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45
모두가 한 번 모인 후로 제갈수광은 더 이상 전체 조원을 소집하지 않았다.
수준별로 따로 훈련을 시키는 게 여전히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였다. 근래 해왔던 대로 상위반, 중위반, 하위반, 계반을 따로 훈련시키겠다고 했다.
한데 그 후에 제갈수광은 계반의 우리 세 사람을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예상에는 상위반의 두 사람도 거의 부르지 않았을 것 같다.
즉, 조원들 중 지도가 딱히 필요 없는 인원들은 아예 젖혀둔 것이다.
아마도 중하위반의 인원들에게만 특별훈련을 시키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들의 실력을 집중적으로 끌어올리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 * *
오늘은 우리 사십사 조가 잠룡관을 떠나는 날이다.
조원들이 행장을 꾸려서 모두 집합하자 제갈수광이 곧바로 이동 지시를 내렸다.
조원들이 일제히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대형은 상위반이 전방이고 하위반이 후방이다.
조장인 단목강이 선두에, 교관인 제갈수광이 중간에, 부조장인 묘옥련이 우리가 있는 후미에 섰다.
묘옥련은 여인으로, 정반이며 나와 같은 삼 년차다.
우리 조에 상위반이라고는 단목강과 묘옥련뿐이다.
조원들 전체가 한 번 모였을 당시, 제갈수광이 단목강과 함께 대동하고 나타났던 다른 한 사람이 바로 묘옥련이었다.
복건의 묘가검문 출신으로, 묘가검문주의 이남일녀 중 둘째로 알고 있다. 제일서고에서 읽은 관도명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묘가검문은 우문직의 우문세가와 함께 복건을 대표하는 가문이다. 복건 남부의 장평현에 위치에 있다.
현재의 천하 세가 서열로는 우문세가보다 밑이긴 하다.
묘옥련의 신장은 보통의 여인보다 약간 작은 편이며 날렵한 몸매다. 미모는 내 주관적인 관점에서 진운령보다 한두 단계쯤 아래일 것 같다. 물론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용모다.
신법 펼치는 모습을 보니 기본이 잘 잡혀 있다.
역시나 전통 있는 가문 출신답다.
나는 후미에 위치해 있기에 앞서서 달리고 있는 우리 조원들의 신법을 대강 관찰할 수 있었다.
육룡 중 일인인 단목강의 경우는 뭐,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군더더기 없고 가볍다. 공력도 별로 쓰지 않는 것 같다.
대충 보니 그 외에도 모두가 각자의 반에 맞는 수준의 신법을 펼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내가 좀 더 유심히 살펴본 조원들은 단목강의 뒤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는 두 사내다.
둘 다 무반이니 명목상으로는 우리 조에서 단목강과 묘옥련 다음으로 실력이 좋은 조원들이다.
그 두 사람은 각각 이곳 강서를 대표하는 세가들의 후예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우리 조에 강서 출신은 나까지 셋이라 더 눈길이 가기도 한다.
한 명은 곡양걸.
이 년차에 무반이며, 곡양세가주의 차남이다.
곡양세가는 강서의 도읍인 남창에 있다.
다른 한 명은 호연웅.
삼 년차에 무반이며, 호연세가주의 아들로, 이쪽도 차남이다.
호연세가는 강서 땅 중부의 길안현에 있다.
두 사람 모두 이삼 년차에 무반이니, 올해 오 년차에도 무반인 송유백과는 제법 격차가 있다. 나름 전통이 있는 세가들이라 그러한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송유백이 장남이라 가문의 지원을 독차지해서 그렇지, 실제 격차를 비교하려면 삼남인 송유상 정도와 비교해야 한다.
가문의 지원 면을 따지면 송유상이 실질적인 차남이니까.
그러면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강호 기준으로 강서 지역은 전통적으로 제대로 된 명문이 없는 지역이었다.
곡양세가와 호연세가가 강서를 대표하는 세가들이라고는 하나, 천하의 세가 서열을 따지면 둘 다 최하위에 가까운 수준이다.
당장 묘옥련의 묘가검문이 복건의 이인자인데, 곡양세가와 호연세가는 천하 세가 서열에서도 열 단계 이상 뒤처진다. 강서에서 일이 위를 다투는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양세가와 호연세가는 강서 지역을 대표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내밀하게 들어가면 두 세가는 강서 제일을 놓고 경쟁이 심한데,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현재는 곡양세가가 좀 더 우위에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한 경쟁관계 때문인지, 신법을 펼치는 곡양걸과 호연웅에게서도 왠지 모르게 경쟁심이 느껴지는 것 같다.
두 세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도 나중에 강서 땅에다가 세가나 하나 세울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든다.
물론 처음에는 장원으로 시작해야 한다.
