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95
오전의 첫 시합이 단목강의 시합이었고, 두 번째 시합이 종금무의 시합이었다.
그렇기에 잘만 됐으면 사상 최초로 동부지맹 잠룡관도들 간의 사강전이 펼쳐질 가능성도 존재했다.
“단목강은 사강에 진출했고, 종금무는 아깝게 떨어졌어.”
역시 종금무는 떨어졌구나.
모두의 예상대로이기도 했고, 내 예상대로이기도 했다.
단목강은 팔강에서 제갈건과 붙었다.
서부 예선에서 삼 위였던 만큼 제갈건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을 테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단목강을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단목강이 요새 좀 미친 상승세거든.
우리 쪽 일 위였던 종금무의 팔강 상대는 북부지맹의 일 위였던 추소륵이었다. 둘 다 육 년차다.
소림의 추소륵은 우승 후보 네 사람 중 한 명이다.
추소륵 외에도 무당의 풍세학, 화산의 선의림, 당가의 당효광이 우승 후보로 꼽힌다.
상대가 추소륵이라 종금무의 승리 가능성은 처음부터 낮은 편이었다. 나올만한 결과가 나왔다고 봐야 한다.
결국 사강전의 첫 시합은 단목강과 추소륵의 대결로 결정된 것이다.
“종금무가 떨어진 게 아쉽긴 한데, 그래도 동부지맹 잠룡관의 입장에서는 오랜만의 사강 진출이야. 경사지.”
경사 맞다. 이게 얼마만의 사강 진출인데.
교관들뿐만 아니라 동부지맹의 모든 관계자들이 크게 고무되어 있을 것이다.
관주 육남춘도 그간 통합 잠룡대전에서의 성적 때문에 정신적 압박감을 많이 느꼈다고 들었다. 그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을 것 같다.
부연무장 쪽에서 관중들의 탄성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양소열이 말했다.
“저 소리들 봐. 오후의 첫 시합이 확실히 재미있긴 재미있나 보다. 길어지는 모양이기도 하고. 우승 후보 간의 대결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현재 대결을 펼치고 있는 이들은 화산의 선의림과 사천당가의 당효광일 것이다.
선의림은 오 년차로 서부 예선에서 이 위, 당효광은 육 년차로 남부 예선에서 일 위였다.
우승 후보 중의 한 사람이 팔강에서 무조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로 탈락하기 싫을 테니 시합도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겠지.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르자 커다란 함성과 박수가 들렸다.
선의림과 당효광의 대결이 끝난 모양이다.
잠시 후에 천막을 열고 제갈수광이 들어섰다.
양소열이 곧바로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접전 끝에 선의림이 이겼소.”
예상했던 결과라는 듯 양소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예상대로이기도 했다.
내가 이번 시합에서 풍세학을 이기면, 사강에서 만나는 상대가 선의림으로 결정된 셈이다.
양소열이 말했다.
“당효광의 탈락으로 남부지맹은 팔강에서 모두 탈락하게 됐군요. 남 일 같지는 않은데, 그쪽 교관들이 은근히 우리 쪽을 무시했던 걸 떠올리면 약간은 고소하기도 합니다.”
제갈수광이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자 양소열이 내게 말했다.
“유겸아, 한 시합씩 최선을 다하자. 어차피 팔강 쯤 되면 매 시합이 결승전이야.”
“알겠습니다.”
슬슬 시합을 준비하러 갈 시간이라, 천천히 천막을 나섰다.
이전의 시합들처럼 준비를 빠르게 마친 후, 각종 검사를 마치고는 대기석에 앉았다.
관중석에서 목소리들이 들린다.
“예비 명단이 이 정도로 이변을 일으키면 보통은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은 법인데, 들어보니 송유겸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더라고. 나도 비슷한 심정이야. 이상하게도 송유겸은 응원할 맛이 안 난단 말이지.”
“뭔가 얼렁뚱땅 여기까지 올라온 느낌이기도 하고······, 더 중요한 건 시합이 너무 재미가 없다는 점이지.”
“어쨌거나 송유겸의 이변도 여기까지겠지?”
“현실적으로 그렇겠지. 관전 초점은 역시나 풍세학이 시합을 얼마나 빠르게 끝내는가 하는 부분일 거고. 그래야 체력을 아낄 수 있을 테니까.”
“너무 순식간에 끝나는 것도 재미가 없으니, 어쨌거나 송유겸이 조금이라도 오래 버티기를 바라야 하는 건가?”
“허허, 나도 비슷한 심정일세. 풍세학이 이기기를 바라면서도 송유겸이 더 오래 버텨주길 바란다고 할까?”
소수는 순수하게 나를 응원하는 목소리들도 있었지만, 다수의 의견은 저런 식이었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니 큰 감흥은 없다.
“비무대 위로.”
대기심의 말에 천천히 일어서서 비무대에 올랐다.
반대편에서 비무대로 오르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보인다.
목검을 쥐고 있는 그는 풍세학이다.
반듯한 인상에 평균 키, 마른 듯한 체형.
