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48
종계석과 월백산이 취사도구와 식기들을 챙기러 가고 있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남궁설의 시선은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분란 생기고 그러면 교관님 입장도 난처해질 수 있잖아?」
「아무튼 웬만하면 분란 일으키지 말고 둥글둥글하게 임하자고. 알았지?」
송유겸이 했던 말들이었다.
맞는 말인데다가, 교관인 제갈수광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가뜩이나 제갈수광은 자신과 선우린의 정체를 알고 있고, 그 사정을 봐 주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니까.
한데 저들은 선을 넘었다.
이제는 선을 넘은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선을 지우려 하고 있다. 자기들 편한 쪽으로.
지금의 저들은 동료도 무엇도 아니며, 그저 약자를 멸시하는 것으로 본인들의 천박한 우월감만 즐기려 하고 있을 뿐이다.
송유겸이 이쪽에서 함께 먹은 식기들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다. 도와주려고 저러는 것이다.
“송 오라버니도 쉬세요. 제가 하기로 한 거니까.”
“응? 에이, 그래도 어떻게 누이들만 시켜.”
“송 오라버니도 청 소저의 짐들을 들고 오느라 고생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우리가 할게요. 쉬세요.”
이후에 하려는 일들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저 사람에게만큼은 그런 모습,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가 얽히게 해서도 안 된다.
송유겸 자체의 무공은 강하나 그의 배경이 되는 송가장은 약하다. 혹여 이 일이 문제가 되어 커질 경우, 그의 가문은 정치적으로 그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 남궁세가가 배경인 자신과는 다른 입장인 것이다.
저 좋은 사람이 그 문제로 힘겨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책임을 질 일이 생겨도 자신만 져야 한다.
“음······.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야, 뭐.”
송유겸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지금까지 챙겼던 식기들을 넘겨주었다.
순순히 물러나줘서 다행이다.
선우린과 함께 식기들을 챙겨서 개울가로 향했다.
어려서부터 친구였던 만큼, 선우린은 자신의 의도를 이미 눈치 챘다.
그러나 선우린을 개입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 혹시라도 벌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
[린아, 너는 소피보러 갔다 온다고 하고 개울가 위쪽에 적당히 숨어서 망이나 좀 봐 줘.]
[응? 아니야. 나도 옆에서 도와줄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이걸 도와준다고 그래? 게다가 혼자 하는 게 효과가 더 좋아. 마음은 알겠는데, 됐어. 내 말 들어. ]
이후에도 걷는 내내 선우린을 설득해야 했다. 결국 선우린도 수긍했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개울가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종계석과 월백산이 각각 큰 솥과 작은 솥에 취사도구들과 식기를 담아서 들고 왔다.
“우혜야, 나 소피 좀 보러 갔다 올게. 잠시만 먼저 하고 있어.”
약속대로 선우린이 그렇게 말하더니 유등을 놓고 개울가 위쪽으로 올라갔다.
종계석과 월백산이 말했다.
“자, 가져다드리기까지 했으니 되었지요?”
“그럼 수고하시오.”
돌아서려는 두 사람의 사이로 얼른 다가가서 양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잠깐만요, 공자들. 내가 지금 손에 물이 묻어서 그러는데, 두 분이 양쪽 소매 좀 걷어 올려 주시겠어요?”
“거, 참.”
“손이 많이 가는 소저시네.”
두 놈이 불퉁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양쪽에서 소매를 걷어 올려주기 시작했다.
그 순간 빠르게 두 놈 사이의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주먹으로 놈들의 명치를 쳤다. 물론 적당히 힘 조절을 했다.
“컥!”
“꺽!”
갑작스럽게 명치를 맞은 두 놈의 상체가 동시에 굽어졌다.
잠깐이지만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터였다.
투둑!
매우 빠르게 놈들의 혈도를 짚었다.
일단은 두 놈 다, 가까운 쪽 어깨의 마혈들이었다. 적어도 한쪽 팔들은 마비되어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놈들의 뒤쪽으로 빠져나와서 신형을 돌리며 몸을 낮췄다.
두 놈은 대처하지 못했다.
놈들의 수준에서 이 속도에 반응할 수 있을 리도 없다.
그 직후, 양손바닥으로 두 놈의 엉덩이를 강하게 밀었다.
퍼벅!
두 놈의 신형이 그대로 허공에 뜨더니 개울의 중간쯤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이미 깊이도 확인했으며, 그곳에 솟아오른 큰 돌들 따위가 없다는 것도 확인한 후다.
탓!
그대로 바닥을 박차며 두 놈의 낙하지점 쪽을 향해 낮고 빠르게 도약했다.
첨벙! 첨벙!
두 놈이 어정쩡한 자세에서 정면으로 물에 빠졌다.
그러자마자 두 놈의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퐁!
하체가 가볍게 물에 잠겨가는 와중에 양손을 뻗었다.
그 직후, 놈들의 바깥쪽 어깨의 마혈들도 점혈했다.
