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6
비급 같은 것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나로서도 혹할 만한 이야기였다.
연승휴의 말마따나 고천비룡결이 안력과 동체시력을 특화시켜준다면, 비슷한 내공 경지라도 움직임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기본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풍우비룡무가 날렵함을 중시한다는 점도 좋았다.
날렵함은 즉, 쾌(快)다.
천섬무가 전체적으로 추구하는 바도 쾌다.
사부님이 마기를 벗어나는 경지에 이르러 창안한 무공이 천섬무이니, 결국 사부님도 그 즈음에는 쾌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높게 여기신 것이다.
그래서 연승휴의 가전 무예가 더 마음에 든다.
나아가서 실전 위주의 무공이라는 점도 매우 마음에 든다.
심법과 무공을 함께 익혔을 때 궁술이라는 패를 하나 더 갖게 되는 점도 좋다.
무림인이 내공을 담아 쏘는 화살은 일반인이 쏘는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궁술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요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비급을 찬찬히 분석해 보고, 나아가서는 실제로 익혀봐야만 제대로 된 무공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연승휴가 쓸데없는 자부심으로 허언을 적어놨을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석함 정면의 손잡이를 아래로 젖히자, 아까처럼 석함의 뚜껑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수직으로 섰다.
그 안의 내용물들은 간단했다.
기다란 목함 하나와 작은 목함 하나, 그리고 서책 두 권이 포개어져 있었다.
이 석함의 뚜껑 안쪽에도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긴 목함에 들어 있는 물건은 내가 사용하던 검이며,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가보이기도 하다.
평범해 보이나 명검이다.
사용해 보면 알 것이니 별도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다만 우리 가문의 가보인 만큼 그대가 소중하게 여겨주길 바랄 뿐이다.
겉보기에는 특별한 게 없으니, 지니고 다니면서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목함에 들어 있는 끈은 지잠은룡사를 엮어서 만든 것으로, 우리 가문에서는 은룡삭이라고 부른다. 이 또한 대대로 내려온 가보이다.
극도로 질기고 탄성이 높아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겠으나, 우리 가문에서는 주로 활시위로 사용했다.
활대의 재질이 보통만 되어도 은룡삭을 시위로 사용하면 웬만한 명궁 못지않을 것이며, 적당한 나뭇가지를 갖다가 활대로 써도 웬만한 활 역할은 충분히 할 것이다.
지잠은룡사에는 영능이 있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물건이다. 자세한 사항은 풍우비룡무를 탐독하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글귀를 읽은 후 서책들부터 꺼냈다.
고천비룡결.
풍우비룡무.
대강의 소개는 석함의 뚜껑을 통해 읽었으니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천천히 훑어보면 되겠지.
기다란 목함을 꺼내서 열어보니 검집에 꽂혀 있는 한 자루의 검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검집을 들어 검을 뽑았다.
스르르릉-
연승휴의 말마따나 일견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검신의 옆면에 손가락을 한 차례 대 본 순간, 서늘한 예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날이 아닌 면에 손가락을 댄 것만으로도 그런 느낌이다.
천마신교에서 여러 명검들을 만져 본 입장에서, 이게 명검이라는 걸 충분히 알겠다.
작은 목함을 꺼내어 열어보니 끈이 있었다.
묵빛이 살짝 감도는, 반투명한 색감의 끈이었다.
지잠은룡사로 만든 은룡삭이라······.
참고로 저 지잠은룡사에서 ‘사’라는 글자는 뱀[蛇]이라는 뜻이 아니라 실[絲]이라는 뜻이다.
조심스럽게 은룡삭이라는 끈을 집어 드는데, 왠지 모르게 끈이 꿈틀하는 느낌이었다.
“으어어!”
깜짝 놀라서 끊을 도로 놓으며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내가 웬만해서는 놀라도 이런 식의 반응까지는 보이지 않는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단순한 끈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집어 들었는데, 마치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느낌을 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우이씨! 옘병, 후우, 후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다시금 앞으로 다가가서 작은 목함 안의 은룡삭을 바라보았다.
미동도 없다.
당연히 저럴 수밖에 없지. 끈인데.
이번에는 각오를 하고 집어 들었다.
