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60
첫날에는 신법을 펼치며 이동하다가 이틀째 점심 무렵에 나루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 남창까지는 뱃길을 이용할 수 있다.
한데 나루터에서 모두가 한 차례 놀랐다.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보낸 소형 유람선이 떡하니 대기하고 있었던 탓이다.
승객 열 명 내외를 태울 수 있는 크기였고, 전용 유람선이라 당연히 우리만 태워가는 용도다.
청여홍이 먼저 배에 오르며 말했다.
“편하게들 오르세요.”
과연 광동제일상단의 장녀.
그녀에게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배 위에 올라서 선체 내부에 진입한 순간 우리 모두는 다시 한 번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소형 유람선 느낌이었는데, 선체 내부의 시설들은 매우 고급스러웠기 때문이다.
“밖에서 볼 때 너무 눈에 띄면 여러모로 곤란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부 쪽만 깔끔한 상태인 거구요.”
저 깔끔하다는 표현은 겸손하려고 쓴 말일 뿐이다.
이건 깔끔한 게 아니라 호화로운 거니까.
“여러분이 이용하시기에 불편함은 없으실지······.”
아니, 청여홍. 씨알도 안 먹힐 불편 같은 소리는 집어 치워.
이 정도면 배가 아니고 작은 궁전 같은 거라고.
배에서 나온 점심과 저녁은 맛이 기가 막혔고, 특히 저녁에는 좋은 술까지 나왔다.
어쨌거나 동부지맹과 남창지부 사이의 뱃길이라 위험할 일도 없으니, 우리는 기분을 낼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마셨다.
이렇게 마음 편하고 몸 편할 수가 없다. 아주 좋다.
* * *
뱃길은 강을 타고 포양호로 이어졌다.
드넓은 포양호의 푸른 물결이 처음으로 나를 반겼다.
우와아아아아!
바다를 연상시킬 정도로 넓어서, 탁 트인 넓은 수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연지기가 절로 생기는 기분이었다.
호수와 어우러진 모든 경치들이 기가 막혔다.
이걸 보니 포양호 근처에 장원을 세워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질 정도였다.
장원을 세우고 나면 이런 식의 내 전용 유람선 한 척과 쾌속선 한 척 쯤은 사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양호는 북으로는 장강에 닿고, 남서쪽으로는 강줄기를 따라 남창으로 이어진다.
유람선은 강줄기를 따라 남창으로 진입하여 나루터에 다다랐다.
내리자마자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나왔다는 호위 무사 일곱 명이 우리를 반겼다. 보아하니 세 명은 일류였고 네 명은 일류에 근접한 이류 수준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바로 모시겠습니다. 짐 주십시오.”
청여홍이 자연스럽게 일류 무사 한 사람에게 본인의 짐을 건넸다. 다른 무사들은 우리의 짐을 들고 가겠다고 했으나, 우리는 정중히 사양했다.
짐을 대신 들겠다기에 먼 거리를 이동하나 싶었는데 웬 걸, 나루터에서 멀지 않은 곳의 대로변에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이 있었다.
강줄기 근처에 지점이 있으니 포양호를 통해 장강으로도 쉽게 통한다. 즉, 대륙을 관통하는 장강 줄기를 이용하기에도 편리한 입지 조건인 셈이다.
연주상단에서 처음부터 수로를 최대한 활용할 계산으로 이곳에 지점을 세운 것이다.
지점으로 들어서자 키가 작고 통통한 체구의 중년인 한 명이 우리를 반겼다. 의복이 고급스러운 것으로 보아 지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인 듯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여정은 편안하셨습니까.”
청여홍을 대하는 중년인의 모습이 더없이 공손했다.
“예, 관 숙부. 신경 써 주신 덕에 편안하게 왔어요.”
청여홍이 대꾸하자 중년인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친우 분들도 어서 오십시오. 아아! 아가씨가 이곳에 친우 분들을 모시고 오시다니······!”
중년인은 감격한 표정이었다.
청여홍이 우리를 보며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룡관에서 누군가를 데려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중년인이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중년인은 가장 큰 전각의 넓고 고급스러운 응접실로 우리를 이끌었다.
걸으면서 중년인이 본인 소개를 했는데 이름은 관대평으로, 남창지점의 지점장이었다. 무려 지점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대문 앞까지 직접 마중을 나왔던 것이다.