놈들은 이제 양팔 모두를 쓸 수 없다.
미리 확인했던 대로 물의 깊이는 허리 어림이다.
즉시 두 놈의 뒷목덜미를 꽉 움켜쥐었다.
두 놈 다 머리통이 순간적으로 물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기에, 놈들의 머리가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했다.
놈들은 숨이 막히는지 발을 이용해 자신의 하체를 걷어차려 했다. 그러나 물속이기에 거의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적절히 대처해줬다.
그 와중에도 놈들의 뒷목덜미를 잡은 손의 힘을 풀지 않았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놈들의 얼굴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다. 수면에서 매우 가까운 정도까지만.
“푸확! 흐으으으으읍······! 푸악!”
숨을 들이쉰 걸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또다시 놈들의 얼굴을 물속으로 처박았다.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상태라, 놈들에게는 소리를 지르고 말고 할 시간조차 없었다. 애초에 그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놈들이 또다시 발을 버둥거리고 있다.
하체로 적당히 대처하며 놈들의 뒷목을 더 강하게 쥐었다. 그러고는 놈들의 얼굴을 물속으로 더 깊숙이 박았다.
잠깐 동안 그러고 있다가 또다시 놈들의 목덜미를 끌어 올려 숨을 들이쉬게 만들고는 그대로 또다시 물속에 박았다.
이후에도 그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애초에 어설프게 할 생각이 없었다.
어설프게 할 거였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어설퍼봐야 효과는 미미하고 반감만 생길 테니까.
이후, 놈들의 귀 정도만 살짝 수면 위로 나오게 했다. 놈들의 코와 입은 여전히 물속에 잠긴 상태다.
허리를 숙여 입을 두 놈의 귀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잘 들어, 이 등신 새끼들아.”
* * *
장우혜의 의도를 파악했기에 순순히 따르는 척해줬다.
그녀는 자신이 하려는 일을 내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거다. 게다가 나를 연루시키고 싶지도 않은 거다.
이해는 하는데, 나는 봐야 한다.
당연히 봐야지. 간만에 폭력 사태가 벌어질 텐데. 내가 폭력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장우혜를 위해서다.
아직은 어린 나이이기에, 감정을 못 이기고 너무 과하게 나갈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것 같으면 내가 말려야 한다.
남궁찬의 부탁도 있고 하니까.
만약 이 일이 문제된다면 당연히 그 책임도 장우혜와 함께 질 것이다.
어떻게 저 어린 것에게만 모든 걸 책임지게 해?
서무욱 인생, 그딴 식으로 살아오진 않았다.
혹여 송가장에서 곤란해 하면 호적에서 파라고 하고 나와 버리면 될 일이다. 그 경우, 전략적으로도 남궁세가의 신뢰를 얻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사위가 어둑해지는 시각.
두 소녀가 개울가에 도착했다.
그녀들에게서 멀지 않은 덤불 속에 몸을 숨겼다.
곧 종계석과 월백산도 도착했다.
유은무가 유등을 놓고 자리를 뜨는 게 보였다.
이후 유은무가 이동한 곳은 내가 숨어 있는 장소의 비탈 위쪽이었다. 내게서 가까운 곳이다. 그곳에 있는 아름드리나무의 뒤로 몸을 숨기는 게 보였다.
다행히 내 존재를 파악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으이씨, 들키는 줄 알았네.
곧, 장우혜의 실력행사가 시작되었다.
오오오! 우와아아!
장우혜가 놈들의 고개를 계속해서 물속에 처박는 중이다.
쟤 봐라? 냅다 화끈하게 담가버리네?
물속이라는 지형지물을 적절히 활용하여, 초반부터 말없이 공포감만 심어주는 모습이다. 아주 훌륭하다.
구타를 가하지 않으니 타박상 등의 증좌가 남을 일도 없다. 완전범죄에 가깝다. 그 또한 훌륭하다.
그 와중에도 숨 쉴 틈만 잠깐씩 주고 있는데, 두 놈이 소리 지를 시간조차 주지 않는 치밀함마저 보이고 있다.
진심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히야! 장우혜 너, 제법이구나?
저 정도면 아수라님께서 침을 흘리며 탐낼만한 인재인데, 저런 애가 왜 하필 남궁세가에서 태어난 거야?
한데, 중간에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누군가가 기척을 죽인 채 빠르게 다가오는 게 느껴지고 있다.
그 기척이 향하는 곳은 유은무가 숨어 있는 방향이었다.
안타깝게도 유은무는 그 기척을 늦게야 파악했다.
유은무가 고개를 돌린 순간.
“흡!”
다가온 기척이 유은무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내가 나서지 않은 이유는 그 기척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목강의 기척이었으니까.
“유 소저, 조용히 하시오. 내가 소란 피우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절대 장 소저에게 알리지도 마시오.”
전음 따위로 장우혜에게 알리지 말라는 뜻이다.
