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76화 (76/416)

내 안에 마교있다 76

강하령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옥련이가 자세한 얘기를 해준 건 아니지만 별것 아닌 일로 그런 말을 하는 애는 또 아니거든요. 게다가 며칠간 단목 공자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니까 옥련이의 말에 더 신뢰가 갔어요.”

“단목강이 왜?”

제갈수광이 묻자 강하령이 대꾸했다.

“단목 공자는 첫 출전이잖아요. 그럼에도 선배들과 어울리며 정보를 알아내려는 모습이 없다시피 했어요. 송 공자하고만 어울렸죠. 단목 공자처럼 명석한 분이 그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겠어요?”

“하하, 저는 그저 송 공자와 있는 게 편해서······.”

단목강이 대꾸하자 강하령이 빙그레 웃어 보인 후에 말했다.

“우리는 모두가 갑반이라 수업 때도 항상 보는 사이잖아요. 딱히 불편할 게 없는 사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계반인 송 공자와 어울리고 계신다는 건, 편하고 불편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강하령도 확실히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저러니 검후가 제자로 들였을 테고, 저러니 여관도들 중에서 최고의 실력으로 꼽히는 거겠지.

강하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술자리에 합류한 거, 교관님 때문이기도 하지만 송유겸 공자 때문이기도 해요. 이전부터 계기가 되면 송 공자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거든요.”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하령이 말했다.

“사실, 그동안 송 공자가 먼저 인사라도 건네줄 줄 알았어요. 보통 남자 관도들은 그런 식으로 제게 많이들 다가오거든요. 송 공자도 그러시면 저는 자연스럽게 대꾸해주면서 대화를 나눌 생각이었죠. 한데 송 공자는 먼저 말을 걸어올 기색이 전혀 없으셨어요.”

강하령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저라도 먼저 인사를 건네며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와아! 송 공자는 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요. 일절 저와 눈이 마주치는 적조차 없으셔서······.”

강하령은 질려버렸다는 투였다. 물론 미소를 띤 채다.

“푸하하하!”

제갈수광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강하령이 말했다.

“그러던 와중에 교관님께서 술을 권하시니 여러 모로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에 합류했던 거예요. 교관님께 조언도 구할 겸, 송 공자와 인사도 나눌 겸.”

제갈수광과 단목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반가워요, 송 공자.”

강하령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향해 술잔을 내밀었다.

건배하자는 뜻이다.

제갈수광과 단목강은 눈치껏 잔을 들지 않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잔을 들어 건배하며 대꾸했다.

“예, 반갑소, 강 소저.”

나와 강하령이 술잔을 털어 넣자 단목강이 알아서 우리 둘의 잔을 채워줬다.

강하령이 내게 말했다.

“옥련이의 말을 들었다고 해서, 송 공자에게 다른 의도가 있어서 접근하려 했던 건 아니에요. 그저 송 공자가 어떤 분이기에 옥련이가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여기는지가 궁금했을 뿐이에요.”

“아하하, 나는 전혀 대단할 게 없는 사람이오. 태화지부에서의 전투 당시에는 어쩌다보니 내가 아군을 엄호하는 역할을 많이 했소. 그러다 보니 묘 소저를 엄호할 일도 몇 차례 있었는데, 묘 소저가 그걸 너무 크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오.”

강하령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저 표정 귀엽다.

미녀는 무슨 표정을 지어도 예쁘구나.

강하령이 말했다.

“원래는 다른 의도가 없었는데, 송 공자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나니까 의도가 생기네요.”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강하령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입을 열었다.

“잠룡관에 미남들이 많긴 한데, 송 공자가 딱 내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미남이세요.”

나는 눈을 크게 떠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야야야! 너무 훅 들어오는 거 아니냐?

내 심장한테도 대비할 시간은 줘야지!

여전히 미소를 띤 얼굴로 강하령이 말했다.

“일행이 됐을 때부터 그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나니 그 생각이 더 강해져서요.”

단목강이 말했다.

“와아! 내 앞에서 대놓고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나 상처받았소, 강 소저.”

강하령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푸흡! 죄송해요. 단목 공자와 비교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단목 공자도 대단한 미남이세요. 실제로도 단목 공자가 여관도들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으신데요. 방금 전에는 그냥 제 개인 취향을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하하. 농담이었소. 신경 쓰지 마시오. 방금 개인 취향 얘기를 하셨지만, 굳이 그걸 따지지 않아도 객관적으로도 우리 송 공자가 미남이긴 미남이시지.”

