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78
북부지맹은 산동 남부의 등주에 위치해 있다.
그쪽에서도 무림맹의 본맹인 무창까지 수로 위주로 이용할 수가 있다.
산동 아래의 강소 지역은 수로가 발달해 있으니, 그쪽 수로를 타고 장강으로 이동하여 장강에서 무창으로 가는 경로다.
살짝 돌아가는 길이긴 해도 편하게 가는 방식이다.
배가 접근하는 와중에 제갈수광이 활을 쏘기 시작했다.
북부지맹 사람들을 엄호하기 위해서였다.
찌이익-
제갈수광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시위를 당기고 있다.
고수든 대가든 자세만으로도 딱 드러나는 안정감과 기세 같은 게 있는데, 지금의 제갈수광이 딱 그렇다.
이것도 잘 봐 두자.
한심한 중년이 멋있는 중년으로 변하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니까.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멋진 모습이니까.
동검대의 무인들 중 두 명과 인솔 교관 중 한 명도 함께 화살을 날리는 중이다. 그들 또한 나름 궁술에 조예가 있는 모습이었는데, 역시나 제갈수광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퉁! 피윳-
시위에서 화살이 떠났는데, 제갈수광은 그 화살이 목표에 적중했는지를 따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화살을 날리자마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전장의 전체적인 상황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손은 재빨리 다른 화살을 집어 들어 시위에 메기고 있는데, 그 동작이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화살들은 어차피 자신이 노린 곳으로 정확히 날아갔을 테니 결과를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보쇼! 이건 너무 멋진 모습이잖소!
제갈수광이 날린 화살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틈틈이 내가 확인하는 중이다.
그의 화살은 수적으로 보이는 복면인들의 몸통에 박히기도 했고, 여객선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북부지맹 사람들을 엄호하기도 했다.
엄호하기 위해 날린 화살이라도 수준이 다르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위치로 화살을 날리니, 엄호를 받는 입장이 반대로 훨씬 유리해지곤 했다. 그래서 북부지맹 사람들이 오히려 빈틈을 포착하여 복면인들을 쓰러트리기도 했다.
여객선의 불이 붙지 않은 부분으로 우리의 뱃머리 부분을 가깝게 댔다.
여객선에 있던 북부지맹 사람들은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우리가 다가가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며 적절히 움직여줬다.
배끼리 근접한 상태에서 동검대의 무인들이 긴 나무판을 놓아 양쪽 배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었다.
나무판이 놓이자마자 동검대의 무인들이 빠르게 여객선 쪽으로 이동했다.
북부지맹 사람들 중에도 부상자들이 있고, 여객선의 일반 승객들 중에도 생존자들이 있다. 그들이 이쪽 배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여객선 쪽에서부터 보호해야 한다.
안전하게 구조만 한 후에 배를 타고 떠나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구조하는 동안 수적들의 저 많은 배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배로는 수적들의 쾌속선을 따돌리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장강 수로채의 수적들은 배를 모는 솜씨 또한 매우 뛰어나다. 가뜩이나 그들이 활동하는 영역 안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이 배를 본진삼아 적들을 궤멸시켜야만 이 전투도 끝나는 셈이다.
동검대의 무인들이 여객선 쪽으로 건너갔음에도 그쪽의 상황은 매우 불리했다.
적측 복면인들 다수가 그쪽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기로 그쪽으로 모여든 다수의 복면인들 중에서 두 명 정도가 절정이었다.
둘 다 내가 상대해봤던 십대들의 기척이다. 그들이라면 공력을 활성화시키는 약물을 복용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여객선 쪽의 상황을 확인한 제갈수광이 활을 내려놓고 쌍검을 빼들더니 말했다.
“장 교관이 잠시 이쪽의 지휘를 맡아주시오.”
“예.”
대답한 장호산은 우리의 인솔 교관들 중에서 제갈수광에 이어 서열이 두 번째다.
제갈수광이 이번에는 관도들에게 말했다.
“곧 이쪽도 위험해질 거다. 차분히 지켜보는 건 좋으나 만반의 대비를 한 채로 지켜보도록. 알겠나?”
“예!”
“일단은 종금무와 단목강이 저쪽으로 가서 나를 돕는다. 송유겸도 함께 가서 암기로 원거리 지원을 한다.”
제갈수광이 말을 마치자마자 나무판을 경쾌하게 밟으며 여객선 쪽으로 향했다.
