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99
서부지맹과 북부지맹의 대결이 끝나자마자, 동부지맹의 교관들과 관도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너희들이 제출한 출전 명단과 순서는 확인했다. 여러 면에서 칭찬할만한 명단과 순번이라고 생각한다.”
출전 명단과 순서를 짜는 일은 관도들의 자율에 맡겼던 모양이다. 책임 교관인 제갈수광의 의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다운 방식이기도 하다.
제갈수광의 칭찬에 관도들이 빙그레 웃으며 주경명을 바라보았다. 주경명이 민망하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그의 주도하에 명단과 순서를 짠 모양이다.
두뇌로 유명한 합비주가의 후손이니 나름의 능력을 발휘했다는 거겠지.
제갈수광이 말했다.
“그 순서를 기준으로 가되, 상황에 따라 한두 명은 바뀔 수도 있다. 그 점은 인지하고 있도록. 알겠지?”
“예!”
“설령 자신에게 버거운 상대라고 할지라도, 끝까지 버티며 상대의 체력과 공력을 최대한 소모시키는 게 관건임을 잊지 마라. 알겠지?”
그래야 바로 다음에 올라올 동료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
관도들이 또다시 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대전이 준비되어 동부지맹과 남부지맹을 대표하는 관도들 한 명씩이 비무대의 중앙에 서서 상호 예를 취했다.
우리 쪽 일 위인 종금무와 남부지맹 쪽 일 위인 당효광이었다.
두 사람이 비무대 아래의 대기석으로 내려오자마자 숫자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십! 십구! 십팔! 십칠! 십육······.”
부심의 외침이다.
“······육! 오! 사! 삼! 이!”
부심이 거기까지 외친 순간, 남부지맹의 대기석 쪽에서 청년 하나가 비무대 위로 도약해 올라왔다.
남부지맹의 일(一) 순번은 서문세가의 서문규였다.
“일!”
부심이 그렇게 외친 순간, 우리 쪽에서도 한 사람이 비무대 위로 도약해 올라갔다.
단목강이었다.
서문규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비무대 건너편에 있는 남부지맹 측의 모두가 놀란 기색이다.
개인전에서 사강에까지 진출하여 추소륵과 나름 대등한 대결을 펼쳤던 단목강이다.
마지막 순번 즈음에나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강자가 처음부터 나왔으니 놀란 것이다.
좁은 비무대 위에서 단목강과 서문규가 치열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서문세가의 후손인 만큼 서문규의 실력도 수준급이다. 가뜩이나 그는 남부 예선을 삼 위로 통과했다. 충분히 선봉으로 나설만한 실력자다.
그러나 상대인 단목강의 실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단목강은 요 근래 여러 차례의 실전을 겪으며 실력이 훨씬 더 상승한 상태니까.
단목강이 맹렬하게 공격을 가하자 서문규는 금세 외곽으로 몰렸다.
건너편을 보니 남부지맹의 교관들과 관도들은 대책 마련에 바쁜 모습들이었다.
다소 당황한 분위기다.
그들에게도 원래 계획되었던 두 번째 출전자가 있었을 텐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바꿀 것 같은 기색이다. 단목강을 상대로 어설픈 실력의 관도를 내보내 봐야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저런 식으로 상대에 따라 즉각 대처를 바꿀 수 있다는 게 이 대전 방식의 묘미이기도 하다.
단목강과 서문규의 대결은 채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마무리되었다. 개인전처럼 넓은 비무대였으면 서문규도 훨씬 더 오래 버텼을 텐데, 좁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동부지맹 단목강, 승!”
주심의 선언이 끝나자마자 부심이 역순으로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단목강은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다.
“이십! 십구! 십팔! 십칠! 십육! 십오! 십사!”
부심이 거기까지 외쳤을 때쯤, 남부지맹 쪽에서 한 청년이 비무대 위로 도약했다.
남부지맹의 이(二) 순번은 청성파의 국규민이었다.
국규민은 남부 예선을 이 위로 통과한 실력자다.
개인전에서는 십육강에서 탈락했는데, 당시에 그를 탈락시켰던 장본인이 바로 단목강이었다.
단목강이 어느 정도 힘을 소모한 상태이기도 하니, 나름 복수전의 느낌으로 투입된 모양이다.
국규민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단목강의 호흡이 약간이나마 거칠어진 이 순간에 확실하게 몰아붙이겠다는 기세다.
