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06
소성심단의 약기운이 모두 사라진 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 후에도 두 차례 더 운공을 했다.
눈을 뜨자마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사오 년 공력을 상승시켜준다는 소성심단으로 나는 육 년을 살짝 넘기는 수준의 공력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일전에는 방어적인 계산법으로 오 년 공력을 잡았는데, 실제로는 육 년 공력을 얻은 것이다.
역시 회회심공이다.
원래의 사십팔 년 공력에 육 년 공력이 더해졌으니, 이제 나는 오십사 년 공력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전생의 나는 회회심공을 통해 오십육 년 공력의 후반부에 절정에 올랐었다.
기준을 전생으로 잡는다면, 나는 수치상으로 이 년 반 남짓의 공력만 더 모으면 절정에 오르게 된다.
수치상으로 이 년 반 남짓의 공력이면, 회회심공의 수련방식으로는 무조건 이 년 안에 모을 수 있다.
송유겸의 현재 나이는 열아홉이며, 지금은 구월 하순이다.
즉, 꾸준히 수련했을 경우 스물한 살의 가을이 되기 전에 절정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미쳤다.
설령 수련을 설렁설렁 한다 해도 스물두 살 쯤에는 무조건 절정고수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절정고수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생에 서무욱이었던 나는 스물일곱 살의 후반에 절정에 올랐었다. 사부님과 함께 회회심공을 꾸준히 수련했던 덕분인데, 그조차도 상당히 어린 나이였다고 할 수 있다.
알려지기로 천하제일세가의 장남인 남궁찬마저도 스물다섯 살 즈음에 절정에 올랐다고 했다. 당연히 매우 어린 나이에 오른 셈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 근래의 사오십 년간 남궁찬보다 더 어린 나이에 절정에 오른 이는 강호를 통틀어 딱 한 명이다.
내 대사형이었던 위지광 그 새끼다.
놈은 스물두 살 때 절정에 올랐다.
사실 그건 위지광의 자질이 남궁찬보다 빼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천마신교의 대공자인 만큼, 어려서부터 신교 차원의 어마어마한 지원이 놈에게 집중되었던 탓이다.
아무리 천하제일 남궁세가의 집중 지원이라도, 천마신교라는 거대 세력의 집중 지원과는 여러 면에서 질적, 양적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위지광 놈의 자질도 좋은 편이니 집중 지원에 어느 정도는 부응한 성취를 냈던 것이고.
어쨌거나 이제 절정까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최대한 빠르게 그 길을 가는 일만 남았다.
절정이 눈앞에 보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욕이 더욱 샘솟는 느낌이다.
회회심공은 무공 경지가 잘 드러나지 않으니, 누구도 내가 그 어린 나이에 절정고수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혹시 모를 위기에 닥쳐도 몇 차례 정도는 생각보다 쉽게 넘길 수가 있다.
잠시 위지광 놈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을 하니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다.
얼추 두 시진(4시간) 가까이 지난 것 같다.
걸쇠를 젖히고 방문을 열자 그 앞에 제갈수광이 서있었다.
사실 나는 한식경(30분) 전쯤부터 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던 차였다. 중단할 수 없으니 계속 운기조식을 취한 것뿐.
제갈수광이 나를 보며 말했다.
“좋아 보이는군.”
“예, 잘 마쳤습니다.”
“배는 안 고픈가?”
내가 운기를 시작한 시각은 오시초(오전11시)를 살짝 넘긴 시점부터였다. 지금은 신시초(오후3시)무렵이다.
점심시간 전부터 시작하여 점심을 거르고 운기조식만 취했으니 제갈수광이 저렇게 물은 것이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입니다.”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피식 웃어 보이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어 건넸다.
봉투였다.
“이게 뭡니까?”
“전표.”
제갈수광이 짧게 대꾸하더니 턱짓했다. 열어보라는 의미다.
순순히 열어보니 역시나 전표가 들어 있었는데, 천하전장의 전표였다.