나이답지 않게 매우 잘 정제되어 있는 기도.
과연 무당파의 적전제자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풍세학은 서부 예선에서 일 위였으며, 육 년차다.
우승 가능성 면에서 추소륵과 함께 일이 위를 다투고 있기도 하다.
중앙에서 상호 예를 취한 후 시작 지점으로 물러서자, 주심이 시합 개시를 외쳤다.
“시합 시작!”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풍세학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풍세학의 눈매가 살짝 좁아지는 게 보인다.
내가 뒷짐을 진 채로 산보라도 하듯 다가갔기에, 왜 저러나 싶은 것이다. 가뜩이나 그동안 나는 시합을 펼치면서 한 번도 먼저 움직인 적이 없었으니까.
풍세학이 목검을 중단에 둔 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산보하듯 천천히 다가갔다.
어느덧 서로 간의 거리가 다섯 걸음 정도로 좁혀졌다.
풍세학은 계속 경계하며 내 눈을 직시할 뿐, 따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네 걸음 안으로 좁혀졌다.
풍세학은 여전히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뭘 하든지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세 걸음 안쪽으로 발을 디딘 순간, 풍세학이 움직였다.
풍세학이 목검을 빠르게 찔러왔다.
다섯 군데를 찔러오는데, 내 수준의 안력이 아니었다면 동시에 찔러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쾌속한데도 움직임과 검로가 제대로 정제되어 있다.
무당파 검술의 묘리를 잘 살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한 수만 봐도 풍세학이 왜 서부지맹 예선에서 일 위를 차지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다섯 방향 중에서 세 방향이 내 몸을 직접 노린 공격이고, 나머지 두 방향은 내가 달려들 수 있는 경로를 제한시키는 공격이다.
내가 파고들어 근접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다.
본인은 검을 쓰고 나는 권을 쓰니, 일단은 간격의 유리함을 유지하며 탐색전을 펼칠 심산이다.
얘야, 미안하지만 이번엔 탐색전 같은 거 없다.
곧바로 쭈그려 앉다시피 급격하게 신형을 낮추며 풍세학의 우측으로 파고들었다.
풍세학은 오른손잡이기에, 황급히 목검을 거둬들이며 그대로 내 어깨 어림을 베어왔다.
완전히 회수했다가 찌를만한 시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목검에 검기가 주입되어 있다.
나는 오른팔에 공력을 주입하며 하박을 들어 올렸다.
하박에 차고 있는 가죽 띠의 바깥 부분에는 목비도가 촘촘히 꽂혀 있는 상태이니, 그 부분을 방어구로 삼아도 무방하다. 물론 그 부위에 공력도 충분히 주입했다.
하박에 꽂혀 있는 목비도들을 이용하여 풍세학의 목검을 비껴내면서, 이어지는 동작으로 권갑의 손등 부분을 이용하여 목검을 강하게 쳐냈다.
턱! 파악!
순간적으로 검을 쥔 풍세학의 팔이 크게 들렸다.
내가 권갑의 손등을 이용해 목검을 매우 강하게 쳐낸 탓이다.
풍세학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커졌다.
당황했구나?
두 가지 이유로 당황했을 것이다.
내가 하박과 손등의 움직임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목검을 쳐내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마지막에 권갑의 손등으로 쳐낼 때의 공력과 힘이 그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공력의 운용 면에서는 이 나이대의 아이들과 차원이 다른 경지에 있는 사람이며, 꾸준한 단련을 통해 신체 능력 또한 극대화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같은 내공이라도 한 점에 더 빠르고 강맹하게 집중시킬 수가 있고, 그걸 내 신체 능력과 결합시켜 모든 힘을 순간적으로 극대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즈음의 나는 이미 풍세학의 겨드랑이 안쪽으로 근접한 상태였다.
내가 매우 빠른 속도로 파고들었기에 풍세학은 더 크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방금 전에 들렸던 팔을 제대로 내리지도 못했는데, 내가 이미 그에게 초근접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굳이 천섬무를 운용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경신술만으로도 나는 웬만한 이들보다 빠를 자신이 있다.
신체 능력도 신체 능력이지만, 쾌에 대한 내 이해도 또한 매우 높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풍세학의 우측 옆구리를 향해 좌권을 찔러 넣자, 그가 바닥을 박차며 본인의 좌측 후방으로 낮게 도약하며 신형을 쭉 뺐다.
당황한 만큼 풍세학이 그렇게 대처할 줄 알았기에, 그가 바닥을 박참과 동시에 나도 바닥을 박찬 상태다.
덕분에 우리는 여전히 근접한 상태에서 마주보며 한 곳을 향해 낮게 날아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근접한 상태이니 허공에 떠있는 와중에도 나는 무게중심을 전방에 둔 채로 풍세학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왼손의 권갑과 하박으로 풍세학의 검을 쳐내거나 비껴내며, 오른손으로는 계속해서 그의 상체를 향해 권법을 펼쳤다.
풍세학도 왼손으로 장법과 수법을 번갈아 펼치며 내 오른손을 견제했다.