단목강 또한 물러서지 않은 채로 맞섰다.
일다경(20분) 남짓이 지났을 무렵, 주심의 외침이 들렸다.
“도, 동부지맹 단목강, 승!”
주심의 선언이 있자마자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단목강! 단목강! 단목강! 단목강!”
관중들이 이렇게나 열광할만하다.
남부 예선의 삼 위와 이 위를 단목강 혼자서 꺾어버린 상황이니까.
사강전에서 추소륵과의 대결을 통해 실력을 충분히 증명하긴 했으나, 단목강이 이 정도 모습까지 보여주리라고는 다들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쯤 되니 남부지맹 쪽은 더욱 당황한 기색이었다.
“헉! 헉! 허억······!”
단목강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가운데, 부심은 숫자를 역순으로 외치는 중이다.
“······십오! 십사!”
그때쯤, 남부지맹 쪽에서 곧바로 청년 하나가 비무대 위로 튀어 올라왔다.
남부지맹의 삼 순번은 점창파의 두원웅이었다.
두원웅은 남부 예선을 사 위로 통과했다.
개인전의 삼십이강에서 나와 대결했던 상대이기도 하다.
남부지맹의 입장에서도 기세가 너무 꺾이면 안 되니, 이쯤에서는 기세를 다시 가져오겠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그나마 남은 관도들 중에서도 상위권을 내보낸 모양이다. 그렇다고 남부 예선의 일 위인 당효광을 벌써부터 내보낼 수는 없는 문제니까.
한데 단목강은 호흡이 매우 거칠어진 상황임에도 두원웅을 상대로도 계속 버티며 싸우는 괴력을 보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관중석에서도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단목강에 대한 응원이다.
옆에 있던 강하령이 팔꿈치로 내 팔을 건들더니, 턱짓으로 저쪽 옆에 서있는 종금무를 가리켰다.
단목강의 모습을 보고 있는 종금무의 두 눈은 커진 상태인데, 불끈 말아 쥔 그의 양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자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강하령의 전음이 들렸다.
[주경명 공자가 단목강 공자를 일 순번에 배치한 의도가 성공한 것 같네요. 단목강 공자를 통해 종금무 공자의 경쟁심과 투쟁심을 부추기려는 의도였거든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단목강은 두원웅을 상대로도 반각에 가까운 시간동안 버텼다.
미쳤다. 나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을 정도다.
남부지맹 측은 더더욱 당황한 모습이었다. 단목강이 그들의 계산을 넘어선 활약을 펼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저렇게나 지친 상태의 단목강이 두원웅까지 꺾기는 역시나 무리였다.
“남부지맹, 두원웅, 승!”
주심이 선언하자마자 부심이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십······!”
부심은 그 다음 숫자를 외칠 필요도 없었다.
곧바로 우리 쪽에서 한 사람이 비무대 위로 도약해 올라간 탓이다.
종금무다.
비무대 위로 올라가자마자 종금무의 신형이 빠르게 두원웅을 향해 짓쳐들었다.
두원웅도 그렇고, 남부지맹도 그렇고, 깜짝 놀란 모습이다.
관중들마저도 놀란 음성을 내뱉고 있다.
종금무는 우리 쪽 예선을 일 위로 통과한 실력자다.
후반의 육 순번이나 칠 순번에 배치되어야 할 것 같은 우리 쪽의 최강자 두 명이, 오히려 초반인 일 순번과 이 순번에 배치된 것이다. 그러니 다들 놀랄 수밖에.
종금무는 맹수처럼 두원웅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흥분해서 마구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기세는 맹수 같으나 동작 하나하나는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깔끔했다. 괜히 우리 쪽의 일 위가 아닌 것이다.
반각 남짓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종금무가 두원웅의 목에 목검을 겨누었다. 그전에 단목강이 두원웅의 힘을 어느 정도 소모시켰기에 가능했던 결과이기도 했다.
“동부지맹, 종금무, 승!”
“이십! 십구! 십팔······.”
남부지맹 쪽에서 한 명의 청년이 올라왔다.
어느새 남부지맹의 사 순번이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인물이기에 옆에 있는 강하령에게 물었다.
“저 관도는 누구요?”
“형산파의 웅익기 공자예요. 남부 예선에서는 칠 위로 진출했고, 개인전 삼십이강에서 제갈건 공자를 만나 탈락했어요. 방어적인 검술을 구사해요.”
