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01
대성심단과 소성심단은 성수곡의 영약이다.
소림의 영약을 대환단과 소환단 식으로 구분하는 것처럼, 성수곡에서도 효능이 큰 걸 대성심단, 작은 걸 소성심단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물론 효능은 소림에서 만든 대환단과 소환단 쪽이 훨씬 뛰어나다.
이는 결코 성수곡의 연단술이 소림에 비해 크게 뒤처지기 때문이 아니다.
성수곡이라는 세력의 성격이, 무림 세력이기 이전에 병을 고치는 걸 우선으로 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즉, 성수곡의 좋은 약재는 우선적으로 병을 고치는 약으로 제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약재들 중에서도 재고가 많거나 보관 기간이 다 되어가는 재료들만 사용해서 만드는 게 바로 성수곡의 대성심단과 소성심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영약들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가졌으니, 이래서 성수곡이 용하다고 하는 거다.
성수곡의 소성심단이라 해도 사오 년 공력이 증진되는데, 그게 결코 사소한 게 아니다.
단순 계산상으로 사오 년의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건데, 무인에게 있어 그 가치가 어찌 사소할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무림맹 집법당주한테서 나온 정보이니 허튼 정보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기밀 정보는 아니다.
우승자의 부상은 결승전이 펼쳐지기 전에 발표되기에, 가만히 있어도 곧 알게 될 정보이긴 했다.
다만, 우승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내 심경에, 파장이 약간 일찍 찾아온 것뿐이다.
“저, 느껴져요. 송 오라버니 지금 눈빛 변했어요.”
선우린이 상냥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하여간 눈치 빨라.
남궁설이 대꾸했다.
“변할 만도 하지. 사오 년 공력이 어딘데. 뭐, 송 오라버니가 단순히 약을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야,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평소에 무슨 이상한 약이라도 빨고 다니는 것 같잖아.
그렇게 말한 후 잠시 나를 바라보던 남궁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진짜 눈빛이 변하긴 했는데? 우승, 진심으로 노릴 생각이에요? 하긴, 나 같아도 노리겠지만.”
“하하, 글쎄. 아직 생각 중이야.”
이후에도 두 소녀와 더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오전에도 하늘에 구름이 좀 끼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 구름이 더 짙어져 있다.
비무대가 개인전용 비무대로 다시 넓어지고 있다.
석조 비무대지만 무인들이 공력을 써서 작업을 하고 있기에 빠른 속도로 복원되는 중이다.
천막에서 비무에 필요한 장비들을 착용한 후, 이후에는 각종 검사들도 미리 받고는 대기석에 앉았다.
소성심단 생각이 난다.
하필 이번 우승 보상이 영약이라니.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와 준우승자는 주목을 받는 수준부터가 다르다.
준우승자는 이삼 년만 지나도 스리슬쩍 잊히지만, 우승자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당연히 천마신교에도 보고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우승은 피할 생각이었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 소성심단이라니.
갈등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냉정하게 따져봤다.
통합 잠룡대전을 위해 본맹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나는 한 차례 공력이 상승한 상태다. 일전에 청선곡의 청심단을 복용한 후, 운 좋게 몇 년 공력이 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재 내 공력은 사십팔 년 공력 정도다.
전생의 경험을 통해 내가 예상하는 절정의 경지는 오십칠 년 공력이니, 거기까지 구 년 공력 정도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구 년 공력이면 회회심공의 특성을 살려서 꾸준히 수련하고 나머지는 운기로 채웠을 경우, 육 년 남짓이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데 소성심단은 사오 년 공력을 증진시켜 준다.
회회심공은 약효를 더 잘 흡수하기에, 내 경우에는 오륙 년 공력이 증진될 것이다.
증진될 공력을 방어적으로 오 년이라고만 잡아도, 나는 절정까지 최대 사 년 공력만 더 모으면 된다.
수치상으로 사 년 공력은, 회회심공 특유의 수련 방식이라면 삼 년이면 모을 수 있다.
즉, 소성심단을 복용했을 경우, 나는 삼 년 후에 절정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송유겸의 현재 나이가 열아홉 살이니, 추가적인 이로운 변수 없이 회회심공만 수련한다 해도, 스물두 살이면 절정에 오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방어적인 계산이니, 어쩌면 스물한 살에 절정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미친······!’
스물한두 살에 절정이라니.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에 절정고수가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이건 포기가 안 된다.
절정은 갈 수 있는 한 빨리 가는 게 무조건 좋다.