미세하지만, 정말로 꿈틀하는 느낌이 있다.
그 이상 스스로 몸을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 미세한 느낌 때문에 내가 놀랐던 것이다.
영기가 깃들어 있는 가보라더니 실제로 그런 모양이다.
양손으로 끈을 잡고 중간 부분을 한 발로 밟은 채 열심히 당겨 보았다. 질기고 탄성이 강하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음······.”
이 은룡삭을 어찌할까 하다가 일단 상의를 걷어 올리고 그 안의 허리춤에 둘렀다.
검은 이 다음에 와서 가져가도 되니 목함에 담아서 석함에 다시 넣었고, 서책만 빼들고는 그 석함도 닫았다.
그 후, 중앙의 석단으로 이동했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기실, 처음부터 내 시선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았던 곳이 바로, 세 개의 석단 중에서 중앙의 석단이었기 때문이다.
중앙의 석단에는 석함이 없고, 대신 적당한 크기의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화단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은 단 하나.
중앙에 고고하게 자리 잡고 서있는데, 흙 위로 드러난 키가 대략 무릎 높이쯤이었다.
줄기와 잎들은 전체적으로 백색에 가까운데, 어떤 방향에서 보면 붉은빛이 감도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방향에서 보면 푸른빛이 감도는 것 같기도 하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에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부터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더 시선을 끄는 건 거기에 달린 단 하나의 과실이다.
과실에는 붉은 기운이나 푸른 기운 같은 게 전혀 감돌고 있지 않다.
그저 새하얀 백색이다.
한 입에 넣고도 씹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살짝 부담스러운 정도의 크기였다.
딱 봐도 영과.
이 공간에 들어온 이후로 심장이 가장 열심히 뛰고 있다.
화단 앞의 석단에도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대가 이곳을 찾았을 때쯤 백년음양선과가 얼마나 자랐을지 모르겠다.
백년음양선과는 이름처럼 백 년을 산다.
싹이 튼 후 일 년 동안은 쑥쑥 자라는 중에 청색의 과실이 맺히고, 십 년이 지나면 과실의 색이 홍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십 년이 되면 진홍색이 되고, 이후부터 십 년간은 색깔이 빠지며 점차 백색이 되어간다.
즉, 홍색도 설익은 상태이며, 삼십 년간 자라 백색이 되었을 때부터가 익은 상태다.
그대로 두면 백색 과실의 상태로 음양의 기운과 교류하며 칠십 년간을 더 산다.
그 후에 과실이 떨어지면 줄기와 뿌리도 서서히 죽는데, 약 일 년이 지나면 씨앗이 그 자리에서 발아하여 또다시 자라난다. 이후에는 같은 성장과정이 반복되고 생사가 순환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조건이 바로, 햇빛이 들지 않는 음양상조지다.
그대가 발견했을 때 과실이 혹여 백색이 아니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성장 과정에 대해 내가 설명한 바에 따라, 기다렸다가 섭취하길 권한다.>
감사합니다, 연승휴 선배님. 새하얀 백색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머지 내용을 읽었다.
이런 건 특히나 설명을 제대로 읽고 복용할 필요가 있다.
<장백산의 동굴에서 자라던 것으로, 그곳 또한 음양상조지였다. 가문에서 대를 이어 비밀리에 관리하며, 필요할 때 취한 후 다시 심어놓길 반복해왔다. 가문을 벗어나기 전에 그걸 내가 먹고 씨앗을 챙겨왔던 것이다.
당시의 내 경우에는 이십년 남짓의 공력을 얻었다.
심법의 성질에 따라, 또는 성취에 따라 차이가 있을 테니, 그 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내 고천비룡결의 성취로는 다섯 시진(열 시간) 남짓 동안 쉬지 않고 운기하여 과실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었다.
영약이나 영과의 기운이라는 게, 계속해서 운기를 취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적으로 몸에서 빠져나가는 양 또한 적지 않다.
그러니 체내에 영과의 기운이 남아 있는 동안 운기를 쉬면 더 손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충분한 준비가 된 상태에서 과실을 복용하길 권하는 바이다.>
과실 섭취에 대한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이후에는 줄기와 뿌리는 건조하여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고, 그 이후에는 씨앗을 심은 후의 초반 관리법 정도가 적혀 있었다.
