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3
거처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긴 후 간단하게 전언도 작성했다. 갑작스러운 합숙으로 며칠간 거처를 비운다는 내용이었다.
비룡검도 봇짐에다가 결속시켜서 봇짐을 등에 멘 후 곧바로 거처를 나섰다.
제삼서고 위쪽의 공터에 도착해서 보니 제갈수광도 없었고 두 소녀도 없었다.
제갈수광은 교관이니 이것저것 챙길 게 많을 테고, 소녀들은 여자들이니 나름 챙길 게 많을 것이다.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하기도 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저 아래쪽 멀리에서 두 소녀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참고로 둘은 열여섯 살 동갑내기다.
두 소녀 모두 외모로만 따지면 중간 이상 정도다. 평범하나, 나름 예뻐 보이는 정도라고 할까.
두 소녀를 보고 있자니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저 요망한 것들 같으니.’
그간 제갈수광과 계반 조원들과의 식사 자리도 한 주에 한 번씩 계속되었다. 그렇기에 유은무, 장우혜와도 매주 한 번씩은 꼭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한데, 만남이 지속되다보니 두 소녀에게서 이상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두 소녀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들이었다.
첫째, 둘 다 면구를 착용하고 있다.
인피면구인지 인조면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매우 정교하게 제작된 최상품이라는 게 중요하다.
그냥 지나치는 사이였으면 못 알아챘다. 한데 몇 번 만나서 함께 식사까지 하다 보니 그 미세한 어색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흑풍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면구를 착용했는지를 판별해내는 훈련도 많이 했고, 임무 때문에 나 또한 면구 착용을 수도 없이 해봤다.
게다가 나는 사부님의 제자가 된 후 유마幽魔 장로로부터 강제 주입식 소양교육까지 마친 몸이다. 유마 장로는 은신술, 변장술, 도망술, 추종술 등등의 분야가 주특기인 사람이다.
아마도 나 외에는 알아볼 수 있는 이들이 없다시피 할 것이다.
둘째, 둘 다 무공 수준이 결코 계반 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식사 때만 만나는데, 두 소녀가 미리 식당에 가서 대기하고 있는 적이 많기에 알아챌 계제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두 소녀의 무공에 관련된 부분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면구 착용을 의심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중위반 정도의 수준인가 싶었다.
한데 이후에 꾸준히,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두 소녀가 무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명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운 면은 있으나, 내 짐작으로는 두 소녀 모두 무조건 일류고수들이었다.
확실한 일류면 당장 을반 이상이다.
나로서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입관할 때부터 을반 이상에 배치 받을 수 있는 수준이면 역대 급이다. 대형 후기지수 급인 것이다.
한데 나는 유은무라는 이름도, 장우혜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게다가 두 소녀는 모두 면구를 써서 본래의 모습을 가렸다.
이 사실이 뭘 의미하겠는가.
모습과 신분을 바꾼, 가명 입관이다.
하면 왜 가명 입관을 했겠나.
신분이 알려졌을 경우, 수많은 귀찮은 상황에 노출될만한 존재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둘 다 정체가 뭘까.
섣달그믐날의 술자리에서 우문직이 했던 이야기들이 퍼뜩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에이, 그래도 설마.
아닐 거야.
아무리 가명을 써서 입관했다고 해도, 그 금지옥엽들이 뭐 하러 굳이 계반에 들어오겠어? 잠룡관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 바로 계반인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두 소녀의 무공 수준까지 고려하면 또다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며 여러 모로 두 소녀들에 대한 추측을 이어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섣부른 단정을 내리기보다는 앞으로 더 자세히 관찰해 볼 일이다.
같은 조인데다가, 이제부터는 합숙도 함께 하니까.
* * *
제갈수광이 우리를 데리고 삼청산의 깊은 곳을 향해 신법을 펼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깊은 곳으로 갈수록 산세도 더 험해지고, 고도도 더 높아지고 있다.
따라가기 적당한 속도이기에, 나는 최소한의 공력만 이용하여 신법을 펼쳤다. 최소 공력으로 최대 효율을 뽑아내는 연습도 모두 수련이다.
그 와중에도 웃기는 건 두 소녀다.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법을 펼치고 있는데, 어떻게든 어설프게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중간에 발을 ‘쿵!’하고 한 번씩 디디거나, 일부러 발이 꼬인 듯 휘청거리기도 하면서.
