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81
다시금 선미 쪽으로 올라선 우리 세 사람은 최대한 빠르게 호흡을 골랐다.
이렇듯 조금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전투를 치르다 보면 누구나 체력과 심력과 공력을 적잖이 소모할 수밖에 없다.
한데 수중전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사람을 지치게 한다.
가뜩이나 나는 처음부터 수중전을 많이 치르기도 했다.
이쯤 되니 아무리 나라도 몸이 무겁다는 걸 느낀다.
보아하니 제갈수광과 단목강 또한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나만큼이나 부지런히 움직이며 선상과 수중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싸운 두 사람이다. 내가 이 정도로 몸이 무겁다면 저 두 사람도 상당히 지쳤을 것이다.
호흡을 고르면서 보니 우리 배 위에서의 전투도 서서히 마무리 되어가는 모양새였다.
어찌됐든 두 곳의 지맹에서 선발된 최고의 관도들이 모여 있다. 관도들뿐만 아니라 인솔 교관들 또한 두 잠룡관에서 나름 엄선된 교관들이다. 사망자가 있다고 해도 두 지맹의 정예 무인들인 북검대와 동검대의 무인들도 동행중이다.
전력이 이러하기에 상황도 어떻게든 정리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세 사람은 호흡을 고르자마자 아직까지 전투가 끝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서 아군을 지원했다.
그리고 우리 배 위에서의 전투가 완전히 끝났다.
제갈수광이 북부지맹과 동부지맹의 모든 이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사투를 벌이느라 다들 지쳤다는 걸 알고 있소.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안전해진 게 아니오. 이곳에서의 전투가 끝났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수적들이 따라오며 화시 등을 날릴 가능성이 높소.”
제갈수광이 바로 말을 이었다.
“빨리 적절한 곳에 배를 댄 후 육지로 올라가야 하오. 승객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우리가 안전해질 때까지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합시다. 모두가 적절히 간격을 벌린 채로 날아오는 화시 등에 대비하고, 혹여 선상에 불이 붙거든 즉시 소화에 신경 써 주시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배가 빠르게 나아가는 게 아니기에 수적들이 배의 옆면을 타고 올라올 수도 있소. 그러니 난간 쪽에 붙을 일이 있으면 조심하시오.”
이후에 여러 교관들의 지시에 따라 모두가 간격을 벌린 채로 배의 빈 공간에 넓게 퍼져서 섰다.
관도들 사이에 되도록 교관들과 정예 무인들이 한 명씩 포진하는 형태였다.
선원 두 명이 나와서 한 명은 방향타를 잡고, 한 명은 뱃길을 살폈다.
제갈수광은 단목강으로 하여금 그들의 옆을 지키게 했다.
눈먼 화살이 날아와서 선원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와, 송유겸.”
활과 화살을 챙긴 제갈수광이 그렇게 말하더니 선실 위쪽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나도 그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이곳저곳에서 화시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수적들의 배가 일정한 간격을 벌린 채, 우리 배를 포위한 형태로 따르며 화살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시뿐만 아니라 일반 화살들도 섞여 있었다.
밤중이니 사람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화시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화살들을 섞어 날리면, 그게 눈먼 화살이 되어 더 치명적일 수가 있다.
이래서 제갈수광이 단목강 정도 되는 확실한 실력자로 하여금 갑판에 있는 선원들을 지키게 한 것이다.
제갈수광은 주변으로 날아드는 화시들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활과 화살을 들고는 화시가 날아오는 방향들만 조용히 주시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우리 주변으로 날아오는 화시들은 모두 내가 쳐내야 했다.
애초에 제갈수광이 이곳으로 나를 데리고 올라온 이유도 이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였음을 안다.
이윽고 제갈수광이 자세를 낮추더니 한 방향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나는 화시와 화살들을 부지런히 쳐내는 와중에도 제갈수광의 모습을 주시했다.
아까 우리 배가 여객선에 가까워질 때도 저 모습을 봤다.
의심할 나위 없는 대가의 모습이다.
다시 보는 건데도 참 멋지다.
차이가 있다면 아까보다 시위를 더 많이 당기고 있어, 활대가 부러질 듯 휘어진 상태라는 점이다.