이어서 종금무와 단목강이 나무판을 건넜고, 나도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나는 여객선으로 건너가기 전부터 소비도를 양손에 각각 세 자루씩, 총 여섯 자루를 빼든 상태였다.
건너가자마자 살짝 도약하여 적들이 모여 있는 부분을 향해 여섯 자루의 소비도를 한꺼번에 털어냈다.
두 명은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고, 세 명은 신체의 이곳저곳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 한 자루는 막혔다.
내가 처음부터 도약하여 여러 자루의 소비도들을 날린 이유는 아군의 기세를 북돋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인근의 상황을 살피기 위함이기도 했다.
보아하니 이쪽 무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다른 무리가 있었다.
그쪽에서도 승객들을 보호하며 이쪽으로 오려는 모양인데, 복면인들의 가세로 인해 고립되며 곤경에 처해 있었다.
고립되어 있음에도 그쪽이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건 두 사람 덕분이다.
양손에 철수투를 착용한 채 권법을 펼치고 있는 청년과 창술을 펼치고 있는 묘령의 여인.
둘 다 실력이 상당했다.
틈틈이 확인해 보니 두 사람은 호흡도 좋아 보였다.
권법을 펼치고 있는 청년이 근접해서 적을 상대하면, 창술을 펼치는 여인이 그 뒤에서 적절한 지원을 하고 있다.
여인은 그 와중에도 창이라는 장병을 잘 활용하여 주변에 있는 승객들을 보호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고립되어 있기에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임은 변함이 없다.
나는 강탄술(손가락으로 쇠구슬을 튕겨내는 수법)을 이용하여 이쪽의 아군들을 지원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고립되어 있는 쪽을 주시했다.
내가 고립되어 있는 이들을 곧바로 지원하러 가지 않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그들에게 도달하기까지 중간에 적들이 많기 때문이며, 제갈수광도 이미 그쪽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갈수광 또한 당장에라도 그쪽을 지원하러 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재 두 명의 절정고수를 상대하는 중이라 쉽게 몸을 뺄 수가 없는 입장이다.
언제든 제갈수광과 호흡을 맞출 준비를 하며 아군을 지원하고 있던 중, 쌍검을 맹렬하게 휘두르던 제갈수광이 한 차례 횡으로 빙글 회전하는 게 보였다.
그 찰나에 제갈수광과 시선이 마주쳤다.
시선이 잠시 스친 것만으로도 제갈수광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횡으로 회전하는 중인 제갈수광의 복부 한 가운데를 향해 즉시 쇠구슬을 튕겨냈다.
제갈수광이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비틀었다.
내가 튕겨낸 쇠구슬이 그의 곁을 스쳐 우측의 절정고수에게 향했다.
그 즈음 나는 이미 연속동작으로 제갈수광의 허리춤을 향해 빠르게 소비도를 날린 상태였다.
애초에 우리가 노린 건 좌측의 절정고수였다.
티잉-!
우측에 있던 절정고수가 검으로 내 쇠구슬을 튕겨낸 찰나, 제갈수광이 허공으로 살짝 뛰어 오르며 좌측 절정고수의 상체를 향해 두 가닥 검기를 쏘아냈다.
슈슉-
좌측에 있던 절정고수의 시선이 완전히 그 검기에만 쏠린 사이, 내 소비도가 제갈수광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했다.
카강!
좌측 절정고수가 두 가닥 검기를 막아낸 순간, 내 소비도가 그의 복부 측면에 박혔다.
푹!
고수는 고수라, 마지막 순간에 몸을 비틀었기에 측면에 박힌 것이다. 그래서 확실한 마무리가 되지 못했다.
제갈수광이 하강하며 좌측 절정고수의 상체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우측 절정고수가 도우려 했으나 제갈수광의 무기는 쌍검이다. 제갈수광이 우수에 쥔 검으로 우측 절정고수의 검을 막아냈다.
푹! 캉!
좌측의 절정고수가 마무리되자마자, 동검대의 선임인 국충곤이 우측에 있던 절정고수를 맡았다.
자유로워진 제갈수광이 맹렬하게 쌍검을 휘두르며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고, 나도 재빨리 그의 뒤로 붙었다.
제갈수광의 쌍검술은 현란하면서도 위력적이었다.
덕분에 그의 뒤에 붙어서 적절하게 강탄술을 쓰는 것만으로도 적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고립된 이들 쪽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쯤, 권법을 펼치고 있는 청년이 세 방향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게 보였다.
뒤쪽의 여인은 마침 승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창을 쭉 뻗은 상태였다.