이에 나는 오른손으로 권법을 펼치다가도 이따금씩 금나수법으로 전환하며 그의 왼손을 잡아채려 했다.
그로 인해 풍세학의 왼팔과 내 오른팔은 계속해서 기묘하게 꺾이며 빠르게 공수를 주고받는 중이다.
탁! 타닥! 투두둑! 파박! 파바밧!
우리는 공중에 떠있는 그 짧은 순간에도 십여 초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도약했던 우리 둘 다 바닥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계속 공수를 주고받던 중에도 발바닥이 바닥에 먼저 닿은 건 내 쪽이었다.
애초에 풍세학이 도약하는 높이를 보고, 내가 그보다 머리 하나쯤 낮게끔 전체적인 고도를 잡은 덕분이다.
내 발이 바닥에 먼저 닿은 그 짧은 순간, 나는 가속도를 붙여서 풍세학에게 달려들었다.
우리의 간격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풍세학의 발은 아직까지 바닥에 닿지 않은 탓이다.
풍세학은 어떻게든 견제하려는 듯 목검을 잔뜩 끌어당겨서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검을 휘둘러서 위력을 발휘하기에는 우리의 간격이 이미 너무 가까워진 상태다.
마지막 순간까지 풍세학이 검을 쥐고 있는 손을 주시하며 그의 가슴께를 향해 내 우권을 뻗었다.
풍세학 또한 찰나의 순간에도 왼손을 뻗으며 내 오른손에 대비해 왔다.
확실히 기본 실력 자체는 제법이다.
그러나 이쯤 되니 무당파 무학의 요체인 이정제동(고요함으로써 움직임을 제어함)과 이유제강(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함)의 묘리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당황해 있었는데, 이 순간에는 더 당황한 탓이다.
내가 미친개처럼 달려들기만 하는데다가,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전혀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 완전히 당황한 것이다.
나는 오른팔을 기묘한 각도로 꺾는 동시에 우권이 나아가는 속도를 더 빠르게 했다.
풍세학의 왼손과 내 오른손이 교차한 순간, 나는 우권을 펴며 금나수법을 시전했다.
풍세학이 놀라서 왼손을 빠르게 회수하던 순간.
척!
내 왼손이 풍세학의 오른쪽 손목을 잡았다.
그가 검을 쥐고 있는 쪽 손목이다.
풍세학의 신경이 내 오른손 쪽에 크게 분산된 사이, 왼손을 이용해 그가 검을 휘두르던 쪽의 손목을 노렸던 것이다.
그의 손목을 잡자마자 손아귀에 강한 힘을 주어 비틀며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런 상황임에도 풍세학이 골반을 비틀어 오른쪽 무릎을 빙글 들어 올리며 내 왼쪽 옆구리를 노렸다. 각법을 펼치기에는 간격이 너무 가까운 탓이다.
이놈아, 최후의 발악인 건 알겠는데, 그러면 너만 더 다쳐.
나도 즉시 왼쪽 무릎을 바깥쪽으로 빠르게 들어 올리며 그의 오른쪽 다리를 견제했다.
턱!
그러면서 왼손의 손아귀를 쥐어짜듯 억세게 움켜쥐며, 검을 쥔 풍세학의 오른쪽 손목을 더 강하게 비틀었다.
“악!”
고통으로 인상을 찡그린 풍세학이 결국 목검을 놓쳤을 즈음, 내 우권은 이미 그의 복부를 향해 빠르게 뻗어진 상태다.
풍세학의 좌장이 내 우권을 막으러 오다가 멈췄다.
내 주먹의 속도가 더 빠른 걸 알고 더 이상의 대적을 포기한 것이다.
항복 선언과 다름없으니, 나 또한 뻗던 주먹을 그의 복부 앞에서 멈췄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을 해버리면 오히려 내 쪽이 몰수패를 당할 수 있다. 팔강전은 부연무장에서만 펼쳐지는 만큼, 비무대 주변에 심판들도 많다. 그들이 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곧 주심의 외침이 들렸다.
“시, 시합 종료!”
그 외침이 들린 후에야 나는 풍세학의 손목을 놓아주며 뒤로 물러섰다.
풍세학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그의 손목을 매우 세게 움켜쥐고 크게 비틀기까지 했으니, 근육과 관절에 통증이 상당할 것이다.
주심이 곧바로 다시 외쳤다.
“동부지맹 삼 년차, 송유겸 승!”
승자 선언이 들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부연무장 일대에서는 정적이 흐르고 있다.
나와 풍세학은 시합이 개시된 직후부터 격렬하게 얽히며 제법 많은 합을 교환했으나, 실상은 매우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마음속으로 육십을 세기도 전에 끝났을 텐데, 이렇듯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렸으니 다들 멍한 것이다.
그 와중에 승리한 게 풍세학이 아니라 나이기에, 괴리감마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이 결과를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정적이 흐르는 비무대 위를 천천히 걸었다.
내가 비무대를 내려갈 때쯤에야 뒤늦은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오!”
이제야 하나둘씩 현실이 와 닿기 시작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