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91화 (91/416)

내 안에 마교있다 91

내가 시합을 치를 경기장은 제삼 실외 연무장인 보조연무장이다.

천천히 그쪽을 향해 걷고 있는데 하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송 공자님!”

악미조의 목소리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반가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본맹에 온 후로 오랜만에 본 건데, 역시나 예쁘다.

“아, 악 소저.”

내가 대꾸하자 악미조가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시합 치르러 가시는구나?”

“그렇소. 아, 참! 축하드리오. 십육강에 진출하셨던데.”

내 말에 악미조가 민망하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어쩌다가 운 좋게 진출했어요.”

“어디 운만 좋으셔서 진출했겠소? 상대가 우리 목태월 공자였잖소. 목태월 공자의 실력도 보통이 아니라는 걸 내가 아는데.”

내 말에 악미조가 빙긋 웃어 보이더니 대꾸했다.

“하지만 십육강까지일 듯해요. 다음 상대가 워낙 대단한 분이라서.”

“누군데 그러시오?”

“제갈건 공자예요.”

“앗! 아아······.”

악미조의 말마따나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제갈건은 별들의 전쟁인 서부지맹의 예선에서 삼 위를 차지했을 정도의 실력자니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려구요.”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과도 모르는 것이오.”

적잖은 친분도 있으니 응원 정도는 해주자.

그녀에게 곧바로 물었다.

“한데 어디 가는 길이셨소?”

“제 시합 끝나고 나서 부연무장과 보조연무장을 다니며 열심히 비무들을 구경하고 있어요. 방금 보조연무장 쪽의 시합이 끝나서 부연무장 쪽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혹시 방금 보신 게 누구 시합이었소?”

“아, 그게······.”

악미조가 살짝 주저하는 걸 보니 느낌이 심상찮다.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주경명 공자의 시합이었소?”

악미조가 대꾸하는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의 기색을 파악했기에 즉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주 공자가 졌소?”

“네에······. 장기전 끝에 결국······.”

“허어.”

주경명의 상대가 구파일방인 공동파의 제자라서 혹시나 싶었는데 정말로 패배한 것이다.

서부 예선에서 육 위였다고 해도, 역시나 그쪽 잠룡관의 평균 수준이 높다는 걸 알만했다.

어쨌거나 우리 쪽 삼 위인 주경명마저 일회전에서 떨어졌다니, 나로서도 약간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쯤이면 교관들과 동부지맹 관계자들의 분위기는 거의 초상집 분위기일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강하령과 나뿐이다.

“보러 가시는 부연무장 쪽은 혹시 강하령 소저와 남군호 공자의 시합이오?”

아까 대진표에서 확인한 게 있기에 그렇게 물은 것이다.

“네, 맞아요.”

동부 예선 오 위가 강하령이고, 북부 예선 사 위가 남군호다.

남군호는 북부지맹의 육 년차 관도이며 태산파 출신인데, 나와도 친분이 있다.

장강에서 사파의 절정고수에게 당하려던 걸 내가 구해줬던 게 바로 남군호다.

마침 북부지맹의 시합이기도 하니, 악미조도 일단 그쪽 경기를 보러 가는 모양이다.

시합 시작 전에 준비 과정이 필요하기에 나는 강하령의 경기를 보러 갈 수가 없다.

“얼른 가서 그쪽 시합을 본 후에 송 공자님 응원하러 갈게요.”

“하하, 뭘 응원씩이나. 어쨌든 고맙소.”

“건투를 빌어요.”

악미조가 곧장 부연무장 쪽으로 달려갔다.

보조연무장의 천막으로 가서 출전 수속을 밟은 후, 옆 천막으로 이동했다.

옆 천막은 간이 무기고다.

비무 대회에서는 쇠붙이를 이용할 수 없기에 그곳에서 대체 무기를 골라야 한다.

특수한 무기들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대체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그 전에 무기 검열을 통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악미조 같은 경우에는 원래의 무기가 반으로 분리되는 특수한 장창이다. 그런 종류의 무기는 목재로 따로 제작한 것을 가져와서 검사를 받은 후에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딴 거 없다.

간이 무기고를 쓱 둘러보며 목비도가 꽂혀 있는 가죽 띠를 집어 들었다. 동부지맹에서 청선곡 주최의 비무대회에 참가했을 때도 나는 목비도를 썼었다.

한데 이건 목비도들이 동부지맹에서 썼던 것보다 작았다. 내가 태화지부에서 썼던 실전용 소비도들의 크기와 비슷했다.