저 뛰어난 실력을 갖고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보이려고 저러는 거다.
푸흐흐. 애쓴다, 이것들아.
어설프게 보이는 일도 참 힘들지?
암말도 안할 테니 앞으로도 고생해라. 크크크.
그나저나 나도 그렇고 쟤들도 그렇고 일부러 실력을 감춰야 하는 상황인데, 이래서 이 합숙, 괜찮을까 싶다.
뭐, 제갈수광의 뜻을 아직 알 수 없으니 지켜 볼 문제지만.
* * *
산등성이 근처의 산장에 도착했다.
통나무들을 써서 만든 산장들이 총 네 채였다.
큼지막한 산장은 대략 스무 명, 중간 규모의 산장은 일고여덟 명, 작은 산장은 네댓 명, 가장 작은 산장은 서너 명쯤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산장이 비어 있다.
제갈수광이 네댓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 번째 산장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이곳이 우리의 합숙소다. 다들 들어와서 짐 놓고 나온다. 오늘은 무기 쓸 일이 없다. 다 놓고 나온다. 산장 관리인들이 있으니 분실 염려는 안 해도 된다.”
“저어, 교관님, 이왕이면 두 번째 산장 정도면 우리가 쓰기에 넉넉하고 적절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마자 장우혜도 물었다.
“교관님, 어차피 더 작은 산장도 하나 있는데 굳이 남녀가 함께 숙소를 써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갈수광이 우리를 향해 특유의 사무적인 어조로 대꾸했다.
“말들이 많군. 오늘 점심은 없다.”
저 인간의 성격을 대강은 알고 있으니, 나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후다닥 들어가서 짐을 던져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우혜와 유은무는 우물쭈물하고 있었는데, 그녀들을 향해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교관으로서 너희 두 사람에게 한 가지 조언하지. 방금 전에 선배인 송유겸이 하던 식의 처신을 잘 배우도록.”
그 말이 끝나자 두 소녀가 짐을 들고 쭈뼛쭈뼛 산장 안으로 들어섰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그녀들을 향해 제갈수광이 다시금 특유의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하게 약속하지. 이번 합숙, 힘들 거다. 힘든 만큼 영양을 보충시키기 위해 모든 식단은 풍성하게 짜 놨다. 참고로 오늘 저녁에는 고기인데 너희들이 그걸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이런 식이라면 연속으로 굶게 될 가능성이 크겠지. 성장기에 계속 굶으면 발육이나 피부 미용이나 건강이나······.”
타다다다다다닷!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소녀의 발걸음이 신속해졌다.
* * *
신법을 펼쳐 제법 높은 봉우리에 다다랐다.
제갈수광이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 위에 앉더니 들고 온 보따리에서 뭔가를 꺼내어 옆에 내려놓았다.
사루沙漏(모래시계)였다.
여러 개였는데 제법 큼지막한 규격도 있고, 작은 규격도 있다. 규격이 거의 같아 보이는 것들도 있다.
신경 써서 지니고 왔는지 사루 안의 모래가 하나같이 하단에 몰려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 이번 합숙은 힘들 거다. 반항하고 싶으면 그대로 하산해서 잠룡관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면 내가 그날 밤에 내려가서 즉시 퇴학 수속을 처리해 줄 것이다. 잠룡관 측도 어설픈 마음으로 임하는 관도들을 굳이 끌고 가지 않겠다는 방침이니까.”
그 말에 두 소녀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놀라서 저러는 건데, 금세 각오를 다지는 눈빛으로 변했다.
잠시 후, 제갈수광이 말했다.
“오른쪽에 봉우리가 하나 보일 것이다.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봉우리다. 보면 알겠지만 이곳 봉우리로부터 산등성이를 따라 연결되어 있다. 오늘 너희들은 계속해서 저곳까지 반복적으로 왕복한다.”
상당히 멀다.
가는 것만으로도 십 리 가까이 되어 보였다. 산길이니 실제로 가 보면 더 멀 수도 있다. 가뜩이나 저쪽 봉우리에는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면들도 여기저기 보였다.
그래도 신법을 펼쳐서 갔다 오면 그리 어려울만한 경로는 아니었다. 계속 왕복해야 한다는 게 문제일 뿐.
