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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59화 (59/416)

내 안에 마교있다 59

“너도 알겠지만 우리가 겪은 태화지부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무림맹 전체에 현재 이급 비상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다. 그리고 사건 발생 권역인 우리 동부지맹에는 특별히 일급 비상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지.”

“예, 알고 있습니다.”

“잠룡관이 조별 임무 지원이라는 임시 체제로 운영되는 상태에서, 동부지맹 전체에 일급 비상 경계령까지 내려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 때문에 잠룡관에서도 승반 심사 일정과 방학 일정을 더 유동적으로 조절해주기로 했다.”

“아, 저도 오늘 아침에 대강은 들었습니다.”

오늘 새벽 구보 때 단목세가의 사촌남매를 통해 들은 내용이 있었다.

동부지맹에 내려진 일급 비상 경계령 때문에 이번 여름 방학도 짧아졌다. 말이 방학이지 거의 휴가 개념이다.

임무 지원 일정이 조별로 다르기에 여름 방학 일정 또한 조별로 다르다.

초반 투입조들은 유월 중순부터 승반 심사를 친 후 곧바로 이차 파견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그 일정이 끝난 후에 휴가 형식의 방학이 주어진다고 한다.

우리 조와 같은 후반 투입조들은 원래대로 승반 심사를 하순에 치르고, 휴가를 먼저 쓴 후에 이차 파견이 시작된다.

일급 비상 경계령 때문에, 방학 기간이라 해도 관도들은 행동 범위에 제한이 있다.

동부지맹에서 안전하다고 지정한 범위까지다.

기본적으로 강서와 바로 옆의 절강 땅 일부까지로 제한이 걸려 있다. 강서 안에서도 북서쪽으로는 남창과 포양호 인근까지, 남쪽으로는 길안현까지가 제한 범위라고 들었다.

방학 기간에 그 범위를 벗어나서까지 각자의 가문이나 문파에 다녀오려면 각서를 쓰고 다녀와야 한다. 어떤 일을 당해도 잠룡관과 동부지맹의 책임이 아니라는 내용의 각서다.

물론 그 또한 경고의 의미이며, 동부지맹과 잠룡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이기도 하다.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안전 범위를 벗어나고 싶은 관도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특별히 유동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이기에, 송유겸 너처럼 승반 심사를 치지 않는 소수 인원들의 경우에는 실질적인 방학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런 관도들의 경우에는 이미 잠룡관을 벗어난 인원들도 있지.”

“예, 그 또한 들었습니다. 그 경우에는 교관님들을 직접 찾아가서 행선지를 밝히고 허락을 구하면 가능하다고······.”

“행선지를 밝혀야 연락망도 정해줄 수 있으니까.”

연락망을 정해주는 이유 또한 동부지맹에 일급 비상 경계령이 내려진 탓이다.

나도 승반 심사를 안 치르는 소수에 속하지만, 방학이라도 딱히 잠룡관을 벗어날 계획은 없었다.

이 기회에 송유하의 무공을 집중적으로 지도하면서 내 수련도 병행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송가장에도 대충 친구들 핑계를 대고 안 갈 생각이었다. 이쯤 되었으니 핑계로 써먹을 친구들도 많다.

송유하도 마찬가지 생각이었고.

대강의 상황 설명을 끝낸 제갈수광이 본론을 꺼냈다.

“낮에 청여홍과 유은무와 장우혜가 나를 찾아왔더군. 청여홍도 이번에는 승반 심사를 치르지 않을 모양이고.”

“그렇다면······.”

“셋 다 일찍 잠룡관을 벗어나기 위해 허락을 구하러 왔던 거지. 이번 조별 임무 때 세 사람이 상당히 친해진 모양이더군.”

조별 활동의 후반부에는 유은무와 장우혜가 청여홍을 ‘청 소저’라고 부르지 않고 ‘청 언니’라는 호칭으로 불렀었다. 그만큼 친해진 것이다.

“남창에 연주상단의 지점이 있는데, 셋 다 그곳에 갔다가 포양호변의 장원 같은 데서 머물 건가 봐. 남창지점의 총관의 지인이 하는 장원이라던가.”

“아.”

“일단은 수련이 목적이라는 것 같다. 청여홍도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제법 강한 아이니까 거짓말은 아닐 거야. 장우혜와 유은무가 수련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모양인데, 같은 조원을 돕는 일이니 기특한 자세지. 그러면서 간혹 포양호 유람도 할 생각인 것 같고.”

조 활동 내내 청여홍은 본인의 무공이 약해서 조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같다며 항상 미안해 했었다.

