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28화 (28/416)

내 안에 마교있다 28

서고 근무가 없으니 간만에 여유로운 일상이었다.

오전 내내 고천비룡결을 연구한 후, 벽곡단으로 끼니를 때우고는 오후에도 연구를 이어갔다.

하루 종일 반복해서 읽다보니 전반적인 내용 파악은 끝났다.

그래서 서책을 다시금 벽장에 넣어 놓은 후, 누워서 잠시 쉬며 고천비룡결의 여러 원리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일단 내가 제대로 알아야 송유하에게도 제대로 전할 수 있다. 그러니 한동안은 꾸준히 생각하며 원리와 묘리를 확실하게 알아내야 한다.

누워서 그러고 있는데 유시초(오후 5시)쯤 되었을 무렵, 밖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송 형, 계시오?”

길초량의 목소리였다.

방문을 열고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길초량이 방에 들어와서 서탁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근래 송 형 얼굴 본 지도 좀 됐고, 섣달그믐인데 뭘 하고 계신가해서 와 봤소. 한데 오늘 같은 날에도 서책이나 읽고 계셨던 거요?”

내 서탁 위에는 서고에서 대여해온 무공서가 항상 펼쳐져 있다. 당연히 보여주기 위한 용도다. 길초량도 그걸 보고 물은 것이다.

“섣달그믐날이든 정월초하루든 별 거 있소? 어차피 일 년 중의 하루들일 뿐이오.”

내 말을 들은 길초량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허어. 이런 때 보면 정말이지 기억을 잃는다는 게 무서운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오.”

“무슨 말씀이시오?”

“작년 섣달그믐에 송 형은 내가 싫다고 해도 어떻게든 억지로 끌고 옥산 거리에 갔었소. 당시에 송 형은 방학이라서 장원에 가 있었는데, 섣달그믐이라고 잠룡관에까지 일부러 와서 나를 끌고 나갔던 거요. 이런 날에 잠룡관에 박혀 있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아······, 그, 그랬소?”

“아니, 뭐. 나가자는 건 아니오. 어차피 지금 출발하기엔 늦었고, 설령 가 봐야 객잔 자리 잡기도 어렵소. 옥산 번화가가 온통 인파로 북적거릴 테니까.”

“그것도 그렇겠구려.”

“방학 때 잠룡관에 남은 관도들도 이미 다들 옥산 번화가에 나간 모양이오. 온 잠룡관이 썰렁하더구려. 잠룡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다 합해도 몇 명 되지 않을 것 같소. 그래서 적적하기에 와 봤소.”

길초량이 들어올 때부터 면밀히 관찰했었다.

회회심공이 내공 경지를 잘 드러나지 않게 하는 장점이 있으나, 그래도 갑작스럽게 내공이 크게 상승한 상황이다. 길초량은 고수인 만큼 내 변화를 눈치 채는지 궁금했다.

한데 눈빛이나 표정에서 딱히 그런 기색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 즈음, 밖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있었다.

“오라버니, 계시죠?”

송유하였다.

방으로 들어서며 그녀가 말했다.

“어, 길 공자님도 계셨네요.”

“어서 오시오, 송 소저. 나도 방금 왔소.”

송유하가 서탁의 오른편에 앉으며 말했다.

“실내 연무장에서 수련 하다가 거처에 가보니 거주 구역에 사람이 없더라구요. 섣달그믐이라 다들 나갔나 봐요. 그래서 적적한 느낌이 들어서 와봤어요.”

길초량도 저 얘기를 했는데 송유하도 같은 얘기인 걸 보면, 잠룡관이 썰렁하긴 썰렁한 모양이었다.

섣달그믐날이니 다들 분위기를 내고 싶긴 했겠지.

어쨌거나 송유하가 이런 날에도 혼자서 수련한 걸 보니, 오늘 새벽에 내가 했던 말이 상당한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다.

기특하다.

“섣달그믐이라 오늘 저녁하고 내일 아침 식당 차림표는 교자더라구요. 근처를 지나왔는데 맛있는 냄새가 났어요. 이따가 함께 가서 먹어요.”

송유하의 말에 길초량이 곧바로 대꾸했다.

“오, 그럽시다.”

나 또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늘은 나로서도 매우 기분 좋은 날이다.

가뜩이나 섣달그믐이니 소소하게 기분도 낼 겸, 그 정도야 뭐.

“조금 늦게 가면 눈치 보지 않고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약간 늦게 가요.”

얘는 하여간 먹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못 먹고 자랐을 리도 없는데.

“그나저나 두 분, 제일서고 근무는 할 만하시오? 그쪽도 방학이라 한가할 것 같긴 한데.”

길초량의 질문이었다.

