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96
비무대 근처의 천막에서 승자 수속을 마치고 나왔음에도, 풍세학은 여전히 비무대를 내려가지 않은 상태였다.
충격이 가득한 얼굴이다.
저럴 만도 하다.
뭐라도 해보고 졌으면 충격도 덜할 텐데, 무당의 절학으로 불리는 현천검법이나 태청태극검법 같은 건 전혀 펼쳐보지도 못한 채로 졌으니까.
가뜩이나 무조건 승리할 거라고 예상했던 상대에게 졌으니 충격도 더 클 것이다.
승자 수속을 마치고 비무대의 사무 구역을 벗어나려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송 공자······!”
단목강이 환한 표정으로 나를 반겼고.
“송 공자님······!”
강하령도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강하령의 눈동자도, 그녀의 옆에 있는 사옥연의 눈동자도 떨리고 있었다.
“송유겸······!”
셋째 교관인 황염기가 희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고.
“송유겸 이 자식! 이런 복덩이 자식······!”
둘째 교관인 장호산은 어제처럼 빠르게 다가오더니 나를 얼싸 안고는 아예 들어 올렸다.
장호산이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미쳤어! 완전 미쳤어! 다른 애도 아니고 저 풍세학을 이렇게나 빨리 꺾고 내려오다니! 이 이쁜 자식!”
“자, 장 교관님. 하하. 이제 내려 놓으셔도······.”
“으하하! 이 자식, 안 내려줄 거야! 어차피 오늘은 땀 냄새도 안 나잖아!”
“아하하······.”
그래. 비록 아저씨한테 안긴 상황이긴 하지만, 그에게도 이 기분, 어느 정도는 만끽하게 해주자.
여전히 장호산이 나를 안아들고 있는 상태에서 제갈수광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특유의 사무적인 표정으로 다가온 그가 한손바닥을 펴서 들어 올렸다.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나도 들어 올렸고, 이내 우리의 손바닥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마주쳤다.
짜악!
제갈수광이 나를 향해 피식 웃어 보이고 있다.
저렇게 웃고 있어도, 실상은 장하고 기특하다는 뜻이다.
나도 그를 향해 씩 웃어 주었다.
우리는 대연무장 옆 공터에 있는 동부지맹의 막사를 향해 다 같이 걸었다.
앞서서 걷는 교관들 세 명의 걸음도 활기차기 이를 데 없었고, 뒤따르는 우리의 걸음 또한 경쾌했다. 뒤따르는 건 네 명의 관도들로, 나, 단목강, 강하령, 사옥연이다.
단목강이 말했다.
“방금 전 시합, 정말 인상적이었소, 송 공자.”
“하하, 상대가 방심한 것 같아서 초반을 노렸는데 운이 좋았던 겁니다, 조장님.”
그러자 강하령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도 붙어봐서 아는데, 풍세학 공자가 어디 운 좋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던가요?”
내가 민망한 미소를 보이자 이번에는 사옥연이 말했다.
“아까 송 공자님 말인데······, 호랑이 같았어요.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정말정말 사나운 호랑이요.”
“어? 맞아! 정말 그런 느낌이었어요!”
강하령도 적극 동의한다는 듯 그렇게 말했고, 단목강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나는 스스로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포장도 잘 해주네?
그래, 뭐. 광견보다야 산중지왕이 천 배는 낫지.
동부지맹의 천막 안으로 들어서니 막내 교관 양소열이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송유겸! 이 짜식! 정말로 해냈구나!”
상대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만큼, 역시나 이 승리가 매우 값지게 생각되는 모양이다.
그가 양팔을 벌리며 다가오기에 가만히 있어 줬다.
시합도 한 번 못 보고 항상 이곳을 지키며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양소열이다. 가뜩이나 사내 치고는 다정다감한 사람이라, 나 또한 여러 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 양소열과도 승리한 순간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서둘러 이곳으로 오자고 했던 것이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송유겸!”
포옹을 풀며 그렇게 말하는 양소열의 눈가에 물기가 살짝 짙어져 있다. 물론 울거나 한 건 아니었다.
“교관님들이 잘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이 장한 자식······!”
몇 차례나 내 어깨를 두드린 양소열이 다른 교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교관님들, 이거 꿈 아니죠? 생시 맞죠? 우리 동부지맹에서 사강에 두 명이나 진출하다니······!”