본맹이니 만큼 연습용 목비도도 신형으로 제작되어 있는 모양이다. 크기 자체는 만족스럽다.

이제 중요한 건 크기가 작아진 만큼 무게감을 잘 살렸는가 하는 부분이다.

무작위로 두세 개를 뽑아서 시험 삼아 던져보니, 무게감 또한 잘 살려서 사용하기에 괜찮은 수준이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과거에 나는 가죽 띠들을 팔뚝, 다리, 허리 부분에 모두 장착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리 쪽에는 두르지 않았다.

팔뚝의 하박과 무릎 위쪽의 장딴지에만 둘렀으며, 목비도 또한 팔다리를 움직이는데 있어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수준으로만 장착했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소비도를 빼곡하게 꽂아도 스무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상관없다. 이번에는 암기를 주로 쓸 생각이 아니니까.

이후에는 손에 끼는 권갑을 골랐다.

권법을 사용하는 이들이 끼는 물건이다.

권갑은 기본적으로 질긴 가죽으로 제작된 장갑의 형태이며, 손등 부분에는 단단한 목재를 덧댄 형태였다.

내게는 비룡수투가 있으나, 급박한 상황에서 강맹한 공격을 비룡수투로만 막아내면 괜히 그 존재를 들킬 염려가 있다.

내 상대들도 통합 잠룡대전에 선발되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니 혹시 모를 상황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위로 올라갈수록 계속해서 강자들을 만나게 될 테니, 미리 사용해 보며 익숙해질 필요도 있다.

밖으로 나가자 심판 역할을 하는 본맹의 무인들이 신체검사, 복장검사, 무기검사를 했다.

대회가 대회인 만큼 검사도 철저했다.

심지어는 입 안까지 검사할 정도였으니까.

검사를 마친 후 심판을 따라 대기석으로 이동했다.

대기석에서는 비무대의 반대편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시합 시작 전까지는 딱히 할 일이 없다.

가만히 대기석에 앉아 관중석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동부지맹의 삼 년차 송유겸? 누구지?”

“들어보니 원래는 예비 명단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출전하게 됐다더군. 강서의 작은 현에 있는 장원 출신이라던데.”

“그러면 동부 예선에서 팔 위 안에도 못 들었다는 소리잖아?”

“그렇기는 하겠지.”

“한데 상대가 구파일방인 점창파의 제자 아닌가. 정보를 들어 보니 점창파의 제자는 남부지맹에서 사 위였다고 하던데. 게다가 그쪽은 오 년차고. 그러면 승부는 안 봐도 빤한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는 점창파 제자의 실력을 확인한다는 생각으로 관전해야겠지. 그러다가 이번에도 이변이 일어나면 그거야말로 대사건일 테고. 통합 잠룡대전이라는 게 그런 걸 기대하는 맛도 있잖나. 아까 이변을 일으킨 모용리 소저만 해도 북부 예선에서 팔 위였던 데다가 겨우 삼 년차였잖나.”

“에이, 그녀는 모용세가의 후손이라서 가능했다고 봐야지. 방금 전에도 이변이라고들 하는데, 합비주가의 후손을 이겼던 상대도 어쨌거나 공동파의 제자였던 거고.”

두 사내의 대화였는데, 들으면서 살짝 놀랐다.

모용리가 이변을 일으켰다면 그녀가 삼십이강에서 승리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내들의 대화처럼 모용리는 삼 년차에 불과하며 북부 예선 팔 위로 통합 잠룡대전의 출전권을 얻었다.

아까 대진표를 확인할 때 봤는데, 모용리의 상대는 다름 아닌 신창양가의 양벽종이었다.

양벽종은 오 년차이며, 별들이 즐비한 서부지맹에서 사 위를 차지하여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했다.

그런 양벽종을 모용리가 이겼다니.

대단한 이변인 것이다.

놀라운 한편으로 약간은 납득도 간다.

모용리는 이번에 장강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크게 다치기까지 했었다.

그게 그녀의 정신 속에 있는 무언가를 깨운 게 아닌가 싶다.

<두원웅, 남부지맹, 오 년차, 점창파.>

두 사내의 말마따나 그가 내 삼십이강전의 상대다.

남부지맹에서 사 위를 차지하여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했다.

운남의 점창파는 그 유명한 구파일방의 한 축이다. 즉, 백도 무림의 한 축인 셈이다.