무림맹 정문을 벗어나면 천하전장의 무림맹 지점이 있는데, 그곳에서 발행된 전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행인란에 제갈수광의 이름이 정자체로 써 있었고, 서명란에는 제갈수광의 필체로 서명이 되어 있었다. 제갈수광의 글씨는 역시나 명필이었다.
액수가 상당히 컸다.
웬만한 서민 사인 가족이 이 년 이상은 거뜬히 먹고 살만한 액수는 된다. 내가 돈이 많긴 하나, 일반적으로는 이 돈도 당연히 큰돈이다.
“이게 무슨······.”
“내기에 걸었던 돈. 내 원금을 제한 수익을 반으로 나누고 잔돈은 절삭한 거다.”
딴 돈의 반이라는 뜻이다.
당신도 반띵이오?
그래도 이런 액수라니, 배당률이 높긴 높았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럴 만은 했지만.
“교관님이 투자해서 딴 돈인데 왜 제게 반을······.”
“투자는 내가 했어도 어차피 너 아니었으면 못 땄을 돈이다. 초특급정보라고 할 수 있는 네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 놓고 큰돈을 걸 수 있었던 거고. 가뜩이나 나는 단목강한테 걸었던 돈으로도 제법 재미를 봤고.”
“허······! 그쪽에도 거셨습니까? 아주 그냥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긁어서 털어 넣으신 겁니까?”
“긁어모은 내 재산은 대진표 나오기 전에 너한테 건 거고, 단목강한테 건 돈은 삼십이강 대진표가 나온 후에 윤 교관한테 빌려서 건 거다. 대진표 보니까 내가 아는 단목강이면 충분히 사강은 갈 것 같았거든. 윤 교관은 어차피 내기에 돈 많이 걸고 그러는 성격이 아니라서.”
단목강에 관한 정보도 제갈수광이라서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특급 정보이긴 하다.
“사행성 내기 같은 것도 안 좋아하시고, 윤단영 교관님이 참 여러모로 훌륭한 분이시네요. 그분의 유일한 흠결이라면 어처구니없게도 교관님한테 콩깍지가 씐 정도······.”
“이 자식을 그냥 콱!”
푸히히히!
오늘도 싸가지 없는 제자로서의 임무는 완수했다.
곧바로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받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가뜩이나 저, 돈 많습니다. 우승 상금도 받았고요.”
내가 봉투를 내밀며 그렇게 말하자 제갈수광이 단호하게 손바닥을 펴며 말했다.
“아니, 그냥 받아. 인생에 이렇게 확실한 투자 기회가 없어서 돈도 많이 걸었던 거다. 어차피 내년만 돼도 너는 말할 것도 없고 단목강마저 배당률이 확 줄어들 거거든. 즉, 이번이 유일한 기회나 마찬가지였고, 너희들 덕분에 딴 돈이다. 선생이 돼갖고 제자들 덕분에 번 돈을 혼자 꿀꺽하긴 싫어.”
제갈수광이 그 말을 남기더니 내 옆을 휙 지나쳐 본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 참. 진짜 필요 없다니까 그러시네.
뭐, 일단 받아놨다가 나중에 비룡장이 잘 지어지면 그곳이나 편하게 이용하게 해줘야겠다.
그 생각을 하며 걸음을 떼려는데, 제갈수광의 방문이 살짝 열리더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참. 아까 남궁 부당주가 들러서 너를 찾았다. 남궁세가주께서 너를 잠시 보자고 하신 모양이야. 만찬 전에 그쪽 특실에 잠시 들러달라더군.”
“아, 알겠습니다.”
교관 숙소 구역을 벗어나서 소회의실 쪽을 지나치는데, 그곳의 문이 열리더니 막내 교관 양소열이 말했다.
“유겸아, 잠시 들어와 봐.”
안으로 들어가 보니 둘째 교관 장호산, 셋째 교관 황염기가 자리해 있었다.
양소열이 나를 앉히고 본인도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유겸이, 소성심단은 잘 복용했어?”