그 상태에서 제갈수광의 화살에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호흡하며 화살에 기운을 담는 중인데, 내 기준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강맹한 기운이 맺혔다고 생각된 시점임에도 기운이 더 모여들고 있다.
부드럽게 호흡하던 제갈수광이 일순간 호흡을 멈췄다.
투웅!
활시위가 세차게 몸을 떨었다.
그 직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화살이 튕겨나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내 안력으로도 그 속도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그 과정 전체를 옆에서 보고 있었기에 그나마도 화살의 궤적을 겨우 쫓을 수 있었지, 보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 궤적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콰아아앙!
제갈수광의 화살이 날아간 방향에서 뭔가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로 강력한 소리라면 뭔가가 제대로, 완전히 박살났을 것 같다.
뭐가 박살났겠는가.
수적들이 타고 있는 쾌속선일 수밖에 없다.
물론 배가 완파되거나 전복되었을 리는 없다.
수적들의 쾌속선이 일반 범선에 비해 크기가 작긴 하나, 화살 한 대로 그렇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렇다 해도 분명히 배의 어느 한 부분 정도는 크게 박살났을 것이다.
저토록 강력한 화살을 날리는데 제갈수광이 아무 데나 노렸을 리는 없다.
분명히 선체가 수면에 닿은 부분쯤을 노려, 배에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 정도로는 만들었을 것이다.
수적들이 응급조치를 해도 감당이 안 될 수준으로.
아니나 다를까 그 방향에서는 더 이상 화시나 화살들이 날아오지 않고 있다.
어둠속 먼 곳이라 현재의 내공 경지로는 안력을 돋워도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게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거나 진심으로 놀랍다.
내가 몸담았을 시기의 천마신교에는 이 정도의 궁술 고수가 없었다. 당장 궁마弓魔라는 칭호를 듣는 장로의 자리도 장기간 공석이었다.
즉, 나는 이 정도 되는 궁술 고수의 솜씨를 보는 게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이다.
일전에 태화지부에서 우리를 향해 무음시를 날렸던 궁술 고수도 지금의 제갈수광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문득 태화지부에 있을 때 남궁찬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분이 호북 제일 명궁수에, 동부지맹 삼대 명궁수 중 한 명이야. 알 만한 사람들만 알지.」
물론 당시에도 나는 그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었다.
한데 이건 사실 확인의 영역을 넘어, 경외심마저 생기는 영역이 아닌가.
제갈수광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다.
난생 처음으로 궁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제갈수광에게서 화살 한 발, 한 발이 날아가는 간격은 제법 길었다.
그러나 그의 화살들이 날아갈 때마다 결과만큼은 확실했다.
화살이 날아간 방향에서는 어김없이 뭔가가 크게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고, 이후부터 그 방향에서는 더 이상 적의 화시 등이 전혀 날아오지 않았다.
제갈수광이 마지막 한 발의 화살을 날려 보내자, 그쪽에서도 어김없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에는 더 이상 그 어느 방향에서도 적의 화살이 날아오지 않았다.
“후우우우우······.”
제갈수광이 긴 한숨을 내쉬더니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는 제갈수광의 얼굴색이 창백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그가 한 순간 비틀거렸다.
“교, 교관님······!”
얼른 다가가서 그를 부축했다.
“소란 떨지 마. 약간 어지러울 뿐이니까.”
이런 몸 상태로도 저런 소리라니.
제갈수광도 사람이다.
모든 체력과 심력과 공력을 다 쥐어짜내서 싸웠고, 마지막에는 무리하면서까지 강력한 화살을 날렸던 거다. 그러니 상태가 좋지 않을 수밖에.
제갈수광의 약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데, 이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려온다.
이런 감정, 느껴본 적이 있다.
매병에 걸려 급속도로 신체가 약해지셨던 사부님을 볼 때마다 이런 감정을 느꼈었다.
그랬구나.
나도 모르는 새, 내 안에서는 이 사람을 사부님과 비슷한 종류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그래서일까?
다시는 이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잠시 앉아 있던 제갈수광이 이윽고 몸을 일으키더니 갑판 쪽으로 내려갔다.