응접실에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앉은 직후, 또 한 명의 중년인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평균보다 살짝 작은 신장에 마른 체구였다.
“아이고 아가씨! 오셨습니까!”
“아, 양 총관님, 안녕하셨죠?”
우리도 한 차례 일어서서 총관이라는 중년인에게 목례했다.
“허허, 아가씨의 친우 분들이시라 그런지, 다들 헌앙한데다가 미인들이십니다.”
양 총관의 이름은 양운필이었다.
그가 곧 작은 붓과 종이를 들고 우리의 이름을 물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또 방문하셨을 경우, 대접에 추호의 소홀함도 없게 할 목적입니다.”
상단인 만큼 인맥 관리를 중시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이름과 출신을 밝히자 양운필이 그 내용을 기록했다.
청여홍이 관대평과 양운필에게 말했다.
“이번 조별 활동 시에 제게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이에요. 앞으로도 제가 신세질 일이 많을 거구요. 혹여 제가 없을 때 이곳에 찾아오시더라도 대접에 소홀함이 없게 해주세요.”
“아유, 이를 말씀이겠습니까, 아가씨.”
관대평이 청여홍에게 대꾸한 후 우리에게 말했다.
“공자님들 소저님들, 꼭 아가씨와 함께 오지 않으셔도 되니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불편함 없이 쉬다 가실 수 있게끔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이어서 양운필이 우리에게 말했다.
“밖에서 아가씨의 성함을 대고 이전에 왔던 친우라고 하시면 알아서 모실 겁니다. 편하게 방문해 주십시오.”
살면서 이런 대접을 받는 일이 많지 않다.
과연 광동제일상단주의 장녀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여홍에게서 황금빛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양운필이 청여홍에게 말했다.
“아가씨, 오늘은 일단 이곳에 머무시지요. 여독도 푸실 겸.”
“이번에는 수련 목적이라 바로 그쪽으로 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이고, 이거 아쉬워서······.”
“나오는 길에, 마지막 밤은 이곳에서 보내도록 할게요.”
“그러십쇼, 아가씨. 그럼 일단 점심 식사를 준비할 테니, 드신 후에 출발하실 수 있게끔 조치하겠습니다.”
“예, 감사해요, 양 총관님.”
점심 식사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였다.
정말 맛있게, 오랜만에 배가 꽉 찰 때까지 먹었다.
식사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또다시 나루터로 이동하여 배를 탔다.
포양호의 중간에 있는 섬까지 이 배를 타고 가다가, 그곳으로 마중 나온 장원 쪽의 배로 갈아타야 한다는 모양이다.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배에 같이 오른 양운필이 말했다.
“아가씨께서 경치 좋은 조용한 곳, 그리고 실내 연무장이 있는 곳을 찾으셔서 딱 정가장 생각이 났습니다. 먼 과거에는 나름 인근에서 알아주는 강호 세력이었다고 하던데 현재는 아닙니다. 지금은 그냥 가족이 포양호에서 어획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이런 식으로 별채 쪽 시설을 제공하며 수입을 충당하기도 합니다.”
포양호 인근의 정가장?
딱 떠오르는 건 없었다.
정씨 가문의 장원이라는 건데, 송가장만큼이나 흔한 명칭이기도 하다.
“가주이신 정 노야와는 어쩌다가 두세 차례 식사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성품이 강직하고 성실한 분이십니다. 장원에 대한 애착도 강하셔서, 지인의 소개로만 별채를 제공하십니다. 장원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만큼, 지내시기에 불편함은 별로 없으실 겁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양운필이 말했다.
“저희 지점에서 식자재 등은 신선한 것들로만 꾸준히 조달해드릴 것이며, 별채에서 직접 해 드셔도 되고, 정가장 쪽에 조리해 달라고 하셔도 됩니다. 다 얘기해 놨습니다.”
상단주의 장녀가 움직이니 대우도 극진하기 이를 데 없다.
“참고로 저 친구들은 여러분과 떨어져서 조용히 지낼 것이니 방해 될 일은 없을 겁니다. 혹여 중간에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 친구들에게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근처에서 우리 지점으로 바로 전서구를 날릴 겁니다.”
우리와 동행한 자들은 아까 나루터에서 내리자마자 봤던 일곱 명의 무사들 중 다섯 명이었다. 일류 세 명에 이류 두 명이다.
포양호의 남서쪽 호반은 남창 쪽이며, 우리가 가야 할 정가장은 동쪽 호반이다.