그에 반해, 관중들의 입장에서 나는 강서의 이름 없는 장원 출신인데다가 예비 명단이다.

저들이 저렇게 예상하는 것도 당연하다.

“시합 시작된다. 비무대 위로.”

안내하는 이의 말에 따라 비무대의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둘러보니 비무대의 주변에 동일한 복장을 하고 있는 여덟 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부심들이다. 혹시 모를 위험 상황에 대비하는 안전 요원의 역할도 겸한다.

반대편에서 비무대에 오르고 있는 청년이 보인다.

목검을 들고 있는 그가 바로 내 상대인 두원웅이다.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서부지맹과 남부지맹의 관도들이 동련각에 찾아와 이래저래 무시했다고 하더니, 놈의 표정에서도 그런 기색이 가득 느껴졌다.

본인들이 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의식하지 않는 거다. 본인들이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얘야, 백 번 양보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어. 너는 명문거파인 점창파 장문인의 제자니까.

하지만 그건 생각만으로 끝내야지.

겉으로 그렇게 대놓고 무시하면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괜히 없던 억하심정도 솟아나잖아.

* * *

‘아아! 이런 개 꿀이!’

두원웅은 진심으로 기분이 좋았다.

대진표를 확인한 후부터 기분이 좋았지만, 이렇듯 상대를 보고 나니 기분이 더 좋다.

자신은 오 년차로, 통합 잠룡대전에는 두 번째 출전이다.

사 년차 때인 작년에는 예선 칠 위로 통과하여, 본선 삼십이강에서 빛의 속도로 탈락했었다.

작년의 경험을 통해 느낀 게 있었다.

무조건 남부 예선에서 사 위 안에 들어야만 본선 삼십이강에서 대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대진운이 좋은 걸 넘어 최상이다.

수준이 떨어지기로 유명한 동부지맹의 관도들 중에서도 예비 명단인 상대와 붙게 된 것이다.

예비 명단이면 예선에서 팔 위 안에도 못 든 관도가 아닌가.

기본적으로 십육강은 떼 놓은 당상이니, 이런 꿀이 또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멀리로 대전 상대가 보인다.

이름도 잘 기억 안 난다. 송 아무개라고 들었다.

생긴 건 참 잘 생겼다.

한데 전혀 강해 보이지 않는다.

역시나 동부지맹의 예비 명단인 것이다.

팔뚝과 다리에 가죽 띠를 착용하고 있는 게 보인다.

‘소비도?’

어제 갑자기 대체 출전이 결정된 모양이라, 상대에 대한 정보가 워낙 없다. 솔직히 예비 명단이라 알아 볼 필요성조차 그다지 느끼지 못했었지만.

어쨌거나 상대는 암기술을 쓰나 보다.

암기술 하면 사천당가다.

남부지맹에서 함께 본선에 출전한 만큼, 당가의 당효광과도 연습 삼아 비무를 여러 차례 했었다.

덕분에 암기술에 대한 경험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니 더 좋다.

설마 저 이름 모를 예비 명단이 사천당가보다 암기술을 잘 할 리는 없을 테니까.

권갑도 꼈는데, 암기술을 익힌 무인들이 수투나 권갑 등을 끼는 일은 흔하니 그다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암기만 좀 주의하면서 적당히 대처하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대전자들 위치로.”

주심의 지시에 따라 중앙에 상대와 마주하고 섰다.

“상호, 예(禮).”

주심의 말에 상대가 먼저 포권해 보였다.

“잘 부탁드리오.”

“잘 부탁드리오.”

마주 포권하며 대꾸하자 주심이 다시 지시를 내렸다.

“대전자들, 후방에 표시된 시작 위치로.”

뒤로 몇 보를 물러서서 바닥에 표시된 위치에 섰다.

“시합 시작!”

주심의 시합 개시 외침이 들렸다.

일단 송 아무개라는 저 상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탐색이나 해보자.

탓!

비무대의 바닥을 박차며 상대를 향해 보법을 펼쳤다.

보법인 비천환허가 제대로 펼쳐지고 있다.

발놀림이 그 어느 때보다도 경쾌한 느낌이다.

간격이 좁혀진 순간, 평범한 급풍쾌검의 검법을 펼치며 빠르게 검을 찔러 넣었다.

슈슈슉!

검세가 상중하단을 동시에 압박하자, 상대가 후방으로 몸을 쭉 빼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횡보의 형태로 간단히 측면으로 피하면 될 일이었다.