어느새 개인전의 결승전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관중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가운데, 대기심의 지시에 따라 비무대 위로 올랐다.
비무대의 반대편에서 올라온 추소륵의 모습이 보인다.
곧 주심이 손짓으로 추소륵과 나를 비무대의 중앙으로 불렀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와중에 추소륵이 나를 향해 살짝 목례를 해보이고 있다. 장강에서의 일로 안면이 있으니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를 향해 살짝 목례해줬다.
우리를 본인의 양 옆에 세운 주심이 이윽고 음성에 내공을 담아 관중들을 향해 외쳤다.
“아시다시피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한 모든 관도들에게는 소정의 장학금이 지급되며, 성적이 십육강, 팔강, 사강, 결승으로 높아질수록 지급되는 장학금도 커지게 되오! 그 와중에도 우승자는 준우승자에 비해 배 이상 많은 장학금을 거머쥐게 되며, 우승자에게는 부상까지 더해진다는 걸 아실 것이오!”
관도들의 비무 대회인 만큼 상금을 장학금으로 순화해서 부르는 거다.
참고로 상금 규모는 통합 잠룡대전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매우 크다고 알고 있다.
무림맹 본맹에서 주최하는 대규모 행사다보니, 상계 쪽에서 들어오는 후원금의 액수만 해도 매우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부상은······!”
극적 효과를 위해 잠시 말을 멈췄던 주심이 다시 외쳤다.
“성수곡의 소성심단이오!”
“우오오오오오!”
관중들의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관중들의 반응이 잦아들자 주심이 외쳤다.
“귀한 영약을 지원해주신 성수곡주와 성수곡의 구성원들에게 감사드리며, 이제 두 명의 자랑스러운 결승 진출자들을 여러분께 소개하겠소! 결승에 오른 순서대로, 먼저 추소륵 공자요!”
“와아아아아!”
“추소륵! 추소륵! 추소륵! 추소륵!”
관중들이 한동안 추소륵의 이름을 연호했다.
관중들이 연호하는 소리가 잦아들 무렵, 주심이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읽으며 외침을 이어갔다.
“소림 출신인 추소륵 공자는 북부지맹의 갑반에 육 년차이며, 북부 예선을 일 위로 통과했소! 통합 잠룡대전에서는 사 조에 속하여, 삼십이강에서는 서부지맹의 칠 위였던 숙계향 관도를, 십육강에서는 남부지맹의 삼 위였던 서문규 관도를, 팔강에서는 동부지맹의 일 위였던 종금무 관도를, 사강에서는 동부지맹의 이 위였던 단목강 관도를 각각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했소! 과연 명성에 걸맞은 행보가 아닐 수 없었소!”
통합 잠룡대전의 백미인 개인전 결승이라서 그런지, 지금껏 상대했던 관도들의 목록까지 되짚어주고 있다.
“팔강과 사강에서 동부지맹의 상위 관도들을 이기고 올라온 그가, 결승에서도 또다시 동부지맹의 관도를 상대하게 되었소! 추소륵 공자가 이번에도 동부지맹을 꺾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봅시다! 추소륵 공자에게 뜨거운 성원을 부탁드리겠소!”
“와아아아아아!”
“추소륵! 추소륵! 추소륵!”
관중들이 또다시 추소륵의 이름을 연호했다.
결승전다운 열기가 아닐 수 없다.
주심이 외쳤다.
“이번에는 송유겸 공자를 소개하겠소!”
“우오오오오오!”
“송유겸! 송유겸! 송유겸! 송유겸!”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내 이름을 연호하고 있는데,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추소륵 때보다 소리가 더 큰 것 같다.
“강서의 송가장 출신인 송유겸 공자는 동부지맹의 계반에 삼 년차이며, 예비 명단으로 통합 잠룡대전에 왔소! 삼 년차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한데, 더 재미있는 건 계반이라는 점일 것이오!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계반 소속의 관도가 통합 잠룡대전의 결승에 진출한 건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하오!”
주심이 바로 다시 외쳤다.
“들어보니 각 지맹의 잠룡관들이 계반의 숙소와 시설들에 부족함이 없는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고 하오! 즉, 송유겸 공자가 잠룡관 계반 관도들의 후생 증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오! 나아가서, 각 지맹 잠룡관들은 내년에 계반의 숙소가 부족해지는 건 아닌지에 대해 벌써부터 염려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리고 있소!”
농담이겠지? 설마 진담이겠어?
“와하하하하하!”