배가 도착한 곳도 호수의 동쪽 섬이었다.
“아시다시피 포양호의 호반에는 수많은 만(灣)이 존재합니다. 저희가 끝까지 모셔다 드리고 싶으나, 정가장 인근의 만은 암초가 많아 작은 배를 이용해야 합니다. 정가장에서 직접 나룻배를 보내온다고 했습니다. 물살이 휘몰아치는 곳들도 많으니 그쪽 물길을 잘 아는 사공일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멀리서 작은 나룻배 한 척이 우리가 있는 섬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 저 배가 정가장의 배군요. 아가씨, 그리고 친우 분들, 제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좀 많아서 곧바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단의 총관이니 바쁜 거야 당연할 수밖에 없다.
양운필이 곤란함 가득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청여홍이 즉시 대꾸했다.
“지금까지 직접 신경 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고생 많으셨어요. 어서 돌아가 보세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그럼 친우 분들도 수련들 열심히 하시고 즐거운 시간들 되십시오. 후일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살펴 가세요!”
곧 양운필이 배를 타고 떠나갔다.
나룻배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보아하니 죽립을 쓴 사공의 키가 상당히 작았다.
가까워질수록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사공은 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가 긴 노를 이리저리 저으며 배를 몰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완전히 가까워진 상태에서 보니 열두세 살쯤 되어 보인다.
“정가장의 별채를 예약한 분들이신가요?”
“맞아요.”
청여홍이 대꾸하자 소년이 말했다.
“오르십시오. 모시겠습니다.”
나룻배는 크기가 작아도 운송용이라 최대 열댓 명 정도까지는 탑승이 가능해 보였다.
우리가 먼저 탄 후, 무사들로부터 식자재 등을 받아서 배에 실었다. 그 후에 무사들도 배에 올랐다.
나룻배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노 젓는 소년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죽립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똘똘해 보이고, 인상 또한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
“소공자는 장원의 일꾼 같지는 않은데, 혹여 가족인가요?”
유은무의 질문에 소년이 대꾸했다.
“예, 현 가주님께서 제 조부님 되십니다.”
“아하, 손자셨구나.”
“예.”
짧게 대꾸한 소년이 계속 노를 저어갔다.
키의 세 배쯤이나 되는 기다란 노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어,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니까 녀석은 무공을 익혔다.
대단할 정도의 경지는 아니고 이류의 중간 이하쯤이다. 물론 나이에 비하면 나름 훌륭한 수준이다.
애초에 노를 다루는 솜씨도 능숙한데, 공력을 적절히 사용하며 다루니 성인 사공 못지않은 모습이다.
기다란 노를 잡은 자세나 다루는 자세가 매우 안정적이다.
장병을 일정 수준 이상 익히지 않았다면 저 자세는 나올 수가 없다.
‘장창술 쪽인가?’
정가장이라.
왠지 모를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곧 암초 지역입니다. 물살이 거센데다가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기까지 합니다. 배가 좀 요동칠 테니 꽉 잡으십시오.”
잠시 후, 소년의 말마따나 나룻배가 점점 요동치기 시작했다.
소년이 다루고 있는 노도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며 물을 강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푹! 촤악! 푸욱! 촤아악!
노를 물속에 쑤셔 넣고 빼낼 때마다 물벼락이 이리저리 튀고 있다.
나룻배가 한동안 위태롭게 나아갔다.
다들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옆으로 편하게 앉아서 소년의 모습을 구경했다.
‘흠······.’
이 거센 물길에 대한 경험이 많아 보이기는 한다.
한데 노를 다루는 동작이 커지고 격렬해지자 어딘지 모를 어색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경우에는 소년이 장창술을 응용하여 노를 다루고 있음을 알기에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직 키에 비해 노가 너무 길어서 그런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어색함이 너무 많다.
물론 패기나 기세는 정말 좋다.
그래서 더 아쉬운 거다.
장창술의 성취가 아직 낮거나, 장창술을 좀 잘못 배웠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암초 지대와 거센 물길을 통과하며 한동안 요동치던 나룻배가 다시금 잠잠해졌다. 성가신 물길을 통과하여 어찌어찌 뭍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길쭉한 만 안쪽으로 이동하던 나룻배가 이윽고 일정 지점에서 나루터에 닿았다.
나루터와 연결된 호숫가의 길이 굽어지며 언덕 위로 이어지고 있다. 그곳에 장원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있었다.