“네. 저는 오전 나절 근무고 오라버니는 오후 나절 근무인데, 제 경우에는 지금껏 단 한 명도 방문객이 없었어요. 오라버니는 어제 오후에 방문객이 많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새벽 구보를 마치고나서 걸어오는 길에, 어제 서고에서 여러 관도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줬었다.

방학 기간에 제일서고에 출입하는 관도들은 정해져 있다.

그러니 송유하 또한 누가 오가고, 그들이 어떤 성격들인지를 대강이나마 알고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오호? 그랬소? 누가 왔었소?”

길초량이 궁금해 하자, 나는 서고에서 발생했던 사건에 대한 언급은 빼고, 방문했던 관도가 누구누구인지만 알려주었다.

길초량이 제일서고에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시시콜콜 다 얘기할 필요성까지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왔었는지를 들은 길초량이 말했다.

“아하, 그 분들이었구려.”

“아는 분들이오?”

“여러 소문들을 통해 대강 어떤 성향들인지만 알고 있는 정도요. 내가 이래봬도 곧 잠룡관 오 년차가 되는 몸이잖소. 상위 반 관도들에 대한 여러 소문들을 접할 경로가 제법 있다오.”

“오오. 그렇소? 길 형이 그들에 대해 아는 정보는 어떤지 궁금하구려.”

그러자 길초량이 어제 왔던 관도들에 대해 본인이 알고 있던 정보들을 늘어놓았다.

“오오오오!”

다 듣고 나서 길초량을 향해 의외라는 표정으로 과하게 놀란 척을 해줬는데, 실제로 놀라기도 했다.

길초량의 정보들이 상당히 정확했기 때문이다. 관도들의 성향과 성격에 대한 얘기들 까지도.

“과하게 탄성을 내뱉는 모습이 왠지, 송 형이 그간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우려스러운 수준이구려.”

“잠룡관의 유이한 자유로운 영혼. 잠룡관의 밥만 축내는 한량. 우리 둘 다 같은 처지잖소.”

내가 농담조로 말하자 길초량도 농담조로 대꾸했다.

“같은 처지한테 그 얘기를 들으니 무시당하는 것 같은데도 뭐라 할 수는 없고. 기분이 참 묘하구려.”

“하하.”

“어쨌거나 송 형의 반응을 보니, 송 형 또한 그들에 대해 비슷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오?”

“그랬소. 과연 큰소리 칠만한 정보력이시오.”

“거보시오. 내가 상위 반 관도들에 대한 정보도 제법 빠삭하다고 했잖소.”

뭐, 납득은 된다.

길초량은 잠룡관에 오래 있었던 만큼 나를 만나기 이전에도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 중에는 상위 반 관도들도 있었겠지.

나 또한 길지 않은 잠룡관 생활 중에 상위 반 관도들과도 연이 닿았으니까.

길초량은 성격도 좋으니 어디 가서 미움 살 성향도 아니고.

길초량이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궁금해 하기에 간략히 얘기해줬다. 그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내 얘기를 들었다.

이후에 길초량에게 물었다.

“방학이 시작된 후로 한동안 거처에도 안 계신 것 같던데, 어디 다녀오시기라도 했소?”

“방학도 되고 했으니 여기저기 지인들 좀 만나고 다녔소.”

“아니, 평소에도 방학처럼 지내시면서 뭘 방학이 된 김에 특별히 지인들을 만나고 다니신 것처럼······.”

농담조로 그렇게 말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지인 얘기를 하다 보니 길초량이 일전에 무원객잔의 이 층에서 만나고 있던 죽립 사내가 떠올랐고, 별안간 그의 정체까지도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간 여러 차례 노력했는데도 안 떠오르더니, 이렇듯 어이없는 순간에 떠오를 줄이야.

‘태무엽! 그였어!’

그는 현 무림맹 신룡대 황룡조의 조장이다.

무림맹의 신룡대는 쉽게 말하면 천마신교의 흑풍대와 비슷한 조직이다.

무림맹주 직속의 기밀임무 수행조직이자, 무림맹의 소수 최정예무력조직.

신룡대는 청, 적, 황, 백, 흑의 오색을 상징하는 다섯 개 조로 나뉘어, 각각 청룡조, 적룡조, 황룡조, 백룡조, 묵룡조로 불린다.

기밀임무 수행조직이라 구성원들의 신상명세도 모두 기밀이다. 대원들은 평소에도 대부분 모습을 바꾸고 신분을 위장한 채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심지어는 맨 얼굴을 드러내고 돌아다녀도 그 대단한 신룡대원임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없다.

무림맹을 대표하는 무력조직에 속해 있음에도, 그들을 알아보는 건 무림맹의 최고위 인사들 내지는 같은 신룡대원 정도랄까.

