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89화 (89/416)

내 안에 마교있다 89

남궁찬이 우리 관도들을 격려하는 동안, 눈치를 살피던 다른 지맹의 교관들과 관도들도 와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두 소녀만 바라보았다.

나를 보던 두 소녀가 잠시 서로를 마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장우혜의 전음이 들려왔다.

[쳇.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벌써 그렇게 알아봐 버리면 재미없잖아요.]

[그 정도로 내 눈을 속일 생각을 다 했어? 꿈도 야무지네?]

[쯧. 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들이란.]

야! 그게 네가 혀를 찰 문제냐?

어쨌거나 참으로 장우혜다운 반응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저런 모습조차도 반갑다.

장우혜의 전음이 다시금 들렸다.

[들었어요. 이번에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하게 되셨다고.]

[아, 그게, 나는 참가할 생각이 없었는데 얼떨결에 그렇게 돼서······.]

[대진표도 확인했어요. 송 오라버니는 시합까지 시간이 좀 있던데, 잠시 따로 좀 봐요. 지객당 숙소 제일관 삼 층 특실 일 호.]

장우혜가 내게 전음을 보내더니 이어서 남궁찬을 향해 모종의 전음을 보냈다.

이후에 그녀가 곧바로 유은무와 함께 대연무장을 벗어났다.

이각 후, 나는 장우혜가 말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와 보니 말이 필요 없는 시설이다.

가구와 장식 하나하나가 고급스럽고 정갈하다.

지객당의 숙소는 본맹에 찾아온 무림맹의 손님들을 위한 공간인데, 이렇듯 손님이 많은 시기에는 귀빈들에게만 제공된다고 들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관은 최고 귀빈들을 위한 공간이며, 특실은 최고 중에서도 최고 귀빈들에게만 제공된다.

즉, 겉으로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스스로 백도십대고수 안에라도 들지 않는 한,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이라 하겠다.

천하제일세가정도 되니 이런 공간을 제공받을 수 있는 거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준 건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미소녀였다. 면사가 달린 모자를 벗고 있는 상태라서 용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미소녀인데, 당연하게도 잠룡오화 급이다.

미소녀는 아까 선우린으로 추정되는 복장을 입고 있었으며, 코에 닿은 향기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유은무의 향기였다.

“유 매······?”

“헤헷, 송 오라버니, 어서 들어와요.”

유은무가 문을 닫으며 내 팔짱을 끼고는 실내로 이끌었다.

야, 야, 야!

다 좋은데 너 지금 팔짱 너무 세게 꼈어!

가슴, 닿고 있다고!

송유겸의 이 몸뚱이가 지금 한창 팔팔할 때라서, 이 정도만으로도 자극이 너무 세단 말이다!

안 돼!

평정을 유지하자, 나의 분신이여.

변태로 낙인찍히는 건 순식간이며, 그 오명은 평생 가는 법이다.

조심할 일이며,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일이다.

동요를 부르자, 미리미리.

대사형이었던 위지광 그 개새끼라도 떠올리자, 필사적으로.

내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만큼, 유은무는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종알종알 여러 안부들을 물었다.

현관을 지나 거실 공간으로 들어서니, 또 한 명의 미소녀가 대기 중이었다.

선우린의 용모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만, 이쪽 또한 용모를 보자마자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는 미소녀였다.

말할 것도 없이 장우혜, 즉 남궁설이다.

전체적으로는 차갑고 고고한 인상이라, 인상만 보면 범접하기 쉽지 않은 느낌이다.

그녀가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저 얼굴로 미소를 보이니, 차갑게 느껴지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더 없는 정감이 느껴진다.

“오셨어요, 송 오라버니.”

“어······.”

지금껏 친하게 지내던 소녀들인데, 이렇듯 그녀들의 본래 용모를 보고 나니 왠지 내가 알던 애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선우린이 팔짱을 풀더니 탁자의 반대편에 있는 남궁설 옆으로 다가갔다. 두 소녀 모두 지금은 본래의 용모를 하고 있으니 본명으로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남궁설 옆에서 선우린이 내게 물었다.

“어때요, 송 오라버니? 우리 예쁘죠?”

“응,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에이, 거짓말.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도 안 떠는 사람이 송 오라버니잖아요.”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야. 소문은 얼핏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정말 예쁘다, 우리 누이들. 와아.”

애초에 예쁘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서 저렇게 물었을 테니, 그녀들이 바라는 대로 예쁘다, 예쁘다 해주자.

뭐, 거짓말도 아니고.

우리는 탁자를 마주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잠룡관에는 어떻게 얘기하고 왔느냐는 질문 따위는 할 필요도 없겠지. 얘들의 배경이라면 그런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까.

“누이들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내가 묻자 선우린이 대꾸했다.

“이래봬도 우린 매년 통합 잠룡대전 때마다 초청받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럴 만은 하다. 그녀들은 무림맹 집법당주의 직계에, 천하제일세가의 직계니까.

남궁설이 말했다.

“근래에는 초청은 받았어도 참석은 안 했었어요. 마침 송 오라버니가 통합 잠룡대전에 가게 되었으니까 우리도 오랜만에 참석하기로 한 거예요. 이곳에서 송 오라버니와 만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설이 말을 이었다.