“신법을 쓰지 않고 왕복한다.”
우리 세 사람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즉, 순수하게 체력만 사용하라는 뜻이다.
“이 참에 아예 말해두자면, 이 시간 이후의 모든 합숙 기간 동안, 내가 따로 언급하지 않는 한 내공은 절대 쓰지 않는다.”
장우혜가 말했다.
“하지만 교관님, 중간에 보면 절벽 지형들도 많고, 제법 높은 절벽도 있어서 신법을 쓰지 않고는······.”
“가서 보면 밧줄이 매달려 있다. 어제도 확인했는데 튼튼하다. 참고로 경로의 중간쯤에 약수터 표시가 있을 것이다. 경로상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나오는데, 목마르면 그곳에 들러서 알아서 해결한다. 알겠나?”
“예······.”
“순위를 결정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조원들은 동료다. 나는 고지식한 사람이라 동료 간의 연대책임을 중시한다. 세 사람이 동시에 출발해서 함께 움직이며 함께 돌아온다. 계속 왕복해야 하니 체력 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퍼져서 쓰러져 있으면 모두 저녁은 없다. 체력 관리를 한답시고 걸어 다니는 꼴이 보여도 저녁은 없다. 알다시피 이곳에서도 경로가 다 보이고 약수터도 보인다. 그러니 알아서 처신들 잘 하도록. 설마 굶길까 싶겠지. 그건 어디 한 번 두고 보도록.”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봉우리의 꼭대기에 큰 깃발이 하나 있다. 셋이서 한 차례씩 깃발을 들고 좌우로 흔든 후에 곧바로 이쪽으로 다시 출발한다. 그럼 출발.”
말을 마친 제갈수광이 큰 사루 하나를 곧바로 뒤집었다.
큰 사루의 상단에서 모래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두 소녀도 무공 실력이 있는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출발하자마자 알아서 천천히 뛰고 있다.
어쩌다 보니 구보 대형은 유은무가 중앙, 내가 좌측, 장우혜가 우측이었다.
유은무가 조용히 말했다.
“교관님은 우리가 제대로 안하면 정말로 굶길 생각이세요.”
내가 보기에도 진심으로 그럴 기세였다.
“후배님들, 장시간의 체력 관리라는 게 결코 쉽지 않소. 그러니 이번에는 걷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한 천천히 뜁시다. 경로도 익힐 겸, 호흡도 조절하며.”
우리가 출발할 때 제갈수광이 큰 사루를 뒤집어 놨다는 건, 왕복에 걸리는 시간을 점검하겠다는 뜻이다.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으나, 여러 면을 생각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내 말에 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수들이라서 그런지 애들이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좋다.
경로의 중간쯤에 약수터 표시가 보이기에 말했다.
“처음이니 미리 약수터 위치도 확인합시다.”
두 소녀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비탈 아래쪽으로 향했다.
조금만 가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의 백오십 보는 가야 나오는 약수터였다.
편도가 그러하니 합하면 삼백 보다.
비탈의 경사가 상당히 심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즉, 한 번 내려갔다 오려면 체력도 그만큼 더 소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목을 축이는데 유은무와 장우혜가 차례로 말했다.
“상당히 머네요. 선배님 말씀대로 미리 확인하길 잘했어요.”
“물 마시러 내려왔다가 올라가려면 체력도 소모될 테니, 앞으로는 그 부분도 고려해야겠어요.”
두 소녀도 목을 축인 후, 우리는 또다시 구보를 시작했다.
반대편 봉우리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되었으니 힘도 그만큼 더 들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반대편 봉우리 쪽은 절벽 지형이 많다.
신법을 펼치면 안 되니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첫 절벽은 그다지 높지 않았고, 밧줄도 여러 개가 늘어져 있었다.
“이런 게 의외로 체력 소모가 큰 법이오. 알아서 조절합시다.”
내 말에 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첫 번째 절벽을 올랐다.
절벽을 오른 후에는 또다시 구보 경로였는데, 이전보다 경사가 심해졌다. 그만큼 체력 소모도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절벽, 세 번째 절벽, 네 번째 절벽을 차례로 통과했는데, 그때마다 경사가 더 심해졌다.
마지막 절벽이 다섯 번째 절벽인데, 지금까지의 절벽 중에 높이가 가장 높았다.
