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46
우리가 배정받은 숙소는 동부지맹 동위단의 제팔대가 사용하는 막사동이라고 한다.
원래 이곳을 사용하던 동위단 제팔대는 해적 퇴치 임무에 투입된 상태란다. 그래서 그들의 남은 물품 등을 옮겨서 보관하고 임시로 우리가 사용하게 한 것이다.
동위단 제팔대의 막사동도 조별로 막사가 구분되어 있어, 우리도 그 중 하나를 쓰게 되었다.
길쭉한 건물로, 스무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막사였다.
양쪽 끝에 하나씩의 통로가 존재하며, 막사 중간의 여러 곳에 칸막이를 설치할 수 있게끔 시설이 되어 있다.
칸막이를 설치하면 미닫이문의 형태가 되어, 닫으면 공간이 분리되고 열면 막사 전체가 통하는 형태다.
근래에는 일반 무인 중에도 여성들이 적지 않아서, 이렇듯 여성 조원의 수에 따라 공간을 적절히 구분할 수 있게끔 설계가 되어 있다는 모양이다.
통로의 한쪽 끝에는 해당 조의 지휘관을 위한 독채 형식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겨우 몇 보 간격이다.
짐을 푼 후, 앞으로 우리와 함께하며 지도해줄 동위단 무인들 다섯 명과 대면하는 시간이 있었다.
일반 무인들 중에도 여성들이 적지 않다더니 실제로 그 중에도 여성 무인이 한 명 있었다.
대면 중에 점심시간이 되어, 담당 무인들과 함께 동위단 제팔대가 이용하는 식당에서 식사까지 마쳤다.
오후에는 담당 무인들 중 선임에게서 실내 교육을 받았다.
동위단의 무인들이 수행하는 평상 임무들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가 있었고, 평상 임무시의 행동 방침과 대응 수칙들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이후에는 동부지맹 생활 중에 주의해야 할 수칙, 막사 생활 수칙 등에 대한 교육으로 이어졌다.
실내 교육이 끝나자 담당 무인들 중에서 막내라는 자가 우리를 이끌고 동부지맹의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그는 이십대 중후반의 사내로 이름은 구달호라고 했다.
안내를 받은 후에 숙소로 돌아오자 칸막이 용도의 미닫이문이 적절한 위치에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아 있던 담당 무인들이 설치한 모양이었다.
최대 스무 명 이상이 지낼 수 있는 막사를 우리는 열세 명이 사용하게 되었으니, 남자 조원들이나 여자 조원들 모두 넉넉하게 공간을 쓸 수 있었다.
저녁 식사 전까지는 정비 시간이었다.
나는 얼른 개인 정비를 마친 후 제갈수광이 사용하게 된 지휘관 숙소에 갔다.
어쨌거나 따까리는 따까리이니 귀찮아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긴 해야 한다.
상대가 하늘같은 교관이며, 제갈수광이니까.
“교관님, 송유겸입니다.”
“들어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는 나를 향해 제갈수광이 말했다.
“우리 수행 부관, 왔어?”
“수행 부관은 무슨, 그냥 따까리라고 하십······.”
나는 중간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방 안으로 완전히 들어서자, 그제야 안에 있던 또 한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던 탓이다.
삼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미남 한 명이 구석 쪽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분명히 초면인데, 내 입장에서는 딱 봐도 단번에 알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속으로 너무 놀라서 나는 내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했다.
“아, 소, 손님이 계실 줄은······.”
삼십대 초중반의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가 제갈수광을 향해 물었다.
“방금 밖에서 송유겸이라고 했었죠? 그러면 이 관도가 바로 형님이 말씀하신······.”
“어. 그 아이야.”
저 인간이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헛! 그럼 제가 이렇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네요.”
삼십대 초반의 사내가 그렇게 말하더니 바로 일어서서 나를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반갑다, 송 소협.”
송 소협?
내가 저런 호칭을 들을 만한 계제가 아니라서, 저렇게 불리는 게 너무도 어색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마인으로 살았던 인생이라, 젊은 협객이라는 의미의 저 호칭에 더욱 괴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저 사내가 누구냐는 표정으로 제갈수광을 바라봤다.
물론 누군지 알고 있으나, 지금의 나는 이런 반응을 보여줘야만 한다.
제갈수광은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삼십대 초반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리고 고맙다. 위기 상황에서 내 어린 누이를 잘 이끌어줬다지? 송 소협 덕분에 내 어린 누이가 무사할 수 있었다고도 들었다. 정말 고맙다.”
“이 사람아, 본인 소개는 해야지. 얘가 지금 영문을 모르고 있잖아.”