나도 활과 화살을 챙겨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제갈수광은 무릎이 살짝 풀렸음에도 집중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모습이었다.
그의 상태를 알기에 내 눈에는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나마 다른 이들에게는 멀쩡해 보이는 모양이다.
제갈수광이 선원들을 향해 말했다.
“부상자들도 돌봐야 하고 모두가 휴식도 취해야 하오. 안전한 지점으로 가야 하는데,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건 위험할 수 있소. 우리가 지나쳐 온 하류에서는 해구 지역쯤이 적당할 것 같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시오?”
제갈수광은 호북의 제갈세가 출신이니 호북의 지리에도 밝은 모양이다.
“적당할 것 같습니다.”
선원들이 적극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수광이 그들에게 말했다.
“돛을 펼치고 최대한 빠르게 갑시다.”
“예!”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할 때쯤, 제갈수광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무림맹에 속한 무인들이며 여전히 승객들을 보호하고 있는 상황이오. 휴식을 취하면서 가되, 배가 정박할 때까지 경계심만큼은 내려놓지 맙시다.”
“예!”
모두가 일제히 대답했다.
돛을 펼친 범선이 물살을 타고 하류 쪽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해구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인근의 객잔은 규모가 큰 객잔이 없어, 인접한 세 곳의 객잔에 나뉘어 투숙하기로 했다.
동검대의 무인 두 명은 이 사건을 보고하기 위해 인근의 관아에 갔다. 승객들과 선원들은 일반인들이니, 그들의 신병을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오래지 않아 관아에서 병사들이 와서 승객들과 일반인들을 데려갔다.
이후에는 모두가 각자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나는 단목강과 같은 방이었다.
우리는 씻고 와서 누운 후, 아까의 전투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점심 무렵이었다.
단목강은 많이 피곤했는지 여전히 자는 중이다.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방을 벗어났다.
나와 보니 대낮인데도 객잔은 조용했다.
대부분이 아직도 자고 있는 모양이다.
다들 지난밤의 전투로 인한 체력 소모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객잔의 후원으로 나와서 나무 그늘 아래의 의자에 편하게 앉았다.
가만히 앉아서 지난밤의 전투를 복기했다.
생각해 보니 이번 전투는 내가 송유겸의 몸으로 치렀던 전투 중에 처음으로 거의 다치지 않은 전투다.
산장에서도, 태화지부에서도 나는 크게 다쳤었으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중에도 송유하 생각이 난다.
내가 크게 다쳤던 것 때문에 많이 울었으니까.
이번에는 안 울 테니, 그 또한 다행이다.
한동안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이어가고 있자니, 누군가가 통로를 통해 후원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 관도였는데, 북부지맹의 관도다.
지난밤의 전투 당시에 잠시 마주쳤던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에 악미조와 함께 싸우고 있던, 철수투를 낀 채로 빼어난 권법을 펼치던 청년이었다.
청년이 멀리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더니 곧장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난밤에도 봤지만 그는 기골이 장대하며, 인상도 시원시원해 보이는 사내다.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대충은 예상하고 있다.
내 근처로 다가온 사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시오.”
“안녕하시오.”
나도 의자에서 일어서며 마주 인사하자, 그가 갑자기 나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했다.
“지난밤에는 정말 감사했소. 공자에게 큰 은혜를 입었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럽다.
“아이고, 이러지 마시오.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러자 청년이 예를 풀더니 대꾸했다.
“내가 위기에 처한 순간에 비도술로 도와주셨잖소. 솔직히 그 순간에 나도 내 상황을 잘 알고 있었소. 적어도 어디 한 군데는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소. 공자가 그때 비도를 날려주지 않았으면 무조건 그렇게 되었을 테고.”
청년 또한 충분한 실력자라, 이 상황에서 내가 얼버무린다 해도 어차피 통하지 않을 것이다. 보아하니 청년도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모양이고.
내가 민망한 듯 미소만 지어 보이자, 청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황보충이라고 하오.”
강호인에게는 딱히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이름이 나왔다.
내가 추측하고 있었던 그 이름이기도 했다.
황보충은 현 황보세가의 소가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