유은무와 장우혜도 그 모습을 옆에서 봐왔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들 수 있다. 청여홍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두 소녀도 잘 알 테고, 친해지기도 했으니까.

“송유겸 네가 그쪽에 합류해줬으면 하는데.”

“예에에에?”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놀란 반응이 저절로 나왔다.

부탁이라는 게 이거였어?

“물론 남창지부 근처인데다가 이번에 지정된 안전 범위의 안쪽이지. 그래도 포양호는 넓다. 별일이야 있을까 싶은데, 송유겸 너나 나나 근래 그 별일을 두 번이나 겪었잖아? 그것도 여태까지는 안전하다고 생각되었던 곳들에서.”

“그렇기야 한데······.”

“지금껏 별일은 없었지만, 포양호 또한 수적들이 마음만 먹으면 숨어들 수 있는 곳이다. 수적들은 물속으로 숨어들어왔다가 물속으로 빠져나갈 수가 있어서, 막상 대처하려면 까다로운 자들이다. 물론 뭍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지. 그러나 문제는······.”

“혹시 모를 기습이겠죠.”

내 대꾸가 만족스럽다는 듯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러한 걱정이 거의 기우라는 건 알고 있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나 또한 별일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성도인 남창 인근이니까.

“그러나 요즘의 일들을 겪어 보니 최소한의 보완책은 마련해두고 싶은 거다. 혹시 모를 상황이 벌어져도 송유겸 네가 있다면 최악의 상황만큼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제자들을 염려하는 마음. 나에 대한 신뢰.

제갈수광의 눈빛에서 그런 감정들이 가득 느껴졌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너와 친한데다가 너를 잘 따르기도 하잖나.”

제갈수광을 향해 농담조로 대꾸해줬다.

“제가 그 부탁을 안 들어드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면 협박으로 넘어갈 생각이었지.”

“협박이라뇨?”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게 많잖나. 너는 혼자서도 절정고수를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난 실력자지. 그걸 내가 조금만 떠들고 다녀주면······.”

제갈수광이 말을 줄이며 미소를 지었다.

저 인간의 미소가 저렇게까지 사악해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빨리 제갈수광의 의자 뒤로 이동하여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에헤헤헷! 교, 교관님? 원래부터 저는 교관님의 그 부탁, 당연히 받들 생각이었습니다요. 암요! 하늘같은 교관님께서 삼고초려 느낌으로 부탁까지 하시는데, 제자 된 도리로서 어찌 감히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요?”

“그렇지? 웬만큼 싸가지 없는 제자가 아니면 교관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거절하고 그러지는 않겠지? 게다가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말이야.”

“그러믄요! 제 신조가 군사부일체라는 건 일전에 말씀 드렸었지요? 항상 교관님을 임금님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요. 헤헤.”

“역시 우리 송유겸이가 차아암 훌륭한 제자야.”

“이게 다 교관님이 훌륭하신 덕분 아니겠습니까요? 에헤헤.”

“어으. 시원하다.”

제갈수광이 내 안마를 즐기듯 목을 풀며 말했다.

“내일 오전에 출발한다더군.”

“차질이 없게끔 잽싸게 채비하겠습니다요. 아, 참! 제 누이도 데려가도 됩니까? 이번에 승반 심사 안 치른다던데.”

“안 치른대?”

“예, 뭐. 개인 사정이 있나 봅니다.”

“그러면야 뭐, 상관없지 않을까?”

이윽고 제갈수광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돌아서서 나를 보며 말했다.

“꼭 수적들이 아니더라도 포양호변은 여러 이권들이 개입되어 있어서 자칫 귀찮은 상황들에 휘말릴 수 있다. 걔들은 아직 어리니까,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네가 알아서 적절하게 대처하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혹시 모르니 소비도가 장착된 가죽 띠와 적정량의 쇠구슬 등은 내가 챙겨다 주지.”

“아유아유! 망극하옵니다요.”

제갈수광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당을 벗어났다.

이러면 수련에 약간의 차질 정도는 생기겠으나, 나 또한 원래부터 제갈수광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긴 했다.

나는 장차 포양호변에 비룡장을 세울 계획이다.

이 기회에 그쪽 주변도 좀 봐 두고, 인근의 분위기를 파악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미래에 복수를 위한 중심부 역할을 해야 하기에, 내게 있어 비룡장의 의미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으니까.

내 입장에서는 포양호가 처음이기도 하니 이 기회에 잠깐쯤은 유람도 하지 뭐. 답사 개념으로.