근래 동부지맹 잠룡관은 팔강에 한 명씩 진출하는 게 고작이었다.
한데 지금은 팔강도 아니고 사강에,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진출한 상황이다.
서부지맹도 한 명이고 북부지맹도 한 명인데, 최약체라고 평가되던 동부지맹이 두 명인 것이다.
게다가 진출 당사자가 통합 잠룡대전에 첫 출전한 단목강과 나다. 더해서 단목강은 사 년차고 나는 삼 년차에 불과하다.
그러니 교관들의 입장에서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하! 나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소!”
셋째 교관인 황염기가 대꾸하자 둘째 교관인 장호산이 턱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여태 우리 무시했던 인간들, 다 잡아다가 무릎 꿇립시다!”
일부러 과장되게 농담하는 것을 알고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천막에 있던 교관들, 관도들과 함께 동련각으로 복귀했다.
돌아오자마자 본맹의 동련각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인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단목강과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나온 것이다.
모두가 감격스러워하며 우리에게 축하의 말들을 건넸다.
누가 보면 우승이라도 한 줄 알겠다.
이렇듯 동부지맹에서 사강에 두 명이나 진출한 것만으로도 저들에게는 충분히 대단한 일인 것이다.
하긴, 저들도 본맹에서 근무하며 은근히 무시당했었겠지.
서련각, 남련각, 북련각이 근처에 모여 있으니까.
동련각에서 우리가 머무는 숙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모여 있던 동부지맹 잠룡관의 남자 관도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들도 내 시합 결과를 들은 모양이다.
“와! 이게 무슨 일이오, 송 공자! 축하드리오!”
“축하드리오! 잘하셨소!”
각각 주경명과 목태월의 축하 인사였다.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두 사람은 단체전에 대비한 수련을 하다 말고 온 모양이다.
“정말 대단하시오, 송 공자. 설마 풍세학 공자마저 꺾을까 싶었는데 정말로 꺾다니······!”
이번에는 오전에 추소륵에게 패했던 종금무의 축하였다.
종금무는 땀을 흘리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몸을 움직이는 수련을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오전 시합에서 패했으니, 복기를 하며 쉬고 있었거나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축하드리오, 송 공자. 장하시오.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이렇게 되고 나니, 내가 약간의 문제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던 게 오히려 잘 된 일이구나 싶구려. 이런 송 공자가 출전하지 못했으면 어쩔 뻔했소.”
여길상의 축하 인사였다.
그도 땀을 흘리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단체전에 대비한 훈련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 정신적인 문제가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다는 거겠지.
“역시 송 공자시오! 거보시오! 송 공자니까 이런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거고, 그러니 이렇듯 다함께 뿌듯할 수 있는 거잖소!”
마지막 순간에 내게 출전권을 양보했던 엄상평의 말이었다.
진심으로 뿌듯해 하는 표정이다.
엄상평도 땀을 흘린 모습이다. 예비 명단임에도 단체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 모를 일이니까.
남자 관도들의 축하 인사에 일일이 고맙다는 대꾸를 해줬다.
그간 단목강을 제외한 남자 관도들과는 가까워질 기회가 딱히 없었다.
내가 제갈수광을 따라 밖으로만 돌며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도 그들대로 통합 잠룡대전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서로 기본적인 예는 지키며, 오가다 마주치면 인사를 비롯한 짧은 대화 정도만 주고받던 사이였다.
한데 표정들을 보니 다들 매우 기쁜 모양이다.
본맹에 온 후로 다른 지맹의 관도들에게 은근히 무시를 당했다던데, 마침 내가 상징적인 풍세학을 꺾고 사강에 진출했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는 거겠지.
단체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관도들의 사기도 진작된 듯하다.
* * *
다음날이 되었다.
통합 잠룡대전의 사 일차인데, 개막전과 삼십이강이 펼쳐졌던 일 일차만큼이나 일정이 분주한 날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부터 개인전 사강 두 시합이 펼쳐지며, 이른 점심 무렵부터는 단체전 사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간 나는 다른 관도들의 시합을 직접 관전한 일이 없었다. 그 친한 단목강의 시합조차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오늘은 볼 계획이다. 그래도 사강이니까.
사실 이조차도 그다지 볼 생각은 없었다.