제갈수광의 말에 삼십대 사내가 ‘아!’ 소리를 내더니 곧바로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남궁찬이라고 한다.”
처음 본 순간부터 알아챘음에도, 나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떠줘야 했다.
물론 여전히 놀란 상태기도 하고.
동천일룡 남궁찬.
남궁세가의 소가주다.
장우혜, 즉 남궁설의 큰 오라비이기도 하다.
동천일룡이라는 별호는 동쪽 하늘을 오르고 있는 단 하나의 용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별호다.
남궁찬은 현 동부지맹 동협당의 부당주인 것으로 안다. 동협당은 동부지맹의 전투 분야 무력 편제를 총괄하는 조직이다.
그의 나이는 올해 서른셋이다. 그 나이에 벌써 그런 조직의 이인자인 것이다.
그런 그와 이런 식으로 마주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손이 다 떨릴 지경이다.
남궁찬은 차기 동부지맹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몇 년 안에 현재의 동부지맹주가 임기를 다할 테니, 그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삼십대에 지맹주가 될 수도 있다. 그 경우 동부, 서부, 북부, 남부의 각 지맹을 통틀어 역대 최연소 지맹주의 탄생이다.
각 지맹주들은 무림맹의 부맹주급으로 통하며, 실제로도 동등한 대우와 의전을 받는다.
그 점까지 고려하면 남궁찬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더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
“송 소협이 그 과정에서 큰 부상까지 입었다고 들었다. 사적으로는 내 어린 누이를 보살펴 준 점에 대해 오라비로서 감사를 표하고 싶고, 공적으로는 동부지맹의 관리 소홀로 인해 발생했던 그 일에 대해 사과를 전하고 싶다.”
남궁찬이 말하는 투를 보아하니 제갈수광도 장우혜와 유은무의 정체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는 모양이다.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걸 여기에서 확인하게 된 것뿐.
남궁찬을 향해 대꾸했다.
“소협이라는 그 호칭만 좀 어떻게 해주시면 감사든 사과든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대꾸가 당돌하다고 여겨졌는지, 남궁찬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그 표정으로 제갈수광을 한 차례 바라보기까지 했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송유겸 너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궁 아우는 동부지맹 동협당의 부당주야. 책임자이기도 한 만큼, 귀령사객의 일에 대해 내게 사과와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들른 거다. 그래서 내가 그때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들을 좀 해줬다. 당시에 네가 활약했다는 얘기도 그래서 알게 된 거고.”
나를 보는 남궁찬의 눈에 호감이 가득한 걸 보면 산장에서의 일에 대해 제법 자세히 말해준 것 같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그 이야기를.
나아가서는 합숙에서 있었던 일까지도 말한 게 아닌가 싶다.
남궁찬이 말을 보탰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제갈 형님에게 인사도 드리려고 온 거야. 우리가 친분이 좀 깊거든.”
두 사람은 딱 봐도 매우 친밀해 보인다.
비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하는 관계인 모양이다.
남궁찬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그 호칭이 부담스러운가? 귀령사객을 처치하는데 소협의 공이 컸다고 들었거든. 덕분에 동부지맹의 과오가 어느 정도 만회되기도 했고. 그런 호칭으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겨서 쓴 건데.”
“저는 협객도 아니며, 협행할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살아남기 위해서 한 것이고, 부당주님의 여동생 분과 그 친구의 도움도 컸습니다.”
“친구란 린아를 말하는 거겠군. 어쨌든 알았다. 본인이 싫다고 하니 그냥 송 후배라고 부르면 되려나?”
“동부지맹 잠룡관의 선배시기도 하니 그리 부르셔도 됩니다만, 그냥 이름으로 부르셔도 됩니다. 연령차도 적지 않으니 제 입장에서는 그게 가장 편합니다.”
“이름이라. 형님처럼 송유겸이라고 부르는 건 너무 딱딱한 느낌이니까, 그럼 그냥 유겸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예.”
남궁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에도 남궁찬은 미소 띤 얼굴로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남궁찬의 무공은 고강하다.
천하제일세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몸이니 당연한 일이다. 괜히 저 나이에 저렇게나 인정받고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인지, 단지 그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것뿐인데도 왠지 발가벗겨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를 보던 남궁찬이 제갈수광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도 잠룡관에 가서 교관이나 할까봅니다.”
“갑자기 웬 흰소리야?”
“솔직히 형님이 교관 일을 고집하시는 이유를 지금까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재능낭비와 실력낭비 중이시라고만 생각했던지라.”
“이 사람이?”