비석 앞으로 가서 비석에 대고 절을 두 차례 했다.
이 어마어마한 고마움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예라도 취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연승휴가 저세상에서라도 보고 있다면 흐뭇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후, 제일서고로 통하는 석문 쪽으로 갔다.
일단 제일서고 쪽의 기관을 완전히 폐쇄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앞으로 제일서고 쪽에서는 그 누구도, 우연으로라도 이곳을 발견할 수 없을 테니까.
당장 내가 챙긴 건 야명주, 은원보, 은자, 그리고 서책 두 권뿐이다.
아, 허리에 두른 은룡삭도 있었지.
유등을 들고 동굴의 입구를 벗어나 석문을 닫았다.
빠르게 제일서고로 나왔다.
기관을 작동시켰던 서가의 서단을 한 차례 들어 올리자 입구가 닫혔다.
그 직후, 나는 해당 서가의 양 옆에 있는 서가에 가서도 서단을 들어 올렸다.
처음에 기관을 작동시킬 때는 용을 썼는데,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아까보다 덜 무겁게 느껴졌다.
양쪽의 작업을 모두 마친 후 얼른 바닥에 귀를 댔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아아! 듣기 좋은 소리.
제일서고 쪽에서 통하는 기관이 완전히 폐쇄되는 소리였다.
최종 점검을 위해, 원래 기관을 발동시켰던 서가의 서단을 다시 한 번 들어 올려 봤다.
안 열린다.
만족감이 성난 파도처럼 몰려왔다.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쓰!
서책을 품속에 챙긴 후, 유등을 들고 서고 중앙으로 가서 대야와 행주 등을 챙겼다.
청소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다음에 와서 해도 된다.
즉시 그것들을 갖고 서고를 벗어났다.
나는 빠르게 움직였다.
관리자석으로 가서 대걸레를 가져와 기관이 열렸던 서가의 주변 바닥을 닦았다. 서가가 열리면서 먼지로 인해 생긴 자국이 남아 있었던 탓이다. 급했으면 내 옷이라도 벗어서 닦았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다시 관리자석으로 가서 안 쓴 행주들을 털어서 옆에 널어놓고, 쓴 행주들은 빨아서 널어놓았다. 대걸레도 한 차례 빨아서 물기를 털고 구석에 두었다.
물통에 있던 물을 내다 버린 후, 꺼내놨던 청소도구들을 모두 다시 원위치 시켰다.
그 후, 밖으로 나와서 제일서고 건물의 문을 걸어 잠그고는 거처를 향해 걸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직후의 시각이었다.
거처를 향해 빨리 뛰어가고 싶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수록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일 필요가 없다. 차분하게, 평소처럼 행동해야 한다.
원래 지금쯤은 저녁 구보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반 시진(1시간) 전쯤 출발했어야 한다.
송유하는 아마 혼자서 구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구보 시간에 만약 내가 거처에 없으면, 반 각 정도만 더 기다려 보고 혼자서 출발하라고 해뒀으니까.
거처에 도착해 보니 역시나 송유하는 없었다.
벽장을 열고 옆쪽에 있는 보자기의 안에다가 서책 두 권과 은원보와 은자를 끼워 넣어 두었다. 지금은 안 쓰는 얇은 침구류를 싸매 놓은 보자기였다.
그 후 서탁 앞에 앉아서 종이에다가 간단한 전언을 적었다.
오늘 밤 다녀올 데가 있어, 내일쯤 돌아올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곧바로 수중 관문을 통해 연승휴의 동굴로 갈 생각이다. 백년음양선과를 취하기 위해서다.
영과를 먹고 계속해서 운기를 하다 보면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연승휴는 꼬박 다섯 시진 동안 쉬지 않고 운기만 취했다고 했었다.
그 기준으로 생각해도, 끝나면 거의 내일 새벽이나 아침이다.
송유하가 새벽 구보를 위해 거처에 왔을 때 내가 또 없으면 염려할 것이다. 그러니 미리 전언을 작성해 두는 것이다.