“송 오라버니는 예비 명단이라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하지 않을 테니, 동부지맹에서처럼 셋이 함께 여기저기 다니면서 비무도 구경하고, 축제도 즐길 생각이었어요. 한데 어제 와서 들어보니 출전하게 됐다고······. 물론 사정도 들었어요.”

이후에도 두 소녀와 함께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녀들이 장강에서의 일에 대해 궁금해 하기에 그 얘기도 해줬고, 누구와 친해졌느냐고 묻기에 그것도 답해줬다.

한동안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밖에서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남궁찬이었다.

“얘기들 많이 나눴어?”

“어서 오세요.”

선우린이 그렇게 말하며 얼른 일어서서 내 옆자리로 왔다.

남궁찬이 남궁설의 옆에 앉더니 말했다.

“아, 여기저기에서 인사를 해오는 바람에 빠져나오느라 힘들었어. 하아, 나는 이상하게 인사치레 하는 게 젤 피곤하더라.”

천하제일세가의 다음 대 가주가 될 사람인데 저래서 괜찮겠나 싶다. 그때가 되면 인사치레가 일상이 될 텐데.

남궁찬도 기본적으로는 인간관계를 늘리고 정치력을 발휘하는 일 따위보다, 수련하는 게 더 좋은 사람인 거다.

서무욱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작년 통합 잠룡대전 때는 안 오셨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오신 걸 보고 다들 놀란 눈치였습니다. 부당주님 덕분에 격려가 많이 됐을 겁니다.”

“유겸아, 내가 사적인 자리에서는 부당주님 말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아, 예. 혀, 형님······.”

남궁찬이 나를 향해 미소를 보이더니 말했다.

“뭐, 얘들이 가고 싶다고 하니까 보호자 역할을 겸해서 온 거야. 네가 예비 명단이라는 게 아쉽긴 했지. 그래도 단체전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네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싶긴 했다. 그런데 어제 와서 들어보니 네가 개인전에 참가하게 됐다지 뭐야? 오길 잘했다 싶었지.”

“하아,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제갈 형님한테서 상황은 대충 들었다. 어쨌거나 기대하고 있을게, 유겸아.”

남궁찬이 눈동자를 빛내며 그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는 거다.

얼버무리듯 남궁찬에게 대꾸했다.

“하하, 기대 같은 걸 하실 일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겨우 삼 년차에 불과하고······.”

“삼 년차가 뭐 어때서? 나는 삼 년차에 준우승했었는데.”

“아하하······. 그건 당시에도 백도 최고의 후기지수로 통했던 형님이시니까 가능했던 거고······.”

“물론 나니까 가능했던 거긴 하지.”

너무 당연하다는 듯 잘난 척을 하는데, 이상하게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남궁찬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고.”

“하하······, 그건 너무 과대평가시고요.”

“아니,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방금 전에도 다른 지맹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 빵빵 치고 온 거고.”

“예? 큰 소리를 빵빵 치셨다뇨?”

“아니, 그게. 하······.”

남궁찬이 생각할수록 열 받고 짜증난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이번 통합 잠룡대전에서는 동부지맹을 무시하면 안 될 거라고 얘기했더니 다른 지맹의 지인들이 다들 피식거리지 뭐야? 그래서 짜증난 김에 우리 쪽 관도가 최소 결승은 간다고 큰소리 좀 쳤지. 말로만 그러지 말고 내기라도 하자기에 자신 있게 돈도 왕창 걸었어. 내가 누굴 믿고 그랬겠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큰소리치실 게 따로 있지······.”

“알 만한 사람들이랑 내기한 거라서 다들 많이 걸었어. 배당이 엄청 높아. 유겸아, 너만 믿는다.”

“아니, 아무리 저라고 해도 성적을 확신해드릴 수는······.”

내가 곤란함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남궁찬이 애걸하듯 내게 말했다.

“반띵! 유겸아, 반띵해줄게! 나 그거 잃으면 돈 없어서 세가에 손 벌려야 돼. 장가도 안 가고 있다고 맨날 구박받는데, 생활비로 손 벌리면 그 조건으로 무조건 선 보러 가게 될 거라고.”

이보쇼! 그건 당신 사정이잖소!

그러게 누가 큰 돈 걸라고 했소?

보니까 남궁설도 한심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자신의 큰 오라비를 바라보고 있다.

남궁찬이 나를 달래듯 말했다.

“너는 최선만 다해주면 돼, 유겸아. 알았지? 봐주고 그러지 말고, 알았지?”

“이왕 참가하게 된 거 열심히 할 생각이긴 했습니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 제가 결과를 장담해드릴 수는······.”

“내 문제만 걸린 게 아니야. 옆에 있던 제갈 형님도 엄청 걸었어. 나야 세가에 손이라도 벌릴 수 있지만, 제갈 형님은 그 돈 없으면 잠룡관에서 숨만 쉬고 살아야 할 걸?”

“그건 잘 됐네요. 이 기회에 술도 안 드시게 될 거고.”

