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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83화 (83/416)

내 안에 마교있다 83

우리의 경로는 호북 동호의 동부와 북부를 돌아 무창으로 향하는 육로였다.

대규모의 일행 모두가 수준급의 고수들이기는 하나, 부상자들이 있기에 신법을 펼치는 속도 자체는 빠르지 않은 편이었다.

때문에 본맹의 정예 무인들이 하루 만에 달려왔던 것과 달리, 가는 길의 일정은 넉넉하게 일박이일로 잡은 모양이다.

경로 중간의 악주현 쯤에서 일박을 한 후, 다음 날 아침부터 우리 일행은 또다시 신법을 펼치며 이동했다.

무창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멀리로 넓은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동호東湖다.

포양호에 비하면 작긴 하나, 동호 또한 충분히 큰 호수다.

게다가 호수의 경치만 놓고 보면 그 유명한 항주의 서호 다음으로 수려하다고 소문난 곳이 바로 무창의 동호이기도 하다.

서무욱 시절에도 동호에 와 본 적은 없었다.

동호가 있는 무창이 무림맹의 안마당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습을 감추고 오더라도 마인들에게는 위험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백도인들 천지니, 자칫 방심하여 마기라도 들키는 날에는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무림맹의 본맹이 즉시 개입할 테니까.

경치 한 번 구경하겠다고 목숨을 걸 수는 없잖은가.

동호의 경치가 보일 때마다, 신법을 펼치는 와중에도 계속 그 경치를 감상했다.

역시나 듣던 대로 빼어난 경치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경로가 호반을 끼고 이어졌기에 경치를 감상하기에도 매우 좋았다.

점심 식사 후에도 꾸준히 달리다 보니 호반 멀리에 솟아 있는 넓은 언덕이 보였다.

튼튼하고 긴 담장이 언덕을 쭉 두르고 있다. 그 담장 너머로 수많은 전각들이 솟아 있었다. 그 중에는 웅장해 보이는 전각들도 여러 채 보였다.

무림맹이다.

지금은 백도인인데도, 내가 무림맹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약간이나마 긴장도 된다.

무림맹에 대한 전생의 심상이 워낙 깊게 각인되어 있는 탓이다.

우리 일행은 곧 무림맹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정문 앞을 수십 명의 무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정문의 위에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다섯 글자가 웅혼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백도무림맹>

저 현판을 보며 무림맹의 정문 앞에 서있자니 온갖 미묘한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다.

천마의 제자로서 천마신교의 심장부에서 생활하던 내가, 백도의 심장부라는 무림맹의 본맹에 오게 된 상황이니까.

이런저런 수속을 마친 후에야 무림맹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석조 바닥으로 이뤄진 드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천 명이 충분히 들어설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다.

그 공간 너머로 넓고 곧게 뻗은 중앙의 대로가 멀리까지 이어지고 있었는데, 대로 또한 석조 바닥이었다.

대로의 양 옆에는 전각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전각들의 뒤쪽에도 여러 건물들이 보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잘 꾸며진 화단, 산책로, 정원, 휴식 공간 등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의 조경이 매우 빼어나서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천마신교의 본교도 넓어서 그 안에도 수많은 전각과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천마신교의 건축 양식은 철저하게 실용성 위주다. 조경 또한 건물들만 늘어서 있으면 너무 삭막해 보일까봐 최소한으로만 조성한 느낌이다.

교에서 지위가 높은 인사들이 기거하는 거주 구역은 그나마도 시설이나 조경이 괜찮은 편이며, 장로들이 쓰는 독립된 구역들은 누가 봐도 괜찮은 수준이다.

조경을 보고 감탄이 나올만한 곳은 천마전을 비롯해서 몇 곳 되지 않는다.

한데 무림맹은 이미 정문의 입구 쪽부터 매우 깔끔하고 멋지게 되어 있다. 입구 쪽이면 무림맹에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일 텐데도 이렇듯 훌륭한 수준인 것이다.

역시나 백도 놈들, 좋은 데서 아주 잘 지내고 있었구나.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큼은 특히나 잘 해놓는단 말이지.

드넓은 공터를 지나 휴식 공간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전각들이 늘어선 중앙 대로 쪽에서 사람들이 오더니 북부지맹의 인원들을 데려갔다.

아마도 본맹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는 북부지맹 쪽의 관련인사들인 듯했다.

지난 이삼 일간 나름의 친분이 생긴 북부지맹의 관도들이 내게 눈인사를 남기거나 전음으로 인사를 남기고는 멀어져갔다.

황보충, 남군호, 악미조, 팽난영, 모용리 등이었다.

조금 더 기다리고 있자니 사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몇 사람을 이끌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오오! 우리 동부지맹의 인원들이로군.”

제갈수광이 곧바로 중년인의 앞으로 나서며 포권했다.

“동련각주님을 뵙습니다. 저는 이번 인솔 책임자인······.”

“제갈 교관이겠지.”

“아······, 예.”

중년인이 제갈수광의 뒤에 있는 우리 모두를 보며 말했다.

“무림맹에 온 걸 환영하네. 나는 이곳 본맹의 동련각주인 주승섭이라는 사람일세.”

주승섭이라는 중년인이 그렇게 말하자 제갈수광이 우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잘 모르는 관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동련각은 이곳 본맹에서 우리 동부지맹에 관련된 일을 총괄하는 곳이다. 그곳의 책임자가 바로 주 대협이시며, 우리와 함께 온 주경명의 숙부이시기도 하다. 모두 인사드리도록.”