지켜보니 확실히 방어적인 검술이었다.
애초에 종금무를 이기기보다는 지치게 할 생각으로 올려 보낸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금무는 일각이 지나기 전에 웅익기를 패퇴시켰다.
“동부지맹, 종금무, 승!”
웅익기에 이어 남부지맹에서 올라온 오 순번은 여관도였다.
“저 소저도 누군지 모르겠구려.”
내 말에 강하령이 대꾸했다.
“해남파의 오숭희 소저예요. 남부 예선에서는 육 위로 진출했고, 개인전의 삼십이강에서 풍세학 공자에게 졌어요. 제 시합과 동시 진행된 시합이라 직접 보진 못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경공이 뛰어나서 상대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모양이에요.”
지켜보니 강하령의 말 대로였다.
종금무는 오숭희를 외곽으로 몰아넣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숭희는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며 대결을 장기전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자 종금무 또한 호흡이 제법 거칠어진 상태라, 회피력이 좋은 오숭희를 확실하게 압박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결은 일다경(20분)을 넘겨서야 끝을 맺었다.
“동부지맹, 종금무, 승!”
“와아아아아아!”
어찌되었건 종금무 혼자서 남부지맹의 관도 세 명을 패퇴시킨 셈이니, 관중들한테서 환호가 나올만하다.
그러나 종금무의 호흡 또한 거의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허억! 허어억! 허어억!”
부심이 숫자를 외치는 가운데, 남부지맹 측의 육 순번이 올라왔다.
그러자마자 제갈수광이 외쳤다.
“동부지맹, 대전자 교체!”
종금무의 호흡이 과하게 거칠어진 상태라, 어차피 저 상태로 싸워도 다음 상대에게 영향을 못 미칠 것 같다는 판단이다.
제갈수광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부심이 또다시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후에 우리 쪽에서 비무대에 오른 이는 엄상평이었다.
나와 함께 예비 명단으로 이곳에 왔던, 바로 그다.
강하령이 말했다.
“단목강 공자와 종금무 공자가 초반부터 일정 이상의 성과를 내면 예비 명단인 엄상평 공자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계획되어 있었어요. 단목강 공자와 종금무 공자도 그래서 더 열심히 싸웠던 거구요.”
뭐, 기특한 생각이긴 하다.
단목강과 종금무가 큰 성과를 낸 상황이니, 엄상평으로서도 부담감이 훨씬 덜한 상태일 거고.
“그전에 올라온 상대방은 누구요?”
남부지맹의 육 순번인 청년은 덩치가 상당히 컸다. 큰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도를 들고 있었다.
“광서, 잠림보의 잠관철 공자예요. 남부 예선에서는 오 위를 차지했구요.”
“아하, 잠림보.”
천마신교에서 알던 정보에 의하면 잠림보는 광서의 계림에 있다. 계림은 풍광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잠림보는 세가로 분류된다. 잠씨 성을 쓰는 무가가 계림에 터를 잡았기에 잠림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광서제일세가인데, 천하 세가 서열록에는 이십오 위 즈음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안다.
“개인전 삼십이강에서는 방금 내려온 종금무 공자에게 져서 탈락했어요. 덩치만 큰 게 아니라 힘도 좋아서, 도법이 매우 강력해요. 지친 종 공자로 하여금 그대로 맞서게 하면 부상의 위험이 크다고 판단하신 모양이에요.”
그런 이유로 제갈수광이 교체를 시켰다는 뜻이다.
엄상평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반의반각을 살짝 넘겼을 즈음에 패배한 것이다.
“남부지맹, 잠관철, 승!”
비무대를 내려오는 엄상평은 미안함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엄상평에 이어 우리 쪽의 사 순번으로 비무대에 올라간 이는 복건 무이문의 형가섭이었다. 형가섭은 육 위로 동부 예선을 통과했었다.
그는 큰 키에 긴 검을 쓴다.
키만 큰 게 아니라 팔다리도 길다.
형가섭은 길쭉길쭉한 신체와 무기의 이점을 잘 활용하여, 잠관철을 상대로 매우 오래 대결을 이어갔다.
본인이 이기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상대의 힘을 최대한 소진시키겠다는 의도였다.
의도가 나름 성공하여, 두 사람의 대결은 일다경(20분) 가량이나 지속되다가 끝났다.