“예. 배려해주신 덕분에요. 한데 어인 일로······.”
내가 그렇게 말하자 둘째 교관 장호산이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더니 내 쪽으로 내밀었다.
“자, 받아.”
서, 설마 이 인간들도?
“이게······, 뭡니까?”
“열어 봐.”
봉투를 열어보니 예상대로 전표가 들어 있었다.
천하전장의 무림맹 지점에서 발행한 전표였으며, 발행인은 장호산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액수가 제갈수광만큼은 아니나, 그 반은 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적은 돈이 아니다.
역시나 이 인간들도 내기를 걸었었다는 거지.
“이게 무슨······.”
내가 묻자 장호산이 대꾸했다.
“아, 우리 셋이 함께 돈 모아서 내기 걸었었거든. 장강에서 네 실력을 봤는데 안 걸 수가 있어야지. 네 덕분에 딴 돈이니까, 이익의 절반은 우리가 갖고 나머지 절반은 너한테 주기로 한 거야. 셋 다 남들보다는 좀 많이 건 수준이라서, 딴 돈도 많거든.”
당신들도 반띵이오?
금액을 모아서 장호산이 대표로 발행한 전표인 모양이다.
마음은 고마우나 받고 싶지는 않다.
이들 모두 통합 잠룡대전 기간 내내 열심히 나를 챙기며 도와줬던 사람들이다.
가뜩이나 잠룡관 교관 봉급이 얼마나 된다고.
“교, 교관님들, 마음은 감사하나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받을 이유도 없는데다가 제 경우에는 우승 상금으로 받은 액수도 상당히 커서······.”
내 말에 장호산이 대꾸했다.
“우승 상금은 우승 상금이고 이건 이거지. 관도 덕분에 번 큰돈을 홀라당 꿀꺽하면 교관인 우리 마음이라고 편하겠냐? 재미로 소액만 걸었다면 또 모를까.”
“게다가 이렇게 해야 이후에도 서로의 관계가 깔끔하게 유지될 수 있는 거야.”
황염기가 말을 보탰고, 양소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장호산이 말했다.
“그러니 잔말 말고 집어넣어.”
더 이상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교관들에게 인사하고 나와서 곧장 남궁세가가 머무는 특실로 향했다.
똑똑똑.
밖에서 문을 두드리자 곧 문이 열렸다.
“송 오라버니, 어서 와요.”
“헤헷. 송 오라버니, 오셨어요?”
문을 열어준 건 남궁설인데, 그 옆에 선우린도 있었다.
“어? 어. 누이들, 같이 있었네? 가주님이 찾으셨다고 해서 왔는데, 계셔?”
“네. 안에 계세요.”
거실로 들어서자 남궁 부자가 나를 맞았다.
“어서 오게, 송 공자.”
“유겸이, 어서 와.”
“남궁세가주님을 뵈옵니다. 부당······, 아, 남궁 형님도 안녕하십니까.”
남궁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벽이 나를 자리에 앉게 했다.
남궁세가의 세 사람이 내 맞은편에 앉았고, 선우린은 내 옆에 앉았다.
내 정면에 앉은 남궁벽이 말했다.
“우승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시합도 잘 봤네. 보아하니 실력을 감추는 것 같던데,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잘 넘기더군.”
“아하하, 가주님께서 보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당연히 봐야지. 내 돈이 걸려있는데. 어쨌거나 내 돈을 지켜줘서 정말 고맙네.”
남궁벽은 매우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아하하, 다, 다행입니다.”
내가 대꾸하자 이번에는 남궁찬이 말했다.
“아! 마침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거.”
남궁찬이 품에서 꺼내어 탁자 위로 내민 건 역시나 봉투였다.
“말했잖아. 반띵해 준다고. 약속대로 내가 얻은 이익의 반이야.”
생각해 보면 그놈의 반띵 얘기는 이 사람부터였다.
