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47
이 일차의 임무는 근처인 옥산현 순찰이었다.
관부와 연계하여 순찰하며 지역의 치안 유지에도 이바지한다는 모양이다.
삼 일차부터는 옥산뿐만 아니라 인근의 현들에까지 순찰 범위가 넓어졌다. 인근의 현들은 모두 주요 순찰 범위라고 한다.
각 현에 있는 동부지맹의 거점, 즉 지소에 들러 관리자에게 인사했고, 여러 시설들을 점검했으며, 각 중심가의 순찰 경로 등을 익혔다.
열흘 남짓 그러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강서 지역에는 동부지맹에 속한 지부가 두 곳 있다.
성도인 남창에 있는 남창지부와, 남부에 있는 태화지부다.
잠룡관에서 파견된 각 조는 활동 기간 동안 두 개의 지부 중 한 곳에 지원 형식으로 방문하게 한다는 모양이다.
우리 조도 내일부터는 두 지부 중 한 곳으로 떠나게 된다.
* * *
여자 조원 중 한 명인 청여홍은 이 년차에 임반이다.
계반의 바로 윗반인 만큼, 내가 파악하기로도 우리 조에서 무공이 가장 약한 조원이 바로 그녀다.
청여홍도 초 년차에는 계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계반인 우리에게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다가와 줬다.
미모도 빼어난 편인데, 계속 지내다 보니 성격도 괜찮다. 그래서인지 유은무와 장우혜도 청여홍과 잘 어울려주고 있다.
청여홍은 광동에 있는 연주상단의 장녀다.
연주상단은 광동에서 가장 큰 상단이다.
그 정도 되는 상단의 여식은 보통 잠룡관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차피 여식이 상단을 물려받는 일은 드물기에, 굳이 잠룡관에 와서 인맥을 넓힐 필요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가만히 있어도 좋은 혼처가 알아서 줄을 선다.
청여홍의 경우에는 도피성 입관이다.
혼담이 오가는 상대 남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반항 목적으로 입관 결정을 내렸다나.
“우리 조는 어느 지부로 가게 될까요?”
저녁 식사 중에, 같은 식탁에 앉은 청여홍의 말이었다.
우리 식탁에는 나와 장우혜, 유은무, 청여홍이 앉아 있다.
남창지부와 태화지부 중 어디로 가게 될지에 대해 묻는 질문이다.
청여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남창지부를 원하시는 분위기더라구요. 그런데 남창지부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대신, 도착 후의 일정이 매우 힘들다고 들었어요. 남창의 빼곡한 거리들을 순찰해야 하고 인근의 포양호변까지 돌아야 한다나 봐요. 포양호가 엄청나게 넓잖아요. 그걸 다 도는 것도 만만치 않은가 봐요.”
“그래도 남창은 성도인 만큼 구경거리도 많은데다가 포양호의 좋은 경치들도 감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남창지부!”
유은무가 먹던 숟가락을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혹시 밥풀 안 묻었는지 봤는데, 안 묻었다.
청여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태화지부는 도착 후의 일정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은데, 거리가 멀어서 오가는 길 자체가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는 잠룡관도라서 훈련을 겸해 신법으로 이동해야 하니까요. 그냥 말 타고 가게 해주지.”
어조에서 아쉽다는 감정이 묻어 나왔다.
태화는 크지 않은 현이나, 백도 무림의 입장에서는 방어 거점이라 지부가 세워졌다. 강서의 남부에 위치해 있기에 동북부인 이곳에서는 멀다.
장우혜가 말했다.
“아마도 우리 조가 신법을 펼치는 기준으로는 꼬박 열흘 정도는 달려야 할 거예요. 혹시 모르니 청 소저도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할 거예요.”
청여홍의 무공이 약한 걸 알고 저런 소릴 하는 거다.
“계반이신데도 신법이 저보다 더 뛰어난 걸 보면, 세 분은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사실 신법이 지금보다도 더 못했었어요. 교관님이 신법만 집중적으로 가르쳐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함께 다니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솔직히 태화지부로 가는 건 걱정이 많이 돼요. 민폐 끼칠까 봐.”
유은무가 말했다.
“그러면 이따가 행장 꾸릴 때 청 소저의 짐은 처음부터 아예 우리랑 나눠서 꾸려요. 청 소저가 멜 짐을 최대한 가볍게 하는 거예요.”
가만히 보면 유은무가 기특하기는 참 기특하다.
조부가 훌륭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애가 참 잘 컸다.
장우혜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합숙 기간에 동료 의식에 대해 제대로 배운 모양이다. 성격이 좀 만만치 않아서 그렇지, 얘도 좋은 사람한테는 잘 해준다.
장우혜가 말했다.
“여자한테 필요한 물품 같은 건 우리랑 나누고, 좀 무거운 짐들은······.”
내 옆에 앉은 장우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자, 유은무와 청여홍의 시선도 내 쪽으로 향했다.