“단순히 더 미남이기 때문은 아니에요. 이런 말씀, 초면에 실례가 아닐지 염려가 좀 되는데······.”

강하령이 조심스러워하며 말을 줄이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궁금하네. 편하게 말해 봐. 송유겸 쟤가 싸가지가 좀 없어서 그렇지 속 좁은 놈은 아니야.”

이보쇼! 이 상황에서 꼭 싸가지 없다는 말을 붙여야겠소?

게다가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소. 나 속 좁소.

어쨌거나 강하령이 대단히 무례한 말을 할 것 같지는 않으니 나도 고개를 끄덕여줬다. 나 또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강하령이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송 공자는 착하고 반듯한 느낌과는 거리가 좀 머시잖아요. 왠지 개구쟁이 같은 느낌에, 사악한 느낌도 좀 있으시고······. 아, 이건 비하하려는 말이 아니라 저는 그런 점이 매력적이시라고 느껴서······.”

하······! 너, 나쁜 남자 취향이었냐?

제갈수광이 말했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미인들이 오히려 취향이 독특한 경우가 참 많아.”

이보쇼!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내 인생 처음으로 저런 미인한테서 이상형이라는 말을 들었단 말이오! 그걸 그런 식으로 폄하해야겠소?

술자리는 화기애애하게 이어져 자시초(밤 11시) 무렵이 되어서야 끝을 맺었다.

모두가 적당한 정도로만 마셨다. 술꾼인 제갈수광도 마찬가지였다.

헤어지기 직전에 강하령이 내게 말했다.

“반가웠어요, 송 공자. 앞으로는 편하게 인사 나누며 지내요.”

“그럽시다. 그럼 편히 쉬시오.”

내 말에 강하령이 생긋 웃어 보이더니 객실로 올라갔다.

강하령은 인상만 봐서는 차갑고 도도한 느낌이다.

게다가 내가 봐오기로는 평소에도 그다지 말수가 많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강하령도 거의 송유하만큼이나 표정도 별로 없고 조용할 줄 알았는데,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쾌활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말도 많이 하고 웃기도 잘 웃는다. 잘 안 웃을 것 같은 애가 잘 웃으니 더 예뻐 보이는 느낌도 있다.

그나저나 강하령과도 친분이 생김으로서 결국 잠룡삼화 모두와 관계가 이어졌다. 물론 그 중에서 송유하는 가족이라 예외로 치긴 해야겠지만.

유은무와 장우혜의 원래 미모도 빼어나다고 알려져 있으니, 그녀들이 정체를 밝히면 곧바로 잠룡오화가 된다.

그러면 나는 잠룡오화 모두와 일정 수준 이상의 친분을 맺은 남자 관도인 셈이다.

내가 그녀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억지로 찾아다니며 노력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 * *

배가 장강을 유유히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무림맹에서 지원해준 이 배는 제법 규모가 큰 범선이다.

무림맹을 나타내는 깃발이, 돛의 꼭대기에서 위용을 뽐내며 펄럭이고 있다.

‘백무맹白武盟’이라는 글자가 적힌 커다란 깃발이다.

일반인들이야 저걸 ‘백도무림맹’이라는 뜻으로 직역해도 되겠지만, 장강에서 활동하는 수로채들의 경우에는 반드시 저걸 의역해야 한다. ‘건들면 뒈진다.’라는 의미로.

어쨌거나 저 깃발 하나가 있으니 상선이고 어선이고 여객선이고 할 것 없이 모든 배들이 알아서 피해간다.

좋다. 편하다.

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조를 익힌 후, 제갈수광에게 배의 무기 창고를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태화지부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제갈수광은 스스럼없이 내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들어가서 보니 역시나 선내의 무기 창고인 만큼, 일반 무기 창고와는 비품의 분포가 달랐다.

일단 활과 화살이 많았다. 특히 화살이 많았고, 화시 용도의 화살들도 대량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평상적인 무기들도 소량씩은 갖춰져 있었고, 비도 등의 암기들도 제법 많았다.

혹여 전투가 벌어져도 배가 닿기 전에는 서로 간에 원거리 공격이 주로 오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원거리 무기들이 많은 것이다.