저곳이 정가장인 모양이다.
모두가 배에서 내린 후 소년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남기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에 남아서 잠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나룻배에 연결된 끈을 나루터의 기둥에 고정시키는 중이었다.
“소공자.”
소년이 기둥에 끈을 둘둘 말다 말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예, 공자님.”
팅!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은화 한 닢이 핑그르르 돌며 포물선으로 날아갔다.
소년이 그걸 낚아챘다.
소년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공자님, 이미 별채 사용료는 아주 넉넉하게 받았습니다. 거기에 뱃삯도 포함되어 있어서······.”
은화 한 닢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니 놀란 것이다.
“노 젓는 솜씨가 너무 멋졌소. 좋은 구경을 하여 그 값을 주는 것이니 부담스러워 마시오.”
“제가 돌려드리려 해도 받지 않으실 것 같네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물었다.
“소공자의 이름은 무엇이오? 앞으로 한동안 계속 보게 될 것 같으니 이름 정도는 알아두고 싶어서 말이오.”
“저는 정세건이라 합니다.”
“아하. 정세건 공자셨군.”
“공자님께서는······.”
“송유겸이오.”
이에 소년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공자님의 성함이 궁금했었습니다. 송유겸 공자님이신 거군요. 모쪼록 지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내가 원래 새로운 곳에 오면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쭉 둘러보며 지리와 분위기부터 익히는 습관이 있는데, 바쁘지 않다면 정 공자가 간단하게나마 안내해주겠소?”
나는 정세건이라는 소년도 마음에 들고 정가장에도 흥미가 동한 상태다.
때문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한테서 직접 안내받으며 장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쭉 한 번 살펴보고 싶었다.
“어······, 음······. 잠시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뭔가 또 할 일이 있는 것 같은 기색인데, 이미 받은 은자도 있으니 거절하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고맙소.”
정세건이 걸음을 빠르게 옮기며 장원의 곳곳을 안내해 줬다. 걸음은 빠르나 받은 돈이 있어서인지 설명은 제법 세세했다.
“그리고 저쪽이 본채입니다. 저희 가족들이 머무는 곳이니, 지내시다 불편한 게 있으면 오셔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아, 그렇구려.”
정세건과 함께 본채 쪽으로 걸으며 그렇게 대꾸했을 때쯤, 그 본채 쪽에서 약간의 언성 높은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아직은 소리가 작게 들리는 거리이기에 나는 곧바로 청력을 집중시켰다.
“이놈들아! 챙길 거 챙겼으면 썩 물러가!”
“아니, 정 어르신. 이자도 이잔데, 이래서 언제 그 빚을 다 갚을 작정이시오? 그러느니 그냥 이 땅을 넘기시라니까? 그러면 모든 계산 끝내고 식구들이 머물 수 있는 좋은 거처도 알아봐 드린다니까?”
“일 없다, 이놈들아. 그 정도 원금 갖고 이만한 이자를 챙겨가는 놈들이 원금 타령들은? 썩 물러가!”
“하! 진짜 답답하셔. 원금도 상한기간이라는 게 있는 거라, 그 기간이 지나면 이자도 당연히 늘어나는 거라니까?”
“이자가 늘어도 이렇게까지는 말도 안 되지, 이놈들아!”
“어르신도 전장에서 더 이상 빌려주는 데가 없으니까 우리한테 왔던 거잖소! 어차피 이런 식이면 우리 쪽에서 압류하는 건 시간문제인데, 왜 계속 적잖은 이자를 감당하며 생고생을 하실까 그래?”
정세건이 걸음을 멈췄다. 그에게도 들린 것이다.
“저어, 송 공자님. 본채에 다른 손님들이 와 계신 것 같으니 안내는 이 정도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불편한 상황이라 내가 듣게 하고 싶지 않은 거다.
“알겠소. 이 정도만으로도 고마웠소. 그럼 나중에 또 봅시다.”
“예, 송 공자님. 또 뵙겠습니다.”
말을 마친 정세건이 빠른 걸음으로 본채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돌아서서 매우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계속 본채 쪽에 청력을 기울였다.
아까의 대화 소리가 잠깐 더 이어지다가, 정세건이 나타나서 그런지 이윽고 멈췄다.
제갈수광이 말하길 포양호변은 여러 이권들이 개입되어 있다던데, 이건 좀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