸 설계하긴 했으나, 이후에도 연자가 제일서고를 통해 드나들려면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통로의 최종 출구는 표시된 지역의 계곡으로 이어지는데, 은밀함을 기하기 위해 수중으로 이어 놓았다. 표시된 위치에 있는 계곡의 웅덩이로 가면 깊은 밑바닥의 바위틈으로 교묘하게 가려진 수중 동굴의 입구가 보일 것이다.
이 공간을 이미 발견했다면, 제일서고 쪽의 기관을 완전히 폐쇄하고 수중 관문 쪽 통로를 이용하길 권한다. 제일서고 쪽에서 통하는 기관을 완전히 폐쇄하는 방법은······.>
아아아아아!
감동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에 석함 안의 내용물들을 확인 한 직후, 놀란 상태에서도 염려가 들던 차였다.
내 임시 관리자 역할은 이 주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제일서고 출입이야 이 다음에 내가 승반을 해서라도 어찌어찌 해결할 수는 있다. 정작 문제는 저것들을 다 꺼내가는 일과 보관하는 일이었다.
몰래 조금씩 꺼내가는 것도 어렵지만 보관은 더 문제다.
거처에 계속 보관할 수도 없는 일이니 현재의 내 상태에서는 결국 전장에 맡겨야 한다.
한데 이 어린 나이에 이 무공 실력으로, 저 많은 귀한 것들을 전장에 갖다가 맡기는 것도 위험할 가능성이 많다. 아무리 조금씩 떼어다가 분산해서 맡긴다고 해도 그렇다.
한데 저 통로로 인해 모든 고민이 말끔하게 해결된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나는 일단 그 석함의 안을 뒤적거려 야명주 하나를 챙겼다.
크기가 가장 작으면서도 조도는 충분한 야명주였다.
이후에는 수중 관문을 통해 이곳에 와야 할 테니, 그때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등을 들고 수중 관문을 통과할 수는 없으니까.
뒤적거리는 중간에 피독주도 보여서 깜짝 놀랐다.
몇 개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충 뒤적거리는 와중에도 두세 개는 보였다.
피독주로 말할 것 같으면 야명주보다 더 값나가는 물건이다. 목숨 보전과 연관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독공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는 게 바로 피독주다. 당연히 처분하지 않고 내가 쓸 것이다.
그 후, 은원보 몇 개와 적정량의 은자 정도를 챙긴 후 석함을 닫았다.
물론 송가장에서 다달이 보내주는 용돈만으로도 현재는 그다지 불편함이 없긴 한데, 이 정도는 지니고 있어야 상황에 따라 더 편리하게 쓸 수 있을 테니까.
온통 내 시선을 사로잡는 중앙의 석단을 지나쳐 우측 석단의 석함 앞에 섰다.
좌측의 석함에 비하면 넓이는 비슷하지만 높이는 반도 안 되는 석함이다.
그 석함의 위에도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좌측의 석함에 비해 훨씬 깨알 같은 글씨가 매우 빼곡했다.
<생에 대한 미련조차 거의 남지 않은 상태지만 단 하나, 가전 무예에 대해서만큼은 미련이 강하게 남는다.
본디 발해는 다수의 민족들이 융화를 이룬 나라였다. 중원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대장군가였던 우리 가문의 무예 또한 그러한 성질이 담겨 있다. 고구려의 무예를 기반으로 출발하여, 점차 다른 민족 무예들의 장점을 융합시키며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당연히 중원의 무예도 융합되어 있다.
내 조상들께서 창안하여 대를 이어 계승, 발전시켜온 우리 가문의 무예가 실전되기를 원치 않는다.
중원의 입장에서 보면 변방의 무예처럼 여겨질 수 있겠으나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역대 우리 가문의 후손들 중에서도 무공 자질은 둔재에 속했다.
때문에 중원에 처음 왔을 당시, 내 성취는 전체적으로 칠성 내외의 수준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중원에 나보다 강한 무인이 몇 명 되지 않았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가문의 심법은 ‘고천비룡결’이다.
고천비룡결이 특히 중시하는 건 안력과 동체시력인데, 나중에 중원에 와서 비교해보니 축기 효율 또한 매우 뛰어난 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문의 무공은 ‘풍우비룡무’다.
풍우비룡무가 중시하는 건 날렵함과 정확성이며, 철저하게 실전에 특화되어 있다. 실전에 특화된 덕분에 내가 중원에 와서도 강력함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심법이나 무공의 전반적인 특징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것들을 함께 익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술에도 특화된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 가전 무예에도 그러한 요소가 담긴 것이다.
심법과 무공의 성취가 삼성 이상씩만 되어도, 궁술에 약간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인근에서는 능히 명궁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한 우리 가문의 무예가 실전되지 않고 또다시 빛을 발하게 만들어 준다면, 나는 지하에서도 그대가 가는 길을 응원하며 축복할 것이다.
이 안에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를 서책으로 엮어 넣어 뒀고, 그 외에도 우리 가문의 가보 두 개를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