“하하. 괜찮습니다, 형님. 말씀은 그리 하셨어도 저는 애초에 받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 돈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아시다시피 저는 이번에 받은 우승 상금도 많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궁할 때는 사정하고, 막상 여유로워지니 입 씻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 가뜩이나 어린 아우를 상대로.”
“그래도 이러실 필요는 전혀······.”
내가 재차 거절하듯 말했을 때쯤, 남궁벽이 눈매를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아, 거 참. 얼른 집어넣게, 송 공자. 그거 몇 푼 안 되는 돈을 가지고 뭘 받네 마네 계속 옥신각신하기는.”
그러자 남궁찬이 항변하듯 남궁벽에게 말했다.
“아니, 아부지!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뇨? 제법 큰돈이거든요? 걸었던 돈도 적지 않았고, 배당률도 엄청 높았다고요!”
봉투 안의 액수를 확인한 건 아니나, 당시에 남궁찬이 말하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저 돈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닐 터였다.
남궁찬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궁벽이 내게 말했다.
“뭐하는가? 빨리 좀 넣게. 시끄러워 죽겠으니까.”
천하제일세가주가 눈매를 찡그리며 저렇게까지 말하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저런 존재를 더 짜증나게 해봐야 나만 손해니까.
물론 남궁벽 또한 내게 저 돈을 챙겨주려는 종용임을 내가 모를 리 없다.
내가 남궁찬을 향해 목례하며 봉투를 양손으로 공손히 집어 들자, 이번에는 내 옆에 앉은 선우린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역시나 봉투였다.
“송 오라버니, 이거. 할아버지가 전해주라 하셨어요.”
“으응······? 지, 집법당주님께서······?”
일전에 이 방에 왔을 때 들은 게 있다 보니, 저 내용물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도 딴 돈의 반을 넣었다고 하셨어요.”
당시에 선우린은 선우훤이 상당히 큰돈을 걸었다는 식으로 얘기했었다. 선우훤 정도 되는 인물이 큰돈을 걸었다면 그 액수 또한 상당할 터였다.
“아니, 누이. 이러지 않아도 돼. 나는 정말로 받고 싶은 마음이 없어.”
“네. 할아버지도 송 오라버니라면 분명히 거절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이렇게 전하라고도 하셨어요. 이거 안 받으면 앞으로는 서로 볼 일도 없을 거라고.”
“하아······.”
내가 그렇게 반응하자 남궁벽이 선우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린아, 그것 좀 잠시 줘보겠니?”
“네? 하지만 할아버지가 봉투째로 송 오라버니에게 직접 전하라고······.”
“스읍, 린아. 내가 누구지?”
“네? 누, 누구시라면······, 남궁 백부님이시고······.”
“이 백부가 다른 의도로 그걸 보자고 하겠니? 그냥 잠깐 확인만 해보겠다는 거지.”
선우린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결국 남궁벽에게 봉투를 건넸다.
남궁벽이 검지를 세우더니 손톱으로 봉투의 밀봉된 부분을 쓱 그었다. 날카로운 내공을 손톱에 담아서 깔끔하게 개봉한 것이다.
전표를 살짝 꺼내어 확인한 남궁벽의 한쪽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려가고 있다.
남궁벽이 곧 전표를 봉투에 집어넣더니, 그 봉투를 탁자 위로 쭉 밀었다.
내 쪽으로 밀려오는 그 봉투에 힘이 담겨 있었기에, 나는 손을 내밀어 그걸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에 남궁벽이 왜 그런 미소를 지었는지 의아했던 터라, 나도 봉투 안의 전표를 살짝 꺼내봤다.
그 직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이 정도면 웬만한 시가지에서도 적당한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만한 돈이 아닌가.
아무리 배당률이 높았다고 해도, 걸었던 액수가 대체 얼마였기에 이 정도야?
물론 선우훤 또한 내 실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었기에 그 큰돈을 걸었을 것이다. 잃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걸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 많다. 상금보다 훨씬 많다.
용돈도 아니고, 이런 돈을 주면 나도 너무 부담스럽다.