송가장에 안 가도 되는 더 확실한 명분이기도 한데다가, 함께 가는 인원들의 면면 또한 내게는 모두 편한 사람들이다.

나쁠 게 없다.

* * *

다음날 오전.

송유하와 함께 잠룡관의 정문으로 향했다.

이미 유은무와 장우혜와 청여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여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서로 대강의 인사를 나누고 나자 청여홍이 송유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에요, 송 소저. 저 기억하시는지······.”

“당연히 기억하죠. 오랜만이에요, 청 소저.”

이에 나는 곧바로 청여홍을 향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누이와 아는 사이셨소?”

“작년에 같은 거주 구역이었거든요. 가끔 오가다 마주치면 간단한 인사 정도만 주고받는 사이였어요. 친해질 기회가 딱히 없었던지라······.”

“아하.”

여관도들은 신임계반이 같은 거주 구역을 쓰는데, 작년에 송유하는 신반이었고 청여홍은 계반이었다.

생각해 보니 송유하와 청여홍은 동갑이기도 하다. 굳이 신경 안 써도 이번 기회에 알아서 친구가 될 것 같다.

청여홍이 말했다.

“어젯밤에 교관님이 두 분의 합류 소식을 전해주셨을 때 너무 기뻤어요. 송 소저와는 친해질 기회라서 기대됐고, 송 공자님이야 뭐, 제게는 너무도 고마운 분인데다가 누구보다 든든한 분이시기도 해서.”

“하하. 어쩌다 보니 신세지게 됐습니다.”

“신세라뇨. 송 공자님도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런 표현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저야말로 여러분이 지내시는데 불편함이 있지는 않을지 염려될 뿐이에요.”

그런 식의 인사들을 주고받은 후, 우리 다섯 사람은 잠룡관의 정문을 벗어났다.

한데, 정문을 벗어나자마자 휘어진 대로의 앞쪽에 익숙한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저 분, 조장님 아니에요?”

유은무의 말마따나 단목강이었다.

모두가 얼른 그를 향해 다가갔다.

단목강 또한 행장을 꾸린 모습이었다.

“조장님!”

“하하! 모두들 안녕하시오.”

단목강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유은무가 물었다.

“조장님도 어디 가시나 봐요?”

“아! 하하.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소.”

“네에에에?”

소녀들이 놀라며 그렇게 되물었다.

의문스럽기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하하. 어제 교관님이 오셔서 여러분들과 동행하라고 명······, 아니, 부탁을 하셔서 말이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될 거라고 하시기에······.”

이 녀석은 방금 ‘명령’이라는 말을 내뱉다 말고 황급히 ‘부탁’이라는 말로 바꾼 거다.

나도 어제 비슷한 상황을 겪은 터라, 어찌된 일인지는 금세 이해가 되었다.

내 경우에는 협박성 부탁이었는데, 단목강의 경우에는 협박당할 일이 없었을 테니 명령조의 부탁이었던 모양이다.

“한데 조장님, 승반 심사는 어쩌시······. 아!”

유은무가 말을 하다 말고 납득했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그렇소. 내 경우에는 딱히 승반 심사를 칠 필요가 없는 입장인지라.”

단목강은 갑반이니 승반심사를 칠 필요도 없는 거다.

너야말로 진짜 갑이구나.

이후에 단목강은 따로 송유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송유하에 대해서도 단목지와 단목홍신을 통해 들었을 것이나, 일단은 첫 대면이다.

“처, 처음 뵙겠소, 송유하 소저. 다, 단목강이라 하오.”

야! 너 왜 말 더듬어?

“아, 말씀 많이 들었어요. 송유하예요.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나 또한 누이와 사촌동생에게서 소저 얘기는 많이 들었소. 나야말로 영광이오······.”

잠룡삼화의 위엄은 육룡에게도 통하는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단목강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와 나는 똑같이 잠룡삼화를 여동생으로 둔 오라비들이다.

여동생이 미인이라는 사실이야 당연히 인식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가족일 뿐이다. 내 동생이 미인이긴 미인이지 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내의 입장에서 우리 둘에게는 사실, 잠룡삼화가 아니고 잠룡이화나 마찬가지다. 잠룡삼화에 속한 각자의 여동생들이 애초에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단목강이 송유하를 보는 심정은 내가 단목지를 보는 심정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잠룡관에서 가장 유명한 미인 중 한 명과 이렇듯 인연이 닿은 것만으로도 긴장되고 설레는 거다.

그보다 더한 마음이 들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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