밧줄은 세 개.
가만 보니 두 개는 이미 설치되어 있던 것이고 하나가 새것이었다. 우리가 세 사람이니 제갈수광이 그걸 고려하여 하나를 늘려 놓은 게 아닌가 싶다.
밧줄을 타고 절벽을 오른 후 약간을 더 달리자 봉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깃발 앞에 서서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차례로 깃발을 흔들어 보였다.
그 후에 또다시 돌아가기 위한 구보를 시작했다.
속도를 조절하며 달려서 제갈수광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제갈수광이 큰 사루에 남아 있는 모래의 양을 확인하며 곧바로 뭔가를 기록했다.
그러더니 같은 규격의 또 다른 큰 사루 하나를 뒤집었다. 사루의 상단에서 모래가 조금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휴식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고 바로 다음 시간을 재기 시작한 것이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수고들 했다. 알아서 호흡들 고른 후, 알아서 출발한다. 아, 참고로 방금 전에 걸린 시간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저녁은 없다.”
무조건 방금 전에 걸린 시간보다는 덜 걸려야 한다는 뜻.
이에 우리 세 사람의 눈동자가 빠르게 교환되었다.
방금 전에는 체력 관리를 위해 천천히 달렸고, 중간에 약수터에 들른 시간까지 있다.
이전에 목을 축였으니 어차피 벌써 목이 마른 것도 아니다.
즉, 약수터에 들르지 않는다면 방금 전의 속도로 달려도 무조건 처음보다는 빨리 왕복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하면, 세 번째 왕복부터 천천히 속도를 올리면 될 일이다.
두 소녀의 눈동자를 보니 내 생각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출발했고, 처음과 같은 속도로 달려 약수터에 들르지 않고 왕복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제갈수광이 이번에도 남은 모래를 확인하며 뭔가를 기록했다. 그러더니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어 나를 향해 던졌다.
받아보니 작은 가죽 주머니였다.
“목마르군. 오는 길에 거기에 물 좀 받아 오도록. 물론 이전에 걸린 시간보다 늦어지면 오늘 저녁은 없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제갈수광이 꽉 채워진 채로 준비되어 있던 큰 사루를 뒤집었다.
자, 잠깐만요! 이보쇼! 이런 식이면······!
이번에는 약수터에 무조건 들러야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속도를 더 많이 올려야 한다.
호흡만 어느 정도 고른 후 우리는 곧바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는 그냥 갔다가, 오는 길에 약수터에 들러서 가죽 주머니에 물을 채웠다.
매우 작은 가죽 주머니라, 꽉 채워도 두세 모금만 마시면 사라질 양이었다.
그 인간이 뭘 노리는지 알 것 같다.
우리도 간단하게나마 목을 축인 후, 다시 달려 제갈수광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제갈수광이 또다시 사루를 보고 기록하더니 내게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꿀꺽, 꿀꺽.
주머니가 작다 보니 크게 두어 모금이면 끝이다.
제갈수광이 마개를 닫은 후 가죽 주머니를 또다시 내게 던졌다. 그 후 준비된 큰 사루를 뒤집으며 말했다.
“또 받아와.”
“물이라면 방금 드셨는데요. 헤헤.”
“나는 체질상 물을 조금씩 자주 마셔주는 게 좋은 체질이라.”
“그래도 이렇게까지 자주 드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헤헤.”
내가 눈치를 보며 능청스러운 어조로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특유의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저녁 먹기 싫은가 보군. 하긴 뭐, 좀 굶어도 괜찮지. 사람 명줄이라는 게 생각보다 질기거든. 며칠 굶어도 그리 쉽게 안 죽는 거라.”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바로 받아오겠습니다요.”
내가 곧바로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알아서 쉬다가 출발해. 이쯤 되면 말 안 해도 알지? 이전보다 늦으면······.”
“저녁은 없겠죠, 니예.”
우리는 계속해서 왕복했다.
점심도 굶어서 갈수록 체력은 떨어져 가는데,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이전보다 빨리 달려야 하니 더 힘들다.
특히, 이전보다는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했다. 그 압박감은 왕복이 진행될수록 배가되었다.
평소 체력 관리를 성실히 해 온 나조차도 힘겨워질 때쯤, 두 소녀는 급속도로 지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