한데 뭘 저렇게까지 멀리 물러난단 말인가.

다시 한 번 접근하여, 이번에는 상대의 머리와 양쪽 어깨를 향해 빠르게 목검을 찔러 넣었다.

검법은 역시나 급풍쾌검이었다.

이번에도 상대가 우측 후방으로 쭉 몸을 빼고 있다.

‘풋! 뭐야? 간격이 좁혀지는 게 두려운 거냐?’

이번에도 자세를 살짝만 낮춰서 피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면서 암기를 던지면 견제까지 될 수 있었다.

한데 상대는 이번에도 과하게 후방으로 물러나기만 한 것이다.

이후에도 탐색전 삼아 두어 차례 근접하며 공격을 펼쳤지만, 상대는 방향을 틀어가며 몸을 뒤로 쭉쭉 빼기만 할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장외패를 당하고 싶지는 않은지, 비무대의 외곽으로 몰리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겁나냐? 싸우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는 거야?’

대놓고 등을 드러내고 도망치는 건 패배로 간주된다.

등을 보이지 않을 뿐이지, 저건 대놓고 도망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다.

꼴에 규정은 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암기를 단 한 차례도 쓰지 않았다.

‘그 가죽 띠는 무슨, 장식이냐?’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대다.

이쯤 되자 관중석에서도 야유가 들려오고 있다.

“이봐! 송유겸인가 뭔가 하는 놈! 계속 도망만 다닐 거냐!”

“싸우지는 않고 도망만 다닐 거면 비무 대회에는 왜 나온 거야!”

“동부지맹은 예비 명단이라도 왜 저런 애를 내보낸 거야!”

“단숨에 몰아붙여서 얼른 끝내버려, 두원웅!”

이렇듯 관중들마저도 완전히 자신의 편이 되어 있다.

‘그래, 그러면 이제부터는 도망칠 일이 없게 만들어주마.’

도망치는 걸 따라잡을 역량이 안 돼서 지금껏 가만 놔뒀던 게 아니다.

탐색전을 최대한 신중하게 한 것뿐이다.

‘아예 구석으로 몰아서 도망조차 못 치게 해주마.’

이후에는 상대가 도망쳐도 계속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검을 휘둘렀다. 물론 혹시 모를 반격을 경계하면서.

상대도 도망치는 게 버거운지, 이제는 한 번씩 권갑의 손등 부분을 이용하여 목검을 쳐내곤 했다.

대응하는 저 모습을 보니 수준이 딱 나온다.

아무리 권갑의 손등에 단단한 목재가 덧대어 있다고 해도, 이런 공격은 저렇듯 정면으로 막을 일이 절대 아니다.

비껴내야 한다.

비껴내도 손목에 충격이 올 텐데, 저런 식으로 정면으로 막아내거나 쳐내면 훨씬 더 충격이 크다.

그 충격이 누적되면 갈수록 본인만 더 힘들어지는 거다.

어설프다.

기본이 너무 안 되어 있는 상대다.

탐색전도 이쯤이면 됐다.

귀찮으니 얼른 마무리하고 가서 쉬자.

* * *

두원웅이 맹렬하게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점창파 검술의 요체라 불리는 사일검법의 초식들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중이다.

이쯤이면 된 것 같다.

낚느라 공을 많이 들였다.

내가 괜히 두원웅의 검을 정면으로 막고 쳐냈던 게 아니다.

철저하게 어설프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사람을 낚을 때는 약간의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덕분에 손목이 약간 시큰거리긴 하는데, 이 정도는 나중에 회회심공을 운용하면 어렵지 않게 치유되는 수준이다.

참고로 나는 두원웅을 이중으로 낚았다.

관중들의 호응마저도 두원웅 쪽으로 집중되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그는 현재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안 그러고 싶어도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어느 정도는 휩쓸리게 마련이다. 가뜩이나 두원웅처럼 약관의 어린 나이에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일방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만큼, 소위 ‘뽕 맛’에 취하게 되어 있다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두원웅도 관중들에게 더 많은 걸,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이왕 끝낼 거, 더 멋지게 끝내서 찬사를 듣고 싶은 것이다.

후후, 귀여운 놈 같으니.

조금씩 밀리는 형세를 취하다가 더 이상 물러나지 않았다.

권갑의 손등 부분을 이용하여 두세 차례 더 그의 검을 쳐냈다. 어설픈 모습을 조금 더 보인 것이다.