“잠룡관 다닐 때 관도들에게 시달린 기억이 너무 많아서, 이후에 다시는 잠룡관에 발도 들이기가 싫었거든요. 형님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테니 이해하시겠죠. 당시의 경험 때문에 설아는 다른 식으로 입관시킨 거고요.”
당시에 남궁찬과 그의 아우는 가명으로 입관하지 않았었다고 알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학관 생활이 어땠을지도 충분히 짐작이 된다.
“한데 오늘 처음으로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교관으로라도 다시 가서, 당시에 제가 느끼지 못했던 잠룡관의 여러 매력들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궁찬이 바로 말을 이었다.
“이런 제자들과 어울리며 파릇파릇한 기운을 받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아가서 제자들이 실제로 성장하는 모습까지 보고 있으면 보람도 크겠죠. 형님이 그래서 교관 일을 좋아하시나 싶기도 하고요.”
“다시 생각해. 그거야말로 재능낭비에 실력낭비야. 그건 백도 무림 전체 차원에서의 큰 손실이라고.”
“푸하하하!”
웃는 남궁찬의 표정에는 민망함이 담겨 있었다.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할 일이 쌓여 있어요.”
“여기까지 와서 어린 누이도 안 보고 가게? 그렇게나 아끼면서?”
“원래는 잠깐이나마 볼 생각이었는데, 보아하니 그 아이의 곁에 좋은 선배가 있는 모양이니까요.”
나를 보며 하는 소리다.
얼른 대꾸해줬다.
“부당주님께서 오해가 좀 있으신 것 같은데, 저는 좋은 선배 따위와는 아주아주 거리가 멉니다.”
“푸하하핫!”
남궁찬이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어 보이더니 말했다.
“내가 들은 바와 직접 본 바에 의하면 좋은 선배 맞아. 그러니 유겸아, 설아가 잘못하는 게 있거든 꾸짖어 줘야 한다.”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유, 싫습니다, 싫습니다. 저를 핍박하고 싶으시면 그냥 지금 하십시오. 물론 남궁세가를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야 큽니다. 그러나 금지옥엽에게 모욕을 준 일로 혼쭐나기 위해 끌려가는 식의 방문은 싫습니다.”
내가 몸서리를 치며 그렇게 말하자 남궁찬이 다시 한 번 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하!”
그러면서 제갈수광과 모종의 눈짓을 주고받고 있다.
이전에 뭔가 나에 대해 말을 나눈 모양인데, 그걸 확인하는 느낌의 시선교환이다.
제갈수광 저 인간이 대체 나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한 거야?
남궁찬이 내게 말했다.
“이곳에서 너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이제는 정말로 가 봐야 한다. 또 보자, 유겸아.”
“아, 예······. 살펴 가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형님.”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찬이 곧바로 문을 나섰다. 그러자마자 그의 기척이 사라졌다.
이후에 나는 제갈수광의 숙소 정리를 간단하게 도운 후 그곳을 나섰다.
남궁찬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보니까 천마신교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파악했었던 정보보다 더 강해진 것 같다.
서무욱이었던 시절에도 남궁찬이 나보다 강했다.
천마신교에서 지내던 마지막 즈음에 나는 남궁찬의 경지를 빠르게 뒤쫓아 가는 중이었다.
천마신교를 대표하는 사부님의 제자로서 정파 최고의 후기지수로 통하는 남궁찬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동갑내기라서 좀 더 의식이 된 면도 있었다.
한데 결국 따라잡지 못한 상황에서 이렇듯 송유겸의 몸으로 깨어났던 것이다.
그때는 그 때고.
예상치 못한 대면이었으나 남궁찬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인물과 좋은 인연으로 엮였다. 지금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제갈수광 덕분이다.
남궁찬과 사적으로 만나던 자리였음에도 제갈수광은 나를 숙소 안으로 들였다. 이따가 다시 오라해도 되는데, 굳이 그 상황에서 나를 들인 것이다.
제갈수광과 나 사이에는 나름의 관계가 있다.
그래서 귀찮은 일 시킬 때 자기 마음 편하고자 나를 수행 부관으로 삼은 건가 싶었었다.
한데 그것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 *
저녁 식사 후에는 막사 내부 청소와 점호가 있었다.
실제 동부지맹의 무인들처럼 생활해야하는 만큼, 매일 아침저녁으로 점호가 있다는 모양이다.
잠룡관에서는 점호 같은 게 없었던지라 조원들은 다들 불편하게 여기는 모양이었지만, 내게는 익숙한 일이라서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나는 천마신교의 일반마인에서 출발하여 흑풍대 시절까지 줄곧 단체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그렇게 첫날의 일정이 끝났다.
둘째 날부터 우리 조는 본격적으로 동위단 무인들의 평상 임무에 투입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