장롱에서 천을 꺼내어 야명주를 적당히 싸맨 후 다시금 품속에 넣었다.
이후에는 전언을 적어 둔 서신을 문 앞에다 놔뒀다.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위치다.
그 후, 곧바로 거처를 벗어났다.
마치 평소처럼 구보를 하듯 천천히 뛰었다.
거주 구역을 벗어나서 산지로 들어선 후에는 조금 더 빠르게 뛰었다. 이미 어둑어둑했지만, 안력을 최대한으로 돋워서 주변을 살폈다.
어차피 평소에 구보할 때도 인적이 없는 곳이지만, 혹시 모를 일이니 만전을 기하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멈춘 곳은 좁은 산길이 굽어지고 또 굽어지길 반복하는 지점이었다.
근처에 침엽수들이 무성하다.
은폐하기도 참 좋은, 아주 적절한 지점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옆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나무들 사이로 곧바로 내려가 조용히 입수했다.
으이씨! 옘병, 오지게 춥다.
곧바로 잠수하여 바닥까지 내려가서 한 손으로 바위의 각진 부분을 잡았다.
그 후 다른 한 손으로 품속을 뒤져 천에 쌓여 있는 야명주를 꺼냈다. 적당히 싸맸던 천의 매듭 부분을 손가락으로 서서히 벌려, 불빛이 아주 미세하게만 새어나오게 했다.
물속인데다가 어두워서, 아무리 안력을 집중해도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바위는 여러 개였지만 곧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곧바로 그쪽으로 향하자, 역시나 수중 관문으로 생각되는 틈이 있었다.
틈 안으로 들어선 후에도 야명주의 불빛이 미세하게만 새어나오게 한 채로 수중에서 전진했다.
수중 통로는 비스듬히 위로 이어졌고, 잠시 후에 나는 어두운 공간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수 있었다.
“헉! 헉! 헉!”
보유한 내공이 보잘것없기에, 물속에서 이 정도 숨을 참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무엇보다 너무 춥다. 겨울의 물속이라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탓이다.
야명주를 내려놓은 후,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 물기를 최대한 짜내고는 다시 걸쳤다.
그래도 당연히 춥다.
움직여야 한다.
야명주를 들고 통로 안쪽으로 나아갔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통로는 머지않아 자연적으로 형성된 느낌의 동굴 통로로 이어졌다.
자연 동굴의 좁아 보이는 부분들도 여기저기 손을 봐서 넓혀 놓은 모습이었다. 고맙기 이를 데 없다.
걸음을 빨리하자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측의 석함에서 목함을 꺼냈다.
은룡삭이 들어있던, 지금은 비어있는 목함이다.
그걸 들고 와서 중앙의 석단 앞에 놓고는, 서서 호흡을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이제부터 중요한 시간이다.
백년음양선과를 보니 천마신교에서 마지막 순간에 복용했던 칠채마주 생각이 난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 효과도 없었지. 그 칠채마주 때문에 내가 이런 상황이 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긴 하지만.
조심스럽게 백년음양선과를 땄다.
그 후, 곧바로 입으로 가져가서 한 입 베어 물었다.
과육은 부드러웠다. 맛은 많이 달지는 않고, 살짝 달달한 느낌이다.
과즙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열기 따위가 느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평범하게 넘어갔다.
중앙의 씨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의 과육도 빠르게 베어 물고는 전체적으로 꼭꼭 씹었다.
최대한 과즙을 짜내기 위해 과육을 잘게 씹은 후, 서서히 목 안으로 넘겼다.
그 후에는 씨를 입 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씨에 붙어 있는 과육과 과즙조차 조금이라도 남길 일이 아니다. 혀와 입천장이 닳도록 빨았다.
잠시 후에 씨를 뱉어 보니 주름진 씨의 겉면이 아주 깨끗했다.
준비해둔 목함에 씨앗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씨앗을 일단은 보관해두기 위해 목함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때쯤, 체내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뱃속에서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나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한 기운이었다.
확신이 들었다.
이건 의심할 나위가 없는 영과다.
곧바로 중앙의 석단 위에 정좌하고 앉아서 회회심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무한 운기조식의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장시간 운기조식이라면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