어쨌거나 주심의 말이 잘 먹혀서 관중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송유겸 공자는 통합 잠룡대전의 팔 조에 속하여, 삼십이강에서는 남부지맹의 사 위였던 두원웅 관도를, 십육강에서는 서부지맹의 오 위였던 상평운 관도를, 팔강에서는 서부지맹의 일 위였던 풍세학 관도를, 사강에서는 서부지맹의 이 위였던 선의림 관도를 각각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했소! 즉, 서부지맹의 강력한 우승 후보 두 명을 차례로 꺾고 올라오며 이번 통합 잠룡대전에서 대파란을 일으킨 것이오!”
주심이 외침을 이어갔다.
“이제 송유겸 공자는 동부지맹의 동료들을 꺾고 올라온 추소륵 공자를 상대하게 되었소! 우승 후보들을 패퇴시킨 송유겸 공자가, 이번에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를 꺾고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봅시다! 송유겸 공자를 향한 뜨거운 응원을 부탁드리겠소!”
“우오오오오오오오!”
“송유겸! 송유겸! 송유겸!”
역시나 내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더 큰 것 같다.
주심의 지시에 따라 상호 예를 취했다.
“송 공자, 잘 부탁드리겠소.”
“하하, 추 공자. 살살 해주시오.”
“그건 내가 부탁하고 싶은 말이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추소륵에게서는 방심하는 기색 따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후에 우리는 시작 지점으로 물러섰다.
흔히 하는 말로 ‘북숭소림 남존무당’이라는 말이 있다.
북쪽에서는 소림의 무학을 숭상하고, 남쪽에서는 무당의 무학을 존경한다는 뜻이다.
소림과 무당의 무학이 그 정도로 깊이가 있기에 그런 말도 나온 거다.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추소륵은 과연 소림이 아끼는 제자다운 기도를 보이고 있다.
기세가 고고하게 우뚝 선 느낌인데, 전체적으로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차분하게 안정되어 있다.
주심의 외침이 들렸다.
“추소륵 대 송유겸! 결승전 시합, 시작!”
짙어지고 있던 하늘의 구름이 점점 먹구름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탐색전에 들어갔다.
나는 시작하자마자 두 자루의 소비도를 뽑아 들고는 그것들을 양손에 쥔 채로 권법을 펼쳤다.
추소륵은 목검으로 차분하게 검술을 펼치는 중이다.
검을 찌르거나 휘두르는 동작 자체는 용맹쾌속한데, 그 와중에도 전체적인 움직임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역시 소림은 소림이다.
탐색전이 반각 가량 지속되었을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끼더라니,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빗줄기는 빠르게 거세졌다.
많은 관중들이 비에 대비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인다.
가장 중요한 시합이 펼쳐지고 있는데 하필 비가 온다며 투덜거리는 소리들도 들린다.
그 와중에도 빗줄기는 계속 굵어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퍼붓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소의 나는 비에 대한 호불호가 딱히 없는데, 이 순간에 내리는 비는 참 반가웠다.
비 때문에 관중들이 시합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거든.
일다경 남짓이 흘렀다.
쏴아아아아아아-
거센 빗줄기 속에서 추소륵과 나도 거세게 얽히는 중이다.
빗줄기가 굵어진 참에 내가 맹렬하게 달려들었기에, 추소륵도 어쩔 수 없이 얽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슈슈슉-
추소륵의 검이 내 상체를 찔러왔다.
얼핏 단조로워 보이나, 실제로는 변화무쌍한데다가 정교하기까지 하다.
내가 신형을 낮게 깔며 간격을 좁히자, 추소륵이 즉시 신형을 틀며 내 어깨 어림을 베어왔다.
나는 권갑의 손등 부분을 이용해 검면을 쳐냈다.
툭!
제법 강하게 쳐냈음에도 손등에 전해지는 반발력이 예상보다 훨씬 적다.
내가 쳐내자마자 추소륵이 검로를 부드럽게 변화시키며 곧바로 내 옆구리를 찔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소림의 무공은 강(굳건함)을 위주로 하되 유(부드러움)로서 강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묘리를 담고 있다.
강약이 조화되며 동작은 연속되기에, 공수의 전환 또한 순조로워야 한다.
그렇기에 공격 중에 방어가 있고, 방어 중에도 공격이 살아 있는 심오한 묘리가 깃드는 것이다.
지금의 추소륵 또한 그런 묘리를 제법 잘 살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역시나 소림이 아끼는 제자다운 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