그 말에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주승섭이라는 인물이 미소를 띤 채 우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주승섭이라는 이름은 낯익은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주경명의 숙부라면 당연히 합비주가 출신일 것이다. 참고로 주경명의 부친이 합비주가의 가주다.

주승섭이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오면서 큰일을 겪었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네. 부상자들의 상태는 어떤가? 다행히 중상자는 없다고 보고받긴 했네만.”

“관도들은 부상을 입었다 해도 경상 정도이고, 교관들이나 동검대원들의 경우에는 그보다 조금 더 다친 수준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다행히 중상자는 없습니다.”

“그래, 그래. 천만다행일세. 어쨌거나 일단 가세. 이곳에 있는 동안 머물 곳으로 안내해 주겠네.”

모두가 주승섭의 뒤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석조 바닥이 깔려 있는 중앙 대로를 한참이나 걸었다.

예상은 했지만 무림맹은 역시나 엄청나게 넓었다.

대로의 초입부터 중간 부근까지는 전각들이 양옆으로 알차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중간 이후부터는 점점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중간 이후부터는 공간을 더 넓게 쓰는 전각들이며, 그만큼 중요도 또한 더 높아지는 전각들인 셈이다.

걷다보니 멀리 보이는 중앙 대로의 끝 부분을 성벽과 성문이 막고 있었는데, 들어보니 그곳부터가 본맹의 내성이라고 한다.

내성으로 진입하기 전, 중앙 대로의 우측 마지막 공간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적당한 높이의 담장이 둘러진 독립된 공간이었고, 대문 앞의 현판에는 <동련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곳부터 내성문의 앞까지는 석조 바닥의 넓은 공터다.

참고로 중앙 대로의 좌측 마지막 공간이 북련각이다. 북부지맹의 관도들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우리와는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배치다.

중앙 대로의 좌측 끝에서 두 번째 공간이 서련각이며, 우측 끝에서 두 번째 공간은 남련각이다. 즉, 남련각이 우리의 옆이다.

대문으로 들어서자 넓은 마당의 끝에 큰 전각이 보였다. 동련각의 본관이다.

마당의 양 옆에도 적당한 크기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안내에 따라 그 중 한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우리가 본맹에 있는 동안 머물 숙소 건물이었다.

일 층은 공용 공간으로, 슬쩍 둘러봤는데도 시설의 상태가 매우 좋았다.

이 층이 숙소였다.

모두가 독실을 배정받았다.

숙소에 들어와서 보니 독실임에도 공간이 충분히 널찍했고, 시설들의 상태 또한 매우 깔끔했다.

도착 당일이라 휴식과 정비 시간이 주어졌다.

짐 정리를 빠르게 마친 후, 단목강과 함께 동천각 안의 다른 건물과 시설들도 둘러보고, 대문을 나와서 산책하며 외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단목강은 본맹에 몇 번은 와봤던 모양이라, 이곳의 지리에도 나름 익숙해 보였다.

저녁 식사 후에는 방 안에서 운기조식을 취했다.

해시초(밤9시)가 지난 듯하여 오늘은 일찍 잘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내 방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갈수광이거나 단목강이겠거니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완전히 의외의 인물이 서있었다.

내가 절로 눈을 부릅떴을 정도로 의외의 인물이다.

나를 찾아 온 손님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입술에 검지를 대고 있다.

큰 소리를 내지 말라는 뜻이다.

손님을 방 안으로 들인 후, 문을 닫자마자 낮게 외쳤다.

“다, 당주님······!”

“허헛, 오랜만이로구나.”

선우훤이었다.

제일서고에서 만났던, 무림맹의 집법당주인 바로 그 선우훤이다. 유은무, 즉 선우린의 조부이기도 한, 그 선우훤이다.

이곳이 본맹이다 보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어쩌면 그와 마주칠 일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생각 정도는 했었다.

한데 그가 이렇듯 직접, 첫날부터 따로 나를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그는 무림맹의 집법당주인 만큼, 결코 한가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내가 서둘러 예를 취하자마자 선우훤이 말했다.

“네 녀석을 놀라게 해줄 생각이긴 했다. 표정을 보니 성공한 것 같구나. 허허.”

“예, 제대로 성공하셨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라서 참 다행이기도 합니다. 당주님을 처음 뵀던 날에는 놀란 걸 넘어서 간 떨어질 뻔했으니까요.”

“푸허허허!”

선우훤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제일서고에서 마주쳤을 당시, 선우훤이 내게 큰 흥미를 느꼈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잠시 마주쳤던 인연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나를 찾아올 필요는 없다.

결국 산장 사건과 태화지부 사건 때의 내 활약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무림맹의 집법당주인 만큼 그 일에 관해 남들보다 훨씬 소상하게 알고 있을 테니까.

손녀인 유은무한테 뭔가를 들었을 수도 있고.

선우훤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로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이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전에 봤을 때도 네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느꼈었다. 한데 네가 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일 줄은 예상치 못했었구나.”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의 저는 당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변변찮은 실력입니다.”

어디까지 들었는지 모르니 대충 한 번 떠본 건데, 선우훤은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

“아니, 오히려 실제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실력이겠지.”

“하하. 강호의 소문이라는 게 늘 부풀려지기 마련이라고 하더니 역시나 그런 모양이군요. 저 같은 어설픈 수준도 대단한 실력인 것처럼 당주님에게 전해진 모양이니까요.”

“푸허허허! 아이야, 차라리 가서 귀신을 속이거라. 적어도 백도 무림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한해서는, 나보다 귀신을 속이는 편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대부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나 무림맹의 최고위 인사 중 하나인 집법당주라, 그의 앞에서 대충 둘러대는 건 포기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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