하지만 신룡대는 천마신교의 흑풍대처럼 확실한 출세경로다. 현재의 그림자 생활에 대한 보상도 큰 셈이다.

백도인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신룡대원을 내가 알아본 건, 내가 흑풍대 시절에 태무엽이라는 사내와 직접 맨 얼굴을 맞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와 백도 무림맹이 적대적 관계이긴 하나, 물밑에서는 비밀리에 여러 사안들에 대한 조율이 이뤄지곤 한다.

수뇌들의 서신 교환은 확실함을 기하기 위해 양측의 최정예 기밀임무 수행조직이 맡는다. 흑풍대와 신룡대다.

당시에 나는 흑풍대원으로서 실력을 인정받았을 때였고, 태무엽은 신룡대 황룡조의 선임조원이었다.

상호 신뢰를 보이기 위해, 양 측의 연락책들은 만나서 복면을 벗고 맨 얼굴을 보이는 게 규칙이다. 그래서 인피면구 검사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첨예한 살기가 오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연락책의 구면들끼리는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훈훈하기까지 하다.

서로가 최정예인 만큼, 주어진 임무를 최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지존들의 서신을 확실하게 전달한 후, 다음에 만나서 또 답신을 받는 일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 일로 봤던 인물이 바로 태무엽이었다.

황룡조의 선임조원이었던 그가 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부조장으로, 조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그 정보는 천마신교에서 접했다.

과거에는 수염이 매우 짧았었는데, 무원객잔에서 봤을 때는 콧수염, 턱수염, 구레나룻 등을 덕지덕지 기른 모습이어서 확 떠오르지 않았었나 보다.

‘길 형과 태무엽은 무슨 관계일까.’

중요한 건 이 부분이다.

길초량의 무공이 빼어나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세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신룡대에서 영입제안을 받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신룡대원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신룡대와 협업하는 다른 특수 조직에 속해 있거나.

마음속에서 촉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기는 하는데, 속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앞으로는 길초량이 최대 신룡대원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를 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송 형, 왜 그러시오?”

길초량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태무엽의 정체를 떠올린 내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저렇게 묻는 것일 테지.

“아, 아무것도 아니오.”

“갑자기 뭔가 놀란 눈치시던데.”

“하하. 딴 생각이 들어서 그만. 미안하오.”

대충 대꾸해주긴 했는데, 길초량이 어쩌면 신룡대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미묘한 기분이 든다.

동종 조직에서 일을 해봤기에 친밀감도 들고, 든든한 느낌도 든다. 동시에 나에 대한 정보는 더 감추고 싶은 경계심도 든다고 할까.

* * *

송유하와 길초량의 제안대로 약간 늦게 식당으로 향했다.

걸으면서 보니 두 사람의 말마따나 잠룡관이 썰렁했다. 돌아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식당에 도착해서 보니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잠룡관에 남은 이들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저녁을 먹을 사람들은 이미 다 먹고 돌아간 모양이다.

한데, 식사를 하고 있는 그 한 사람이 의외의 인물이었다.

제갈수광이었던 것이다.

“어? 송유겸, 송유하 그리고······, 아, 길초량이었지.”

그의 탁자에는 교자 한 접시와 술병 두 개, 술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딱 내가 아는 그 한심한 장년의 모습이나, 이제는 더 이상 그가 한심해 보이지 않는다. 가족 모임 때 이청오한테서 제갈수광에 대해서 들었으니까.

“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인사하자 제갈수광이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말했다.

“송유겸과 송유하는 임시 관리자 역할, 할만 해? 뭐, 그리 어려운 건 없겠지만서도.”

“예, 딱히 어려운 건 없습니다.”

“그래. 어쨌든 고맙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지내고 있고. 참고로 그 일 끝나면 소정의 수고비 정도는 나갈 거야. 뭐, 잘 사는 집안 출신이니 돈이 궁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잠룡관 입장에서도 관도를 공짜로 부려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

“바라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그거야 알지. 그래도 받으라고.”

“예.”

제갈수광에게 물었다.

“한데 이런 날 어찌 홀로 이런 곳에서 약주십니까?”

“빌어먹을 야간당직 때문이지.”

“아.”

근데 이보쇼. 당직도 근무잖습니까! 그렇게 막 대놓고 술 마셔도 되는 겁니까?

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제갈수광이 술잔 안의 내용물을 입안으로 털어 넣더니 우리를 향해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해주는 건데, 당직도 엄연히 근무야. 즉, 나는 지금 근무시간인 거지. 원래는 근무시간에 이렇게 술 마시면 안 돼. 너희들은 나중에라도 이러면 안 돼.”