청여홍이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죄, 죄송해서 어떻게 그래요······.”
장우혜가 대꾸했다.
“괜찮아요. 합숙 때 확인했는데, 송 오라버니가 곱게 자란 얼굴로 보여도 체력 하나는 넘쳐나는 분이시거든요. 청 소저의 짐 정도는 거뜬하실 거예요.”
아니거든? 나도 무거운 거 들수록 더 힘들거든?
“저, 잘 알아요. 송 오라버니는 동료도 잘 챙기는 분이세요.”
유은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꾸했다.
아니, 잠깐만!
벌써 결정된 거야? 이렇게 순식간에?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한데 주동자가 요망한 장우혜와 유은무다.
빌어먹을 대명문세가 출신의 여시들이니 뭘 어찌할 도리도 없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여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나 또한 모두가 바라는 것처럼 남창지부 쪽을 더 원하고 있긴 하다. 장차 장원을 세울 계획이며, 장소를 남창과 포양호 인근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 인근 구석구석을 순찰하며 둘러본다고 하니, 내 입장에서는 답사도 겸할 수 있는 것이다.
* * *
“우리 조의 목적지는 태화지부다.”
다음날 새벽밥을 먹자마자 집합한 조원들을 향해 제갈수광이 꺼낸 첫 마디였다.
옘병, 저럴 줄 알았다.
저 인간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줄 인간이 아니지.
“먼 거리다. 야영이 잦을 것이다. 그러니 야영에 필요한 공용 물품들을 모두가 나눠서 들고 간다. 보면 간이 취사도구들과 간이 식기들, 그 외의 필수품들이 많다. 나뉜 물품에 각자 이름표가 붙어 있는데, 상위반일수록 좀 더 무거울 것이다.”
“교관님, 보통 이런 경우에는 육포나 건량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누군가의 질문이었다.
짐을 들고 가기 싫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대답은 담당무인들 쪽에서 나왔다.
“하하. 그건 잘못 알려진 이야기야. 이렇듯 다수의 인원이 장거리를 이동하는 경우에는 매끼니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해. 그래야 체력 유지도 되는 거거든. 그러다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나 육포와 건량을 먹는 거야.”
대꾸한 이는 담당 무인들 중 선임으로, 이름은 곽군위다. 삼십대 후반의 사내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곽 무사님 말씀대로다. 그러니 군말 말고 들고 가도록.”
가장 무거운 건 취사 시에 필요한 큰 솥이었는데, 단목강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단목강이 얼른 가서 큰 솥을 들어 본인의 짐에 결속시켰다. 조장인 만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솔선수범하려는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조원들도 하나둘씩 공용 짐들을 챙겨서 본인의 짐에 결속시키기 시작했다.
참고로 나는 청여홍의 짐까지 맡았기에 단목강 다음으로 짐이 무거운 수준이었다.
하루 종일 신법을 펼치고 또 펼쳤다.
점심은 그나마 객잔에 들러서 해결했는데, 저녁은 위치상 어쩔 수 없이 야영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틀째에도 계속해서 신법을 펼쳤다.
이번에도 중식은 객잔에 들러서 해결했고, 저녁은 야영이었다.
담당 무인들의 주도로 금세 취사가 시작되었다.
간단한 요리 재료 등은 오후쯤에 저잣거리나 민가 등을 거치며 사오고 있다.
식사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세 무리로 나뉜다.
한 무리는 교관인 제갈수광과 담당 무인들이다. 식사 때 간단한 회의도 겸한다면서 조장인 단목강과 부조장인 묘옥련도 그쪽으로 부른다.
다른 한 무리는 우리 쪽이다. 평소에도 같은 식탁을 쓰던 나, 유은무, 장우혜, 청여홍이다.
마지막 무리는 곡양걸과 호연웅을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이다. 중위반에 신반의 두 명까지 더해서 총 일곱 명이다.
그쪽 일곱 명 중에서 다수는 평소에도 우리 쪽을 상대로 깝죽거리곤 했었다. 이쪽이 임반과 계반이니 자연스럽게 무시하며 깔본 거다.
나야 뭐 애들이 까부는구나 하며 기억만 해둘 뿐이고, 계반 생활을 해 본 청여홍도 적당히 상황을 넘기는 식이다.
요주의 인물은 유은무와 장우혜.
둘 중에서도 특히 장우혜다.
아무리 모습을 감추고 있어도 천하제일세가의 금지옥엽이다.
그간 한 번쯤은 참지 못하고 무슨 짓이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장우혜는 지금껏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무난하게 여러 상황들을 넘겨 왔다.
기특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한데 저녁 식사를 마쳐갈 때쯤, 장우혜의 입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 저 벌레 같은 것들이 또 오네.”
사내놈들 두 명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월백산과 종계석이었다.
두 놈이 또 깝죽대러 온 거다.
월백산은 이 년차에 신반으로, 절강의 대양문 출신이다.