어제 남궁설과 선우린이 찾아와서 같이 보자고 조르기에 결국 승낙해준 것뿐이다.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대연무장 근처에 있는 약속 장소로 향하자, 두 소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소녀 모두 면사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남궁설이 먼저 나를 반겼다. 앙칼진 목소리로.
“진짜! 왜 이렇게 늦게 와요!”
“하하, 장 매, 잘 잤어?”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니 잠룡관에서 쓰는 호칭을 쓴 것이다.
내가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네자 남궁설이 빽 소리를 질렀다.
“이 판국에 한가하게 무슨 인사나 하고 있어요! 이렇게 늦어 놓구!”
내가 빙그레 웃어주자 이번에는 선우린이 말했다.
“송 오라버니, 지금 가면 좋은 자리는 절대 못 차지한다구요!”
얘마저도 짐짓 책망하는 투다.
“하핫, 유 매도 잘 잤어?”
“네. 전 잘 잤어요. 헤헷.”
선우린이 금세 태세를 전환하며 평소의 상냥한 말투로 그렇게 대꾸했다.
매우 가까운 거리라서 면사 안의 표정이 보이는데, 지금 남궁설은 배신자라도 보듯 선우린을 향해 눈을 흘기고 있다.
잠시 후 남궁설이 뭔가가 들어 있는 보따리를 풀더니 그 안의 내용물을 내게 건넸다.
죽립이었다.
“이거 써요. 어제 풍세학 공자를 이긴 일로 송 오라버니도 많이 유명해졌단 말이에요. 그냥 다니면 여기저기 말 거는 사람들 때문에 인사만 받아주다가 날 저물어요.”
“뭘 이런 걸 다. 아무튼 잘 쓸게. 고마워.”
나는 한 손으로 죽립을 빙글 돌리며 멋들어지게 착용했다.
그 후에 남궁설에게 물었다.
“어때, 어울려?”
잠깐이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남궁설이 아미를 찡그리더니 말했다.
“어, 억지로 멋있는 척 하지 말라구요. 별로 멋없으니까.”
알았어. 알았는데, 말은 왜 더듬어?
남궁설이 신형을 휙 돌리더니 대연무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개인전의 사강부터는 대연무장에서 시합이 펼쳐진다. 단체전도 대연무장에서 펼쳐진다.
내가 빙그레 웃으며 그 뒤를 따르자 선우린이 나와 보조를 맞추며 말했다.
“송 오라버니, 방금 빙글 돌려서 죽립 쓸 때, 사실은 멋있었어요. 반응 보니 설아도 멋있다고 느꼈나 봐요.”
“하하, 그래?”
“그렇게 쓰는 법, 나중에 저한테도 가르쳐주세요. 알았죠?”
“하하. 알았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얘들이랑 있으면 심심할 틈이 별로 없다.
단목강과 추소륵이 비무대의 중앙으로 모이자 주심이 왼손을 펼쳐 단목강을 가리켰다.
주심이 오른손에 들려 있는 종이의 내용을 틈틈이 확인해가며 외쳤다.
“동부 예선을 이 위로 통과하고, 통합 잠룡대전에서는 일 조에서 출발하여 사강에 올라온, 동부지맹의 사 년차, 단목강 공자요! 응원의 박수를 부탁드리겠소!”
뭐야? 사강부터는 저런 식으로 소개까지 하는 거야?
“와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이 환호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자, 단목강이 연무장의 사방을 향해 차례로 포권해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박수가 계속 이어졌다.
주심이 이번에는 오른손을 펼쳐 추소륵을 가리키며 외쳤다.
“북부 예선을 일 위로 통과하고, 통합 잠룡대전에서는 사 조에서 출발하여 사강에 올라온, 북부지맹의 육 년차, 추소륵 공자요! 응원의 박수, 부탁드리겠소!”
“와아아아아아아!”
또다시 관중들이 환호와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추소륵 또한 사방을 향해 차례로 포권하며 답례를 했다.
이후에 주심이 단목강과 추소륵에게 상호 예를 취하게 하더니, 이윽고 시작 지점으로 물러나게 했다.
곧 주심이 외쳤다.
“단목강 대 추소륵! 사강 첫 시합, 시작!”
단목강과 추소륵이 몸을 풀 듯 탐색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 왼쪽 옆에 있는 남궁설이 말했다.