아직은 거리가 있었기에 제갈수광이 직접 도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나는 양손에 소비도 한 자루씩을 꺼내어 쥐며, 곧바로 제갈수광을 넘어 전방으로 높게 도약해 올랐다. 그 직후 교차시켰던 양팔을 강하게 털어냈다.
슈슉-
두 자루의 소비도가 청년을 공격하던 적들 중 두 명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어차피 이 정도 도움만으로도 청년을 엄호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문제는 허공에 떠오른 내 아래에 깔려 있는 적들이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나는 가죽 주머니에 들어 있는 쇠구슬들을 한 움큼 쥐었다. 그 후, 내 발밑을 향해 쇠구슬들을 강하게 뿌렸다.
허공에서 쇠구슬의 비가 내리는 형세라, 그 영역 안에 있는 적들은 모두 그 쇠구슬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에 제갈수광의 쌍검이 적들을 향해 화려한 검광을 뿌렸다.
“크악!”
“으악!”
제갈수광 정도 되는 절정고수 앞에서 다른 곳에 시선이 팔렸던 결과는 참담했다.
여러 명이 적들이 제갈수광이 뿌려낸 검기에 당해서 순식간에 쓰러졌다.
내가 혼자였다면 결코 이렇듯 섣불리 높게 도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갈수광을 믿기에 이렇게 한 것이다.
나는 적들이 쓰러진 곳으로 안전하게 하강하는 와중에도 창술을 쓰는 여인 쪽을 향해 강탄술을 펼쳤다.
창을 깊게 찔렀다가 회수하는 와중에 그녀가 다른 방향에서 공격받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팅!
그녀를 공격하던 복면인이 내 쇠구슬을 쳐내자마자, 그녀가 회수하던 창의 방향을 교묘하게 꺾으며 복면인을 공격해갔다.
한데 그 수법이 매우 유려하고 깔끔했다. 그리고 빨랐다.
푹!
그녀의 창이 복면인의 장딴지를 찔렀다.
훌륭한 창술이다.
잠깐의 시간을 벌어준 것뿐인데도, 그걸 이용하여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창을 회수하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멀리에서 봤을 때도 미인이라는 걸 대충 짐작했는데, 정면에서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인이다.
우리는 곧 고립된 이들 쪽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두 분이 아니었으면······.”
권법을 펼치던 청년의 말이었다.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지금 인사하고 있을 시간이 없네. 어서 승객들을 저쪽 배로 이동시켜야 하네.”
그러자 창을 휘두르던 여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뒤편에 아직 승객들 몇 명과 저희 일행들 두세 명이 더 있어요.”
제갈수광의 눈매가 좁아졌다.
이쪽의 일반인들을 보호하며 이동하려면 우리 네 명만으로도 전력이 넉넉한 게 아니다. 한데 이 상황에서 누군가를 구하러 가려면 또 인원을 나눠야 한다.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세 사람이 빠르게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동검대의 선임인 국충곤이 단목강과 강하령을 대동한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강탄술을 이용하여 그들을 지원했다.
도착한 국충곤이 말했다.
“이쪽에 지원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제갈수광이 국충곤을 향해 대꾸한 후 강하령에게 말했다.
“조심해야 한다.”
“예, 교관님.”
제갈수광이 국충곤에게 말했다.
“국 무사님이 이들과 함께 이쪽의 승객들을 대피시켜 주십시오. 아직 생존자가 더 있다고 하니, 저는 유겸이와 함께 그쪽에 다녀오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국충곤이 대꾸하자마자 제갈수광이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저도 두 분과 함께 갈게요.”
창을 휘두르던 미녀의 말이었다.
그녀가 곧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배의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이 한 명쯤은 함께 가는 게 두 분에게도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갈수광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실전 실력을 이미 확인했기에 허락한 것이다.
제갈수광이 앞서서 달렸고 나와 창술 미녀가 나란히 그 뒤를 따라 달렸다.
달리던 와중에 여인이 제갈수광을 향해 말했다.
“아까 다른 소저께서 교관님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또래 분들이 많던데 혹시······.”
“그래. 우리는 동부지맹 잠룡관에서 왔다.”
“아, 동부지맹에서······.”
“그쪽은 북부지맹 잠룡관인가?”
“그렇습니다.”
“너, 이름은?”
제갈수광이 묻자 미녀가 대꾸했다.
“북부지맹의 잠룡관도인 악미조라 합니다.”
역시나 너, 산동악가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