복수 상대가 천마이며 천마신교 그 자체인 만큼, 내 복수는 혼자 할 수가 없다. 혼자서도 천마신교 전체를 상대할 만큼 강해진다는 건 이야기책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결국 조력자들이 필요한데, 조력자들을 관리하려면 거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의 장원인 셈이다. 세가 출범은 이후의 상황들을 봐가며 해야 한다.
견제를 덜 받으려면 외부로 드러난 것보다 내면이 훨씬 더 강한 세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용히 힘을 키워가야 한다.
장원으로 시작한다 해도 자금이 엄청나게 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금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상태다.
호시탐탐 중원 무림을 노리고 있는 게 천마신교라서, 그쪽의 중원 침공 계획은 수시로 갱신되고 있다.
그 개만도 못한 위지광 새끼는 야망이 매우 큰 놈이다. 때문에 놈이 천마로 있는 동안에는 중원 침공이 벌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현재의 천마신교가 보유한 전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내가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예상이다.
어느 정도만 더 준비하고 보완하면 충분히 중원을 도모해볼 법한 수준이니까.
복수 시기는 그 즈음으로 잡는 게 가장 현실성이 있다.
그때가지 힘을 키우며 준비해야 한다.
당장 침공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일로 갑자기 형세가 변할 수 있는 게 강호사라는 점도 항시 염두에 둬야 한다.
전체 강호 지형도를 놓고 보면 강서 땅은 위치도 적당하다.
서북쪽은 무림맹 본맹이 있는 호북이며, 서쪽은 형산파와 단리세가로 유명한 호남이다. 북쪽은 안휘이고, 동쪽은 절강, 동남쪽은 복건, 남쪽은 광동이다.
가뜩이나 강서에는 동부지맹이 있으며, 해안가에 인접한 게 아니기에 해적 등의 문제들에서도 자유롭다.
다만 강서 땅은 동서남북에 산맥이 뻗어 있고 구릉지가 많아 산적들의 활동이 적지 않다.
그러나 중심지역들은 거의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차피 산적들은 꾸준히 토벌되고 있기도 하다.
원래는 곡양세가와 호연세가의 서열을 떠올리다가 문득 든 생각일 뿐이었다.
그런데 생각을 거듭할수록 괜찮네, 이거?
좋았어.
평소에 꾸준히 기획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해둔 후, 여건만 되면 바로 진행해야겠다.
나만의 장원이나 세가를 갖는다는 건 천마신교에 있을 당시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다.
왠지 설렌다.
참고로 송유하는 송가장에서 정략결혼을 추진하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니 송유하에게도 여차하면 나오라고 해버리면 된다. 어차피 그 집구석에 붙어 있어서 그녀에게 도움 될 일이라고는 거의 없으니까.
나중에 지 좋아하는 사람과 혼인한 후에도 내가 세운 장원에서 살라고 하지 뭐.
그러면서 그녀에게 장원의 내부 관리를 맡기는 거다.
애가 차분하고 머리도 괜찮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하면 장원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보통은 성을 붙여서 짓기는 한다.
서무욱이었으니까 서가장?
아니면 아예 다른 성으로 바꿔서 그 성을 앞에 붙여?
원래 서씨인데 송씨로 살고 있다 보니, 성씨를 바꾸는 것에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어차피 서무욱이었던 나는 고아 출신이기도 하다.
한데 꼭 장원 이름에 굳이 성을 붙여서 지을 필요가 있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비룡장! 비룡세가!’
좋았다.
이 정도면 매우 적당하다.
연승휴 선배님, 이번에도 고맙습니다.
* * *
동부지맹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성문 같은 정문이다.
실제로 동부지맹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다. 그 위에서 무인들이 경계를 선다.
가족모임 때 옥산에 나갔다 오면서 이 앞을 지나쳐 본 적이 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경계가 매우 삼엄하다.
그런 만큼 출입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고 들었다.
“멈추시오!”
정문위사의 묵직한 음성.
계단 위에서 여덟 명의 정문위사들이 위압감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들도 우리가 잠룡관도이며, 동부지맹의 일을 하려고 왔다는 사실을 빤히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극후반 투입조이니 이전에도 수많은 조들을 맞이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저런 반응이다.
저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여러분이 잠룡관에서 오셨다는 건 알고 있으나, 근래 동부지맹의 경계 태세도 매우 강화되었소. 해서 한 분씩 확실하게 용모파기와 정보들을 확인해야 하오. 일단 책임자께서 와주시고, 그 후에는 호명하는 대로 한 분씩 올라와 주시오.”
제갈수광이 계단으로 올라가서 말했다.
“우리는 잠룡관에서 동부지맹을 지원하기 위해 온 사십사 조의 인원들입니다.”
그때였다.
성문 위쪽 공간의 처마 아래에서 누군가가 곧바로 고개를 내밀었다.