“남부지맹, 잠관철, 승!”
잠관철의 호흡이 상당히 거칠어진 상태에서 우리 쪽의 오 순번이 올라갔다. 절강목가의 목태월이다. 그는 동부 예선에서 사 위를 차지했었다.
삼십이강이 펼쳐졌던 날, 패배한 후에 충격 가득한 모습으로 천막에 앉아 있던 목태월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의 상대는 북부 예선의 오 위인 악미조였다.
목태월은 키가 작고 약간 뚱뚱한 편인데, 동글동글한 얼굴 안의 작은 눈동자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각오가 담긴 눈동자다.
그 각오를 증명이라도 하듯, 목태월은 반의반각 남짓에 잠관철을 꺾었다. 잠관철이 지쳐 있었기에 제법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부지맹, 목태월, 승!”
이윽고 남부지맹의 마지막 순번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기세부터가 남다른 그는 사천당가의 당효광이다.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당효광은 팔강에서 선의림을 만나서 탈락했다.
단체전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각오가 느껴진다. 최후 순번이라서 그런지 그 각오가 더 굳세 보였다.
당효광은 하박과 장딴지와 허리에 가죽띠들을 착용한 상태다. 가죽 띠에는 작은 암기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상체에는 특수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갑옷의 이곳저곳에는 비도들이 꽂혀 있었고, 주머니도 서너 개 달려 있었다.
강하령이 말했다.
“모든 게 당가에서 교류 비무를 위해 특수 제작한 수련용 암기들이에요. 원래는 뾰족해야 할 부분들을 두껍고 뭉툭하게 만들어 안전성을 확보했죠. 들어 보니 가죽 주머니에 들어 있는 건 모래라고 해요. 독은 안 발라져 있지만 저 모래에 닿으면 패배로 간주되죠. 단혼사 취급이라서요.”
단혼사는 사천당가의 유명한 암기로, 당가 비전의 절독이 묻어 있는 모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하령이 말했다.
“제가 다음 순번이에요. 가서 준비하고 있어야 해요.”
“아, 알겠소. 건투를 빌겠소.”
강하령이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이동했다.
나름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미소였다.
목태월은 의외로 당효광을 상대로 오래 버텨주는 중이다.
목태월은 키가 작고 뚱뚱한 편이나, 실제 움직임은 부드러우면서도 재빠르다. 게다가 변칙과 임기응변에도 능하다.
그러한 특징 덕에 당효광의 여러 변칙적인 암기술에도 나름의 대처를 해내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당효광이 모래를 뿌리자, 목태월이 등에 차고 있던 피풍의를 휘두르며 모래를 막아냈다. 피풍의에 내공이 주입되어 펼쳐지며 모래를 막아낸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훌륭한 대처다.
관중석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데 강하령이 떠난 내 옆자리로 다가온 인물이 있었다. 주경명이었다.
주경명 또한 목태월과 당효광의 대결을 지켜보며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름의 만족감이 깃든 미소였다. 보아하니 목태월의 저러한 역량을 생각하여 일부러 당효광과 대결할 수 있는 순번에 배치했던 모양이다.
그에게 말했다.
“훌륭한 순번 배치 같소.”
“운이 좋았소. 예측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덕분이오. 단목 공자와 종 공자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큰 활약을 해준 덕분이기도 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주경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우리 세 명이 당효광 공자를 상대로 이겨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울 뿐이오.”
오 순번이 목태월이고 육 순번이 강하령이며 칠 순번이 주경명이다. 이 세 명이 당효광을 꺾어야만 동부지맹이 승리하는 것이다.
주경명은 마지막 순번인 만큼, 부담감도 더 큰 모양이다.
주경명이 말했다.
“나를 마지막 순번에 배치한 이유는 사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내 순번을 송 공자에게 양보하기 위함이었소.”
단목강과 종금무를 초반 순번에 몰아서 투입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측했던 바였다.
차분한 목소리로 주경명에게 대꾸해줬다.
“내가 주 공자 대신 나가서 싸우길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드릴 용의가 있소. 그러나 나는 그게 주 공자 본인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오. 지금 주 공자는 결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러는 거잖소.”
“그렇기는 한데······.”