분수도, 분수자 등의 수중전에 특화된 무기들도 다수 비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쓰인 ‘분수分水’라는 말은 물을 가른다는 뜻이다.

즉, 분수도와 분수자는 물의 압력을 이겨내기에 용이하게끔 유선형의 형태를 가미하여 제작한 무기들이다.

분수도는 도의 형태이며, 분수자는 찌르기에 매우 용이한 검의 형태다.

그 외에는 작살들도 여러 개 보였고, 무기는 아니지만 낚싯대를 비롯한 낚시용품들도 보였다.

무기 창고에서 필요한 걸 챙겨들고 선실로 돌아왔다.

단목강과 함께 쓰는 선실이다.

선실은 깔끔하나 천장은 허리를 숙이고 다녀야 할 정도로 낮고 면적 또한 좁다.

그러나 선실이 따로 있다는 게 어딘가.

쉬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다.

내가 들고 온 것들을 확인한 단목강이 말했다.

“하나는 분수자고 하나는 작살 같은데······.”

“하하, 그렇소.”

“그것들을 어디에 쓰려고 그러시오?”

“그래도 이곳이 장강인데, 유비무환 아니겠소?”

“말이야 맞는 말씀인데, 그것들은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쓰는 것들이잖소? 물속으로 접근하는 수적들을 물속에서 직접 상대하겠다는 뜻이 아니면······.”

잠시 말을 멈춘 단목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곧바로 물었다.

“송 공자, 수중전도 잘 하시오?”

내 인생에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흑풍대 훈련생 시절을 꼽을 것이다.

흑풍대원은 모든 전투 상황에 만능이 되게끔 훈련받는다.

당연하게도 훈련은 미치도록 힘들었다. 뱀을 먹었던 것도 그 시절의 일이다.

한계 상황 적응 훈련, 혹한기 설원 훈련, 혹서기 훈련, 독공 대비 훈련, 사막 훈련 등등, 별의별 개 같은 훈련이라는 훈련은 다 받아야 했다.

수중전 훈련 또한 개 같기로는 최상위에 꼽히는 훈련이었다.

숨을 참는 와중에도 할 건 다 해야 하니, 그게 진짜 미칠 노릇이었다.

“하하, 잘 못하오. 그냥 혹시 모를 상황에서는 사용하게 될 수도 있으니, 이 기회에 미리 손에 익게 만들 목적으로 가져온 것이오.”

적당히 둘러대며 그렇게 말하자 단목강이 대꾸했다.

“와아! 송 공자는 역시 남다르시오. 그렇듯 미리미리 대비해놓는 자세가 되어 있으니 혹시 모를 전투가 벌어져도 남들보다 훨씬 잘 싸우는 거였구려.”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다.

“하하,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미리 약간의 준비 정도는 해 놔야 스스로 안심이 돼서 말이오. 이래 놓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 혼자 피곤한 짓을 한 것밖에 더 되겠소?”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했으면 저 사람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하고 말았을 것이오. 한데 송 공자가 그 말을 하니 나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단목강이 그렇게 말하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럴 게 아니라 나도 가서 그것들을 챙겨와야겠소. 작살은 그냥 대비 용도로만 놔둔다 해도, 분수자 정도는 미리 휘두르며 손에 익혀두고 싶소.”

단목강이 선실을 비운 후 나는 허리춤의 은룡삭을 풀었다.

은룡삭은 기본적으로 미세한 여러 가닥이 꼬여서 하나의 긴 줄을 이룬다. 그 하나의 긴 줄을 반으로 접어서 꼬아 놓은 형태가 바로, 처음에 내가 발견한 형태다.

작살을 고를 때부터 이미 줄의 길이를 고려한 채로 골랐다.

반으로 접혀서 꼬여 있는 은룡삭을 풀면 이 작살의 줄과 길이가 얼추 맞는다.

이후에도 나는 서두르지 않은 채, 단목강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작살의 줄을 은룡삭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작업이 끝난 후에는 혼자서 적당히 작살을 사용해 보기도 했다.

장강 위에서의 첫날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이틀째의 밤도 무사히 지나갈 것 같았는데, 해시정(오후10시) 쯤에 선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제갈 교관님! 나와 보십시오!”

다급함이 깃든 선원의 목소리였다.

제갈수광이 쓰는 선실은 우리의 바로 옆 선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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