성가퀴(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는 곳) 사이로 고개를 내민 사내가 제갈수광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어? 제갈 선생······?”
“아, 양 대주님이시군요.”
제갈수광이 고개를 들어 대꾸하자마자 양 대주라 불린 사내가 곧바로 훌쩍 뛰어 내렸다.
양 대주라 불린 자는 사십대 초중반쯤의 사내였다.
“아이고오! 목소리 듣고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제갈 선생이셨군요! 일전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일전에 선생께서 그 잘못된 서류와 숫자들을 깔끔하게 바로잡아주신 덕분에 감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하!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그 정도 도움이야 당연히 드려야지요.”
“아유, 저희들의 둔한 머리였으면 열흘은 걸렸을 겁니다. 그랬으면 감찰 기간 내에 제대로 마치지도 못했겠지요. 선생께서 하루 만에 끝내주셔서 오히려 널널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제가 이후에 술 한잔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왜 안 찾아오셨습니까.”
“하핫. 그런 걸로 생색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좀 그래서······.”
“에이, 그래도 이 몸을 은혜도 모르는 놈으로 만드시면 안 되지요. 조만간 꼭 대접하게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하하······.”
사적인 대화가 끝나자 양 대주라고 불린 인물이 아래쪽에 있는 우리를 한 차례 둘러보더니 제갈수광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맡고 계신 조의 제자들인가 봅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제야 저희 순서라서.”
“아유, 교관이 뛰어나셔서 그런지, 제자 분들도 하나같이 기운들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다들 훌륭하고, 열심히들 합니다.”
이에 양 대주라는 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좌우의 위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야! 야! 야! 뭐하고 섰어! 다들 빨리 비켯!”
양 대주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여덟 명의 정문 위사들이 곧바로 반으로 갈라지며 옆으로 물러났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그,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을 텐데 그렇게······.”
“절차요? 제갈 선생 아니었으면 저나 쟤들이나 다들 징계를 면치 못했을 겁니다. 최소 몇 개월은 감봉이었겠지요. 저는 어쩌면 정직까지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거 막아준 분이 다름 아닌 제갈 선생이신데, 이런 걸로 절차는 무슨 얼어 죽을 절찹니까.”
“하핫······.”
“선생, 우리 애들이 몰라 봬서 그런 겁니다. 양해하십시오.”
“양해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 분들도 할 일을 하시는 건데요.”
제갈수광이 대꾸하자 양 대주라는 자가 다시금 양 옆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자식들아, 앞으로 눈깔에 잘 새겨둬라. 이분이 제갈수광 선생이시고, 이분 덕에 네놈들의 월봉이 멀쩡했던 거야! 뭐햇! 얼른 사과드리지 않고!”
그러자 양 옆에 있던 여덟 명의 정문 위사들이 일제히 제갈수광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소, 송구했습니다. 제갈 선생님······!”
“저희들이 몰라 뵀습니다.”
“감찰 당시의 일에 대해서는 저희들도 들었습니다.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위압감 넘치던 정문위사들이 갑자기 순한 양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제갈수광이 양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 이러지들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저 또한 기쁠 뿐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사과하실 일이 아니니, 어서 허리들 펴십시오.”
그제야 정문위사들 모두가 허리를 폈다.
양 대주가 그들에게 말했다.
“이놈들아, 다들 기억해라. 그 어떤 경우에도 제갈 선생과 함께 오신 일행들은 무조건 통과에 우선 통과야. 알았어? 다른 애들한테도 다 전달해!”
“예, 대주님!”
제갈수광이 또다시 양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이러시면 제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양 대주가 곧바로 대꾸했다.
“부담은 무슨 부담입니까. 어서 들어가시죠. 자! 자! 제자 분들도 어서들 올라와서 들어가시오. 어이구, 그것 참, 다들 선남선녀에 눈빛도 좋고, 딱 봐도 용봉들이로세.”
계단 위의 제갈수광을 올려다보는 조원들의 눈동자에 존경심이 가득하다. 가득하다 못해 넘쳐흐를 정도다.
평소의 사회생활과 인맥관리가 빛을 발한 상황이니 당연히 멋져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게 어른들의 세계인가 싶기도 할 것이다.
동부지맹 안으로 들어서서 이동하는 와중에도 여러 인물들이 제갈수광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모두의 태도가 공손했다.
제갈수광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술 잘 마셨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평범한 인물들인 것도 아니었다. 다들 대주네, 부대주네, 조장이네 하는 자들이었다.
이쯤 되자 제갈수광을 향한 조원들의 눈빛은 마치 무림맹주라도 보는 것 같은 눈빛이다.
나도 상당히 놀랐다.
저 인간은 참, 의외의 부분들에서 사람을 놀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곧 우리는 지정된 막사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