“지금껏 조장님의 시합들을 첫 시합 말고는 다 지켜봤는데, 태화지부에서 싸울 때보다 성취가 훨씬 높아진 느낌이었어요.”
얘도 실력자다 보니, 당시의 단목강과 지금의 단목강이 매우 다르다는 걸 금세 알아챈 것이다.
내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남궁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추소륵 공자의 시합도 챙겨 봤어요. 왜 그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지 충분히 알겠더라구요. 권법으로 유명한 소림이 검법까지 저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어요. 물론 추소륵 공자의 성취가 높아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만.”
나 또한 공감하는 바다.
추소륵의 시합을 본 적은 없으나, 나는 장강에서 그가 실전을 펼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 오른쪽 옆에 있던 선우린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송 오라버니는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이길 것 같아요?”
“조장님이 이기길 바라고 있어.”
“아니, 그걸 바라는 건 우리 입장에서 당연한 거구요. 제가 물어본 건 결과 예측이잖아요.”
“음······.”
박빙일 거라고 생각한다.
요새 단목강의 성취가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일 년쯤 후에 붙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단목강이 추소륵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조장님이 결승에 진출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예상하시는 거군요?”
내 기색을 살피던 선우린의 말이었다.
나는 가타부타 대꾸하지 않은 채 엷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시합은 단목강이 우세를 잡기도 하고 추소륵이 우세를 잡기도 하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역시나 박빙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이각(30분)을 훌쩍 넘어 삼각(45분)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쯤 되자 두 사람 모두 체력과 공력을 많이 소진한 탓에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단목강은 최선을 다하는 중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밀리고 있다.
확실히 추소륵이 한 끗 위에 있는 것이다.
삼각쯤 되었을 무렵, 추소륵의 검이 단목강의 가슴께를 겨누는 것으로, 결국 시합이 종료되었다.
“시합 종료! 북부지맹 추소륵, 승!”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두 소녀의 분위기는 축 늘어져 있다.
평소 단목강을 잘 따르는 그녀들이니 당연히 저런 반응을 보일만도 하다.
예상했던 결과이긴 하지만 나도 아쉽다.
환호성이 어느 정도 줄어든 후에 두 소녀에게 말했다.
“누이들, 나 이제 시합 준비하러 가볼게.”
선우린이 대꾸했다.
“저, 오늘은 방금 전과 같은 기분, 또 느끼고 싶지 않아요.”
옆에서 남궁설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으니, 그녀들을 향해 씩 웃어줬다.
천천히 그곳을 벗어났다.
비무 준비를 마친 후, 대기심의 안내에 따라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반대편에서 올라오고 있는 약관 즈음의 청년이 보인다.
준수한 용모의 저 청년이 바로 화산의 선의림이다.
느껴지는 기도가 풍세학만큼이나 차분하다.
선의림이 서부 예선에서 이 위로 올라오긴 했으나, 풍세학에 비해 실력이 뒤처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동부 예선의 결승에서 단목강이 종금무를 상대로 적당히 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주심이 손짓하여 우리를 비무대의 중앙 쪽으로 다가오게 했다. 아까처럼 소개를 하려는 것이다.
뭔가가 적힌 종이를 틈틈이 확인해 가며 주심이 외치기 시작했다. 먼저 소개한 쪽은 좌측에 있는 선의림이었다.
“서부 예선을 이 위로 통과하고, 통합 잠룡대전에서는 오 조에서 출발하여 사강에 올라온, 서부지맹의 오 년차, 선의림 공자요! 응원의 박수를 부탁드리겠소!”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선의림은 화산의 제자인데, 현 무림맹주인 운천흠 또한 화산파 소속이다 보니 더욱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화산파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환호성이 잦아들자 주심이 이번에는 나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동부 예선에서······, 에······, 그러니까 예비 명단으로 왔고, 통합 잠룡대전에서는 팔 조에서 출발하여 사강에 올라온, 동부지맹의 삼 년차······, 어어······?”
종이를 틈틈이 확인하며 외치던 주심이 어느 부분인가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계, 계반······?”
종이에 적힌 사항들에는 반까지 적혀 있는 모양이다.
앞에서 소개한 이들은 모두가 갑반이고, 실상 그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니 굳이 언급하지 않았던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