대응 방식을 파악했는지, 내가 또다시 목검의 옆면을 쳐내자마자 두원웅이 곧바로 검로를 바꾸어 내 가슴께를 찔러왔다.

이에 나는 허리를 옆으로 틀며 왼손으로 두원웅의 검면을 부드럽게 비껴낸 후, 곧바로 두원웅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천섬무를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두원웅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속도로 몸놀림을 매우 빠르게 했다.

동시에 왼손의 손목을 빙글 돌리며 금나수의 수법으로 두원웅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그가 검을 쥔 채로 내뻗던 손목이다.

곧바로 두원웅이 힘을 뻗던 방향으로 그의 팔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그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 왼발로 두원웅의 오른발을 강하게 걷어찼다.

당연히 두원웅의 무게중심은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어엇······!”

두원웅이 깜짝 놀라서 그런 음성을 내뱉을 즈음, 나는 우장을 그의 가슴께로 뻗었다.

그가 경황 중에도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막아왔다.

나로서는 이미 예상한 대응이다.

오른손 손등으로 가볍게 두원웅의 팔목을 툭 쳐낸 후, 곧바로 오른손으로 다시금 그의 멱살을 잡았다.

이후에는 그대로 허리의 회전과 무릎의 반동을 이용하며 업어치기를 했다.

중심을 잃은 두원웅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터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자, 이쯤 되었으니 계획을 마무리 짓자.

두원웅의 몸이 완전히 빙글 돌아간 순간, 나는 디딤 발인 왼발이 미끄러진 척하며 내 몸의 중심도 무너트렸다.

“앗!”

실수한 척, 다급한 소리를 질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원웅의 몸이 등부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를 어깨에 진 채로 회전한 내 몸도 그의 몸 위로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

용 그림은 잘 그려놨으니 이제 눈알만 제대로 그려 넣으면 된다.

그 생각으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

잔뜩 당황한 표정을 확실하게 지어 보이며, 회전력이 담긴 내 왼쪽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두원웅의 사타구니 쪽으로 향하게 했다.

곧 두원웅의 몸이 등부터 바닥에 강하게 부딪쳤고, 그와 함께 회전한 내 몸도 그의 몸 위로 포개어졌다.

철퍼덕!

“커걱!”

“헉!”

두원웅이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나 또한 놀란 음성을 내뱉어 줬다.

우리의 몸이 바닥에서 얽힌 형태라, 곧바로 심판의 외침이 들려왔다.

“시합 중지! 떨어져!”

나는 당황한 표정을 보이며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물론 몸을 일으키는 마지막 순간에도 왼쪽 팔꿈치에 힘을 가하는 걸 잊지 않았다.

“끄윽······!”

두원웅에게서 괴로움 가득한 신음이 흘러 나왔다.

많이 괴로운 모양이다.

거의 죽을상이다.

상체를 일으킨 직후, 표정에 염려를 가득 담아 두원웅에게 물었다.

“괘, 괜찮으시오?”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주심이 나를 옆으로 물러나게 하며 두원웅에게 물었다.

“괜찮나?”

“끄응······.”

두원웅이 옆으로 돌아누우며 신음을 흘렸다.

그의 몸이 새우등 굽듯 굽어졌다.

이미 쥐고 있던 검은 놓은 상태라, 그의 양손이 사타구니 쪽으로 향해 있다.

주심이 장외 쪽을 향해 손짓했다.

의료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의료진이 곧바로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딱 봐도 두원웅의 환부를 알겠는지, 의료진들도 약간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두원웅은 몸을 잔뜩 웅크린 상황인데, 저 고통은 시간이 좀 지나야만 약간이나마 해소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주심이 의료진들을 향해 낮게 외쳤다.

“뭐하시오! 어서 응급처치 안 하고!”

“다, 당장의 응급처치라고 할 만한 게······.”

의료진 중 한 명이 곤란함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두원웅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 응급처치가 맞긴 맞소? 물론 나도 그렇게 알고 있기는 한데, 제대로 된 조치인지는 잘 몰라서······.”

“우, 우리도 사실, 효과에 대해서는 잘 모르오. 한데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서 다리를 벌려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소.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치라고는 이 정도밖에······.”

의료진의 말에 주심이 대꾸했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저 고통은 시간이 약이기도 하니까.”

나도 고통스럽다.

당장에라도 웃음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데, 겉으로는 염려 가득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걸 참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하니, 그게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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