“주 공자는 오 년차요. 내년에는 육 년차로서 또다시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해야 하오. 주 공자는 두뇌 역할을 하시니, 내년에도 후배들을 이끌고 단체전을 치러야 할 테지요. 한데 이런 부담감과 정면으로 맞서보지도 않은 채로 내년에 후배들을 이끌 생각이시오?”
주경명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소. 결과는 모르지요. 그러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단체를 책임진 막대한 부담감과 싸워보는 경험 그 자체 아니오? 이기면 좋겠지만 진다고 해도 주 공자는 큰 배움을 얻게 될 텐데, 이런 기회를 날리고 싶으시오?”
여전히 눈동자가 커져 있는 주경명을 향해 말했다.
“부담감에 관해서는 장강에서의 일을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소. 그때 언제 부담감 생각하셨소?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치열하게 싸웠을 뿐이잖소. 왜? 이겨내지 못하면 죽으니까.”
당시의 일이 떠오르는지, 주경명이 꿀꺽 침을 삼켰다.
이윽고 주경명의 표정이 평상시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가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소, 송 공자.”
“고맙기는요.”
내가 대꾸하자 주경명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한데 단순히 송 공자가 출전하기 싫어서 그런 말을 하시는 건 아니오?”
농담조의 물음이다. 곧바로 대꾸해줬다.
“물론 그런 면도 있소. 부인하지 않겠소.”
“푸하하하!”
내 대꾸에 주경명이 크게 웃어 보이더니 말했다.
“하여간 송 공자는 특이한 분이시구려. 이런 걸 바로 인정해버리다니.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단순히 귀찮은 걸 싫어할 뿐이오.”
“푸하하!”
또다시 재미있다는 듯 웃어 보인 주경명이 말했다.
“최선을 다해 싸우고 오겠소. 지켜봐 주시오.”
당효광의 각오도 대단했지만 목태월의 각오도 만만치 않았다.
그 각오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목태월은 반각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버티며 싸웠다.
“남부지맹, 당효광, 승!”
그 외침이 들리자마자 강하령이 올라섰다. 그녀는 동부 예선을 오 위로 통과했다.
강하령의 검법은 간결하면서도 공수의 중심이 잘 잡혀 있었다. 덕분에 당효광의 압박에 적절히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검후의 제자답다.
풍세학을 상대로도 제법 오랜 시간 버티며 싸웠다더니, 지금의 모습을 보니 납득이 간다.
당효광의 실력이 훨씬 뛰어난 건 자명한 사실이나, 움직임을 보니 그 또한 약간은 조바심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체력과 공력의 소모를 최소화한 채로 강하령을 빠르게 내려 보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고 있으니 저러는 거다.
게다가 암기는 일대일의 비무에 적합한 무기가 아니다.
실전에서 은밀히 날려 보낼 때에는 더없이 큰 위력을 발휘하나, 이렇듯 대낮에 대놓고 싸우는 상황에서는 효율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암기술을 익혔기에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강하령은 일각 남짓을 버텼다.
“남부지맹, 당효광, 승!”
그 외침이 들리자마자 우리 쪽 최후 순번인 주경명이 비무대 위로 뛰어 올랐다. 그는 동부 예선을 삼 위로 통과했다.
비무대에 올라선 주경명이 즉시 당효광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효광은 호흡이 거칠어진 상태다.
좁은 비무대 위에서의 대결은 치열해서, 지치기도 더 빨리 지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대결은 이각(30분)을 넘겨, 단체전에서의 일 대 일 비무로는 최장 시간을 갱신하는 중이다.
당효광은 역시 당효광이었다.
더 이상 던질 암기가 없다 보니, 마지막 순간에는 비도 두 자루를 들고 싸우다가 그것마저 털어냈다.
주경명이 그 비도들마저 피해내자, 당효광은 권장각술을 펼치며 달려들었다. 당효광은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단한 의지다. 저러니 우승 후보로 꼽혔던 거겠지.
이각하고도 반각쯤이 더 흘렀을 때쯤, 환호성을 보내던 관중석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다, 단체전 예선 이 시합 종료! 동부지맹, 승!”
그 외침이 들리자마자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우리 교관들과 관도들이 비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며 얼싸안은 채 기뻐하고 있다. 여관도들을 포함한 몇몇은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저럴만하지.
나도 흐뭇하다.
이렇듯 동부지맹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단체전 결승에 진출했다.
결정을 지은 건 주경명이나, 단목강과 종금무 둘이서 다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특히 단목강의 공이 가장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