선우훤이 으름장을 놓기까지 한 마당이니 안 받을 수도 없고 이것 참.
속으로 곤란해 하고 있는데 남궁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번엔 내 몫일세, 송 공자.”
밀봉된 봉투가 내 쪽으로 쭉 밀려왔다.
나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어 그 봉투를 멈추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남궁벽의 입꼬리가 여전히 말려 올라가 있는데, 이제야 저 미소의 의미를 제대로 알 것 같다.
본인도 어차피 내게 봉투를 내밀 작정이었으니, 혹여 자신의 액수보다 선우훤의 액수가 더 많은지를 한 번 비교해봤던 거다.
즉, 저 미소는 승리의 미소라는 거지.
일전에 저 사람은 부인이 알면 쫓겨날 정도로 큰 금액을 걸었다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딴 돈도 많았던 모양이다.
“가주님, 거듭 말씀드리지만 정말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미 충분히······.”
그러자 내 말을 끊으며 남궁벽이 말했다.
“아하, 선우세가주한테는 받아도 남궁세가주한테는 받지 않겠다?”
저 인간의 딸내미도 종종 저런 식의 화법을 구사하곤 한다.
참 좋은 거 가르쳤고 좋은 거 배웠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지난번에 나는 내 돈을 지켜달라고 부탁했고, 자네는 그 부탁을 들어줬네. 그러나 자네가 지켜준 건 내 돈만이 아닐세. 십대세가주들 사이에서의 내 위신도 지켜준 셈이지. 이 남궁세가주의 위신을 말일세.”
남궁세가주라는 말을 할 때는 압력까지 담아서 말했다.
이 인간은 꼭 이런 때만 위엄 있는 척한다니까.
어쨌거나 이쯤 되면 이유고 겸양이고 전혀 통할 단계가 아니다. 안 받을 방법이 없다.
내가 봉투를 양손으로 받아들며 감사의 뜻을 표하자 남궁벽이 또다시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이것도 받게.”
작은 목갑이다.
“예? 그건 또 무엇이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주는 우승 선물일세.”
내용물을 모르니 선뜻 받아들기가 애매하다.
일단 받았는데 얼토당토않은 고가의 물건이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니까.
“아, 부담돼서 그러는 모양인데, 이건 소소한 걸세. 청선곡의 청심단일세.”
청심다아안? 이렇게 갑자기?
내가 눈을 크게 떠보이자 남궁벽이 말했다.
“아, 우리 딸이 세가에 이게 남아 있으면 가져오라더군. 줄 사람이 있다면서. 뭐, 그게 자네였던 모양이고.”
이건 좋다.
내가 고개를 돌려 남궁설을 바라보자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예쁜 짓을 해서 그런지, 더 예뻐 보인다.
“원래 몇 개는 남아 있었는데, 노모께서 기력 회복 차원에서 가끔 하나씩 드셨던 모양이야. 하나밖에 안 남았지만 이거라도 일단 가져왔던 걸세. 내 돈 못 지켜줬으면 안 줄 생각이었는데, 지켜줬으니 흔쾌히 내놓는 거고.”
말을 마친 남궁벽이 목갑을 탁자 위로 밀었다.
턱.
손으로 목갑을 멈춘 후, 그걸 집어 들었다.
이미 복용해봤으니 잘 알고 있다.
청심단 하나에 반 년 공력 가량이었다.
얼핏 소소한 수치 같아도, 절정을 목전에 둔 내 입장에서는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거면 절정에 오르기까지 반 년을 더 줄일 수 있는 거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개꿀이 다 있나.
표정관리하자.
남궁벽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로 물었다.
“정력 쓸 일이라도 있나?”
갑자기 이런 질문이라니, 저 인간도 하여간 종잡을 수가 없는 인간이다.
영약이 아니라 양생단이니 저렇게 묻는 거고.
놀라운 점은 잠룡관에서도 청심단 얘기가 나왔을 때 남궁설한테서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일이 생각나서 살짝 확인해 보니 남궁설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로 그 아비에 그 딸이다.