평소 단목강에게 온갖 아부를 떠는 녀석이다. 단목세가도 절강에 있으니 더 그러는 모양이다.
종계석도 이 년차에 신반으로, 안휘의 봉양무문 출신이다.
둘 다 작은 문파 출신인데다가 연차도 같고 반도 같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자주 붙어 다닌다. 나이는 종계석이 한 살 더 많은 열여덟 살이다.
종계석 놈이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수행 부관께서는 왜 교관님 쪽으로 합류를 못하시고 항상 이쪽에서 드시나? 그래서야 수행 부관이라 할 수 있겠소?”
그러자 월백산 놈이 대꾸했다.
“이런 때 안 부르시는 걸 보면 역시나 말만 수행부관이라는 거지 뭐겠소. 그냥 교관님 전속 심부름꾼이자 따까······, 크흠! 흠! 푸후후!”
놈이 혼자 지껄이다가 웃는다.
종계석도 킥킥거렸다.
종계석이 이번에는 우리 모두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목구멍으로 밥은 잘들 넘어 가시오?”
이번에도 대꾸는 월백산이 했다.
“당연히 서로 잘 넘어가겠지요. 송 공자는 꽃밭에서 드시니 잘 넘어갈 수밖에 없고, 세 분 소저는 미남과 함께 먹으니 잘 넘어갈 수밖에 없고. 양쪽 다 꿀맛이지 않겠소?”
그러자 종계석이 말했다.
“한데 여러분은 참 눈치도 없으시오. 다른 조들은 보면 설거지 등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계반이나 최하위반의 두세 명이 알아서 전담한다고 합디다. 설령 당번이 정해져 있어도, 그냥 본인들이 하는 게 편하다는 식으로 말이오.”
월백산이 대꾸했다.
“그쪽은 개념이 있는 거지요. 본인들이 조에서 묻어가는 존재들이라는 걸 알고 눈치껏 처신하는 거니까. 중상위반 관도들에게 점수 딸 기회이기도 하니,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기도 하거늘.”
아, 설거지 얘기였구나?
생각해 보니 엊저녁에는 나와 장우혜가 설거지 당번이었고, 야영 후 오늘 아침에는 유은무와 청여홍이 당번이었다.
놈들은 신반이니 이번에 당번인 모양이다.
“돌아가는 상황들이 그런데도 우리 조의 최하위반 네 분은 아주 그냥 꼿꼬옷, 하셔. 그걸 우리가 와서 이렇게 가르쳐드리기까지 해야 하니 참 답답한 노릇이오.”
종계석의 말에 월백산이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에휴, 이분들한테 뭘 기대하겠소? 어차피 우리 조의 짐 덩어리들인데, 우리 팔자거니 해야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묵묵히 그릇을 비운 장우혜가 입을 열었다.
“아하, 공자들이 이번 설거지 당번이셨군요?”
“뭐, 그렇기야 하오. 이래도 못 알아들으시면 그릇이나 수거해갈 생각으로 온 거요.”
종계석이 대꾸하자 장우혜가 말했다.
“다른 조의 최하위반 조원들은 그렇게들 하는구나. 정말 몰랐어요. 처신술에 대해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이제라도 아셨다면 다행이긴 한데······.”
월백산의 대꾸하자 장우혜가 말했다.
“마침 이렇듯 알게 됐으니, 그럼 나도 다른 조의 계반들이 하는 것처럼 점수 좀 따볼까요? 그 설거지, 내가 할게요.”
“그럼 나도 도와야겠네?”
유은무가 돕겠다고 나서자 청여홍도 나섰다.
“그럼 저도 도울게요.”
장우혜가 청여홍을 향해 바로 양손을 내저었다.
“아뇨. 청 소저는 그냥 계세요. 저희가 초 년차에 막내들이잖아요. 이번 정도는 우리가 할게요.”
“그래도······.”
“괜찮다니까요. 정 도와주고 싶으시면 다음에, 우리가 더 지쳤을 때 도와주세요. 아직은 둘째 날이라 체력도 쌩쌩해서.”
장우혜가 재차 거절했다.
뭔가 심상찮은 낌새가 느껴진다.
얘가 이렇게 순순히 나선 것도 그렇고, 도와주겠다는 청여홍을 극구 배제시킨 것도 그렇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장우혜가 종계석과 월백산을 향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는 개울가가 좀 멀어서 그러는데, 두 분이 취사도구와 식기들을 함께 좀 날라서 갖다 주시겠어요? 아시다시피 날라야 할 게 너무 많잖아요. 우리가 두 분의 당번을 대신 하는 건데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죠?”
아······!
나는 그제야 장우혜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청여홍을 배제시킨 후, 저 두 놈만 따로 불러내겠다는 심산이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계속 깐죽거리던 애들이었으니 이참에 손을 봐줄 목적인 것이다.
노을빛에 물든 장우혜의 상큼한 미소가, 적어도 내 눈에는 피를 뒤집어쓴 아수라님의 미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