아니, 이보쇼! 지금 그딴 걸 교육이랍시고 하시는 거요?

“아, 그런데 어쩌지? 식당 문 닫을 시간인데.”

제갈수광의 말에 우리 세 사람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예?”

“숙수들이 다 퇴근했거든. 날이 날이다 보니 그분들도 오늘은 일찍 가고 싶어 하는 눈치더라고. 더 이상 먹으러 올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 나한테 열쇠 맡기고 퇴근하시라 했지. 내가 당직이니까 내가 잠그고 간다고. 그런데······.”

말을 멈춘 제갈수광의 시선이 길초량이 들고 있는 보따리 쪽으로 향했다.

“길초량, 그거 술이지?”

“예? 예······.”

식당으로 출발하기 전에 길초량이 본인의 처소에 가서 가져 온 술이었다. 나는 딱히 술 생각이 없긴 한데, 길초량은 이런 날은 꼭 한 잔 마셔야 한다며 챙겨왔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이런 날 식당에 약간 늦게 오면 사람도 없을 테고, 그러면 눈치 안 보고 식사하면서 한 잔 마실 수 있다, 그런 계산이었을 테지?”

“하, 하핫. 예, 뭐······.”

“한데 어쩌지? 숙수들은 내가 일찍 퇴근시켰고, 이제 나는 이곳 문을 잠그고 당직실로 가 봐야 하는데.”

“그, 그럼 뭐, 얼른 교자만 챙겨가겠습니다. 숙소에 가서 마시는 수밖에요.”

길초량이 바로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송유겸과 송유하에게 고마운 게 있는 입장이지.”

저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순간적으로 제갈수광이 품속을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어 내 쪽으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건 큼지막한 열쇠였다.

내가 그걸 낚아채자 제갈수광이 우리를 보고 물었다.

“야간 당직실 알지?”

“예!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길초량이 환해진 얼굴로 얼른 대꾸했다.

제갈수광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술 가져온 양을 보니 제법 마실 것 같은데, 뭐, 날이 날이니만큼 늦게까지 마시는 건 상관없어. 다만, 깨끗하게 먹고,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해놓는다. 알았지?”

“예!”

“그 후에 문 잘 잠그고 당직실에 와서 열쇠 주고 가고.”

“알겠습니다!”

길초량이 신 나서 곧바로 대꾸했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날이 추워서 교자도 금방 차가워질 거야. 참고삼아 알려주자면, 저 안에 간이화로와 숯이 있어. 철망도 있지. 화로와 철망만 깨끗하게 정리해 놓으면, 숯 조금 쓰는 거야 큰 상관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놀랍다. 은근슬쩍 저런 것까지 허락해 주다니.

길초량이 감격했다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자신의 탁자 위에 놓인 술병과 식기들을 턱짓하며 말했다.

“이거, 내가 치워야 할까?”

길초량이 바로 대꾸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따가 저희가 먹은 것들 치우는 김에 함께 치우면 간단할 일을요.”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입구 쪽으로 향했다.

길초량과 송유하의 표정이 환해져 있다.

그때, 식당의 문이 열리며 네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선 인물들의 면면을 확인한 내가 속으로 놀라고 있을 때, 문 앞에 다다라있던 제갈수광이 방금 들어선 이들에게 말했다.

“식당 문 닫았는데.”

“헛! 버, 벌써요······?”

“어. 오늘 숙수들을 일찍 퇴근시켜서. 날이 날이잖나.”

“다름이 아니라 저희들은 얼른 교자만 좀 챙겨가려고······.”

그렇게 대꾸하던 이가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외쳤다.

“어? 임시 관리자님······!”

광동, 청원표국의 황성락이었다.

그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선 다른 세 사람은 광동의 소충광, 진운령. 그리고 복건 우문세가의 우문직이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나를 향해 반가워하며 짧게 목례했다.

나 또한 그들을 향해 짧게 목례해 보이며 대꾸했다.

“아! 하핫. 여러분······.”

그러자 제갈수광이 소충광과 우문직이 들고 있는 큼지막한 보따리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야, 그게 다 술인가?”

“아, 하핫. 예······. 섣달그믐날이고 하니 교자 좀 챙겨가서 숙소에서 함께 마실 생각으로······.”

우문직이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그들에게 물었다.

“송유겸과 친한가?”

진운령이 대꾸했다.

“어제 한 번 뵀던지라 아직 친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앞으로 친해지고 싶은 분이세요. 저희한테는 고마운 분이셔서.”

이에 제갈수광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곧 그의 전음이 들렸다.

[함께 술 마시고 싶은 사이인가?]

내가 아니라고 대꾸하면 곧바로 저 네 사람을 식당에서 쫒아내기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