미세한 목소리였지만 가까운 거리이기에 들을 수 있었다.
“이쪽에서 약간의 소란이 느껴지기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하고 와본 것뿐이오. 어쨌거나 조장이니까.”
“조, 조장님, 그러니까 이건······.”
그 와중에도 첨벙거리는 소리들이 연이어 들렸다.
장우혜가 두 놈을 담그는 소리다.
단목강의 수준에서 그 모습이 안 보일 리 없다.
그의 생각을 알 수 없기에 나 또한 조마조마하다.
잠시 후, 단목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 일이라도 벌어지고 있나 했는데 아무 일도 없구려. 다행이오.”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유은무도 놀랐을 것이다.
장우혜가 하는 짓을 빤히 보고 있음에도 저런 말을 하다니.
단목강도 우리를 무시하는 조원들의 행태를 몇 차례 목격했었다. 그럼에도 개입하지 않았었다.
이해는 했었다. 그는 조장이라 섣불리 어느 한 편을 들어주기가 애매한 입장일 테니까.
한데 저건 이 일을 모른 척 넘어가겠다는 태도가 아닌가.
즉, 장우혜의 저 심정을 이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른 생활 청년인줄로만 알았는데, 쟤도 재미있는 면이 있네?
“잘 들어, 이 등신 새끼들아.”
말없이 애들을 담그기만 하던 장우혜의 첫마디였다.
“실력이 없으면 주제라도 알란 말이야. 나한텐 니들 같은 거, 그냥 먼지 같은 그런 거라고. 이럴만한 의미조차 느껴지지 않아서 그냥 냅뒀던 거야. 근데 왜 그렇게 끝도 없이 깝치는 거야? 사람 짜증나게.”
“푸왓! 스으으으으으읍······!”
첨벙!
장우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서 일러도 돼. 니들 두 놈이 계반의 초 년차 여자애 한 명한테 당했다고 가서 일러. 나아가서 이 일을 문제 삼고 싶으면 얼마든지 문제 삼아도 돼. 너희들이 끝까지 가고 싶다면 나도 끝까지 받아줄게. 대신 그 전에 경고하나 한다. 니들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니까 꼭 새겨둬.”
장우혜가 두 놈의 고개를 또 한 차례 끄집어냈다가 다시 물속에 처박더니 입을 열었다.
“그거, 니들의 그 하찮은 인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니들의 모든 걸 동원해도, 십분의 일조차 제대로 감당이 안 되는 영역이라고. 궁금하면 시험해 봐. 그러다 보면 언젠가부터 간절히 되돌려지고 싶어질 거야. 그나마 이 정도에서 끝나고 말았던, 지금 이 순간으로.”
그 후 장우혜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종계석과 월백산의 머리통을 물속에서 꺼냈다.
“푸확! 스으으으읍! 우웨에엑! 콜록! 콜록!”
“푸왓! 흐으으으으읍! 케헥! 콜록! 콜록!”
두 놈은 거의 죽다 살아난 느낌일 것이다.
장우혜가 여전히 두 놈의 뒷목덜미를 붙잡은 상태로 물었다.
“더 할까?”
두 놈이 괴로운 호흡과 기침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투둑! 투두두둑!
장우혜가 빠르게 두 놈의 혈도를 풀었다.
그러고는 움직이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는 두 놈의 사이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두 놈 모두 양팔이 자유로워졌으니 공격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공격해보라는 기세다.
그러나 두 놈은 공격할 기색이 전혀 없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개울가로 향할 뿐이었다.
둘이 같이 덤벼도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아는 것이다. 사실, 아직도 그걸 모르고 덤벼들면 쟤들은 말 그대로 등신들이다.
물을 벗어나자마자 두 놈이 털썩 주저앉았다.
온 몸에 진이 빠졌을 테고, 무릎도 풀렸을 것이다.
물 밖으로 벗어난 두 놈을 향해 장우혜가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천천히 다가갔다.
두 놈들이 앉은 상태에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장우혜가 말없이 놈들의 사이를 천천히 지나치며 개울가를 벗어났다.
* * *
그 날 이후 종계석과 월백산은 우리 근처로 다가오는 일조차 없었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계속 까분 다른 세 사람 또한 며칠에 걸쳐 하나씩 장우혜에게 당했다.
복건 남평표국 출신의 기반 오 년차 금승경, 복건 상항무관 출신의 경반 사 년차 범당철, 안휘 경정문 출신의 기반 삼 년차 항미금 등이었다. 항미금은 여자 조원이다.
물론 나는 세 명이 당하는 모습까지도 모두 지켜봤다.
이후에는 그 세 명 또한 우리 근처로 다가오는 일이 없었다.
단목강은 그 일에 대해 개입도, 언급도 하지 않았다.
여정은 계속되어, 우리 조는 구 일차의 밤에 태화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정보다는 반일 정도 이른 도착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모두가 짧은 정비를 마치고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