“그렇긴 한데, 제갈 형님은 확신에 찬 눈치더라고. 자기가 말 한 마디만 하면 유겸이 네가 매우 열심히 싸울 수밖에 없을 거라면서. 마침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니 자기가 입만 뻥끗하면 어쩌고저쩌고 하며 중얼거리던데.”

나는 순간적으로 인상을 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아오! 진짜!

도움이 안 되는 인간들이면 진짜 상종을 안 하고 말겠는데, 그럴 수도 없는 인간들이라 답이 없다.

슬슬 일어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다시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제갈수광이라도 온 건가 싶어서 입구 쪽을 보는데,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헉! 저 사람은······!

나는 눈을 부릅뜨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까 개막식 때 문상 사마진이 소개까지 했던 인물 중 한 명이며, 최고 귀빈석인 상단에 앉아 있던 인물이다.

남궁벽.

다름 아닌 남궁세가주다.

세상에나, 천하제일세가주를 이렇듯 갑작스럽게 만나게 될 줄이야.

남궁벽은 근래의 남궁세가주들 중에 무공 실력이 가장 낮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도십대고수에 아슬아슬하게 들지 못하는 정도의 실력이다. 충분히 고수인 것이다.

원래 자질 자체는 뛰어난 편이었다고 하는데, 전대 남궁세가주의 과도한 교육열이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경우다.

그래서인지 본인의 자식들은 아비로서 최소한만 관여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그 방식이 제대로 통하여 남궁찬 형제들이 저렇듯 뛰어나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는 천마신교의 정보를 통해 접했던 내용이다.

“아버지······.”

“아부지!”

“안녕하세요, 남궁 백부님.”

남궁찬과 남궁설과 선우린이 차례로 그렇게 말했다.

남궁벽이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모두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냥 미소만 짓고 있는 건데도 존재감이 엄청나다.

백도십대고수 안에 들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이런 느낌이다.

이게 천하제일세가주의 위엄이구나 싶다.

“그래, 다들 여기에 있었구나.”

목소리 죽인다.

중저음이면서도 깔끔한 목소리라, 음성만 들어도 절로 공손해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남궁설은 이미 쪼르르 달려가서 남궁벽의 한 팔을 양손으로 잡고 볼을 비비는 중이다.

“아부지이.”

저 모습은 확실히 늦둥이 막내딸의 모습이다.

“허허. 이 녀석아, 보는 눈도 있는데 이래서야, 원.”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남궁설을 바라보는 남궁벽의 얼굴은 예뻐 죽겠다는 표정이다.

자제하려는 모습이긴 한데, 딸바보의 느낌이 슬슬 풍겨나고 있다.

늦둥이 금지옥엽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남궁찬이 말했다.

“십대세가주들과 오랜만에 인사를 나눠야 하니 많이 늦으실 거라고······.”

“아, 인사 잘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서둘러 돌아온 길이다.”

남궁벽의 대꾸에 남궁찬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예? 아니, 누가 아버지를 기분 나쁘게 한단 말입니까?”

나도 궁금하다.

아무리 십대세가주라도 어떤 세가주가 감히 천하세일세가주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다들 통합 잠룡대전 얘기를 하면서 동부지맹 잠룡관을 은근히 무시하는 게 아니냐. 하여튼 인간들이 해마다 이 시기만 되면 꼭 그런다니까. 내 자식들이 통합 잠룡대전에서 몇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입장인데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번에는 부아가 치미는 걸 참기 어려워서 말이다.”

의외다. 남궁세가주쯤 되면 그런 건 딱히 신경 쓰지 않으며 살 것 같은데.

아마도 자신의 금지옥엽이 동부지맹 잠룡관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평소보다 자존심이 좀 더 긁혔다는 거지.

그냥 내 예상이다.

남궁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침 어젯밤에 너희들한테서 들은 것도 있고 하니, 그들 앞에서 큰소리도 빵빵 쳐주고 온 길이다. 이번에는 동부지맹에서 최소 결승은 갈 거라고 했지. 다들 안 믿는 눈치기에 내기도 걸었다. 한데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홧김에 너무 많이 건 것 같기도 하고······.”

“푸홧!”

이건 내 입에서 나온 소리다.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나온 반응이다.

이보쇼! 무슨 놈의 집안이 자존심 좀 상했다고 내기로 그런 큰돈들을 거냔 말이오!

가만히 듣고 있던 선우린이 특유의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어? 우리 할아버지도 몰래 동부지맹 쪽에 돈 거신 모양이던데. 상당히 많이 거셨다고 들었어요. 배당이 클 것 같다며 기대도 크셨어요.”

야, 야! 니네 할아버지는 무림맹의 집법당주 아니셨냐?

그런 위치에 있는 양반이 사행성 내기에 큰돈을 걸었다고?

그러자 남궁벽이 반색하며 선우린에게 물었다.

“오오! 선우 대협께서도 크게 거셨다고?”

“네!”

“아아아······!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좀 되는구나.”

남궁벽은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정말로 크게 건 모양이다.

아니, 백도의 알만한 인간들이 진짜 다들 왜 이 모양이냐고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